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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44화 (144/200)

기공술사 144화

하북 북경.

하북성의 수도이자 황궁이 있는 거대도시였다.

현 천하에서 가장 많은 인재와 물자가 몰린 곳이기도 했으며, 이는 높은 치안 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북경에 자리를 잡은 문파들 중 가장 이름 높은 곳은 누가 뭐라 해도 팽가였다.

타고난 근골과 신력 덕에 고수들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었으며 도법(刀法)과 장법(掌法)에 능한 곳이었다.

팽가의 가풍이 꽤나 실전적이고 호전적이라 무림에서는 간혹 ‘미친개는 피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미친개는 하북팽가였다.

그런 하북팽가의 가주 팽진성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이놈들아 정신 차려라! 이상한 계집년들에게 휘둘리지 마!”

현재 팽가의 거대한 장원엔 요사스런 신음들이 울리고 있었다.

뇌를 헤집는 요기(妖氣)에 가문의 무인들이 제대로 된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이 잡것들이!”

전투를 지휘하던 팽진성이 화를 참지 못하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가주님!”

이에 가주를 호위하는 오호대가 다급히 팽진성의 뒤를 따랐다.

“꺄악!”

“꺅!”

팽진성의 거대한 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음살단의 여인들이 우후죽순 쓰러졌다.

“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서 죽여라!”

“존명!”

드라쿠를 보좌하던 이가 크게 외치자 마인들이 마기를 뿜어대며 팽진성에게 달려갔다.

팽 가주의 등장에 따라 팽가와 마교 간의 전선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드라쿠와 요향이 느긋하게 지켜봤다.

“정말로 아름답지 못하군.”

드라쿠가 핏빛과 같은 비단 천으로 입을 가리곤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왜요? 그래도 남자답고 나쁘진 않은데요.”

곁에 있던 요향이 혀로 붉은 입술을 적셨다.

마교가 혈교를 무력 흡수한 후, 채혈이라는 비슷한 공통점을 가진 드라쿠가 음살단을 휘하에 두게 되었다.

그런 드라쿠가 마교의 수하들과 음살단을 이끌고 하북팽가를 공격해온 것이었다.

드라쿠가 미간을 좁혔다.

“난 저렇게 근육 가득한 놈들은 정이 안 가. 만약 볼일이 끝난다면 네년이 다 가지든 해라.”

“정말 그래도 됩니까?”

요향이 반색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시큰둥하게 말한 드라쿠는 뒤에 시립한 부하에게 물었다.

“인근 세력들은?”

드라쿠의 명에 부하는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선 대답했다.

“인근의 중소문파들은 어명과 관군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곳에 개입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개방은 어떻지?”

“근처의 개방은 저희의 공세에 혼비백산 물러났고, 천진에 있는 녀석들은 아직까지 그곳에 묶여 있는 걸로 파악됩니다. 해적의 경우는 실패했는데, 녹림이 잘 해주고 있나 봅니다.”

“다른 곳은?”

“하남의 소림사나 산동의 황보세가는 거의 봉문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또한 무림맹 또한 전선이 형성된 사천 서쪽에 신경이 쏠린 터라 참견할 인원이 부족할 겁니다.”

부하가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고로 현재 하북팽가에 개입할 문파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좋군. 좋아. 그나저나 해적들을 물리친 놈이 뇌기를 사용했다지?”

“예. 맞습니다. 가공할만한 뇌기라고 했습니다.”

드라쿠의 표정이 굳었다.

“녀석인가.”

천애랑.

외모는 상당히 취향이지만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부상을 안겨주는 악연이었다.

특히 소림에서는 천애랑 때문에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으득.

드라쿠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흡혈이나 암시장에서 얻은 영약들로는 아직 부족해. 그러나 이번에 팽가의 영약까지 얻어 소화시킨다면 나의 성장은 진보한다. 그렇게 되면 천애랑, 반드시 죽여주마.’

상념에 잠겼던 드라쿠는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쯧.”

요향이 연신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입술을 보고 있었다.

드라쿠는 들고 있던 천으로 입술을 닦고는 말했다.

“귀찮으니 빨리 끝낸다. 내가 저 무식한 가주를 상대할 테니 나머지는 흩어져 영약들을 찾아오도록.”

“존명!”

지금까지는 하북팽가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교 및 음살단과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쿠의 참전이 이뤄지고는 급격하게 전황이 기울기 시작했다.

