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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36화 (136/200)

기공술사 136화

악불강이 입을 열었다.

“현재 가문에 남은 인원은?”

대답은 악불강의 곁을 지키던 무인에게서 나왔다.

“모두 임무를 띠고 밖으로 나간 탓에 현재 가문 안의 가용인력은 30명이 못 될 겁니다.”

악불강이 혀를 찼다.

부족한 숫자이지만 자신이 함께 간다면 어느 정도 상황수습은 가능할 것이었다.

“만약 할아버님이 가시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만약 필요하시거든 조손이 가겠습니다.”

조용히 있던 악중패가 용기 가득한 눈빛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악불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를 못 믿는 건 아니나 쉽게 나설 일이 아니다.”

악불강의 고민은 아직 요양하고 있는 소가주처럼 혹여나 손자도 다칠 것이 염려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일신의 무위는 뛰어나지만 아직 실전은 부족한 손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마교의 인물이라면 어중이떠중이는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혹 마교의 누가 개입했는지 아나?”

“드라쿠 장로라는 이의 측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외의 정보는 현재 없습니다.”

천애랑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가겠소. 듣자하니 나와 악연이 있는 이의 수하인 것 같소.”

악불강이 반색하며 물었다.

“드라쿠 장로라는 이를 아는 것인가?”

“일전에 두 번 정도 싸운 적이 있소. 한 번은 패하고 한 번은 이겼소.”

드라쿠에게 패했을 당시엔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좋겠지만, 이를 모르는 악불강은 놀란 눈을 했다.

“허어!”

그에게 있어서 평생을 통틀어 손에 꼽는 고수가 눈앞의 천애랑이었다.

그런 천애랑이 지고 이기고를 하는 상대가 드라쿠라는 장로이고, 그 측근의 수하가 움직이고 있다 하니 모든 상황들이 염려되었다.

만약 천애랑이 도착할 때쯤 드라쿠 장로가 개입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흐를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편 천애랑은 흥분되었다.

‘마교 놈들.’

복수의 칼날만을 벼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괜찮겠나?”

“물론이오.”

천애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곤 전언을 가져온 무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오?”

***

제성(諸城).

악가가 위치한 동평에서 동쪽에 위치한, 말을 타고 엿새 밤낮을 가야 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선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흑의를 입은 마인들이 주름이 가득한 독마에게 지극히 공손한 자세로 보고를 했다.

독마(毒魔).

천하에서 독을 제일 잘 다루는 곳이 사천당가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에 관련된 천하의 모두가 사천당가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독과 관련한 고수가 모두 사천당가의 인물인 것 또한 아니다.

독마는 마교의 여러 분파 중 독을 다루는 독마종의 인물이었다.

현재의 마의(魔醫) 또한 독마종의 인물인 만큼 독과 의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독마종은 사천당가와 비슷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독의 과감성이었다.

사천당가에서 독을 연구할 때는 항상 그 해독도 중요하게 연구한다.

중독과 해독이 자유롭게 제어된 후에야 완벽하게 사천당가의 독이 되었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독마종에선 해독제를 염두 하지 않은 독의 개발도 성행한다.

그게 비록 시전자에게 큰 위험을 준다 할지라도 확실한 효과만 볼 수 있다면 이들은 충분히 활용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용인하는 마교의 마음가짐이었다.

현재 독마는 그러한 독마종에서 개발된 최고 위험도의 독을 준비했다.

온전히 천애랑을 상대하기 위해서.

‘제깟 놈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 독마종의 독 앞에선 평등하다.’

독마의 생각이었다.

그는 마교 내에서 천애랑을 조심하는 분위기를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드라쿠 장로를 부상 입히거나 흑풍대주의 팔을 없애버린 무위가 놀랍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자신 또한 대 천마신교의 장로이며, 독을 다룰 수 있는 환경만 마련된다면 제아무리 흑풍대주나 드라쿠 장로라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라 자부했다.

