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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29화 (129/200)

기공술사 129화

우우우우우------

만곡의 곡조를 안다는 것이 듣기 좋은 음만 표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곡음마의 금에서 귀곡성과 같은 소리가 퍼져갔다.

마기를 진작시키는 효능을 가진 음률에 운룡방진을 상대하던 마인들의 기세가 들불처럼 거세졌다.

“우측이 비었다! 보강해!”

곤륜파 장로들이 다급해지는 전황에 더욱 분주해졌다.

“우리들도 합류해야겠습니다.”

청해와 사천의 무인들이 다급해진 전황을 돕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당상호와 당가 무인들도 함께 몸을 날리려 했다.

“자네는 해야 할 일이 있네.”

하지만 장문인의 제지에 당상호와 당가는 주춤 멈춰 섰다.

“장문인. 하지만.”

장문인이 고개를 저었다.

“지켜봐주게. 곤륜의 기개가 어떠한지. 그리고 본도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자네에게 부탁하긴 했으나 곤륜은 쉽게 멸문하지 않네.”

“물론입니다. 그래도 한 손이라도 거두는 게….”

“아니네. 자네의 마음은 알지만 나섰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그것대로 매우 큰일이네. 민간인들은 어찌하려고? 내 소가주의 판단을 믿고 맡겼건만 그렇지 않은 겐가?”

질타 같은 장문인의 어조에 당상호가 찔끔했다.

“아닙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당상호의 물러남에 장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닐세. 노도의 어려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네. 그리고.”

장문인이 발검을 하면서 길게 내질렀다.

까아앙!

어느새 곤륜파의 방진을 뚫고 달려온 혈해검마의 혈마검이 장문인의 애검인 태청검과 충돌했다.

두 사람의 검기가 격렬히 허공에서 부대꼈다.

“이 피에 미친개를 상대해야 하니 실례함세.”

순식간에 장문인과 혈해검마가 수십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곤륜파 제자들과 마인들이 양패구상 하듯 피를 흘렸다.

같은 숫자의 쌍방 교환이라면 숫자가 많은 마교에게 좋은 일.

더군다나 동료의 죽음 따위엔 눈 하나 깜빡 않는, 마인들의 철혈 같은 심장은 전장에서 더 큰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흐흐. 어지간히 제자들이 신경 쓰이나 보지? 손이 어지럽구만.”

“그러는 자네는 나의 한 손을 뚫지 못하고 있는 거 아는가?”

또다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혈해검마였다.

그 순간 장문인의 발이 용의 걸음을 담은 용형보를 밟으며 혈해검마의 방위들을 흔들었다.

이형환위는 아니지만 잔상을 남기는 신묘한 보법에 혈해검마의 눈이 흔들렸다.

“건방진 늙은이!”

인상을 쓴 혈해검마의 몸에서 기함할 마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장문인의 신묘한 보법을 붙잡았다.

장문인은 당황하지 않고 내기를 크게 끌어올렸다.

곤륜의 맑은 내기가 수증기처럼 몸에서 뿜어져 나와 마기를 밀어냄과 동시에 태청검이 푸르게 빛이 났다.

장문인은 곧장 운룡태청검법을 펼쳤다.

곤륜파의 상징적 검술인 태청검법의 상위 검식으로 최소 일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가능한 절기였다.

형과 식이 운무에 가려지며 혈해검마의 몸을 난자했다.

“크윽!”

혈해검마는 당황하며 다급히 검막을 만들었다.

까가가가가강!

장문인의 검이 어찌나 빠른지 검막을 펼친 혈해검마의 주위로 콩 볶는 소리가 났다.

“크으윽.”

혈해검마가 오 장이나 뒤로 밀려났다. 그의 몸엔 자상이 한가득 이었다.

“…….”

혈해검마는 장문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러곤 곤륜파 제자들과 마인들이 맞붙는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으악!”

“커헉!”

“방진을…. 컥!”

갑작스런 혈해검마의 참전에 방진 몇 개가 와해되며 피를 흘렸다.

이에 장문인의 눈에 불이 붙었다.

“이노옴---!”

장문인이 무시무시한 기합성을 뱉으며 혈해검마를 쫓았다.

장문인의 표표한 보법이 허공을 딛으며 순식간에 삼십 보를 나아갔다.

순식간에 혈해검마에게 다가간 장문인이 운룡십이검을 펼쳤다.

12개의 검식이 순식간에 이어 펼쳐지며 혈해검마의 목을 위협했다.

하지만 장문인의 검식을 받는 혈해검마는 되려 미소를 지었다.

“피가 난자하는 전장이야말로 나의 무대.”

혈해검마의 마기에 감응한 혈마검에게로 주변의 피가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혈해검마는 그러한 피를 흩뿌리듯 장문인에게 휘둘렀다.

촤악---!

피가 그물처럼 장문인을 덮쳤다. 내기가 담긴 그물이었다.

장문인은 화들짝 놀라며 혈해검마에게 펼치던 운룡십이검의 방향을 틀었다.

차차착!

피의 그물이 잘게 흩어졌다.

