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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32화 (132/200)

기공술사 132화

산동악가.

명장 악비의 후손들이 세운 무가(武家)로서 창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양가의 양가창법과 더불어 최고의 창법으로 불리는 악가창법은 능히 천하일절의 무공이라 알려져 있었다.

다만 악가(岳家)는 무림보다는 군부와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무림인들은 창보다는 검을 절대 다수로 사용했고, 창은 군부의 필수 무기술이기 때문이다.

“해서 아무래도 악가창법을 배운 패잔병들이 악가에 의탁하기 위해 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흐음. 그럼 악가를 쳐야 하는 것이오?”

“그건…….”

보고를 하던 병사가 고민을 했다.

패잔병들의 동향만 살핀 것이지 자세한 조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애랑은 곁에 있는 병사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모두가 답을 모른다는 송구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질책하려는 의미는 아니었소. 나도 몰라서 묻는 것이었으니.”

천애랑은 시선을 돌려 마을 골목 어귀를 보았다.

그곳에서 눈치를 보던 거지를 불렀다.

“만약 도망가면 소방주에게 말할 것이오!”

천애랑의 시선에 도망가려던 거지가 움찔거리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다가왔다.

늙수그레한 거지는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몰골에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으.”

담소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러났고, 고양이로 변한 백호도 하악질을 하면서 훌쩍 물러났다.

“소인을 부르셨습니까.”

거지의 표정엔 백치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설핏 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개방의 거지인 걸 아오. 거적으로 허리춤 가려도 소용없소. 이미 다 봤으니까.”

“크, 크흠.”

거지가 멋쩍은 헛기침을 하고는 포권을 취했다.

“개방의 오결제자 다루개라고 하오.”

“기공가의 천애랑이오.”

천애랑도 마주 포권으로 인사를 하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산동악가에 대해서 좀 아시오?”

다루개는 꼬질꼬질한 수염을 긁적이며 반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는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입을 꾹 닫고 그저 먼 산을 바라보았다.

이에 천애랑이 다시 말을 하려 했다.

“이보….”

“제가 해결할게요.”

하지만 담소연이 천애랑을 부드럽게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천애랑이 의아한 시선을 보낼 때 담소연이 소맷자락 속에서 은전 하나를 꺼냈다.

“여기요.”

다루개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담소연에게 건네받은 은전을 쳐다보았다.

“흐음….”

“너무 욕심 부리지 마세요. 천 가주가 개방 소방주와 긴밀한 사이임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요.”

“그래도 개방엔 개방만의 법도가 있는 법이라.”

“그런 개방의 법도가 민간인들이 핍박당하는 걸 방관하는 건가요? 그러면서 정도를 찾고 법도를 찾는다?”

다루개가 껄끄러운 기침을 했다. 동시에 귀찮음 가득하던 그의 눈빛이 다소 날카롭게 변했다.

“크흐흠. 이보시오. 소저. 제 아무리 담가의 여식이라고 해도 말이 심하오.”

다루개의 날선 반응에도 담소연은 기죽지 않고 콧방귀를 꼈다.

“패잔병들의 만행을 뻔히 알면서도 방관자 입장을 취하는 개방을 탓하는 겁니다. 그대가 오결이라면 이곳 산동에 존재하는 20명의 지타주 중 한 명이겠죠. 산하에 천여 명 이상을 거느린.”

다루개의 눈이 흔들거렸다.

담소연이 대외비이기도 한 개방의 사정에 대해서 빠삭했기 때문이다.

담소연은 다소 차가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산동에서 담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악가도 마찬가지지요. 아주 조금의 편의를 위해서 그대에게 묻는 것이니 개방이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은 말았으면 하네요.”

말을 하던 담소연이 손뼉을 쳤다.

냉기가 풀풀 풍기던 그녀가 돌연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사람 혼을 쏙 빼는 느낌이었다.

“담가와 천 가주가 하오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고 계시겠죠? 그리고 황군과의 전쟁으로 인해 산동에서의 담가 영향력이 매우 거대해진 상태라는 것도 아실 테고요.”

