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48화
“동창? 황실에나 있을 내시들이 왜?”
오호대주의 표정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는 대답을 주춤거리는 수하를 다그쳤다.
“빨리 말하게!”
그제야 팽가 무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애랑, 흑의폭군, 또는 백두신룡이라 불리는 자를 데려오라 했습니다.”
장내에 의아한 시선들이 교차됐다.
그리고 시선들은 자연스럽게 천애랑에게 모여들었다.
“……젠장.”
“음?”
“천 가주?”
“공자님?”
“서방?”
예상치 못한 천애랑의 거친 반응에 오호대주, 방덕, 황보수란, 설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애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보 소저.”
“예?”
“우리의 동행은 여기까지인 듯하오.”
“예에?”
천애랑은 놀란 눈을 한 황보수란에게서 방덕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방주.”
“으음?”
“황보 소저를 가문으로 무사귀환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오. 그러면 천진의 개방도들을 구해준 값으로 치겠소.”
“으으음?”
이어서 천애랑은 오호대주를 봤다.
“동창에겐 내가 도망갔다고 하시오. 붙잡으려 했지만 귀신같은 솜씨로 도망갔다고. 알겠소?”
“아, 알겠네.”
오호대주는 얼결에 대답했다.
천애랑은 마지막으로 설화를 봤다.
“설 소저. 오랜만이라 매우 반가웠소. 혹시 어딘가에 머물 곳이 필요하면 일행들을 이끌고 거기로 가 계시오. 일행들이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자들이라면 말이오.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 믿소.”
“자, 잠깐…!”
설화가 다급히 천애랑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천애랑의 신형이 사라져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극성의 환영유령보보와 축지법이 펼쳐진 것이었다.
장내엔 황당함의 눈빛들만 맴돌았다.
***
북경 인근의 산.
순식간에 팽가의 담벼락과 북경 성벽을 넘어선 천애랑이 휘파람을 불었다.
내기와 영기가 섞인 휘파람이 빠르게 산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산속에서 백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마교와의 전투가 없음을 안 직후, 사냥과 휴식을 위해 잠시 떨어져 있던 백호였다.
“호야!”
천애랑은 자연스럽게 백호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최대한 멀리!”
빠르게 내달리는 백호의 위에서 천애랑이 뒤를 돌아봤다.
북경 성문의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보일 거리였지만 안력을 돋우니 보다 크게 볼 수 있었다.
북경 성문 앞엔 관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동창 내시로 보이는 복색들이 소수 있었다.
‘징글징글한 내시 놈들!’
천애랑이 치를 떨었다.
‘거기가 없으니 놈이라고 해도 되나.’
천애랑은 고개를 들어 북서쪽 방향을 가늠했다.
‘잠시 의각원으로 돌아갈까.’
담가의 위기 소식에 나왔다가 꽤나 많은 시간을 소모한 그였다.
‘훈련들은 잘 하고 있으려나.’
자비 없는 훈련들 속에 의각원의 모든 이들이 많은 성장을 했다.
‘내가 없다고 게으름 피우진 않겠지.’
만약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면 송소걸이 원흉일 것이다.
‘혹시나 그렇다면 지옥을 보여줘야겠군.’
천애랑이 행선지에 대해 고민을 할 때, 하늘에서 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
천애랑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먼 거리에서도 그 덩치가 좋아 보이는 매가 높은 산봉우리를 맴돌고 있었다.
삐이이이------!
그리고 울음소리에서 영기가 느껴졌다.
‘천응?’
천애랑은 매의 존재를 알아챘다.
하오문주의 전용 전서응인 천응(天鷹)이었다.
천애랑은 백호를 부를 때처럼 영기 섞인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천응이 거대한 날개를 펼쳐 활강하다가 마지막엔 날개를 접어 천애랑에게 돌진했다.
마치 그대로 부딪힐 것 같은 상황에 백호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경계했다.
하지만 천응은 천애랑의 지척에 오자마자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 급정지를 했다.
평범한 새라면 절대 하지 못할 기예였다.
천애랑은 팔을 내밀어 천응을 받았다.
사람 몸통만 한 거대한 크기에 빨간 꼬리털이 인상적 매였다. 그리고 못 알아볼 수 없는 새였다.
‘하오문주가 적당히 자랑을 했어야지.’
내심 백호의 존재가 부럽다며 남림야수왕을 닦달했던 하오문주다.
그 결과가 눈앞의 천응이었다.