“크흐흐. 공기 좋은 곳에서 산 놈들이라 그런지 피가 좋구나!”

혈해검마는 장문인을 조롱하며 다른 전장으로 몸을 피했다.

“크악!”

“악!”

장문인은 혈해검마가 자신을 유인함을 알았지만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벽히 수세에 몰린 곤륜에서 혈해검마를 막을 이가 자신 외엔 없었다.

“게 서라!”

장문인은 전신의 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이 자명하니 단숨에 혈해검마를 참할 생각이었다.

장문인의 발이 허공을 몇 번 딛더니 운룡대팔식으로 이어졌다.

쿠루루룽!

거의 이 갑자에 달하는 장문인의 내공이 허공을 수놓자 천둥소리가 났다.

신룡선무(神龍旋霧).

용이 안개 속을 도는 것처럼 장문인의 신형이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그의 걸음이 용의 발톱처럼 마인들을 할퀴며 지나가자 마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피칠갑이 되어 쓰러졌다.

용유자휘(龍遊紫微).

아름답게 노는 용처럼 장문인의 몸과 검이 흔들거리니 앞을 막던 마인들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허공에서 자유롭게 방향 전환을 하는 장문인은 한 마리의 용과 다름없었다.

장문인의 운룡대팔식이 이어졌다.

신룡번미, 운룡삼현, 운룡무궁으로 연이어지자 장문인과 혈해검마 사이를 막는 마인들 육십여 명이 쓰러졌다.

엄청난 신위에 전장의 격렬함이 주춤거리고, 모두 장문인의 무위를 구경했다.

“역시 용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진다더니. 대단하군, 대단해!”

한참을 도망치듯 물러났던 혈해검마가 다가오는 장문인을 보며 순수한 감탄을 뱉었다.

제아무리 세력과 성향이 다르다고 한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존경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혈해검마의 혈마검에는 엄청나게 검붉은 검강이 서려있었다.

전장에 흐른 수백의 피가 그의 검에 모인 것이었다.

어찌나 많은 피를 억지로 뭉친 것인지 검붉은 검강은 살아있는 것마냥 꿈틀꿈틀 거렸다.

그새 다가온 장문인은 운룡대팔식 제 6초식 용미초풍을 펼쳤다.

거대한 바람이 된 장문인의 검이 혈해검마를 찔러갔다.

“크하하하하!”

혈해검마 또한 장문인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맑은 하늘과도 같은 청색과 대지를 물들이는 것과 같은 핏빛이 격돌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앙!

전장의 무인들은 격돌의 충격파에 다급히 얼굴과 몸을 보호했다.

먼지가 거칠게 휘날리며 정적이 흐르는 찰나.

두 사람의 검식이 이어졌다.

운룡대팔식 제 7초식 용비구천.

혈마검식 최후 초식 역천혈류. 혈검.

장문인의 손을 떠난 태청검이 용처럼 자유롭게 날았다.

그에 반해 혈해검마는 잠잠했는데, 그의 두 눈이 검은자위 없이 벌겋게 변해있었다.

갑자기 장문인이 지나오며 만든 피가 모두 솟구쳐 오르며 거대한 검을 만들어냈다.

태청검은 혈해검마에게로, 피로 만든 혈검은 장문인의 등으로 곧장 날아갔다.

푸욱!

경천동지할 무공들의 향연에 전장은 숨을 죽이고 시선을 모았다.

태청검이 혈해검마의 심장을 뚫었다.

그러나 거대한 혈검 또한 장문인의 복부를 꿰뚫은 상태였다.

“크큭. 그 사이 한 초식을 더 밀어 넣었나. 그래도 내가 용을 잡은 거지.”

자신의 죽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혈해검마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장문인은 한껏 인상을 쓰며 전신진기를 일으켜 혈검을 빼내었다.

“쿨럭!”

“장문인!”

한 사발의 피를 토해내는 장문인에게 곤륜의 제자들이 모여 방진을 형성했다.

장문인은 자신의 배를 보았다.

혈검이 빠져나간 자리엔 잠식한 마기가 지혈을 방해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운룡대팔식의 최후 초식, 천룡두린을 펼쳤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혈검은 배가 아닌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아직 끝이 아니야.’

장문인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수백 마인들의 시신 너머엔 아직 만곡음마가 건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멀찍이서 방관만 하던 한 인물과 수백이 마인이 나타났다.

새로이 나타난 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가왔다.

마치 지금 이곳 마인들 중에서 가장 큰 권세를 가진 이인 듯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본좌는 철혈검마다.”

장문인과 마찬가지로 팔십 줄의 노인인 철혈검마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 강렬한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검객답게 다소 호리호리한 체형에 표정은 한없이 차갑지만 두 눈만큼은 가장 열정적이었다.

장문인과 혈해검마의 결투를 보며 흥이 돋은 그였다.

장문인은 철혈검마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장문인의 곁을 지키던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혈해검마도 경천동지할 무위의 고수였지만 눈앞의 철혈검마와 비교하자면 몇 수 아래로 느껴졌다.