“크악!”

“막아라! 가주님에게 못 가게 막아!”

“저자가 마교 장로 드라쿠다! 막아라!”

드라쿠를 중심으로 한 마교의 파죽지세 공세가 차근차근 하북팽가를 쓰러뜨렸다.

이러한 흐름을 읽은 팽가의 가주 팽진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드라쿠!”

그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러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격하게 요동치던 전장에 잠시의 정적이 생겼다.

드라쿠가 팽진성을 향해 홍혈지를 날렸다.

까앙!

팽진성이 거칠게 도를 휘둘러 드라쿠의 탄지공을 막아냈다.

찌르르르.

그는 엄청난 반탄력에 도가 우는 것을 보았다.

‘가볍게 날린 탄지공인데…….’

팽진성이 이를 갈았다.

‘약관의 애송이놈도 상대했다는 마교 장로다. 제 놈이 아무리 화경이라지만 이제는 나도 화경의 몸이란 말이다!’

마음을 다잡은 팽진성의 몸에서 호랑이와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팽가 특유의 열양기가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를 덥고 습하게 만들었다.

“나 팽가의 가주 팽진성! 오늘 네놈을 잡고 팽가의 위세를 드높이리라!”

팽진성의 도에 불꽃과도 같은 도강이 어렸다.

팽가의 절기 중 하나인 오호단문도가 그에게서 펼쳐졌다.

노도와 같은 그의 기세가 드라쿠를 일도양단 할 것만 같았다.

그때 드라쿠의 손이 팽진성의 도로 향했다.

다소 무방비 상태의 움직임에 지켜보던 이들이 의아해할 때.

드라쿠 주위에 쓰러진 시신들에서 피가 솟구치더니 그의 손에 뭉쳐들었다.

이는 곧 하나의 혈검을 만들어냈다.

까아앙!

격돌에 의한 기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모두 물러나라!”

팽 가주를 수호하는 오호대의 대주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

팽가가 물러나는 것처럼 마교와 음살단도 이동했다.

그러나 여기는 수장들의 일기토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고대의 전장이 아니다.

드라쿠와 팽진성에게서 거리를 벌린 이들은 재차 전투에 돌입했다.

까앙! 까앙!

오호단문도에 이어 혼원벽력도까지 펼친 팽진성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장난하는가! 제대로 상대하라!”

엄청난 공방이 오고갔으나 팽진성 그가 생각하기에 드라쿠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드라쿠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유명한 팽가의 도를 견식 할 기회이니 잠시 여흥을 즐겼다. 헌데 고작 이 정도가 끝인가?”

진정 아쉽다는 듯 혀까지 차는 드라쿠를 보며 팽진성의 눈에 불이 켜졌다.

그의 몸에서 기함할 열양기가 뻗쳤다.

어찌나 그 기운이 대단한지 바닥에 깔린 대리석들은 쩌저적 금이 갔고, 인근의 나무들은 증발한 수분에 쪼그라들었다.

끝없이 팽창하던 팽진성의 기운이 급격히 도로 압축되었다.

“이것도 받아봐라!”

팽진성이 기합성을 지르며 도격을 펼쳤다.

후웅! 후우웅!

모든 것을 찢어발기고 태워버릴 것만 같은 파공성이 펼쳐졌다.

드라쿠도 이것까진 경시하지 못하겠는지 이리저리 보법을 밟으며 도를 막아냈다.

순식간에 백여 합이 지나갔다.

하지만 팽진성은 드라쿠에게 생채기를 낼 수가 없었다.

“이, 이익!”

악을 쓰며 모든 절기를 쏟아냈지만 드라쿠의 단단한 방어를 뚫을 순 없었다.

연이은 도격으로 혈검을 부숴도, 그사이 쓰러진 누군가의 피들이 모여들어 다시 혈검을 만들어냈다.

어찌저찌 강맹함으로 혈검을 산산조각 와해시키고 드라쿠의 품으로 파고들어도, 강대한 내공이 밀집된 호신강기를 뚫을 수가 없었다.

한 합, 한 합.

공격이 쌓여만 갈수록 팽진성의 무기력함도 쌓여만 갔다.

“이럴 순 없다! 이럴 수는……!”

팽진성이 악을 쓰며 도를 높게 들었다.

그러곤 모든 내기를 끌어모아 태산압정의 수를 펼쳤다.

모든 도의 기본이자 가장 강력한 도식.