“그런데 하오문주의 새가 왜?”
천애랑이 의문을 표할 때 천응이 천애랑의 얼굴에 머리를 비볐다. 그러곤 날개를 가볍게 펄럭였다.
“따라오라는 건가.”
그러자 맞는다는 듯 천응이 다시 천애랑의 볼에 머리를 갖다 댔다.
“그래. 안내해봐라.”
천애랑은 바람의 결을 이용해 천응을 높게 던져줬다.
그러자 천응이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앞장섰다.
“따라 가보자. 호야.”
***
천응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소오태산 깊숙한 곳의 산장이었다.
산장 인근엔 고요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위치이기도 했지만, 절묘하게 산길을 비튼 탓에 환속진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면 장원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돌아가겠어.’
그리고 곳곳엔 은밀하게 은신한 기척들이 느껴졌다.
아마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의도일 터였다.
하지만 천응과 함께 나타난 천애랑은 그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장원의 정문을 넘어섰다.
[들어오시게.]
장원 안 거대한 전각 안에서 전음이 들려왔다.
천애랑은 백호에게서 훌쩍 뛰어내렸다.
“고생했다. 쉬고 있어라. 호야.”
천애랑은 백호를 토닥이곤 곧장 전각으로 걸어갔다.
대기하던 시종들이 문을 열자 다소 어두운 내부가 보였다.
천애랑은 지체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 하고 좀 더 안쪽으로 향하자 침상 같은 것에 기대앉은 하오문주가 보였다.
그의 곁엔 심신을 진정시킬 때 쓰는 향초들이 향을 내뿜고 있었다.
“왔는가.”
다소 힘이 빠진 하오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오문주?”
천애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부상?’
하오문주는 예의 잘생긴 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매우 약했다.
“끄응.”
하오문주가 힘겨워하며 자세를 뒤척였다.
“보다시피 부상이 심한지라 양해를 구함세. 후우.”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드는지 그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천애랑은 미간을 좁혔다.
항상 검림(劍林) 속에 살고, 검날 위를 걷는 게 무림인의 삶이다.
그렇기에 때론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오문주이지 않나.
전투를 주로 하는 무력단체가 아닌 정보단체의 수장이다.
해서 전면에 나설 일이 거의 없는 그다.
게다가 그는 화경의 고수.
어딜 가서 이 정도의 부상을 당할 위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부상이라니!’
놀라움을 넘어서 경각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분노가 올라왔다.
하오문주는 의제의 아비를 넘어 맹우이자 때로는 지우와도 같은 존재였다.
“대체 무슨 일이오? 그리고 누구요?”
다소 흥분하는 천애랑을 보며 하오문주가 미소를 지었다.
“화를 내주는 게 고맙긴 하나 지금은 진정하게. 내 천천히 말할 테니.”
딸랑.
하오문주가 곁에 있던 방울을 흔들었다.
그러자 시종들이 빠르게 다가와 차를 준비하곤 물러났다.
천애랑은 하오문주를 마주 보고 앉았다.
“드리오?”
천애랑이 주전자를 들썩이자 하오문주가 손을 저었다.
“난 됐으니 자네 편히 들게.”
차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천애랑의 분위기가 진정되자 하오문주가 말문을 열었다.
“거두절미 말하지. 날 이렇게 만든 이는 흑화의 인물일세.”
천애랑의 표정이 굳었다.
“흑화? 마교의 부대요?”
하오문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교는 아니네. 은밀한 단체이니 자네가 모를 수 있다네.”
“그럼 흑화라는 암중세력에서 그대를 암살하고자 한 거요? 위험인물 제거 같은 건가?”
하오문주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반대에 가깝네. 내가 그들에게 접근했지. 그리고 암살이 아닌, 그곳의 단 한 명에게 치명상을 입은 거라네.”
“……!”
천애랑이 놀란 눈을 했다.
그 모습에 하오문주가 씁쓸히 웃었다.
“그래. 놀랄 만하지. 그자의 이름은 청상. 화산파의 일대제자이네.”
“화산파? 화산파가 왜?”
천애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문파를 지탱하고, 현 무림맹주를 배출한 명문대파의 화산파이지 않은가.
그런 천애랑의 놀람을 뒤로하고 하오문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화산파의 청상이 아닐세.”
“……?”
“그는 화산파 제자의 몸으로 다시 부활한 혈교주라네.”
천애랑은 손을 들었다.
