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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42화 (142/200)

기공술사 142화

“정박을 준비하라!”

“하선하거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약탈해!”

“마중 나온 개방의 거지들을 최우선적으로 죽여!”

은신술을 펼치고 갑판 위로 올라온 천애랑은 곧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착했군.’

거리가 가늠될 정도로 해변이 보였고, 해적선들이 정박을 위해 배의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갑작스런 해적선의 등장에 고깃배들이 화들짝 놀라며 급히 배를 돌리는 게 보였다.

천애랑은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인지했다.

그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해적들을 지나쳐 배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러곤 준비했던 기를 크게 방출했다.

구우우우우웅!

천애랑의 주위로 대여섯 개의 구체가 떠올랐다.

주먹 크기에 불과한 구체들이었지만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뭐, 뭐야!”

“어디서 나타났어?”

“저건 또 뭐야!”

갑판 위의 해적들이 놀란 시선을 모았다.

백여 명이 넘는 해적들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천애랑은 구체들을 갑판을 향해 쏘아 보냈다.

광폭환.

거대한 기를 밀집시켜 충격에 큰 폭발을 만드는 기공술이었다.

콰광! 콰과과왕!

덧댄 철갑으로 단단한 갑판이 크게 부서지며 비산했다.

고작 주먹만 한 구체 대여섯의 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으허어억!”

“새끼들아 정신 차리고 배를 수습해!”

부두목은 물론이고 간부급의 해적들이 부하들의 혼란을 통제했다.

하지만 연이어지는 폭발에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콰과광! 콰과아아아앙------!

천애랑의 손짓을 통해 광폭환이 끊임없이 배를 부쉈기 때문이다.

연달아 갑판을 두들기던 광폭환이 더 나아가 해적선을 그대로 반파시키기 시작했다.

“소저! 호야!”

비산하는 파편들을 호신강기로 막아내며 천애랑이 소리쳤다.

그러자 몸을 숨기고 있던 황보수란이 백호를 안고 나타났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에 놀랍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해적들이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전 처리하겠다더니.’

최대한 해적들을 죽이려나 보다 했더니 냅다 배를 부숴서 수몰시킬 생각인 줄은 몰랐다.

“호야! 소저 데리고 뭍으로 가!”

“예? 공자님은요?”

같이 떠날 기색이 아닌 천애랑을 보며 황보수란이 의아했다.

천애랑은 눈썹을 까딱였다.

“다른 배도 부숴야 하지 않겠소?”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의 천애랑에 황보수란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황보수란의 품에 있던 백호가 폴짝 뛰면서 본체로 변했다.

크허어어엉!

간만의 모습에 기지개를 켜듯 크게 포효한 백호였다.

“이, 이, 이이이?”

황보수란이 눈과 입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참다못한 천애랑이 황보수란을 들어 백호 위에 올렸다.

“호야! 가라!”

천애랑의 말에 백호가 전방으로 영기를 발산했다.

그러자 비산하던 파편들이 밀려나며 알맞은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으로 백호가 성큼성큼 달려갔다.

이어서 천애랑은 천선을 활짝 펴 백호의 진행 방향을 향해 던졌다.

무너지는 배에서 바다를 향해 크게 뛴 백호가 천선을 강하게 내디뎠다.

천선은 그렇게 몇 번 백호의 디딤대가 되어 주고는 천애랑을 향해 돌아왔다.

천선을 수습한 천애랑은 곧장 다른 배를 향해 달렸다.

배와 배 사이의 공간이 넓었지만 상관없었다.

보법의 위치에 있는 대기의 결을 인위적으로 뭉친 후 그것을 밟고 도약하길 반복했다.

탓! 타타탓!

그러자 마치 허공답보를 펼치듯 천애랑이 쭉쭉 허공을 뛸 수 있었다.

“막아라!”

“저 새끼 착지 못 하게 막아!”

한 사람에 의해 배가 반파되는 것을 봤던 터라 해적들의 마음은 다급했다.

해적선에서 각종 무기가 천애랑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천애랑은 날아드는 무기들을 디딤대 삼으며 전진했다.

