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51화
이를 지켜본 화산파의 장로들은 생각했다.
‘언제 저 정도 수준까지 도달했더냐.’
‘장문인이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
‘저 공격 하나만 보자면 장문인을 제외하곤 현 화산파에서 막을 이가 없다.’
‘일반적인 강기를 상회하는 게 자하신공이다. 청상도 이를 모르진 않을 터. 분명 피하겠지.’
장로들은 청번의 성취와 그 위력에 깊은 감탄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청번의 검은 모두 파훼되었다.
청번은 극히 당황하는 기색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때 청상의 몸으로 새롭게 부활한 혈교주가 입을 열었다.
“명성 자자한 자하신공이라는 게 생각보다 볼품이 없군. 신검은 어디에 있지?”
혈교주의 목소리는 기존의 청상과는 다른 음색을 보였다.
이에 청상과 가깝게 지냈던 화산파의 일원들이 움찔했다.
그리고 질문의 내용이 청상의 입에 담을 것이 아니었기에 화산파의 혼란이 더해졌다.
물음에 대한 답이 화산파에선 돌아오지 않자 혈교주는 현성을 쳐다봤다.
“여기엔 없는 것 같다.”
현성의 대답에 혈교주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고작 이런 애송이들을 상대하려고 본좌가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혈교주가 심히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화산파에서도 불쾌한 기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특히 무시 받은 청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졌다.
“청번아…!”
백문은 청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기운에 우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하지만 말릴 겨를이 없었다. 청번의 신형이 쏘아졌기 때문이다.
그릇 이상의 기운을 뽑았는지 청번의 입에선 역류하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만큼은 천지를 개벽할만한 위력을 예상케 했다.
혈교주의 시선이 느릿하게 청번에게로 향했다.
동시에 혈교주의 검에서 기함할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인지와 반응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또한 내공이 어찌나 많은지 보통의 강기처럼 잘 정련된 것이 아닌, 마구잡이로 내공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혈교주의 표정은 평온했다.
혈교주의 검이 어느새 다가온 청번의 검과 부딪혔다.
복잡한 형과 식을 이용한 고차원의 수 싸움이 아니었다.
그저 힘과 힘.
누가 더 강한 힘으로 상대방을 부수느냐를 겨루는 듯한 충돌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청번의 신형이 날아갔다. 그에 반해 혈교주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투의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백문을 비롯한 장로들이 다급히 몸을 날리며 청번을 받아냈다.
“쿠웩!”
청번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힘 대결 한 번에 큰 내상을 입은 것이다.
급속도로 창백해지는 청번의 안색은 빠른 치료와 요양이 필요해 보였다.
지금의 결과에 장로들이 대경실색했다.
나이와 배분을 제외하면 청번이 이 자리에서 제일 고수이다.
그런 청번의 전신전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자신들이 아는 청상이라는 것이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혈교주의 검이 난도질을 하듯 허공을 빠르게 갈랐다. 그 모습을 본 백문이 크게 외쳤다.
“제자들은 피해라!”
장로들과 일대제자들이 이, 삼대제자들을 밀치듯 피하게 만들고는 백문의 곁으로 뭉쳤다.
이들은 다급히 매화검진을 방진으로 형성하며 검막을 펼쳤다.
같은 내공과 같은 무공의 배움에서 오는 동일감이 빠르게 두터운 검막을 만들어냈다.
눈앞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켜켜이 쌓인 검막의 방어가 혈교주의 공격과 충돌했다.
콰과과과광! 콰과광------!
엄청난 충격이 연화봉을 뒤흔들렸다.
“쿠억!”
방어를 했던 장로들과 일대제자들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혼절을 하는 제자들도 있었다.
그에 반해 혈교주는 여전히 오연한 눈빛으로 서있었다.
백문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넌 누구냐.”
눈앞의 청상은 자신이 아는 청상이 아니었다.
동문을 해하는 패륜과 이해할 수 없는 강함이 강한 이질감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공격 당시 느껴졌던 내기는 절대 화산파의 것이 아니었다.
‘피 냄새와 살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백문의 의문에 대해 혈교주는 답을 주지 않았다. 혈교주는 그저 언짢은 기색으로 다시 현성을 보았다.
