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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30화 (130/200)

기공술사 130화

깡! 까앙! 까가강!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고 빠른 공격들에 철혈검마의 손이 분주하게 어지러워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가 놀란 눈을 할 때 만곡음마가 비명을 질렀다.

“캬학!”

만곡음마가 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마인들도, 곤륜파의 일원들도, 그 외 지켜보는 인원들 모두 쉽사리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당사호의 그림자에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살막의 부막주 유소호였다.

화들짝 놀란 당상호와 당가 무인들이 암기와 독을 꺼내며 경계태세를 갖추자 유소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대들을 구하려고 왔으니 경계 말라.”

당상호가 미간을 좁혔다.

“저희… 말입니까?”

“그래. 당가가 맞지 않나? 복색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은데?”

안쪽에 암기나 독을 챙길 수 있는 암녹색 피풍의와 독의 부작용인 흉측한 흉터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

“맞습니다만…….”

당상호는 대답을 하면서 눈앞의 인영을 살폈다.

살수처럼 암행복을 입었으나 느껴지는 기세는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엄청난 은신술과 살수 특유의 분위기가 아니라면 무림맹에서 드디어 지원군이 온 건 아닐까 생각들 정도였다.

유소호는 당상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건방지다고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군.”

“예?”

“아니다.”

유소호는 실없는 소리를 했다 싶어 말을 자르고는 마저 말했다.

“우린 천 가주님의 명으로 왔다. 그러니 괜히 나대다 다치지 말고 피해 있어라.”

할 말을 끝낸 유소호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귀신처럼 사라진 유소호를 보며 당상호는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나저나 천 가주라면…….’

당상호의 머릿속으로 자신이 아는 인명록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천 가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가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고, 저만한 실력자를 수하로 둘만한 천 가주는 단 한 명뿐이었다.

“천애랑 가주!”

당상호가 놀라 뱉은 작은 소리에 당가 무인들이 감탄을 했다.

당가에서 천애랑을 모르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상호가 감격 어린 눈빛으로 철혈검마와 마인들을 헤집는 검은 인영들을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수준의 은신술과 그에 못지않은 고강한 무술이 인상적이었다.

살수들은 대체로 무공이 약하다는 편견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한편.

당상호와 마찬가지로 철혈검마도 놀라고 있었다. 더 나아가 당혹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실력 좋은 살수들이고, 갑작스런 기습에 고전한다 생각했는데 계속 검을 섞다보니 아니었다.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이 정도의 은신술을 유지한다?’

마교 내 어느 살수들에서도 볼 수 없었던 수준이었다.

자신의 쾌검이 고작 살수들을 베지 못한 것도 놀라운데, 별달리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재차 공격해오는 모습은 더욱 황당했다.

쾌검이 통하지 않자 검강으로 강한 공격을 했지만 살수들은 이조차도 거뜬한 듯 막아내며 차륜전으로 공격해왔다.

‘심지어 내공도 강하다.’

끈질기게 괴롭히는 살수들을 떼어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고작 살수들에게?’

철혈검마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숱한 세월 오직 검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자신이었다.

수십만 마인들의 우러름을 받는 장로이며, 마교 내에서도 검과 관련해선 한 손에 꼽히는 고수가 자신이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곤륜파 제일검 장문인조차 자신의 아래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것들을!”

항상 세상을 내려다보듯 오연했던 철혈검마의 깊은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의 노구에서 팔십 세월의 거대한 마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찌나 마기가 강맹한지 지켜보던 곤륜파의 인물들이 막혀오는 숨에 주춤주춤 물러날 지경이었다.

마기는 더욱 짙어지더니 마치 밤이 된 것 같은 어두움이 철혈검마의 주변으로 일렁거렸다.

“저럴 수가!”

곤륜파 장문인과 장로들이 경악성을 뱉었다.

마인들 고유의 기운인 마기(魔氣)는 마교인들마다 다른 특성을 보이긴 했으나 공통점은 있었다.