게다가 진기까지 일부 끌어 쓴 덕에 도가 용암이 된 듯 뜨겁게 이글거렸다.

쿠우우우우웅!

팽진성의 기합성과 함께 한줄기의 불꽃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폭발한 화산의 단편을 보는 것만 같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기운이 드라쿠를 덮쳤다.

팽진성은 확신했다.

혼신의 힘을 실은 지금의 일격은 생애 가장 강맹한 공격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잘난 혈검과 호신강기라도 모두 부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믿을 수 없는 눈을 했다.

“어떻게……?”

팽진성은 자신의 일생일대 최고의 공격을 맞고도 멀쩡한 드라쿠를 보았다.

드라쿠는 잔뜩 인상을 쓰며 옷을 툭툭 털었다.

그와 함께 그의 신형 주위로 피의 조각 같은 것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제법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 공격에 큰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겠지.”

드라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 때문인 건지 더 이상의 기력이 남지 않은 팽진성은 좌절감을 느꼈다.

“나는…… 대 하북팽가의 팽진성이다!”

팽진성이 발악과도 같은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진 그의 도는 공허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콰드득!

순식간에 팽진성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드라쿠가 팽진성의 목을 부러뜨렸다.

드라쿠는 팽진성의 목을 붙잡은 상태로 기운을 일으켰다.

촤차차차착!

난도질을 당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팽진성의 몸이 목내이처럼 말라버렸다.

팽진성의 피를 모두 빨아들인 드라쿠가 나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그는 팽진성을 전장의 한복판으로 던졌다.

“가주님!”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던 팽가의 무인들이 대경실색을 했다.

드라쿠는 느긋하게 팽가의 장원을 구경했다.

향긋한 피비린내와 아름다운 핏빛 바닥의 뒤로 전각들이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각들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무언가를 챙겨오고 있었다.

곧 부하들 중 하나가 드라쿠에게 다가와 하나의 갑(匣)을 내밀었다.

“가주전 깊숙한 곳에서 찾은 혼원벽력신단입니다.”

드라쿠는 갑을 살짝 열어 영약을 확인하곤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흡혈로는 한계가 막힌 그에게 주어진 해결책. 영약.

흡혈로 얻는 혼탁한 기와는 다르게 영약은 순수한 기의 결정체이기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화경임에도 불구하고 미처 다듬어지지 않았던 혈도들과 세맥들이 영약을 통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결과는 경지의 성장으로 곧장 이어졌기에 드라쿠는 영약을 찾아 다녔었다.

마교의 비보, 암시장, 그리고 하북팽가까지.

‘특히 하북팽가의 혼원벽락신단은 신단으로까지 불리는 영약이니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드라쿠는 품에 영약을 챙겨 넣었다. 그러곤 명을 내렸다.

“팽가를 지워라. 난 먼저 물러나겠다.”

“존명!”

드라쿠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팽가를 벗어났다.

이후 치열한 혈전이 펼쳐졌다.

드라쿠의 명에 따라 단 하나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으려는 마교와 음살단.

팽가의 의지를 잇고, 팽 가주의 복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팽가의 무인들.

두 세력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다.

하지만 기울어진 전세의 격차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에 팽가의 무인들이 목이 갈라져라 외쳤다.

“팽가를 세운 선조님들과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자!”

“가주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우리는 팽가다!”

거대문파가 되고 그 세를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재력과 무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신.

단단한 정신수양과 의지는 하나의 자부심이 되어, 모든 것이 무너져도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기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적을 바라기엔 상황이 매우 좋지 못했다.

“끼요호오홋!”

팽가 무인들의 정신을 갉아먹는 음살단의 요기(妖氣)는 지금처럼 불리한 전황을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

한 식경 후.

마교와 음살단의 수가 백오십여 명에 달하는 것과는 달리 하북팽가의 생존자는 불과 이십여 명에 불과했다.

“이대로 팽가가 무너지는가.”

적들의 피로 온몸이 젖은 오호대의 대주가 통한의 심경을 토해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팽가의 정문에서 소란이 일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십여 명의 무리가 마인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의 무리는 모두 여인들이었고 그 기세가 대단했다.

특히나 가장 선두에 선 미모의 여인은 새하얀 모피를 입고 있었는데 엄청난 검술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 검술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매우 유명한 것이었다.

이를 알아본 오호대의 대주가 놀란 눈을 했다.

“북해빙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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