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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28화 (128/200)

기공술사 128화

영험한 곤륜산 위에 지어진 곤륜파는 계단처럼 넓은 층 위에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다.

그중 정문을 맞이하는 가장 낮은 층엔 많은 인원이 함께 훈련할 수 있는 대 연무장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선 이백에 달하는 곤륜파의 제자들이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곤륜파가 가용 가능한 최대전력을 모은 것이었다.

새외로 분류돼도 무방할 정도로 중원과의 거리가 먼 곤륜파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 인원이 최선이었다.

중원 곳곳으로 퍼진 속가제자들도 있지만 그들까지 모두 불러들이기엔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었다.

순간.

쿠구구구구궁!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진법의 축이 뭉텅 무너져 내리며 진법이 사라져갔다.

동시에 수백의 마교 무인들이 정문과 담을 넘어 침입하기 시작했다.

곤륜파의 무인들이 표정을 굳혔다.

그 수가 일견 자신들보다 갑절이나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함정을 발동시켜라!”

곤륜파 장로의 지시에 따라 담벼락 위로 얇은 줄들이 솟아 뻗쳤다.

천잠사처럼 발목을 자를 정도의 강도는 아니지만 담벼락을 넘고자 하는 마인들을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디딤발이 꼬인 마인들이 넘어지며 혼선을 빚었다.

하지만 이는 궁여지책일 뿐.

마인들은 보다 높이 뛰거나 동료들을 밟으며 담벼락을 넘었다.

그러나 이내 담벼락을 넘은 마인들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바닥을 굴렀다.

담벼락 아래엔 철첨들이 작은 가시처럼 빼곡히 박혀 있었다.

심지어 당가의 도움으로 독까지 발려 있어서 이를 밟은 마인들이 금세 거무튀튀한 얼굴로 쓰러졌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마인들의 물량에 함정들은 잠시의 시간끌기밖에 되지 못했다.

“모두 죽여라!”

곤륜파의 담을 넘은 마인들이 악을 쓰며 공격을 시작했다.

“곤륜의 제자들은 모두 운룡방진으로 적의 공격에 맞서라!”

구름과 용을 무공에 담고자 하는 곤륜파의 방어절진이었다.

소림사의 백팔나한진과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 운룡방진은 같은 내공심법을 익혔고, 모두 그 수준이 비슷하며, 마치 하나인 듯 내공이 흐를 때 발동하는 까다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펼쳐진 운룡방진은 작은 운무를 만들며 적의 눈을 어지럽히고 그 움직임을 제한시키는 강력한 효능이 있었다.

곤륜파의 제자들은 다섯씩 짝을 이뤄 방진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방진의 주위로 흐릿한 운무가 형성됐다.

카강!

마인들과 방진이 충돌했다.

마인들의 손이 늪에라도 빠진 것처럼 느려지면서 다소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운룡방진의 효능이 발휘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상자는 속출했다.

곤륜파를 멸하기 위해 모인 장로들과 그 예하의 정예들이다.

각 수준이 최소 일류 이상이고 높게는 절정 이상의 마인들이 가득하니, 이들은 곤륜의 방진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금(琴)을 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띠리링---

곤륜파의 제자들이 울렁이는 진기에 당황을 했다.

그리고 이는 운룡방진의 와해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크아악!”

“컥!”

끈적하게 마인들을 붙잡던 방진이 무너진 순간부터 마인들의 활개가 시작됐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장문인은 위기에 처한 상황에 일갈을 내뱉었다.

“이놈들---!”

항마(降魔)와 곤륜의 정수가 들어찬 장문인의 사자후에 기세를 얻던 마인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물러났다.

전투가 자연스레 잠시 멈추었다.

이때, 혈해검마가 산적처럼 검을 어깨에 기대 메고 나타났다.

“다 늙은 노인네가 기운도 좋네.”

“혈해검마.”

장문인이 침음을 흘렸다.