하나는 화경, 마교의 표현으로는 극마인 이 경지를 넘지 않은 이상 마기를 숨기기 어렵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마인의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마기의 효용이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강해진 마기로 호신강기나 제공권을 펼치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마기의 유형화를 통해 이뤄지는 거였다.

그리고 마기의 유형화는 극마에 이른 마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마치 눈앞의 철혈검마처럼 말이다.

장문인은 과다출혈로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서도 자신들을 돕는 살수들에게 경고를 해주고 싶었다.

저 유형화된 마기는 단순한 강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경고성을 뱉지 못하고 놀란 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푸욱!

마치 꿈인 것만 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철혈검마는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운 검신 두 개가 등에서부터 가슴으로 뚫고 나와 있었다.

특히 하나의 검신은 정확히 심장을 뚫고 있었다.

“쿨럭!”

철혈검마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반갑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이 있었다.

“끄으윽!”

철혈검마가 검을 밀어내기 위해 마기를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팔십 년을 함께한 마기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놀라는 철혈검마의 귓가로 여인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들렸다. 외모만큼이나 달콤한 목소리였다.

“쌍고검의 진정한 오의는 스스로 삿된 것이라 믿는 것들을 멸하는 능력이더군. 이거 다스리느라 고생 좀 했다.”

“무슨 개 같은 소릴…!”

철혈검마가 끝없이 빠져나가는 마기의 허탈함을 느끼며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어떻게든 검을 휘둘러서 당혹스런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푹! 푹푹! 푹푹푹!

그림자의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인영들이 철혈검마의 몸에 가차 없이 단검들을 꽂아 넣었다.

그 위치들이 신체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관절과 혈 자리들이어서 철혈검마는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슴께에 찔러진 검에서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내부를 갈아버렸다.

“별… 거지 같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철혈검마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괴물 같던 철혈검마의 죽음 앞에서 장문인과 곤륜파의 일원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인들 또한 연이은 충격적 상황들에 의해 큰 혼란에 빠졌다.

검은 인영들에 의해 순식간에 만곡음마는 물론이고, 더 대단한 철혈검마마저도 죽었으니 어찌해야 할지 갈피가 서지 않는 것이다.

“으윽.”

그때 철혈검마에게서 쌍고검을 빼낸 여인, 유소소가 휘청거렸다.

“누나!”

어느새 나타난 유소호가 다급히 유소소를 부축했다.

이에 유소소가 유소호의 어깨를 짚으며 몸을 바로 세웠다.

“괜찮아. 아무래도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검인지라.”

유소소는 심호흡을 해 정신을 차리고는 장문인에게 다가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유소호가 도끼눈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유소소를 부축했다.

장문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인을 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신가?”

유소소는 짧게 포권을 취했다.

“살막의 막주 유소소라고 합니다. 현재 기공가문 천애랑 가주의 가솔로 있으며 그의 명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곤륜파의 제자들에게서 술렁임이 일었다.

“기공가문?”

“거기가 어디지?”

“혹시 아는 사람 있어?”

너무나 외곽에 위치한 탓에 상대적으로 중원의 소식이 더딘 곤륜파였다.

제자들은 기공가문이 어디인지, 살막이 어디인지 모른 채 눈치만 봤다.

그러던 중 장문인 만큼이나 나이가 지긋한 장로가 기억난 듯 놀란 눈으로 말했다.

“혹시 저 머나먼 동쪽 끝에 있다던 작은 세가가 아닌가? 마교와 동귀어진을 했다던?”

“아! 천마와 태상교주를 단신으로 상대했다던 거기?”

“허어…….”

구체적인 사건이 언급되자 20여 년 전의 소문을 기억한 장로들이 깊은 감탄사를 뱉었다.

이 안엔 장문인도 포함이었다.

기공가문에게 있어 곤륜파는 지리적 교점도 없고 생면부지인 곳이다.

그런데 이런 곤륜파를 위해서 그 머나먼 곳의 가주가 도움을 손길을 내주었다는 게 크나큰 놀라움이자 깊은 감동이었다.