“네 녀석의 말대로 이곳에 왔건만 이런 시시한 대접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나라고 무림맹주가 이곳에 없을 줄 알았나. 당가로 간 녀석들의 말만 들은 게 문제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최고라는 칭호밖에 없다. 그 시작을 신검으로 알리려 했는데…….”
“그럼 기다려봐.”
논쟁을 벌이던 현성이 혀를 차며 앞으로 나섰다. 그를 호위하듯 십여 명의 흑화도 뒤따랐다.
‘신에 필적할 무인을 만들었지만 이리 통제가 어려워서야.’
몇 차례의 대법을 통해 청상의 몸을 고금제일의 육체로 만들었다.
수많은 실패작들의 시신 위에 이루어진 유일한 성공이었다.
그 과정에 들어간 피의 양만으로도 강을 이룰 정도였다.
그 후 혈교의 비전을 통해 혈교주의 영혼이 새로운 육체의 중심축이 되었다.
모든 것이 기적 같은 성공이었다.
완벽한 육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축적된 어마어마한 내공.
청상의 살아생전 몸에 기억된 화산파의 내공과 무공.
혈교주의 영혼에 각인된 각종 무공들.
합류한 당가의 실험으로 만독지체를 넘어 독인의 힘까지.
한 사람이 담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품은 존재.
흑화가 꿈꾸던 신이자 혈교가 염원했던 혈교주의 재탄생이었다.
함께 한 모든 이들이 감히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의 탄생이라 자부했다.
‘다만 문제점은 대법 과정에서 온갖 영혼들이 꼬인 탓인지 성격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인데.’
그래도 괜찮았다.
흑화의 목적은 신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였고, 모든 대법이 성공한 순간 이를 이룬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남은 건 자신들의 업적을 세상에, 특히 화산파에 알려 흑화의 이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면 될 뿐이었다.
실컷 천수를 누렸다 여기는 흑화의 입장에선 그 이후에 벌어질 것들엔 관심도 없었다.
현성은 혈교주를 힐끗 보았다.
‘점점 자아가 강해지는지 벽이 생기는 느낌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전혀 통제되지 못하는 괴물을 세상에 풀어놓을 것만 같았다.
물론 현성의 입장에선 관심 없었다.
‘혈교 놈들은 이럴 줄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긴 한데…….’
흑화, 당가의 도망자, 혈교의 연합은 각종 이해집산의 결과물이다.
다소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서로 이득이 되는 부분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현성이 상념을 지우며 백문에게 다가갔다.
현성은 눈에 쌍심지를 켜는 백문을 보며 물었다.
“신검은 어디에 있지? 우리가 이렇게 차분하게 움직였는데 설마 인근에 있으면서 제자들 뒤에 숨었을 리는 없을 테고.”
“설마 이곳에 온 연유가 장문인을 시해하려고 온 것인가!”
백문이 놀란 외침을 했다.
현성이 귀찮은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신검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라. 그게 제자들을 살리는 길이다.”
제자들이라는 단어의 언급에 백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아직 화산파에 강한 저항의 의지가 남아있다고 하나 눈앞의 괴물들이 작정한다면 큰 피해가 자명했다.
특히 그 피해 속엔 제자들이 대거 포함될 것이기에 백문은 침음을 흘렸다.
“장문인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오.”
백문의 목소리는 여전히 경계 가득했지만 다소 차분해졌다. 이에 현성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저 녀석이 죽이든 삶든 알아서 하겠지.”
현성의 고개가 혈교주를 향해 까딱였다.
“……우리를 보며 화산파를 우습게 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문인은 격이 다르오. 달리 신검이라 불리겠소.”
현성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제아무리 신검이라도 저 녀석의 앞에선 어림없을 거다. 이는 천마도, 과거 기공가문의 가주가 온다 해도 마찬가지일 터.”
“…….”
백문이 고민을 할 때 주위에 장로들이 기다시피 다가왔다. 부상에 피를 흘리면서도 장로들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백문 사형. 물러날 수 없습니다.”
“어찌 적들을 앞에 두고 물러날 수 있겠습니까.”
