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34화
“내 독에 내성이 좀 있소. 그리고 내공에 대한 깨달음과 튼튼한 혈맥을 자부하오. 해서 아드님 체내의 독을 모두 진기도인 하여 빼낼 것이오. 우선 아드님의 상태를 봐야겠지만 말이오. 그리고.”
천애랑이 천선을 촤악 소리가 나게 펼쳤다.
그러자 청량하고 차가운 바람이 장내를 휘감으며 사람들의 열을 식혔다.
“모두를 죽이자고 온 것이 아니니 열들 좀 식히시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열을 내던 사람들이 멋쩍은 헛기침을 했다.
다루개도 신기한 듯 코를 킁킁거렸다.
장내에서 단 한 명, 악불강만 심각한 표정으로 천애랑을 바라봤다.
‘모두를 죽이자고라…….’
말에 뼈가 있는데, 꽤나 날카로웠다.
그런데 그 날카로움이 무시 못 할 이의 입에서 나오니 신경이 쓰였다.
오랜 세월의 경험이 예민하게 경고를 했다.
‘정녕 홀로… 가능하다 생각하는 건가.’
그때 천애랑과 악불강의 시선이 마주했다.
악불강은 어떠한 빈틈도 보이지 않는 천애랑의 모습에 침음을 흘렸다.
당장 옆에 있는 자신의 애병을 잡고 내지르면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다.
그렇게 손가락이 꿈질거리며 언제든지 창을 집을 수 있도록 움직일 때, 천애랑의 손도 미세하게 움직였다.
‘크흠.’
빈틈은커녕 날카로운 가시가 거대한 압박을 주었다.
악불강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곤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는가? 단순히 내 아들을 치료해보겠다고 온 것은 아닐 터.”
그제야 천애랑이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 후에 말을 하겠소. 치료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백날 논의해봐야 입만 아픈 일일 테니.”
“정녕 치료가 가능하다 생각하는가? 무얼 믿고 그리 행동하느냐는 말이지.”
그때 담소연이 대화를 가로질렀다.
“저와 오라비의 몸에 사기(邪氣)가 침투한 적이 있었습니다. 혈교의 고수에 의해서였죠.”
악불강과 사람들이 시선이 자연스레 담소연에게로 향했다.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지만 경청하는 자세들에 담소연이 말을 이었다.
“그때 여기 천애랑 가주께서 저희 남매를 구해줬죠. 뇌까지 박힌 사기를 안전하게 다 뽑아내서요.”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사기를…….”
“그게 가능한 일인가.”
“혈교의 사기라면 지독하기로 유명할 텐데.”
악불강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심을 했다. 그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치료과정을 내가 직접 참관하겠네.”
“그러시오.”
천애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테지만 그렇다고 예민하거나 큰 위기감을 느껴야 할 일도 아니었다.
“만약 자네가 내 아들을 살려준다면.”
악불강이 숨을 고르며 강조하듯 말했다.
“악가의 명예를 걸고 충분한 보답을 하겠네.”
악불강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천애랑은 그 눈빛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확인해 봤으면 좋겠소이만?”
“따라오게.”
악불강이 일어나자 거대한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는 악환비의 처소 근처에 호법을 서게. 개미 한 마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존명!”
악가의 가솔들이 군기가 가득한 목소리도 답했다.
천애랑은 악불강을 따라가며 악가의 내부를 관찰했다.
‘엄청난 군기와 수준들.’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은 물론이고 시종들조차 군부처럼 규율에 맞춰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모두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한 장정들은 당장 군부에 출사해도 장수들 값은 할 것 같았다.
“이곳일세.”
악가의 안쪽에 위치한 3층 전각 앞에서 악불강이 돌아봤다.
동시에 따라오던 악가의 가솔들이 창을 치켜세우며 빠르게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창의 공격범위가 이십 보나 되는지 모두가 동일한 간격을 하고 있었다.
천애랑이 흥미로운 시선을 했다.
‘협공을 하면 까다롭겠는데.’
엄청난 거리감을 가지고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을 상상해봤다.
