기공술사 152화
십 대 정도로 보이는 어린 도인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말을 걸어오는 어린 도인의 눈엔 두려움이 가득해 있었다.
갑작스런 외부인에 대해서 경계심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천애랑은 포권을 취하며 소개를 했다.
“기공가문의 가주 천애랑이라 하오. 화산파의 위기 가능성에 대해 전해 듣고는 급히 지원을 온 것이오. 뒤에 따라오는 이는 제 가솔들이고.”
“아!”
어린 도인이 감탄하더니 다소 경계의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혹시 화산파에 무슨 일이 있었소?”
대답은 어린 도인의 뒤에서 들려왔다.
“화산이 현재 손님을 맞을 상황이 되지 못하오. 그러니 죄송하지만 객께선 이만 물러나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백발이 무성한 노 도인이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가 격한 전투를 치렀음이 짐작됐다.
천애랑은 그를 향해 다시금 말했다.
“다시 한 번 소개하겠소. 기공가문의 가주 천애랑이오. 개방 소방주의 언질로 화산파를 돕고자 왔소.”
천애랑은 그냥 개방 소방주를 팔았다.
‘소방주도 이해해 주겠지.’
정도무림에서 하오문의 입지가 있긴 하나 구파일방의 일원인 개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괜히 하오문의 정보출처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바엔 개방 소방주를 파는 게 빠른 설득이 되겠다 싶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개방 소방주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예견했음인가.”
노 도인의 표정이 우호적으로 바뀌며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줬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도움의 발걸음은 고마우나 이미 늦었소이다. 흉수들이 찾아와 이미 화산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갔소이다. 건물들은 비교적 멀쩡하다지만 인명피해가 워낙 커서…….”
말을 하는 노 도인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저 개방에 의해 찾아온 손님에 대한 간략한 상황설명 정도만 할 뿐, 딱히 천애랑의 도움을 바라는 어투는 아니었다.
노 도인의 분위기와 주변 상황을 파악한 천애랑이 노 도인을 향해 양해를 구했다.
“사람의 생명이 급하니 한 손 보태는 것에 허락을 구하겠소.”
“허락?”
노 도인이 의아해하자 천애랑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의각원의 의원들이오.”
“아!”
노 도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작은 생기가 돋아났다.
“그렇다면 이를 말인가. 이 노부가 버선발이로라도 부탁할 테니 부디 제자들의 상태를 봐주게.”
노 도인의 눈에 절실함이 보였다.
본인도 부상이 심한 것 같았지만 제자들을 더 소중하게 위하는 게 느껴졌다. 그의 말에 가족애 같은 게 느껴졌다.
천애랑은 뒤를 향해 말했다.
“들었지?”
“예! 가주님! 제가 싹 다 고치겠습니다!”
설동이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설동에게 잔소리할 것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천애랑은 포기하고 화란에게 눈빛을 보냈다.
화란이 ‘제가 잘 지휘할게요.’라고 작게 말하며 앞장서 걸었다.
천애랑은 빠르게 흩어지는 의각원생들을 보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부상자들을 확인하는 그들이 모습이 꽤나 든든했다.
천애랑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각원생들 덕분에 안도를 하는 노 도인을 보았다.
“혹시 괜찮다면 여기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노 도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용한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
마교는 금천, 소금, 단파, 강정, 감락의 전선을 형성하며 사천성의 서쪽 절반을 장악했다.
이는 사천의 청성산과 아미산, 그리고 성도의 사천당가를 마주하는 전선이었다.
그러한 전선 중 소금의 마교 사천공략기지에서 마뇌가 인상을 썼다.
“썩어도 제갈가라 이건가.”
“놈의 암도진창 수가 너무나도 절묘했소.”
마뇌의 옆에서 함께 군략지도를 살피던 혈뇌가 맞장구를 쳤다.
신강에서 출발한 마교의 전력은 파죽지세로 서장과 감숙 대부분, 심지어 청해의 곤륜파마저 멸문시키며 진격했다.
마교는 서쪽의 세 방면에서 합류한 전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사천을 치려 했다.
그 목표는 사천당가가 있는 성도(成都).
단숨에 사천당가를 점령한다면 인근의 청상파나 아미파를 고립시킬 수 있었다.
한 번의 돌격으로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기에 마뇌와 혈뇌가 직접 힘을 합쳐 작전을 짰다.
그러나 인해전술이라는 압도적인 전략 앞에선 그 어떤 화려한 전술도 부족할 때가 있는 법.
게다가 청성파와 아미파가 각자의 산에서 전력을 보존한 채 나오지 않고 있다하니 속전속결로 뜻을 이루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마교는 힘과 머릿수로 빠르게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청성파와 아미파의 정보가 거짓이었다.
이는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청의 계략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갈청은 마교를 유인하기 위한 무림맹 무사들을 희생시켰다.
그 때문에 마교는 더더욱 기세등등하게 성도로 진격했다.
그리고 마뇌와 혈뇌가 제갈청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마교 선발대가 청성파와 아미파, 그리고 성도의 사천당가에게 고립된 후였다.
즉, 정보를 교란하고 미끼를 희생하며 뱀의 머리를 잘라 먹은 제갈청의 과감함에 두 사람이 당한 것이었다.
“쯧. 설마하니 정파라는 놈이 그런 과감한 수를 낼 줄은 몰랐다. 아군을 희생시키다니.”
“그만큼 놈이 다급했다는 것 아니오. 결국 자승자박이오. 아군을 희생시켰으니 정파의 다른 녀석들 시선이 곱기만 하진 않을 것이오.”
