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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50화 (150/200)

기공술사 150화

천애랑은 의각원생들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화산파를 돕기 위해 불렀더니 왜 산적들이랑 싸우고 있어?”

화란이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 설동이 먼저 말했다.

“가주님! 이놈들 녹림이랍니다!”

설동은 ‘우리 잘했죠?’라는 표정으로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천애랑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곤 화란을 봤다.

이 중에서 가장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이는 무조건 화란이다.

천애랑의 시선을 받은 화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름 최단 거리로 가다가 녹림들의 시비에 걸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입에서 마교라는 단어가 나와서요.”

“마교라…….”

천애랑은 제압된 산적들을 보았다.

거친 풍모의 산적들은 혈이 집혀 움직이진 못하나 눈빛만은 사납게 뜨고 있었다.

그때 설동이 산적 하나의 뒷덜미를 강하게 쥐며 말했다.

“고문을 해볼까요?”

설동에게선 당장이라도 고문을 해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기색이 만연했다.

천애랑이 황당하게 설동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의원이 되겠다더니.’

그런데 설동의 옆을 보니 추담도 사람 팔뚝만 한 대침을 들고 눈을 빛내고 있었고, 춘석은 주먹을 으드득거리며 언제든 산적의 머리를 깨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놈들 왜 이렇게 됐지.’

무언가 괴물들을 키워낸 건가 싶었다.

천애랑은 마른세수를 하며 손을 까딱였다. 고문을 하든 어쩌든 정보를 얻어내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설동이 품에서 이상한 약초를 꺼냈다.

“크크크크.”

스산하게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설동을 필두로 의각원생들이 산적들을 붙잡으며 저마다의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약을 먹이고, 정체불명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대침이 섬뜩하리만큼 쇄골을 파고들고, 주먹질이 난무하는 현장이 벌어졌다.

“…….”

천애랑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소 황당했지만 과연 녀석들답다 해야 할까.

눈빛으로 살기를 뿜어대던 산적들이 완전히 굴복하고 입을 나불거리기까진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녹림연맹과 장강수로연맹이 마교와 결탁했다?”

산적들의 정보를 들은 뒤 천애랑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말인즉슨 마교가 천하의 산길과 물길을 막고자 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들을 상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정도문파들의 협력이 끊어진다. 이는 무림맹의 결속력을 와해시키는 큰 원인이 될 터.’

마교와의 전쟁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정도문파들의 결속이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현 정도무림은 과거의 비동 사건 때문에 감정의 골이 심한 상태.

때문에 다수의 세력들은 마교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협력은 하지만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들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산길과 물길이 막히면 목숨 걸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기 쉽지 않겠지.’

그런 상황에서 마교가 각개격파의 전략으로 임한다면 정도무림에 큰 위기가 올 수도 있었다.

‘문파 간 결합이 약해진 상태라는 것은 팽가만 봐도 알 수 있었지.’

중원의 심장과도 같은 북경에서 구파일방의 한 세력이 큰 고초를 겪었다.

마교와 전쟁을 치르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주변 문파들과의 끈끈한 결합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제아무리 마교가 황실을 등에 업었다곤 하나 너무 미흡한 대처였어.’

그러다 보니 지금 가야 할 화산파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평지에 위치해 사방이 노출된 하북팽가와는 달리 화산파는 천애지형에 위치해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요새와 같기에 절벽을 올라타 공격하지 않는 이상 많은 전력으로 공격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럼에도 설마 화산파가 큰 봉변을 치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혹시 모를 위험에 도움을 주고자 움직이곤 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천애랑의 심장을 간지럽혔다.

천애랑은 화산파가 있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아비규환.

현재 화산파의 상황이다.

수백 강시들의 공세는 거침이 없어서 화산파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강시들이 후방의 절벽에서 등장한 탓에 그 방면에 있던 삼대제자들이 순식간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일대제자들과 장로들이 앞장선 덕에 화산파의 피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대제자 청번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신검(神劍) 백청선의 직전제자인 청번은 장문인으로부터 직접 벌모세수와 갖은 영약들을 지원받으며 화산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었다.

덕분인지 제 2의 신검이라는 소리도 들을 만큼 그의 성장도 뛰어나, 불과 이립을 넘겼을 뿐이지만 장로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심지어 최근엔 화경의 문턱을 넘은 터라 그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하아압!”

힘찬 기합성과 함께 내지른 청번의 검격 한 번에 강시들 서넛이 쓰러졌다.

강력한 공격을 쏟아붓는 그의 검엔 자줏빛의 검강이 서려 있었다.

이는 화산파의 장문인과 그 뒤를 이을 자만 익힌다는 자하신공의 흔적이었다.

화산의 어떠한 무공을 가져와도 자하신공 앞에서는 모두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로, 자하신공은 그 뛰어남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거의 칠십 평생을 고련한 신검 백청선 또한 아직 자하신공을 완벽히 대성하지 못할 정도의 난이도였다.

하지만 청번은 이립에 불과한 나이에 자하신공의 중반부를 펼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몸과 내공이 그 경지를 따르지 못하는 것인지 청번의 입가로 거칠게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대신 그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콰과과광!

엄청난 검강의 기파가 수십 강시들을 초토화시켰다.

팔다리가 잘려도 움직이는 강시들이 육편이 되어 소생불가의 상태가 되었다.

그 위용을 보며 지친 장로들과 제자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하지만 기력을 소진한 듯한 기색의 청번을 보며 장로 하나가 말했다.

“청번은 물러나서 어린 사제들과 방진을 만들 거라!”

