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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31화 (131/200)

기공술사 131화

구금봉진이란 곤륜에서 최상위의 진법이다.

만약 이게 작동이 된다면 무학당과 집법당, 그 외 의약당 등 곤륜파를 지탱하는 주요 건물들이 매몰되고 함부로 찾을 수 없는 진법에 갇힌다.

이러한 구금봉진을 실행하고 해제하는 것은 태청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이의 내공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또한 구금봉진을 펼친 사람은 그 안에 갇히게 되며 절대 스스로 탈출할 수 없다.

말인즉슨 외부에서 구금봉진을 해체해주지 않는다면 안에 갇힌 사람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장문인은 지금 스스로를 희생해 곤륜파의 유산들을 지키겠다고 하는 거였다.

아마 부상을 당한 장문인이라면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생존하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장문인은 만류하는 장로들과 제자들을 달래며 부축을 받은 걸음을 태청당으로 옮겼다.

곤륜파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태청당은 평소 장문인의 거처 및 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구금봉진을 펼칠 중심축의 역할을 할 것이었다.

태청당 앞에 도착한 장문인은 뒤따라온 곤륜파 일원들을 향해 말했다.

“자네들은 당가의 소가주를 따라 모두 곤륜을 떠나게. 여기 살막에서도 도움을 준다고 했네.”

“우리가 받은 명은 곤륜파를 돕되 당가 인물들의 안전을 최우선 하는 겁니다. 곤륜파가 당가와 함께 움직인다면 겸사겸사 도움을 줄 순 있지요.”

유소소가 장문인의 말을 정정해 명확하게 말했다.

무턱대고 살막의 도움에만 기대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것으로 충분하네.”

이에 장문인이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

“흐흑. 장문인….”

슬퍼하는 장로들과 제자들을 보며 장문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문파란 무엇일까.”

“흐윽. 흑.”

장문인의 말에도 곤륜파 일원들은 대답하지 못한 채 그저 눈물만 흘렸다.

“가족과도 같은 끈끈한 관계 속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며 지켜진 것이 문파라네. 그럼으로써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고, 후대들은 이를 발전시켜 세상을 이롭게 하지.”

장문인의 말에 눈물만 훌쩍이던 곤륜파 일원들이 경청했다.

지금의 말들이 장문인의 마지막 가르침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후대들은 선조들의 의지를 이어 유산을 가꾸고 세상을 이롭게 하며, 이렇게 발전된 유산을 그 너머의 후대에 잘 물려줄 책임이 있다네.”

장문인이 힘든 숨을 몰아쉬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곤륜의 유산 안에는 불퇴의 의지도 있지. 이것이 우리가 목숨 걸고 마교와 싸운 이유라네. 의지란 몸소 지키고 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장문인은 점차 호흡이 가빠왔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토해내더라도 이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한 가지를 생각한다네.”

“경청하겠습니다.”

“문파라는 것은 그 역사가 머무는 장소에 매우 큰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속된 이들이 있는 곳도 곧 문파로서의 의미가 있지 않나 하고 말일세.”

곤륜파 일원들은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곤륜산의 곤륜파만 곤륜파가 아닌 그 일원들이 뜻을 세우는 곳 또한 곤륜파다.’라는 장문인의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오랜 역사를 가진, 이들에게 평생의 추억을 지닌 집을 떠남에 있어서의 슬픔과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임을 모두가 느꼈다.

이러한 화두는 곤륜파 뿐만 아니라 청해나 사천에서 온 인물들도 생각해 봄직해서 여러 가지 감정의 시선들이 모였다.

장문인은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인자한 미소로 눈앞의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막주의 말을 들어보니 서장의 마인들도 이곳으로 오는 듯하네. 저들이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야.”

장문인은 통증이 밀려오는 복부를 부여잡았다. 이에 장로들이 놀라며 장문인에게 모여들었다.

장문인은 손을 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런 와중에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네. 자네들은 부디 내 마음을 헤아려 주게.”

“장문인…….”

장문인은 부축을 벗어나 허리를 꼿꼿이 폈다. 마치 상처 입었으나 여전히 건재한 곤륜파를 보는 듯했다.

장문인은 사람들을 차례로 보았다.

“소가주. 마무리를 부탁하네.”

“이를 말씀이십니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상호가 굳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장문인의 시선이 청해와 사천 무인들에게 향했다.

“곤륜의 위기에 앞장서 큰 도움을 주고 피를 흘리신 여러분들의 은혜를 이 노구가 죽어서도 절대 잊지 않겠소이다.”

태청당을 뒤로하고 선 장문인이 눈앞의 모든 이들에게 포권지례를 했다.

사람들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그 모습들이 지극히도 공손했다.

장문인은 마지막으로 유소소를 보았다.

“그대들 덕분에 마지막을 대화로 마무리할 수 있었네. 천 가주에게도 감사하노라고, 곤륜은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전해주시게.”

“알겠습니다.”

유소소는 시종일관 살수 특유의 딱딱한 표정이었으나 태도만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장문인은 마지막으로 장로들, 즉 오랜 시간 동거동락했던 자신의 사제들을 보았다.

“자네들이 저 아래 있을 현륜과 함께 제자들을 잘 이끌어주게. 곤륜파의 의지가 잘 이어지도록. 그리고 이 못난 사형을 용서하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형은 최고였으며 최고의 장문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곤륜파의 모두가 슬픈 눈물을 흘렸다.

장문인은 따스한 미소를 남기고는 등을 돌려 태청당으로 들어갔다.

그의 늙은 뒷모습이 매우 거대하게 보였다.

태청당에 장문인이 들어가고 일 각이 지나자 태청당이 진동을 했다.

“모두 물러나시오!”