다루개가 침중한 눈으로 담소연을 봤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담소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결 정도 되시는 분이 스스로 답을 못 꺼내시면 그건 그것대로 실망인데요? 그간 최고의 정보집단이라며 비싼 돈을 받아쓰던 개방의 능력을 의심해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다루개가 속으로 혀를 찼다.

‘까불면 산동에서 개방의 활동영역을 제한시키겠다는 의미인가. 그 정보의 공백을 하오문이나 담가의 정보단체들로 채우면서 말이지.’

다루개는 답답한 듯 수염을 벅벅 긁었다.

‘제남성주의 도장을 가지고 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까지 한 현재의 담가라면. 민심까지 확고하게 끌고 가는 담가라면. 게다가 마교와의 전쟁으로 개방은 물론 정도문파들의 총력이 무림맹과 전선에 집중된 현 상황에서라면.’

다루개는 한숨을 쉬었다.

‘젠장, 졌군.’

연약한 토끼인 줄 알았는데 제법 백 년 묵은 여우같다.

‘호부견자 없다더니.’

“내 졌소이다. 산동악가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겠소.”

다루개의 항복 선언에 담소연이 뒤로 물러나며 천애랑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천애랑은 마주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성장했듯 담소연도 그간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는 게 느껴졌다.

‘아니면 이런 면모를 그간 모르고 있었는지도.’

도검과 선혈이 낭자하는 전장에서 앞장서 싸우더라니 여장부가 따로 없다.

무위가 약한 그녀다. 어지간한 용기로는 그러기 힘들다는 걸 안다.

문뜩 담하웅과의 담화가 떠올랐다.

‘소연이가 그간 병법서를 읽고, 정보를 모으며, 호위기병들의 전투훈련에 참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네. 앞장서서 사람들을 도와 민심을 곧잘 얻기도 하고 말이지. 왜 그랬을 것 같나?’

‘담가에 보탬이 되고자 함이 아니겠소?’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

‘고것이 그런 노력들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은 안 했지만 말일세. 내 생각엔 모두 자네를 위함이라 본다네.’

‘나를 말이오?’

‘그래. 자네가 고통스러워 할 때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얼마나 자책하고 슬퍼했는지 모르네.’

‘……하지만 나는 소연이를 탓한 적이 한 번도 없소만? 오히려 큰 도움을 받으면 받았지.’

‘알지. 하지만 고것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더라고. 훗날 자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당당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인이 되겠다고 노력을 한 것 같네.’

‘하지만 난 복수라는 잔혹한 대업을 앞두고 있소. 아직은 여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소.’

‘그 말, 내 딸이나 그 아비 되는 이에게 꽤나 상처라는 거 아나?’

‘아! 내 말은…….’

‘하하하! 농일세. 자네에게 부담을 주고자 이런 말들을 꺼낸 게 아니야. 그저 자네가 소연이와 함께 움직일 때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질 필욘 없다고 말하는 것이야. 다른 곳은 몰라도 산동에서만큼은 소연이의 도움이 꽤나 유용할 것이네.’

담하웅의 말처럼 담소연은 산동의 지리를 빠삭하게 알고 있어 항상 앞장서 의견을 냈다.

그리고 들리는 마을마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빠르게 진정시키고 도움을 주었다.

또한 지금처럼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그 해결책을 내니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천애랑 자신조차도 알게 모르게 일정 부분을 담소연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다루개가 입술을 적시고는 말했다.

“현재 산동악가는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소이다. 아마 오백여의 패잔병들이 산동악가에 갔다한들 의탁하긴 쉽지 않을 것이오. 쫓겨났을지도 모를 일이고.”

다루개의 이야기를 듣는 모두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가득했다.

“쫓겨난다니? 패잔병들이 악가창법을 익혔기에 산동악가로 갔다고 짐작했소만?”

“흐음.”

다루개가 인상을 쓰며 주위를 둘러봤다.

수십 명의 마을사람들이 모여 영문 모를 시선들을 모으고 있었다.

천애랑이 천선을 살랑였다.

남들의 눈에는 그저 쥘부채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기막을 쳤소. 마을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오.”