아직 본격적인 기세를 내뿜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곤륜파의 32대 장문인 현원일세.”

장문인은 장로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연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의 소개에 곤륜파의 오랜 역사가 느껴졌다.

이에 철혈검마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참으로 인상적인 무공이었다. 곤륜이 달리 보일 지경이더군. 하지만 조잡스럽더군.”

“감히!”

“…….”

흥분하는 장로들과는 다르게 장문인은 침착한 표정으로 철혈검마를 바라봤다.

단순히 격장지계라고 보기엔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침중했다.

그때 철혈검마가 장문인에게 말했다.

“만약 본좌의 검이라면 그 복잡한 형과 식, 그리고 내공들의 줄기들을 단숨에 잘라버렸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본도는 태허도룡검으로 그대의 검을 흩트렸을 것이네. 상우방 하좌향 후 역검의 수로 말이지.”

“그렇다면 본좌는 검풍으로 연막을 만들고 지공으로 그대의 급소를 찌를 것이다. 동시에 극쾌의 찌르기로 그대의 심장을 노릴 것이고 말이야.”

“나 또한 금안행운으로 연막을 만들고 용형보로 그대의 공격을 훌쩍 피할 것이네. 소나기는 피하면 그만일 뿐이니 말일세. 그리고 비가 그친다면 재차 태허도룡검을 펼쳐 강기를 그대에게 날리겠지.”

어느새 논검을 하는 두 사람이었고, 둘의 눈빛이 붉게 타올랐다.

“강룡도륙의 검식으로 전방위 삼십육 개의 점을 찌르고 환환미종보로 그대의 후위를 점할 것이다.”

“강룡도륙이라는 검식은…….”

“본좌가 그대의 태허도룡검을 상대하고자 즉석에서 만든 것이다. 태허란 하늘이자 음양의 본질일 터이니 삼십육궁도의 투로를 모두 막으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했다. 썩 괜찮지 않나?”

“…….”

장문인은 할 말을 잃었다.

직접 검을 부딪쳐보진 않았지만 철혈검마가 검에 대해선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의 논검에서 자신이 패했음을 느꼈다.

“나름 즐거웠다. 허니 내 손으로 직접 곤륜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지.”

철혈검마가 허리춤에 늘어진 검 손잡이를 쥐었다가 검을 꺼내듯 살짝 움찔거렸다.

그뿐이었다.

허나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삭!

철혈검마를 중심으로 무지막지한 쾌풍이 흩날리더니, 장문인과 그 사이를 가로막던 수십의 곤륜 제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쓰러졌다.

실로 극쾌검이었다.

철혈검마의 검은 끝나지 않았다.

엄청난 쾌검이 연이어 휘둘러지자 그의 삼 장 반경이 커다란 원이 생긴 채 비어졌다.

곤륜의 제자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철혈검마를 보며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꼈다.

“괴물 같은 영감. 그새 실력이 더 늘었구만.”

내공을 많이 소진해 숨을 돌리던 만곡음마가 작게 혀를 찼다.

만곡음마는 이 전쟁의 끝이 왔음을 느끼고 크게 외쳤다.

“철혈검마 장로를 따라 적들을 마무리해라! 끝이 멀지 않았다!”

방진조차 소용없는 철혈검마와 그 위세를 업고 몰려드는 마인들을 곤륜의 제자들은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그저 처절한 저항만을 하며 피를 흘릴 뿐이었다.

장문인은 직감했다.

‘끝이 왔구나.’

어떻게든 곤륜을 지키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의 업보에 피눈물이 나왔다.

‘선조들이시어. 못난 후배가 끝내 곤륜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장문인은 후위에서 안절부절 지켜보는 당상호에게 전음을 날렸다.

[소가주. 지금일세. 곤륜산 뒤편으로 가면 준비를 마친 현륜이 있을 걸세. 무거운 짐을 부탁해 미안하네.]

전음을 들은 당상호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보기에도 전황은 이미 완벽하게 기운 상태였다.

오십여 명의 청해와 사천 무인들은 사분지 일만 살아남아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백에 달하던 곤륜파 무인들도 이제는 삼십여 명만 남아 장문인을 중심으로 뭉쳐있었다.

마인들의 피해 또한 엄청났다.

장문인의 운룡대팔식이 전장을 휘저은 덕분에 마인들의 사상자는 사백에 다다랐다.

하지만 철혈검마와 함께 나타난 이백여 명의 마인들이 건재한 상황.

“이제 끝을 보세.”

때마침 철혈검마가 곤륜파의 모든 방벽을 뚫고 장문인에게 검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곤륜파의 끝이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당상호는 곤륜의 마지막을 두 눈에 꾹 담고선 신형을 돌리려 했다.

더 늦기 전에 장문인의 부탁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당상호는 미처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놀라운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장문인을 공격하려는 철혈검마의 주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철혈검마를 지키는 수신호위 같은 게 아니었다.

철혈검마가 놀람에 움찔거리는 게 멀리서도 보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순간 검은 그림자들이 철혈검마를 향해 일제히 단검을 내질렀다.

이는 전장의 새로운 향방을 알리는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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