검마(劍魔)라는 별호를 쓰는 마인들이 적진 않지만 그 중 혈해검마는 특별했다.

검 한 자루로 피의 바다를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답게 그는 피를 만드는 자이며, 주변에 피가 많을수록 강해졌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였다.

신병이기 중 하나이자 혈해검마의 독문병기인 혈마검(血魔劍)은 피를 머금을수록 더 강해지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혈해검마는 혈마공, 피를 이용하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즉, 혈해검마는 지금처럼 수많은 피가 흐르는 전장에서 큰 강함을 보이는 매우 위험한 적이라는 뜻이다.

“장문인. 괜한 힘 빼지 말자고.”

“건방진!”

곤륜파 장로들이 이를 갈았다.

곤륜파 내에서 장문인이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곧 곤륜파 모두가 조롱을 받은 것과 같았다.

곤륜파 장로들은 큰 수치심을 느꼈다.

그 모습들에 혈해검마가 비웃었다.

“고루한 개새끼들이 어디라고 나서! 곧 너희들의 주인 될 사람들에게.”

혈해검마의 조롱에 장로들이 길길이 화를 냈다.

“닥쳐라!”

“감히 곤륜을 어지럽힌 죄를 물어 오늘 마교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혈해검마가 자세를 더욱 삐딱하게 했다.

“고작 그 정도 숫자로?”

혈해검마가 곤륜파를 감평하듯 느릿한 시선을 던졌다.

혈해검마의 뒤로는 일견 살펴도 사백여 명의 마인들이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 너머로도 족히 이백은 돼 보이는 마인들이 구경하듯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곤륜파는 저들의 삼분지 일에 불과했으니 전력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났다.

장로들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를 갈았다.

이 때 장문인이 장로들을 달래며 앞으로 나섰다.

“혹 마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곤륜의 멸문인가? 아니면 마교에 대한 협조?”

지독히도 차분하지만 그렇지 못한 내용의 말에 장로들은 물론이고 제자들조차 놀란 시선을 모았다.

“크크큭. 크큭. 크하하하하!”

혈해검마가 앙천대소를 했다.

“노부의 말이 그렇게나 웃긴가?”

“아아…. 그럼 안 웃기나? 정도 거대문파의 장문인이라는 작자의 입에서 마교에 대한 협조라는 말이 나오는데?”

혈해검마는 시종일관 비웃음 가득한데 장문인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웃고 싶거든 얼마든지 웃게. 그래서 마교의 뜻이 무엇인가?”

한참을 웃던 혈해검마가 입을 열었다.

“장문인 그대의 양팔과 양다리를 자르고 내 앞에서 긴다면. 그래서 그 대가로 곤륜파를 살려준다고 하면? 그대는 이행할 텐가?”

“못할 것도 없지.”

“……!”

질문을 한 혈해검마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도 놀란 표정을 했다.

하지만 장문인은 여전히 침착했다.

“내 개인의 일신 따윈 곤륜파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네. 그 최후가 돼지우리에 던져졌던 척부인과 같다 할지라도 말일세.”

장문인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곤륜파를 지키기 위해 흘렸던 선조들과 그들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기상을 저버릴 순 없다네. 그게 비록 나의 목숨과 곤륜파의 멸문이라고 할지라도 말일세.”

장문인이 혈해검마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제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곤륜의 태청(太淸)이란 곤륜산의 맑은 하늘을 담는 것과 같다. 곤륜산에서든 저 아래 땅에서든, 또는 중원 어딘가에서든 곤륜을 떠올리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태청해야 함일세.”

곤륜파 제자들의 눈에서 잡념들이 사라졌다.

“그러한 곤륜이기에 어찌 내가 개인적 선택을 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곤륜이기에 어찌 우리가 물러날 수 있겠는가!”

장문인의 외침에 곤륜파 제자들의 안광이 밝게 빛이 났다.

마교의 거센 공세에 당황했던 곤륜파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혈해검마가 인상을 썼다.