다루개가 눈을 크게 뜨며 두리번거렸다.

담가의 기병들도 마찬가지로 놀란 눈을 했다.

내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기의 막은 내공의 공부 중 상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좁은 공간에 기막을 치는 것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헌데 지금 천애랑은 삼십이 넘는 사람들을 넓게 둘러 기막을 쳤다는 얘기니 이 난이도를 아는 이들이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흠흠.”

다루개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악가의 소가주가 실종됐다가 나타난 적이 있소이다. 그 후로 악가의 대외활동이 중단됐는데, 조사 결과 소가주가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이오.”

“중독? 지금 독에 당했다는 말을 하는 거요?”

“그렇소이다. 실종됐을 때 당한 것으로 아는데, 여간 독한 독인지라 인근의 의원들로는 해결을 못 보는 모양이오.”

“독이라면 사천당가가 유명하지 않소. 당가에 도움을 청해보면 됐을 터인데?”

천하에 독으로 가장 유명한 곳을 고르라고 한다면 가장 최우선에 사천당가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사천당가면 모를까 지금의 사천당가라면 보다 쉽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이유는 가문 재건에 필요한 돈이 많기 때문이고, 산동악가처럼 유명한 곳이라고 하면 충분히 합당한 돈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중독 때문에 대외활동을 전면중단할 정도라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 방법을 찾지 않을 것 같진 않았다.

“이미 도움을 청했소이다. 하지만 당가에선 현재 여력이 없다며 유감을 표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아.”

마교의 진격으로 곤륜파가 위기에 처했고, 그에 따라 사천 또한 크게 긴장된 상태라고 들었다.

언제 전쟁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라 어딘가로 인원을 빼기가 부담일 수 있었다.

‘다들 잘 하고 있나 모르겠네.’

곤륜파를 돕고 사천당가 인원들을 구원해주라고 보낸 살막 인원들이 떠올랐다.

천애랑은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자신의 입만 쳐다보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도해 봄직한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하는데.’

천애랑은 다루개에게 물었다.

“만약 독을 제거한다면 그 소가주라는 이가 살 수 있는 상태인 거요?”

다루개가 천애랑의 질문을 의아하게 여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애랑의 질문이 이어졌다.

“만약 소가주를 살려주면 악가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 여기오? 목숨을 걸고서라도 신의를 지키는 자들이오? 아니면 그저 이익만 생각하는 자들이오?”

이 질문에 대해선 즉답이 나왔다.

“신의를 목숨처럼 여기는 자들이오. 그래서 항상 행동이 무겁지. 현 황실에서도 그러한 악가의 실력과 가풍을 높이 사 중용하려 했소. 한족을 높이 쓰지 않는 그들이 말이요.”

다루개의 시선이 담소연과 기병들을 거쳐 다시 돌아왔다.

담가 또한 황실의 요청을 받았고, 이를 거절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악가는 황실의 청을 거절했소. 대신 황실에 반하지 않고 조용히 있겠노라 했지. 소가주 때문이 아니더라도 악가의 대외활동은 거의 없었소. 생계유지 수준의 활동뿐이었지.”

다루개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송나라 시절 황실에 퍼진 악가창법과 이를 익힌 군부의 제자들은 지금에도 이어져 그 명성을 뽐내고 있소. 현재 악가로 향한 패잔병들은 송나라 시절 제자들의 먼 후배들일 것이오.”

“흐음.”

옆에서 듣던 담소연이 말을 거들었다.

“산동악가는 저희 산동담가와 함께 오랜 역사를 가진 가문이에요. 송 때에는 황실을 위해 함께 일하기도 했죠. 다만 문신과 무신은 기름과 물 같은 관계였던지라 그리 가깝게 알지는 못해요.”

그녀의 이어지는 말이 단호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그들은 신의를 목숨처럼 여긴다는 점. 송이 망할 때도 끝까지 남아서 싸웠다고 들었어요. 가문의 대부분이 스러질 때까지.”

모든 말을 듣고 나서야 천애랑은 입을 열었다.

“그럼 산동악가로 갑시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가주를 살리고 악가의 도움을 받아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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