타악.

천애랑이 해적선에 착지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는 해적선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천애랑은 손에 든 광폭환으로 갑판을 직접 때렸다.

쿠구구!

앞서처럼 거대한 폭발을 예상해 잔뜩 몸을 움츠렸던 해적들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하지만 갑판이 부서져 비산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뭐, 뭐야? 기회다! 저 새끼 죽여!”

“죽여라! 그래야 우리가 산다!”

“놈은 하나다!”

와아아아아!

하선을 위해 전투준비가 마쳐진 해적선들이다.

그들은 도검을 들고 천애랑을 압박했다.

그때였다.

배가 크게 출렁였다.

콰득! 콰드득!

알 수 없는 소리가 해적들의 귀에 들려왔다.

갑판 위 해적들 모두가 의아해 할 때, 난간에 있던 해적이 소리쳤다.

“하부가 부서졌다! 배가 가라앉는다!”

천애랑이 침투경의 묘리로 배 내부를 공격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철판이 덧대어진 부위야 워낙 단단해서 부수기는 어려웠지만 나무는 아니었다.

아무리 두껍다고 한들 내구성에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죽더라도 놈을 잡고 죽어! 새끼들아!”

“흔들거리는 배 위는 우리의 무대다! 뱃사람이 아닌 놈은 발이 묶였을 터! 공격하라!”

와아아아아!

해적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배 위에서의 전투는 무림인들에게도 많은 제약을 만든다.

모든 무공의 기초는 하체.

단단한 하체가 있어야 높은 완성도의 보법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보법이 안정되어야 강한 검술도, 권각술도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배 위는 항시 흔들거려 균형을 뺏으니, 무림인들의 경지를 격감시키는 환경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배가 침몰하는 중이라 더욱 흔들거리는 상황.

배 위가 익숙하지 않은 무림인이라면 최악의 전장이었다.

그렇기에 해적들이 기세등등하여 천애랑에게 덤비는 거였다.

그 모습들을 보며 천애랑은 천선을 펼쳐들었다.

‘이 정도의 흔들거림이야.’

할아버지와 지내며 진법 안에서 훈련을 할 때, 균형을 잡는 훈련은 질리도록 했었다.

호수의 연잎 위에서 몸을 가볍게 하고 균형을 잡는다든지.

흔들거리는 넓적바위 위에서 각종 권각술을 연마한다든지 말이다.

게다가 그때보다 숱한 실전과 훈련을 거친 지금이기에 이 정도 흔들림은 제약도 되지 않았다.

천애랑은 천선을 활짝 펴 크게 날렸다.

빼에에에에!

바람의 결을 탄 천선이 맹금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촤악! 촤아아아악!

“크악!”

“억!”

“피해라!”

“크아악!”

천선의 날에 공격당한 해적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포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천애랑은 광폭환의 준비를 마쳤다.

그는 광폭환을 갑판 곳곳으로 날렸다.

쾅! 콰앙! 콰콰콰쾅!

안 그래도 침몰하던 배가 더 큰 충격을 받으며 확실하게 반파되었다.

천애랑은 정신없이 살육을 하던 천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천선이 손에 빨려 들어왔다.

그는 그대로 다른 배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반 시진.

천애랑이 해적선 다섯 척을 모두 침몰시키는 데 든 시간이었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수백 명의 해적 모두가 무력화되자 해변에 모인 개방도들이 입을 떡 벌렸다.

대규모의 해적 출현을 감지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개방이었다.

그래서 총 3겹의 보호책을 마련하고, 1차 방어망으로 2백여 명의 개방도들이 해변에 모인 상황이었다.

그 중엔 방덕도 있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천애랑은 마치 신선처럼 부채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허, 허허허!”

그저 헛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을 직접 보지 않고, 수하들의 보고만 들었다면 정보에 오류가 있다 생각했을 것이다.

“진짜 천 가주답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치부할 것들도 ‘혹시 천 가주라면?’이라고 생각하면 말이 되는 상황들이 생긴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황군의 보급부대의 일이 있었다.