곤륜파의 장로가 눈물을 닦으며 다급히 외쳤다.

사람들이 물러남과 동시에 땅이라도 꺼진 듯 태청당이 바닥으로 내려앉아 사라졌다.

쿠구구구구---

다른 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무, 무슨 일입니까?”

무학당주 현륜이 놀란 눈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장문인의 명에 따라 곤륜산의 후위에서 탈출에 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청당이 무너지니, 크게 놀라 달려온 것이었다.

내상 입은 몸으로 절벽과도 같은 태청당 뒤편으로 뛰어 올라온 그다.

그 탓에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장로들은 현륜에게 장문인과 구금봉진에 대한 내용을 말해줬다.

그러자 현륜이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다. 그러곤 사라진 태청각을 향해 큰 절을 했다.

그때 유소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살막 전용의 피리와 전음을 통해 보고를 받은 그녀가 딱딱하게 말했다.

“반 시진. 빠르면 그 이내에 마교의 세력이 올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장로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진짜 곤륜산을 떠나야 할 때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담가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마을사람들의 인사에 담소연이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는 황군과 담가의 전쟁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마을들을 돌고 있었다.

마을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라서 최소한이라도 이들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천애랑도 함께였다.

그르릉.

마을사람들이 놀랄까 싶어 고양이로 변신한 백호가 담소연의 곁에서 나른한 기재기를 켰다.

그러곤 마을 바깥을 바라봤다. 이내 인근 순찰을 끝낸 천애랑의 외침이 들려왔다.

“깨끗하다! 이쪽으로는 패잔병들이 오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전쟁에서 항복 후 포로가 된 이들의 숫자는 2만에 달했다.

반대로 뿔뿔이 흩어진 황군들의 숫자만 거의 5만에 달했다.

5만의 병력이 갑작스레 와해됐으니 어떻겠나.

병장기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강남의 홍건적과 일전을 치르는 황군에 합류하거나, 이 모든 게 아니라면 각자도생을 꾀할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염려가 비교적 적은 경우의 수이기에.

하지만 후자의 두 개는 다소 문제점이 있다.

만약 패잔병들이 강남의 황군과 합류한다면 이에 대항하는 담대혁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담가의 가주 담하웅은 포로들을 추려서 1만이라는 새로운 병력을 만들어냈다.

그러곤 담가의 사병 1만을 추가해 총 2만의 병력을 아들에게 지원 보냈다.

마지막으로 뿔뿔이 흩어진 패잔병들은 각자도생을 위한 하나의 무력집단이 되어서 민가에 패악을 일삼고 있었다.

지휘체계가 무너졌다지만 사람이 셋 이상만 모여도 우두머리가 생기는 법.

이들은 그들 나름의 지휘체계를 만들며 병력을 조직했다.

병장기와 무력을 가진 이들은 순식간에 산적이나 흑도에 녹아들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담하웅은 담가의 기병 정예 오십을 꾸려 이러한 패잔병들을 처단하고 민생을 살필 것을 명했다.

몸을 회복하고 할 일이 없던 천애랑은 자진해서 이 작전에 합류했다.

황군에 의해 자식과 남편, 아내와 노모를 잃어 슬피 울던 사람들이 떠오르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담소연도 천애랑을 따라 부대에 합류했다.

천애랑이 있기에 딸의 합류에 대한 담하웅의 재가는 어렵지 않았다.

천애랑이 기병 삼십 기와 함께 담소연에게 다가오자 마을사람들이 환한 얼굴로 깊게 머리를 조아렸다.

“백두신룡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애랑은 표정을 굳히며 손사래를 쳤다.

‘적응 안 되네.’

이 마을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

앞서 살폈던 열 곳의 마을 모두가 이런 식이었다.

이들은 모두 담가를 찬양했는데, 그와 동시에 자신을 거의 신처럼 대했다.

‘백두신룡이라는 별호는 또 어떻게 안 거야.’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긴 했다.

‘개방인가.’

건물 곳곳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거지들이 보였다.

불쌍한 사람들 좀 챙겨달라고 보급부대에서 탈취한 군량미를 보냈더니 이런 소문까지 낼 줄은 몰랐다.

인상착의까지 샅샅이 소문이 난 것인지 산중 촌락에 가도 알아보더라.

‘흐휴.’

천애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마을의 바깥을 보았다.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천애랑의 모습에 기병들도 의아한 시선으로 함께 바라봤다.

그렇게 있기를 잠시.

멀리서 한 필의 기마가 달려왔다. 선발대로 보냈던 이십 기의 기병들 중 하나였다.

천애랑의 넓은 감각에 기병들은 수긍하면서도 경외의 눈빛을 했다.

“워, 워!”

말이 천애랑 열 보 앞에서 멈추며 투레질을 했다.

기병은 날 듯이 말에서 내려서는 천애랑의 삼 보 앞에서 절도 있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영에서나 하는 극진한 예법에 천애랑이 입술을 들썩였다가 다물었다.

‘말린다고 한들 소용없겠지.’

산동의 사람들이 천애랑을 찬양하듯 담가 내에서도 천애랑을 찬양했다.

특히 천애랑과 함께 전쟁을 치렀던 병사들은 천애랑의 무위를 직접 목도했기에 더욱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누구 하나 입에 담은 적은 없지만, 담가의 가솔들 사이에선 천애랑이 담가의 사위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팽배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 보니 담가 병사들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예는 전혀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남쪽 방향의 조사를 맡은 분이구려. 무언가 일이 있는 것이오?”

천애랑이 자신을 알아봐주자 병사의 눈이 흡족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가 보고를 했다.

“약 오백여 명의 패잔병이 움직인 흔적이 있어 추적한 결과 동평의 산동악가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천애랑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산동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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