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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43화 (143/200)

기공술사 143화

뇌기(雷氣)와 수기(水氣).

제일 변칙성이 심해 다루기가 까다롭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일절인 뇌기.

그러한 뇌기가 가장 날뛰기 좋은 상생기운은 수기였다.

제어를 신경 쓰지 않은 뇌기가 바다라는 수기를 따라 자유롭게 뻗어나는 지금!

마치 바람을 타고 퍼져가는 화마처럼 엄청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파지직! 빠지지지지직!

“크아아악!”

“커억, 꺼어어어.”

“끄으으으으으으!”

물속에서 감전된 이들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두 눈을 까뒤집으면서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백여 명의 해적들 모두가.

“미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방덕이 나지막이 감상을 뱉었다.

그 외의 개방도들도 방덕과 마찬가지였다.

아는 욕이란 욕은 다 뱉으면서 지금의 놀란 감정을 표현했다.

“대체…….”

황보수란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천애랑을 보았다.

배에서 해적두목을 처치할 때도 대단했었다.

‘세가의 장로님들이나 당주님들에 비견될 만했지.’

탈출 과정에서 모든 배를 반파시키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본가의 가주이신 할아버님과 비견될까 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까지 더해지자.

‘가문의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겠네…….’

무공의 위력은 둘째 치고 저 뇌신이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은 가문의 꿈이었다.

꿈이라는 말은 곧 가문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고, 이를 제대로 이룬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과 같았다.

벽력(霹靂).

벽력신장, 벽력신권과 같이 가문의 최고 절기들은 벼락을 담고 싶어 했다.

실제로 벽력신장을 맞은 상대방의 상흔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불규칙적인 모양의 화상을 입긴 한다.

하지만 저 모습 앞에선 벽력이라는 말도 민망하다.

‘아름다워.’

황보수란이 몽롱한 눈빛으로 천애랑을 보았다.

자신 또한 황보의 피를 이은 가문의 일원.

가문의 염원에 이른 자를 앞에 두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이성 간의 감정만은 아니었다.

“공자님!”

“천 가주!”

내공이 탈탈 털린 천애랑은 지친 기색으로 일행들을 보았다.

그는 방덕에게 말했다.

“해적들의 뒤처리를 부탁하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소.”

“아! 물론일세. 개방만 믿게.”

“개방은 나에게 빚이 있는 것이오.”

“뭐?”

밝게 웃던 방덕이 이어진 천애랑의 말에 움찔했다.

그러자 천애랑이 방덕의 어깨를 짚었다.

“그럼 개방의 희생을 원천차단 해줬는데 날로 먹으려고 그랬소?”

“그건 아니지만…?”

“설마하니 소방주가 그런 인면수심의 마인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이 근처에서 맘 편히 휴식 취하기 좋은 객잔은 얼마요?”

방덕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비싼 곳은 하루에 금전 한 냥은 족히 되겠지? 그런데 그건 왜?”

천애랑이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이를 방덕이 의아한 눈으로 보자 천애랑이 말했다.

“몇 주간 배 안에 갇히다시피 지내고, 연달아 힘을 많이 썼더니 피곤해 죽겠소.”

“……해서?”

방덕의 눈이 불안해졌다.

“해서?”

천애랑이 눈을 좁혔다.

“개방은 목숨을 구해준 손님 대접이 영 시원치 않소. 해변에 개방이 보이길래 큰 위험을 무릅쓰고 해적선을 반파시켰건만. 그냥 해적선이 정박하게 놔둘 걸 그랬나 보오.”

방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다 좋긴 한데, 하필 거지한테서 돈을…… 차라리 정보를 요구하던가.”

수십 년 개방생활 중 동냥을 받으면 받았지 되려 뺏기는 건 처음이었다.

방덕이 꾸리꾸리한 전낭을 꺼냈다. 그러곤 그 안에서 작은 금 하나를 꺼냈다.