그때 유소소가 말했다.

“장문인께서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추상적인 말이었다.

어떠한 의도인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듣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침중한 눈으로 있던 장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마인들을 일 각만이라도 몰아붙일 수 있겠나?”

유소소가 전황을 힐끗 쳐다봤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살막의 살수들이 마인들의 진형을 헤집고 있었다.

살막의 귀신같은 움직임과 마교 장로들의 죽음이 마인들의 판단력을 크게 흩트리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다른 이들이 힘을 더해준다면 잠시뿐이라도 곤륜파의 담벼락 너머로 저들을 밀어낼 수 있을 겁니다.”

장문인이 놀란 눈을 했다.

이쪽의 전력은 부상 가득한 곤륜파 무인 30여 명과 군소방파 10여 명이 전부다.

동분서주하는 살막의 살수 40여 명을 더한다 해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마인들은 머리를 잃었다지만 200여 명 가까이 되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살막의 살수들에 의해 그 수가 계속 줄고 있긴 했다.

그런데 살막주라고 소개한 이 젊은 여인은 시간을 끌어준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저들을 밀어내준다고 한다.

‘그게 아무리 잠시뿐이라고 해도 대단하지 않은가.’

장문인은 유소소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염치 불고하고 부탁 좀 함세.”

“알겠습니다.”

이어 장문인은 장로들과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귀인들의 말대로 도와주시면 고맙겠네.”

이에 부상 입은 장문인을 보필할 최소 인원과 기력이 빠진 유소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시 전장으로 신형을 날렸다.

“곤륜의 기개를 보여라!”

와아아아!

“청해 무인들도 지조가 높다는 것을 보이자!”

와아아아!

“사천 또한 마지막 기상을 드높이자!”

와아아아!

“보이는 대로 모조리 죽여라!”

마지막 유소호의 외침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유소호가 미간을 찡그렸다.

침묵이 살수들에게 미덕인 것은 지당하나, 괜히 비교되다 보니 묘한 느낌을 받는 그였다.

노도처럼 몰아치는 기세에 마인들도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거세진 파도 앞에선 불가항력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마인들이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인들이 곤륜파를 몰아붙이던 것과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특히나 이러한 파도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바람은 살막의 살수들이었다.

천애랑과 하오문주의 도움으로 영약 수급이 원활해진 살막은 그간 살수로서 부족했던 내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기존엔 막주를 포함해 총 5명뿐이던 특급살수가 지금은 10명이 추가됐고, 기존의 5명은 야주(夜主)라는 새로운 별칭을 사용했다.

보통 살수들과 일반 무림인들 간의 경지차이를 단순히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살수들은 경지 차이를 극복하고 상대를 암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살막의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특급살수는 절정 이상, 야주는 초절정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러한 야주 4명과 특급살수 10명, 그 외 상급살수들이 현재 곤륜파에서 활개를 치는 중이었다.

몰아치는 곤륜의 파도에 마인들의 사상자가 순식간에 100명 가까이 발생했다.

그러다보니 마인들은 더는 저항하지 못하고 곤륜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마인들은 곤륜파를 멸하라는 본교의 명을 포기할 수 없음에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산 아래에 진을 쳤다.

곤륜에서도 더는 마인들을 쫓지 않고 곤륜파로 물러났다.

곤륜파의 대 연무장엔 수백의 시신들이 시산혈해를 이루는 살풍경함만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승리라는 찰나의 기쁨을 느끼고 공유하고 있었다.

장문인은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정말로 마인들을 곤륜파에서 밀어내준 유소소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장문인!”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키는 장문인에게로 곤륜파의 일원들이 모여들었다.

자신에게 모여드는 이들을 보며 장문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고생했네.”

“어서 진법을 정비하고 적을 대비합시다!”

장로들이 기세가 등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장문인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구금봉진을 펼칠 것이네.”

“자, 장문인!”

장문인의 말에 곤륜파의 일원들이 놀란 표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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