“잠시.”
이야기를 멈춘 그는 차를 한입에 털어 마셨다.
“꽤나 혼란스럽소.”
“이해하네.”
“그러니까 흑화라는 암중단체에 청상이라는 화산파의 일대제자가 있고, 그자가 혈교주다?”
“정확하네.”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게 가능하오?”
“나도 놀랐네. 하지만 가능한가 보더군.”
“허어.”
천애랑이 장탄식을 뱉었다.
기가 막혔다.
제아무리 천고의 영약과 치료법을 가지고 있다 한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방법은 없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다.
하오문주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화산파의 일그러진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흑화네. 그런 흑화가 멸문한 줄 알았던 혈교와 결탁했네. 심지어 당가를 이탈한 잔당들도 합류했지.
“혈교와 당가…….”
천애랑은 번뜩 악가의 소가주가 떠올랐다.
당가밖에 다루지 못할 독에 중독된 소가주가 많이 의아했던 상황이었다.
‘혹시 그 독의 출처가 사천의 당가가 아닌 당가의 잔당들이라면.’
하오문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그들의 목적은 각기 달랐지만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네.”
“……?”
“하나는 강시, 다른 하나는 혈교주의 부활이네.”
“……!”
천애랑은 오늘 참 많이 놀란다는 생각을 했다.
“강시와 혈교주?”
“그래. 의각원에만 있던 자네는 모를 수 있으나 몇 년 전, 수많은 실종자들이 발생했었네. 그 안엔 우리 하오문도도 포함되어 있던 지라 조사에 착수했었지.”
“그렇게 발견한 게 흑화란 말이오?”
“맞네. 그래서 그들을 조사하던 중 강시가 된 실종자들을 목격했지. 그리고 나는 직접 좀 더 파고들기로 결심했지.”
“그리고 청상과 싸웠다?”
“정확히는 청상의 몸을 차지한 혈교주네.”
“흐음.”
천애랑은 침음을 흘렸다.
몰아치는 정보를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니까 죽은 혈교주가 모종의 방법으로 청상이라는 화산파 제자의 몸을 차지했다고 이해하면 되오?”
“좀 더 정확히는 혈교가 제물과 의식을 통해, 혈교주의 혼을 청상이라는 몸에 집어넣은 거네. 뭐 그거나 이거나 말하고 보니 비슷하구만. 흐흐흐.”
“…….”
천애랑은 팔짱을 끼고 물끄러미 하오문주를 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강하오?”
시선을 마주한 하오문주가 말했다.
“기세를 모두 펼쳐보게.”
말의 의중을 파악한 천애랑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겠소? 부상 입은 몸인데?”
“흐흐흐흐. 아무리 부상 입었어도 나 송강일세.”
“알겠소.”
고개를 주억거린 천애랑이 앉은 자세 그대로 기세를 풀었다.
쏴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폭포가 한순간에 쏟아지는 것처럼 그의 몸에서 기함할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한 기운을 마주한 하오문주가 놀란 눈을 하다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경이롭지만 이 정도로는 새로운 혈교주에 미치지 못하네.”
“그렇소? 그럼.”
말과 함께 천애랑의 몸에서 기운이 더욱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
“크윽!”
엄청난 기의 폭풍에 하오문주가 신음을 흘렸다.
“문주님!”
이곳저곳에서 대기 중이던 하오문도들이 다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그만!”
하오문주가 다급히 손을 젓자.
후우우우우우------.
방안을 휘몰아치던 천애랑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오문주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후욱. 후욱.”
“괜찮소?”
“안 괜찮네. 내상이 다시 도질 것 같구만.”
“그러게…….”
하오문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덕분에 비교할 순 있었네.”
그의 말에 천애랑이 눈을 빛냈다.
“어떻소?”
하오문주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기운만 느꼈을 땐 혈교주가 훨씬 더 높네.”
“흐음.”
천애랑은 내심 놀랐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내공만으로는 그 누구에게 밀리지 않는다 자부했다.
영약을 엄청나게 먹은 송소걸조차 자신에겐 조금 못 미친다.
게다가 최근의 수련으로 경지의 끝에 다다랐다 싶은 상태다.
그러한 내공을 아낌없이 하오문주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단 말이지.’
천애랑이 물었다.
“그럼 그는 어딨소?”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한 것을 말하고 싶었네.”
“……?”
하오문주가 목이 타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새로운 혈교주와 흑화가 화산파로 향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