파고들 틈을 주지 않고 휘몰아치는 협공을 상상하니 절로 흥이 돋았다.
하지만 지금은 치료를 앞두고 진중해야 할 때.
천애랑은 악불강을 뒤따라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약 냄새가 전각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흐음.’
송소걸을 치료하기 위한 건물 내부도 항상 이런 약 내음이 가득했었다.
천애랑은 오랜만에 그때를 떠올리며 2층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서 악가 무인들의 옅은 기척들이 느껴졌다.
‘은신술이 제법인걸.’
과거 황실의 수신호위로도 활약했다더니 악가가 은신술에도 조예가 있는 듯했다.
1층은 물론이고 3층에도 촘촘하게 호위들이 있었다.
그만큼 소가주의 안위를 악가에서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일 터.
‘소가주를 치료하면 많은 도움이 되겠어.’
귀찮은 일들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이렇게 불편한 상황을 자처한 것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열어라.”
악불강의 말에 한 곳을 지키던 무인들이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창을 통해 볕이 잘 들고 있었고, 환기도 잘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짙은 약 향 가운데엔 소가주가 반듯이 누워있었고, 그의 얼굴 혈색은 시체와 비슷했다.
‘이런. 독이 뇌까지 퍼진 건 아니겠지.’
뇌에까지 독이 퍼졌다면 난이도가 확 올라갈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독기가 저릿하게 느껴지는 것이 상당한 극독이 확실했다.
“생각보다 강한 독이고, 소가주의 상태 또한 심각하오.”
“알고 있네. 할 수 있겠나.”
심각해진 천애랑의 얼굴을 보며 악불강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동안 다녀간 최고의 의원들만 30명이 넘는다.
하지만 모든 결과는 부정적이었고, 그 때문에 천애랑이 치료 이야기를 꺼내도 신뢰할 수 없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막상 고통에 신음하는 자식을 보자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해보겠소. 우선 독에 내성이 있거나 내공으로 이겨내지 못할 사람들은 모두 방에서 나가시오.”
다루개는 진귀한 광경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천애랑의 엄포와 악불강의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껏 물러났다.
담소연과 악불강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던 무인 둘도 함께 물러났다.
그렇게 방에는 천애랑과 악불강, 그리고 중독된 소가주 악환비만 남았다.
악불강은 천애랑에게 방해가 되지 않고 아들이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했다.
상황이 차분해지자 천애랑은 소매를 살짝 걷었다.
“시작하겠소.”
“알겠네.”
천애랑은 곧장 소가주의 단전에 손을 올리고 내부를 관조했다.
우웅-
작은 공명음과 함께 천애랑의 기가 소가주의 몸속을 탐험했다.
‘흠?’
시작과 동시에 천애랑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오보단장독?’
다소 익숙한 독기였다.
중독되면 오보를 걷기 전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준다는 극독.
당가의 전유물이자 당가 내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독이었다.
팔각사를 사냥하기 전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해 가장 먼저 훈련을 받은 독이기도 했다.
‘아니, 좀 더 독한 것 같은데?’
오보단장독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좀 더 지독한 기운이 느껴졌다.
천애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정도의 독을 다룰 수 있고, 심지어 오보단장독을 기반으로 독을 만들었다면?’
사천당가가 범인인가 싶었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지배했다.
‘우선 독부터 처리하고 생각하자.’
의아한 점이 있다면 직접 물으면 될 일이었다.
천애랑은 소가주의 백회혈과 단전에 각각 손바닥을 정비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소.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소.”
“저, 정말인가?!”
나름 침착하려고 애쓰던 악불강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천애랑은 대답을 생략한 채 치료를 시작했다.
온몸을 개통하고 대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열린 창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천애랑과 공조했다.
방안을 부유하던 약의 기운들도 천애랑을 통해 소가주에게로 흘러들어갔다.
백호와 담가 남매를 치료했을 때보다 더욱 성장한 지금이기에 생각보다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백회혈에 기운을 집어넣어 뇌와 상단전에 침투한 독기를 밀어냈다.