“여기 있네. 수습은 우리가 할 테니 자넨 좀 쉬고 있게. 풍월객잔을 찾으면 될 것일세.”

방덕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감정으로 돈을 내밀었다.

그러나 천애랑은 방덕의 손에서 돈을 가져가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방덕이 더욱 불안해진 눈빛을 보내자 천애랑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입이 두 개가 더 있는 데다가 우리가 며칠을 묵을 줄 알고 그러오?”

방덕이 황보수란과 백호를 보았다.

그는 백호의 입도 객잔에 머물 입이라고 해야 하나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며칠을 묵으려고?”

방덕이 완전히 항복을 하면서 다시 전낭을 열었다.

천애랑은 대답 대신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방덕이 잠시 멍한 시선을 보내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돈은 총타에 들러서 전달하겠네. 우선 이거 가지고 가 있게.”

그는 천애랑에게 작은 패를 건넸다.

“개방의 팔결 이상을 증명하는 패일세. 천진 내에선 모르는 이가 없으니 객잔주에게 제시하고 이용하면 되네. 돈은 후에 개방에서 지불하는 걸로 이해할 걸세.”

그제야 천애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은혜를 아는 소방주라 다행이오.”

천애랑은 밝은 모습으로 방덕의 축 처진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곤 황보수란과 백호를 불러 걸음을 옮겼다.

황보수란은 다시 고양이처럼 작아진 백호를 들어 안고 천애랑을 바짝 따랐다.

그녀는 무려 개방, 그것도 소방주의 주머니를 털어먹는 천애랑을 존경스럽게 쳐다봤다.

평소 빌어먹는 거지들이지만 정보의 독점력 때문에 꽤나 고자세를 취하던 게 개방이었다.

황보세가에서도 간혹 개방의 정보를 이용할 때면 비싼 수수료에 얼마나 얼굴을 찌푸렸던가.

오늘 이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황보수란이 연신 천애랑을 보며 방긋방긋 미소 지었다.

개방도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

그제야 천애랑은 품에서 본인의 전낭을 꺼내 열었다.

방덕에게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전들과 은전들이 찰랑거릴 공간도 없이 빼곡히 있었다.

천애랑은 그런 전낭 안으로 방덕에게서 받은 작은 패를 넣었다.

그 후 전낭을 단단하게 여민 천애랑이 미소를 지었다.

송소걸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형님! 형님은 어디 가서 호구소리 듣지 마세요. 아! 물론 호구란 소리는 아닙니다. 그런 적이 없으니. 그냥 제 노파심에 드리는 말이에요.]

[만약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주었거든 뭐가 됐든 보답을 받아내세요.]

[예? 의도가 아니라 우연하게 도움을 준 경우라면 어떻게 하냐고요?]

[이 형님이! 그러면 의도한 것처럼 말해야죠! 그게 아니더라도 시치미 뚝 떼고 행동하세요.]

[네? 그럼에도 보상을 안 주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러면 뭐 인상을 쓰던지, 아니면 형님이 잘 하는 힘을 쓰세요.]

[흐흐흐흐. 세상아 기다려라! 호구 아닌 형님이 나가신다!]

천애랑은 실소를 터트렸다.

‘호구 아닌 형님은 뭐냐 진짜.’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후후후. 소걸아. 너의 가르침대로 했다.’

천애랑은 흡족하게 전낭을 챙기곤 황보수란을 보았다.

‘흐음?’

그녀의 두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뭐라도 시키면 ‘존명!’을 외치고 뛰어갈 것만 같았다.

“우선 좀 씻고 몸 좀 추스릅시다. 소저는 가문에….”

“좋아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황보수란이 힘차게 대답했다.

‘하긴 온몸에 짠 기가 가득해서 나조차도 찝찝한데.’

경지가 더 낮은 그녀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동안 내색하지 않은 것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그럼 갑시다.”

“네!”

황보수란이 밝은 미소로 천애랑을 쫄래쫄래 따랐다.