‘내가 애송이 놈을 죽여 마교의 무림일통에 큰 공을 세우리라!’

마교에 종사한 지 어언 80년.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교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패도적인 무공이 선호되고, 독은 홀대받는 풍토가 없잖아 있어왔다.

그렇게 홀대받으며 평생을 살다가 드디어 마교의 무림일통의 깃발이 내걸렸다.

‘당당히 공을 세워 독마종이 다가올 마교의 최중심이 되도록 할 것이다! 흑풍대든 다른 장로들이든 더는 독마종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그가 드라쿠 장로에게서 이탈해 이러한 작전을 짠 이유였다.

비록 드라쿠 장로가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독마는 자신 있었다.

그의 강한 의지가 눈동자에 일렁였다.

“이젠 악가 놈들을 억지로 몇 명씩 흘릴 필요가 없다! 그러니 제성에 갇힌 놈들을 철저하게 감시해! 놈들은 기공가주를 유인할 미끼들이다!”

“존명!”

마인들이 명을 수행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독마는 자신을 수행하는 독마종의 수하를 불렀다.

“혹시 기공가주라는 놈이 제성 안으로 유인되면 준비된 독을 모두 풀어라. 도시 전체에 가득 차도록.”

“그러면 안에 있는 다른 부하들도 같이 죽지 않겠습니까.”

수하가 놀란 눈을 했다.

제성 안에 몰아넣은 악가 병력 300여 명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 중하급 마인들 1000여 명이 투입되어 있었다.

지금 독마는 그러한 마인들 모두를 버리더라도 단 한 사람을 잡겠다고 하는 거였다.

독마가 인상을 썼다.

“우리 독마종도 아니고 소모품들과 같은 이들이 아니더냐. 때론 대의를 위해서 희생도 필요한 법. 이 모두 독마종을 위해서이니라.”

“……실언했습니다. 명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독마종의 수하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곤 물러났다.

이에 독마는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천애랑이 지나올만한 산을 쳐다봤다.

‘크크큭. 어서 오거라. 우리 독마종의 제물이여.’

***

“잠시.”

천애랑은 제성의 방벽이 보이는 능선에서 백호를 멈춰 세웠다.

푸후우.

쉬지 않고 달려왔던 백호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말로도 엿새가 걸릴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한 백호와 천애랑이다.

백호가 지칠 만하면 천애랑이 계속 기운을 불어넣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야 고생했다.”

천애랑은 바닥에 내려서며 백호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동시에 백호에게 대자연의 기운을 불어넣어줬다.

덕분에 빠르게 체력이 차오르자 백호가 감사의 표시로 천애랑에게 머리를 부볐다.

천애랑은 미소 지으며 백호를 쓰다듬었다.

“품으로 와.”

순식간에 거대한 덩치의 백호가 고양이만큼 작아지며 천애랑의 품에 쏙 들어왔다.

그르릉.

백호가 편안함을 느끼며 편한 자세를 잡았다.

천애랑은 옷깃을 여미며 만반의 태세를 정비했다.

‘이미 마인들에 의해 장악됐나.’

이동 중간 중간에 마인들의 포위에서 빠져나온 병사들을 만났었다.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하나같이 ‘제성에 악가 병력이 갇혔다.’였다.

안력을 높여 제성의 방벽 안을 살폈다.

그곳의 중심엔 거대한 장원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 악가의 병사들이 경계를 하며 뭉쳐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 장원의 주위엔 수백 명의 마인들이 이루는 십 수 겹의 포위망이 펼쳐져 있었다.

‘악가의 병력을 구하기 위해선 저들을 뚫고 가야겠는데.’

마인들을 뚫고 악가의 병력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후 희생을 최소화하며 제성을 빠져나오는 것은 꽤 어려워 보였다.

‘민간인들을 구하다가 제성에 갇혔다던가.’

지나오며 만난 악가 병사에게서 얻은 정보였다.

‘하긴.’