이어서 장로는 외쳤다.

“매화검수들은 세 명씩 짝을 이뤄 매화검진을 펼쳐라!”

매화가 많이 나는 화산파에선 그러한 매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무공들이 발전해왔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매화검법이다.

그리고 매화검법은 화산파의 일원이라면 모두가 익히는 무공이었다.

제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같은 사문임에도 제자들마다 주력 무공들이 각양각색 다른 화산파다.

그럼에도 똑같은 무공을 필수로 익힌다는 것은 이게 곧 화산파의 정신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당연히 화산파의 정예인 매화검수들 또한 매화검법을 익혔다.

더 나아가 매화검수들은 매화검법의 최상위 절학인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공통으로 익히고 있었다.

그러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합격진으로 펼치는 것이 매화검수들의 매화검진이었다.

매화검수들의 합격진은 곧장 효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작정 돌진하는 강시들에게 변검이 통하진 않지만 쾌와 변이 만나 이루어지는 환검은 유효했다.

환검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의 왜곡에 강시들이 상대를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그 틈에 매화검수들이 강시들의 사지를 쳤다.

단단한 강시의 신체가 강하게 저항했지만 매화검수들은 모두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고수들.

매화검수들은 강화된 강시들의 신체를 쳐내며 빠르게 강시들을 무력화시켰다.

대제자 청번을 중심으로 한 제자들의 방진, 장로들과 매화검수들을 중심으로 한 공격진의 저력이 대단했다.

강시들을 상대하는 화산파의 승리가 확실해져갔다.

이 모습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현성이 혀를 찼다. 그들의 청년기를 보냈던 화산이다.

전장에서 펼쳐지는 무공들과 사형제들간의 합격술은 본인들도 익히 경험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공들을 그 누구보다 오래 익힌 그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문제점들이 보였다.

“쯧쯧. 저기선 쾌를 더 신경 써야 환검이 사는 법이거늘.”

“쾌라고 무작정 몸을 가볍게 하는 게 아닌데 말이오. 쾌를 펼칠수록 보법에 더욱 신경 쓰고 힘을 담아야 하는데.”

현곽 또한 맞장구를 치며 화산파 제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저기선 몸을 좀 더 비틀어야 검의 위력이 커지는데.”

“합격술의 틈이 크오. 저러면 상대를 제대로 옭아맬 수 없을 것인데.”

둘의 지적은 계속됐다. 이는 그들에게 기다림 속의 작은 유희였다.

흑화가 화산파에 온 것은 화산파를 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강시도 하급의 강시로만 데려왔고, 자신들도 전장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흑화는 그저 화산파에 자신들의 결과를 보이고자 했다.

이승에서 신을 만들겠다는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했음을 알리고 싶었음이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는 자신들의 뜻에 동참하는 새로운 화산파를 만들고 싶었다.

때마침 흑화의 결과물이자 기다리던 이가 모습을 드러내며 화산파의 정문을 넘어섰다.

“왔군.”

현성이 반색을 했다.

신이 빚은 것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의 청년.

흑화와 당가, 그리고 혈교의 합작으로 탄생한 고금 제일의 신체.

그러한 신체에 대법을 이용해 혈교주의 영혼이 들어갔다.

그렇게 새로이 태어난 혈교주는 화산파의 하얀 도복이 아닌 흑화의 흑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엔 검, 다른 한 손엔 독인처럼 검푸른 독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때 백여 강시들을 모두 제압한 화산파 일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정문으로 향했다.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문에서부터 뚜벅뚜벅 걸어오는 청년은 화산파의 모두가 아는 이였기 때문이다.

함께 제자들에겐 동거동락 했던 사형제이며, 장로들에겐 사질이었던 이.

그리고 흑화에 의해 함께 실종되고 죽었다 알려진 백진의 제자, 청상이었다.

“청상아!”

“청상 사형!”

화산파의 일원들이 다가오는 청상을 격하게 반겼다.

특히 청상의 추적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됐던 청공이 격앙된 감정을 표현했다.

“청상 사형!”

청공은 눈물을 흘리며 청상을 안으려 했다.

그때 깔끔한 선이 허공을 갈랐다.

사아악.

고요한 검이 지나간 후, 청공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된 채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허황돼서 화산파의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충격의 정적이 지나고 거친 외침들이 쏟아졌다.

“청공아!”

“청공 사형!”

화산파 제자들이 기함을 하며 비명을 뱉었다.

청공의 스러지는 눈빛이 모두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들었다.

특히 청공을 베고선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청상의 모습이 더욱 놀람과 분노를 증폭시켰다.

대제자 청번이 청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네 이놈 청상!”

노호가 화를 내듯 크게 외친 청번이 검을 휘둘렀다.

단칼에 청상을 제압하고 그 죄를 묻고자 하는 청번의 검엔 망설임이 없었다.

팔과 다리.

대제자 청번의 검이 청상의 사지를 향해 뻗어갔다. 하지만 청번의 검은 손쉽게 막혀버렸다.

까가가강!

“흐읍?!”

공격이 막힌 청번이 놀란 눈을 했다.

‘엄청난 반탄력!’

단순하게 검이 막힌 것뿐만 아니라 부딪히는 검을 타고 기가 역류해왔다.

이는 청상이 청번보다 격상의 내공과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청상이……!’

청번이 이를 악다물곤 재차 검을 내질렀다.

그의 검엔 더 이상의 자비가 없다는 듯 자줏빛의 검강이 서렸다.

앞서 강시들에게 보였던 자하신공보다 더 강한 기세가 청번의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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