괜히 조롱하려고 나섰다가 장문인에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만곡음마가 다가왔다.

“쯧. 본전도 못 찾았어.”

으득.

혈해검마가 이를 갈며 혈마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옷이 나부끼며 진득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좋다! 내 오늘 곤륜의 용을 잡을 것이다. 땅에 처박아 두 눈을 뽑고 반각에 한 점씩 살점을 포 떠주마. 그럼에도 태청 같은 그딴 개소리를 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혈해검마의 눈이 벌겋게 변하며 그의 검신이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눈이 돌아갔군. 돌아갔어.”

만곡음마가 혀를 차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대기하던 마인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모두 공격! 살육하고 또 살육하라! 곤륜을 지워버려라!”

와아아아아------!

전투가 다시 시작됐다.

운룡방진이 다시 펼쳐지고 마인들을 붙잡았다.

“곤륜팔검은 저 음마를 상대하라!”

만곡음마가 다시 금을 타 운룡방진을 방해하려 하자 곤륜파의 진형에서 명이 내려졌다.

그러자 곤륜파 진형에서 여덟 명의 인물들이 표홀하게 신법을 밟으며 날아올랐다.

그러곤 그들은 허공을 달려 만곡음마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노니는 용과 같았다.

“운룡대팔식!”

멀리서 지켜보던 당상호가 곤륜파를 상징하는 무공을 보고는 감탄사를 뱉었다.

신법이자 곧 무공이기도 한 운룡대팔식은 자유로운 움직임과 막대한 내공에서 오는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 묘리와 수반되어야 하는 내공량이 엄청나서 곤륜의 최고수들만 자유로이 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한 무공을 여덟 명의 무인이 자유로이 펼치니 장관이 따로 없었다.

까강! 까가강!

만곡음마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공중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운룡대팔식에 사방이 아닌 팔방이 점해졌고, 그 합공이 날카로워 방심할 틈이 없었다.

수하들이 만곡음마를 지키기 위해 검을 내밀었지만 곤륜의 초고수 여덟 명의 공격 앞에서 우후죽순 쓰러져만 갔다.

“이, 익!”

만곡음마가 답답함을 토로하며 금현을 강하게 튕겼다.

콰아앙---!

답답함에 무식한 내공으로 음공을 펼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음률이 아닌 무언가 폭발하는 굉음이 났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크윽!”

“읍?!”

“이 무슨!”

피아를 식별하지 않은 공격에 만곡음마 곁의 마인들과 곤륜팔검 모두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휘청거렸다.

사람의 균형이란 것은 참 오묘해서 갑작스런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곤 했다.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든지 귀가 갑자기 잘 들리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균형 감각이었다.

하물며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균형에 대한 공부를 하는 무림인에게 있어 귀의 타격은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늘을 노닐던 용이 귀에 피를 흘리며 지상에 내려앉자 만곡음마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훌쩍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모두 죽여라!”

만곡음마에 의해 동료 마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명을 받는 마인들의 행동엔 지체가 없었다.

강자지존.

마교의 철칙이자 마교를 강하게 만든 원동력.

그런 강자지존의 정점에 있는 집단이 마교 장로들이었다.

“크아악!”

“곤륜은!”

“이놈들!”

곤륜팔검이 고군분투하며 마인 수십을 베어 눕혔지만 끝없이 쏟아지는 물량 앞엔 장사가 없었다.

이 모습을 만족스럽게 지켜본 만곡음마는 마치 허공에 의자가 있는 듯 앉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곤 금을 무릎에 올리고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음공이란 매우 섬세하고 어려운 공부여서 천하무림에서도 익힌 이가 드물다.

하물며 그러한 음공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는 천하에서 한 손에 꼽힐 것이었다.

만곡음마는 그런 이 중 하나이며, 만곡(萬曲)이나 아는 무인이었다.

내공과 표현할 수 있는 곡조만 많다면 다수가 엉키는 전장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는 이가 만곡음마였다.

그런 만곡음마의 손이 금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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