마인들의 수가 많다 한들 악가의 인물들의 무위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피해를 감수하고 후퇴를 원했다면 여기서 갇히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만약 민간인들마저 혼재되어 있었다면 문제가 복잡해졌을 것이다.

‘흐음. 그나저나 이걸 어쩐담.’

암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엔 마인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결국엔 들킬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제성 안에서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이지.’

다시 안력을 집중해 제성의 중심을 살피자 악가의 병사들이 거대한 장원을 빠져나와 마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악가의 무용이 대단해 보이긴 했다.

특히 방진을 형성한 악가의 창법은 수적 차이를 극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저러다간 몰살을 면치 못할 텐데.’

악가가 고군분투했지만 지독하리만큼 악착같은 마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마인들은 고통 따윈 없는 듯 마인들이 악가를 공격했다.

팔이 잘리고 몸에 창이 꽂히면서도 공격을 하는 그들은 악가의 기세를 꺾기에 충분했다.

결국 악가의 병사들은 큰 피해를 남기고 다시 장원 안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삼백에 달하던 병력이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마인들에겐 더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원체 숫자가 많은 탓에 크게 티도 안 났다.

‘이래서는 탈출이 더 어려워지겠는데.’

기존 삼백여의 병력을 데리고도 무사탈출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저렇게 반 토막 난 병력으로는 더 어려울 것이다.

천애랑의 눈이 좁혀졌다.

마인들이 쓰러진 악가의 병사들에게 일일이 확인사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부상당했던 병사들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더 늦으면 안 되겠어.’

천애랑은 혀를 찼다.

전략이고 뭐고 늦장을 피웠다가는 구원해야 할 악가 병사들이 몰살당하게 생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움직여야 할 때다.

천애랑은 곧장 환영유령보보를 펼치며 능선을 내려왔다.

그러곤 외곽 경계를 서는 마인들을 무시하며 제성 내부로 침투했다.

극에 달한 환영유령보보는 수백 마인들의 시선을 피했다.

천애랑은 그대로 악가 병력이 있는 장원 담벼락을 넘었다.

사락.

옷자락이 펄럭이는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천애랑이 악가 병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차차차차착!

갑작스런 천애랑의 등장에 부상을 정비하던 악가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꼬나들었다.

잘 정제된 훈련 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좀 전의 전투로 그들의 눈빛은 강한 살심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천애랑은 자신의 목을 위협하는 창을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

“악가주의 부탁으로 온 천애랑이오.”

“아!”

그제야 천애랑을 알아본 이들이 길을 텄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악장이오.”

터진 길 사이로 거대한 창을 든 무인 하나가 다가와 무거운 인사를 건네 왔다.

탈출을 감행했다가 되레 큰 피해만 입었기에 한껏 수심이 깊어진 악장이었다.

천애랑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의 연회에서 즐겁게 박수를 치던 얼굴임이 기억났다.

악장이 말했다.

“한데 어떻게 여기까지 뚫고?”

“그대들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자마자 은신술로 숨어 들어왔소.”

“아.”

악가에서 천애랑의 춤사위를 봤던 이들은 물론, 황실군의 패잔병이었다가 합류하게 된 병사들도 가타부타 없이 수긍을 했다.

패잔병이었던 이들은 괴물 같던 그날의 천애랑을 떠올리며 연신 긴장된 침을 삼켰다.

“혹시 계획이 있소?”

천애랑의 질문에 악장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갈수록 궁지에만 몰리니 안 그래도 탈출을 감행했소만 보시다시피.”

“부상 정도가 심하오? 당장 탈출을 시도해야 할 것 같은데?”

악장은 주위를 둘러봤다.

안타깝게도 큰 부상을 입은 이들을 챙기지 못하고 후퇴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이들은 비교적 멀쩡한 편이었다.

“당장 움직일 순 있소.”

“오면서 살피니 동쪽 길이 가장 포위가 얕아 보였소. 해서 그리로 돌파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오.”

“천 가주를 따르겠소이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정비를 마치시오. 준비가 되는 즉시 돌파를 감행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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