백문이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도 장로들의 말처럼 결사항전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몰살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처럼 주 전력이 부상을 입은 상황에선 흑화만으로도 양패구상이다.
‘그런데 청상의 몸을 한 저 괴물까지 있으니.’
백문은 눈앞의 청상이 더 이상 자신이 아는 청상이 아니라고 확정 지었다.
‘화음현과 인근의 속가제자들을 불러올 시간도 부족하고. 이럴 때 장문인이라도 있었다면.’
절대고수인 장문인의 부재가 너무나 뼈아팠다. 장문인을 따라나선 호위대의 부재도 아쉬웠다.
화산파의 사업확장으로 자리를 비운 장로들과 제자들의 부재도 아쉬웠다.
쓰디쓴 감정을 억누른 백문이 입을 열었다.
“감숙 난주의 무림맹 지부로 향한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소.”
“백문 사형!”
“어찌!”
백문의 말에 주위의 장로들이 놀란 외침을 뱉었다.
이에 백문은 침중한 표정으로 사제들을 제지시켰다.
“감숙 난주 무림맹 지부라……. 그렇다는데?”
현성이 삐딱하게 고개를 틀어 혈교주를 보았다.
그러자 혈교주가 지체 없이 몸을 돌려 화산파를 벗어났다. 그 모습에 현성이 혀를 찼다.
“쯧.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나저나.”
현성의 시선이 백문과 그를 중심으로 뭉친 화산파 일원들을 향했다.
다 잡은 사냥감을 앞에 둔 호랑이의 표정과 비슷했다. 이에 화산파의 일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경계했다.
“후배들과의 약속인데 지켜야겠지.”
말을 한 현성이 몸을 돌리며 크게 외쳤다.
“우리도 감숙 난주로 간다!”
“예!”
현성을 중심으로 한 흑화도 빠르게 화산에서 물러났다.
적들이 사라져 고요해진 화산파의 정경을 보며 백문이 입을 열었다.
“나를 구금하게.”
그의 말에 장로들과 제자들이 놀란 눈을 했다.
“적들의 협박에 장문인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중죄일세. 그러니 나를 죄인으로 취급해주게.”
“사형!”
“사백님!”
백문의 행동이 당장의 위기에서 제자들을 살리기 위함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그에게 죄를 묻는 돌을 던질 사람 또한 없었다.
백문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몸이 멀쩡한 제자들은 당장 화음현으로 내려가 무림맹 군사와 장문인에게 오늘의 일에 대해 전하게. 서두른다면 장문인에게 먼저 소식이 닿을 수 있을 것이네.”
할 말을 마친 백문은 터벅터벅 걸어 구금동으로 향했다. 스스로 갇힐 생각이었다.
화산파의 모두가 복잡한 심경으로 백문의 등을 바라봤다.
***
천애랑은 의각원생들을 데리고 화산파를 올랐다.
중원 오악 중 서악으로 불릴 만큼 화산은 거대한 산세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험준함으로만 따지면 오악 중 으뜸일 거라는 세간의 말이 이해되었다.
게다가 산이 어찌나 높은지 중간엔 구름 무리도 껴있었다.
괜히 향배객들이 화산을 오르는 과정 자체만으로 기도를 이룬다고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여러모로 태산이나 숭산과는 다른 풍취에 오를 맛이 있는 곳이었다.
‘평화로운 때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화산의 위기를 감지하고 지원을 가는 길.
천애랑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앞장서 나아갔다.
쭉쭉 뻗어가는 그의 발걸음에 수다를 떨던 의각원생들도 입을 다물고 바쁘게 뒤쫓았다.
앞서가던 천애랑의 미간이 좁혀졌다.
‘고요하다.’
화산파를 오르는 계단 길도, 화산의 정문이 눈에 보임에도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일반적이라면 향배객을 맞이하거나 불청객을 걸러낼 수문 무인 하나 없었다.
그렇게 천애랑은 화산파의 정문을 넘어섰다. 이내 그의 눈이 좁혀졌다.
‘늦었구나.’
큰 전투의 흔적이 있는 화산파의 정경과 함께 분주하게 부상자들을 챙기는 도인들이 보였다.
갑작스런 천애랑의 등장에 놀란 도인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