동시에 소가주의 단전에 뭉친 기운들을 강제로 움직여 소주천을 시켰다.
이에 잠자던 독기들이 혈도를 따라 날뛰기 시작했다.
“끄으으!”
소가주가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독기들은 소가주의 내공을 갉아 먹으면서 천애랑 기운에 저항하려고 했다.
‘흐음!’
천애랑은 생각 이상의 저항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엄청난 독이었다.
처음에는 백회혈과 단전을 이용해 독을 소가주의 입으로 모두 배출시키려고 했다.
그러면 죽은 피와 함께 독을 제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독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센 탓에 기존의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천애랑은 깊게 호흡을 정리하고선 밀어내던 기운을 역방향으로 전환시켰다.
천애랑의 양손에서 흡기가 발동되며 독이 빨려들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들엔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인지 독은 이조차도 저항했다.
그때, 천애랑의 허리춤에서 천선이 날아오르더니 활짝 펼쳐졌다.
천선은 자아를 가진 듯 천애랑의 주위를 맴돌며 더욱 기운을 북돋아 줬다.
천애랑은 좀 더 기운의 운용이 수월해짐을 느꼈다.
‘자! 내게 와라!’
동시에 그는 내기의 흐름을 약하게 흔들며 독을 유인했다.
마치 이곳에 더 크고 달콤한 먹이가 있다는 듯.
함정을 설치하고 동물을 유인하듯 인내심을 가지고 독을 유인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독이 주춤거리다가 만만하고 달콤해 보이는 기의 흐름에 천천히 딸려오기 시작했다.
백회혈과 단전으로.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독을 방심시키고 유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가주 내부에 있던 독이 천애랑에게로 천천히 흘러들어갔다.
‘크흡!’
오랜만에 느끼는 극독의 통증에 천애랑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천애랑은 완벽한 사냥을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작업을 했다.
소가주의 정수리와 배에선 독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독연이 일렁거렸다.
한참을 인내하던 천애랑은 찰나의 순간 독의 모가지와 몸통을 잡았다.
완벽하게 함정에 빠진 독이 발버둥 쳤지만 이미 꽉 잡힌 탓에 벗어날 수 없었다.
더는 천천히 유인할 필요는 없었다.
천애랑은 힘차게 독을 뽑아냈다.
“쿠웩!”
소가주의 몸이 크게 들썩이며 검은 피를 토해냈다.
악불강이 급변하는 상황에 몸을 움찔거렸으나 혹여 치료에 방해가 될까 싶어 주먹만 쥐락펴락했다.
모든 독을 뽑아낸 천애랑이 소가주에게서 멀어지며 외쳤다.
“독을 중화시킬 것이오! 내 주위로 기막을 펼쳐 주시오!”
기다리던 악불강은 천애랑과 자신의 아들 사이에 끼어들며 천애랑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따라 푸른 기운이 뻗어가며 천애랑의 주위로 기막을 형성했다.
이를 확인한 천애랑은 가부좌를 틀며 눈을 감았다.
그러곤 크게 호흡하며 몸 안에 들어온 극독을 쥐어짰다.
‘자! 굴복해라!’
우우우웅!
천애랑의 몸에서 내기가 격동했다.
치이이익!
그에게서 독기가 가득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때문에 천애랑이 아래의 바닥이 불에 타듯 그슬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천애랑이 눈을 떴다.
“후우---”
그는 길게 숨을 뱉었다.
“괜찮은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악불강이 기막을 걷으려 하자 천애랑이 잠시 손짓을 했다.
“기다리시오. 아직 독연이 남았소.”
천애랑은 주위를 맴돌던 천선을 붙잡아 휘둘렀다.
그러자 기막 안에 퍼져있던 독연이 뭉쳤다.
“실례하겠소.”
천애랑은 뭉친 독연을 가지고 그대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놀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저지한 천애랑은 탄지공을 날려 바닥에 깊은 구멍을 뚫었다.
그러곤 그곳에 독연을 밀어 넣고 땅을 덮었다.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천애랑은 허리를 펴며 자신의 두둑한 배를 내려다봤다.
‘아우 배불러.’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