***

약 10일.

그동안 천애랑과 황보수란은 방덕이 소개한 풍월객잔에서 편안한 휴식시간을 보냈다.

방덕이 좋은 객잔이라고 바로 소개할 만큼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우선 4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객잔은 각 층마다 값비싼 장신구들이 꾸며져 있어 눈을 즐겁게 했다.

또한 고도로 훈련받은 침모와 하인들이 마치 손님이 왕이 된 듯 대해주니 객잔 내 손님들은 항상 미소 가득이었다.

침구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수준의 푹신함을 자랑했고, 상시 뜨거운 물이 제공됐다.

금액만 지불된다면 악공들이 공연을 했으며, 간단한 건강검진도 가능한 의원들도 오고갔다.

음식 또한 엄청난 실력의 숙수들이 최고라고 자부할만한 솜씨를 뽐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누리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들긴 했다.

방덕이 말한 금액은 이곳에서 단순히 잠만 자는 정도의 비용이었다.

그러나 천애랑은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즐겼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개방의 소방주가 추후에 다 지불한다더군.”

거창하게 식사를 마친 천애랑은 접대를 하는 총관에게 패를 보였다.

그러면서 아무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괜히 공짜로 처리하지 말고 꼭 개방에게 받으시오.]

[천 가주님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천애랑과 총관이 나누는 전음이었다.

[내 개방에게 큰 도움을 준 것들이 있으니 그다지 셈이 어긋나진 않을 거요.]

[과거 소방주의 목숨을 살려준 거랑 최근 황군의 보급품, 그리고 해변의 해적들을 말씀하시나 보군요.]

[역시 알고 있구려.]

[저희가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특히나 천 가주님과 관련된 일인데요.]

[내 하오문주에게 받은 도움이 많으니 기회가 온 김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었소이다.]

[하하하. 개방의 패가 아주 제대로 주인을 만났군요.]

총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안마사를 준비시킬까요.”

“어떻소?”

천애랑이 황보수란에게 묻자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서도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 있고, 가끔 그녀들이 안마를 해주긴 하나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좋아요.”

게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받는 안마는 지금까지 살면서 해본 최고의 호사였다.

이는 천애랑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객잔의 후원을 산책하듯 지나가야 안마를 받는 공간이 있었다.

총관이 몇 발짝 앞장서며 전음을 이어갔다.

[그리고 천 가주님. 요청하셨던 정보가 오늘 파악됐습니다.]

[말해 주시오.]

[마교가 북경의 하북팽가로 향했다고 합니다.]

걸음을 옮기던 천애랑이 우뚝 멈춰 섰다.

그에 따라 총관도, 의아한 시선의 황보수란도 멈춰 섰다.

[하북팽가라….]

그때였다.

“천 가주!”

방덕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십여 일만에 보는 그는 더욱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소? 생각보다 늦었소이다.”

방덕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갑자기 인근에 녹림들이 나타나서 말일세.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말을 하던 방덕은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객잔에서 무슨 돈을!”

방덕의 꾀죄죄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설마 개방의 소방주가 후안무치….”

“에이 씨!”

방덕은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이 날리도록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방덕이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곤 보다 또렷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하북팽가가 마교의 공격을 받고 있다네!”

“헉!”

하오문도에게 미리 정보를 들었던 천애랑은 비교적 담담했는데, 황보수란은 처음 듣는 내용인지라 화들짝 놀라했다.

“마교를 이끄는 자가 누군지 아오?”

“드라쿠 장로일세!”

방덕이 소리치듯 말했다.

과거 본인을 큰 위기에 빠뜨리고, 천애랑을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었던 이종(異種)의 절대고수.

그자가 나타났다고 하니 방덕은 흥분상태였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선에서 들은 말이 있으니 드라쿠가 마교를 이끌고 어떤 작당모의를 한다는 것은 짐작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하북팽가라는 게 의외였다.

“그런데 왜 하북팽가를 공격했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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