“안 그래도 할 말이 많았는데 반갑구만. 천 가주!”

해변에 사뿐히 착지하는 천애랑을 보며 방덕이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아? 오랜만이오!”

천애랑도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이에 지켜보던 개방도들이 존경의 눈으로 방덕을 쳐다봤다.

최근 하북과 산동 인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코 백두신룡 천애랑이었다.

당연 이곳에서 활동하는 개방도들 중 천애랑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그에 대한 민심이 어찌나 대단한지, 개방 거지들이 천애랑에 관한 이야기라도 푸는 날엔 동냥이 풍년이었다.

한 마디로 최근 하북과 산동의 개방도들이 천애랑의 큰 덕을 보고 있었다.

이렇듯 대단한 천애랑 가주를 자신들의 수장인 소방주가 죽마고우처럼 대하니 자랑스러웠다.

“후후후후.”

이를 알고 있는 방덕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개방이오.”

“응?”

수하들의 존경을 만끽하던 방덕이 천애랑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해적들의 출연을 예측한 거 아니오. 바다로 이동하는 적들까지 정보수집이 되는 것이오?”

“아아! 그렇지. 항구엔 고깃배들의 정보도 있으니까 말일세. 이것들을 잘 취합하면 목적지와 항로,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있지.”

“역시 대단하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었다.

방덕 뒤의 개방도들을 살피니 얼기설기 대충 서있다지만 제법 좋은 기세가 느껴졌다.

해적들에 비하면 확연히 수는 밀리지만 상당한 선전이 예상되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어떻게 해적선에서 오는 겐가?”

방덕의 의문이었다.

백호와 정체 모를 여인을 만났지만 정확한 대화를 나누진 못했었다.

‘거대한 해적선 다섯 척이 연달아 폭발하고 침몰하는 희대의 광경에서 어찌 신경을 돌리냐.’

“공자님!”

황보수란이 백호에게서 폴짝 뛰어내려 천애랑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그녀는 거의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붙으며 천애랑의 상태를 살폈다.

걱정 가득한 그녀의 모습에 천애랑이 피식 웃었다.

“내공의 대부분을 소모한 것 빼고는 문제없소.”

황보수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보이네요.”

폭발에 다소 먼지 쌓이고 해어진 옷을 제외하곤 멀쩡해 보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 방덕이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에 황보수란이 헛기침을 하며 천애랑에게서 물러났다.

그러곤 포권을 취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황보세가의 여식 황보수란이라고 합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방덕이 마주 인사를 했다.

“개방의 소방주 방덕일세. 혹시 조모가……?”

“어루만질 문에 편안할 정 자의 성함을 쓰십니다.”

“아! 역시 벽력신후(霹靂神后)가 조모셨군. 어쩐지 아름다운 외모가 닮았다 했네.”

“감사합니다.”

황보수란이 아름다운 미소를 보였다.

“그나저나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는 겐가?”

“해적들에게 납치된 걸 구하다 보니?”

천애랑은 대충 대답을 했다.

개방도들의 시선 방향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방도들이 외쳤다.

“해적들이 헤엄쳐오고 있습니다!”

천애랑은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반파된 해적선에서 생존한 해적들이 부지런히 헤엄쳐오고 있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저들이 뭍에 올라오는 순간 제압해야 한…!”

급히 명령을 내리던 방덕은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천애랑을 돌아봤다.

“잠시 여기 있으시오.”

“……?”

방덕의 의문 가득한 시선을 뒤로 하고 천애랑은 바다로 걸어갔다.

헤엄치는 해적들의 수를 가늠하니 적어도 일백은 넘어 보였다.

그는 무릎까지 바닷물에 잠기고서야 걸음을 멈췄다.

쓰으으읍! 후우우우!

천애랑은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했다.

천애랑의 몸 주위로 단단한 호신강기가 생겨났다.

그 사이에 해적들은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해적들이 무방비상태처럼 보이는 천애랑을 향해 뭐라고 지껄일 때.

천애랑의 눈이 번뜩 뜨였다.

황금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함께 그에게서 강력한 뇌전이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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