혈뇌의 말에 마뇌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나저나 녹림과 수로채의 건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몇 군데가 삐끗하긴 했으나 대체로 성공을 하고 있는 듯하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우리와 마주한 무림맹 전력들은 메말라갈 거요.”
“그래. 도적놈들이 그만치 돈을 받아먹었으면 힘을 내 줘야지.”
그때 혈뇌가 마뇌에게 물었다.
“형님. 흑화 이것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오?”
마뇌가 생각에 잠기며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그러다 말했다.
“놔두어라. 변수 같은 놈들인데 지금 당장 하는 짓거리가 우리에게 해될 게 없다.”
“강시에 미친놈들이 당가로 향하는 것 같던데 그것도 놔두오?”
“그래. 전 가주를 따르는 당가의 잔당들이 복수를 위해서 간다는데 말릴 필요가 있겠느냐. 우리로선 막을 이유가 전혀 없다.”
“알겠소. 대신 언제든지 총공격을 할 수 있도록 애들을 대기시켜 놓겠소.”
“그래.”
마뇌가 군략지도에서 사천당가가 있는 성도를 보았다.
***
사천성 성도의 사천당가.
그곳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군사님의 급보는 모두 보셨겠지요.”
당정아의 화두로 회의가 시작됐다.
아미파의 나부약이 입을 열었다.
“천이 넘는 강시가 산길을 따라 이곳으로 오고 있다죠?”
사십 줄의 그녀는 아미파 장문인 백원신니의 적전제자였다.
여전히 젊은 적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그녀는 외모만큼이나 무공 실력으로도 유명했다.
어릴 때부터 아미파의 신성으로 불리고 백원신니의 모든 무공을 익힌 그녀는 초절정 경지의 고수였다.
장문인과 장로들은 아미파의 본산을 지키기 위해 남고, 나부약 그녀가 스무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당가에 합류했다.
청성파에서 온 목미랑도 입을 열었다.
“강시들이 산중 민가를 헤치는 바람에 군사부의 첩보에 걸렸다고 들었네. 그런데 강시들이 강한가?”
청성십칠검의 수좌인 그녀의 나이는 오십이 훌쩍 넘었다.
청성십칠검은 장문인을 제외한 청성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17명의 고수이고, 그녀는 그중 제일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아미파와 마찬가지로 청성파도 본산인 청성산을 지키기 위해 장문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력이 남고, 당가엔 정예인 청성십칠검만 보냈다.
당정아가 청성파의 목미랑과 아미파의 나부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당가에서 이론으로만 전해 들었지 그 실상에 대해선 익숙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림맹 군사부의 정보에 따르면 강시의 움직임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당정아가 말을 이었다.
“이는 활강시를 의심해볼 수 있는데, 기록에 따르면 활강시는 생전의 무위보다 훨씬 강한 힘을 낸다고 했습니다. 생전의 움직임은 그대로이나 부상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없어졌으니까요.”
“허어.”
“활강시라….”
두 여인의 탄식에 당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충분히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활강시를 만드는 것은 극히 어려운 작업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수가 무한정 많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되 너무 걱정부터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럼 강시들의 약점은 없는가?”
청성파 목미랑의 질문에 아미파의 나부약도 동감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모았다.
“일반 강시의 경우엔 불에 취약합니다. 움직임이 다소 부자연스럽고 빠르지 않기에 화공을 적극 활용한다면 좋은 효과를 거두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을 잇는 당정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활강시는 불에도 다소 강합니다. 생전의 내공과 무공을 사용하기에 헤쳐 나오는 능력이 강하겠죠. 물론 강시 특유의 신체 내구성도 강하고요. 그래서 일일이 목을 쳐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 겁니다.”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말인즉슨 활강시를 상대하려면 원거리 화공으로는 한계가 있고, 직접 강시들 사이로 침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전투의 난이도를 급격히 높이는 요인이었다.
“으음….”
“쉽지 않군.”
나부약과 목미랑이 저마다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당정아도 손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무림맹에선 마교와의 전선을 형성하느라 함부로 전력을 뺄 수 없는 상태라 했다.’
만약 강시를 막겠다고 전력을 비우는 순간, 호시탐탐 노려보는 마교의 전력이 총공세를 펼쳐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가는 마교와 강시에 포위되어 사면초가의 경험을 할 게 자명했다.
‘이걸 어쩐다.’
당정아의 수심이 깊어졌다.
당가 가솔들의 가용 전력은 불과 백오십여 명.
이조차도 암기나 독을 던질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상정했을 때의 인원이다.
제대로 된 육탄전을 기대할 수 있는 전력은 그 절반도 못 됐다.
‘이마저도 후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전 가주의 죽음 후 그대로 사라진 암각과 무각의 전력손실이 뼈아픈 상황이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당가를 배신한 것이다. 언젠가는 당가의 규율에 따라 벌하리라.’
암각과 무각의 일원들, 속칭 당가 이탈자들이라 부르는 이들의 존재는 제갈청의 언질과 당가칠영의 조사를 통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모든 추적을 피해 잠적한 뒤론 그 흔적을 지금까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당정아는 한숨과 함께 천장의 보를 올려다보았다. 음각된 뇌룡과 불의 나비를 보였다.
‘그래. 할 수 있다. 나는 당가다.’
그녀는 전투 전의 의지를 다졌다.
그때였다.
회의를 하던 가주전의 문이 급히 열리며 당가칠영의 당철이 급보를 전해왔다.
“가주님! 척후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시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던 당정아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녀의 안광이 강하게 빛났다.
“알겠습니다. 모두 불청객들을 맞이하러 가죠.”
당정아 그녀가 일어남에 따라 곤룡포와 비슷한 암녹색의 피풍의가 군세의 깃발처럼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