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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27화 (127/200)

기공술사 127화

장문인이 접객당에 도착하자 다양한 복색의 무인들이 시선을 모았다.

청해 정도문파연합과 사천당가를 필두로 한 사천의 정도문파들.

모두가 곤륜파의 위기를 구원하고자 어려운 결심을 한 자들이었다.

앞선 마교와의 전투로 인해 100여 명이었던 이들이 50여 명으로 줄어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장문인의 입이 급격히 써졌다.

장문인은 자신에게 모인 시선들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날 곤륜이 있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연이 쌓여 있소.”

침중하게 서두를 떼는 장문인에게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청해의 서쪽, 영험한 곤륜산을 제외하면 다소 척박한 이곳에 우리 문파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무림 동도들과 민간인들의 도움 덕분이었소.”

장문인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요. 또다시 곤륜파는 큰 도움을 받았소.”

이어 장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나 이것도 마지막인 듯하오. 마교의 공세가 저리 강맹한데, 곤륜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해 그 존폐가 풍전등화와 같소.”

“무슨 말을 그리하십니까.”

곤륜파를 급히 지원 온 당가의 대표이자 전 소가주, 당상호가 장문인을 달랬다.

그 모습에 장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가의 소가주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당가가 큰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어렴풋이 들었는데, 아마 그 때문인가 싶었다.

“자네의 마음은 고맙네만 때로는 잔인한 현실도 직시해야 하는 법일세.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마교의 공세 앞에서 이제는 냉정하게 곤륜의 안전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네.”

장문인의 말에 장내의 인물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마교는 지금 곤륜의 진법을 부수고자 총공세를 가하고 있소이다. 천애지형에 만들어진 최상의 진법이라지만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소.”

“그러면 다시 마교와 싸우면 될 일 아닙니까? 앞서 마을에서도 우리가 마교를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곤륜파를 지원 온 청해 문파연합의 수장이 호기를 드러냈다.

마교가 곤륜산을 공격해옴에 곤륜파의 도인들은 모두 마을로 내려가 민간인들을 지키고자 마교와 전투를 치렀었다.

엄청난 격전이었고 곤륜파는 많은 사상자와 함께 큰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때마침 구원군이 도착했고, 그들이 청해와 사천의 무인들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처절한 희생 덕분에 마교를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승리로 벌게 된 시간 덕분에 마을 사람들을 곤륜파로 대피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빠르게 재정비를 마친 마교가 더욱 많은 숫자로 곤륜산을 올랐고, 그들은 지금처럼 진법을 공격하며 호시탐탐 곤륜파를 잡아먹고자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문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앞서 마을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사상자가 따를 것이오.”

아마 마교에 의해 이곳의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문인은 장내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모두들 각 문파에서 중요한 인물들일 터.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장문인의 생각과는 달리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켰다.

“장문인! 그대는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오?”

“맞소이다! 장문인은 마치 곤륜파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 또한 곤륜파의 도움을 많이 받았소이다!”

“그렇소! 의와 협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종하게 살던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청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은 곤륜파와 장문인 그대요!”

청해 문파연합의 인물들이 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이어서 사천 인원들 중 대표 격을 맡은 당상호도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과거 정마대전에서 정도 무림을 지키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도 곤륜이 아닙니까. 그만큼 큰 희생을 치르면서요. 덕분에 사천 무림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당연 당가도 포함되는 바. 은원이 정확한 당가는 이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지원 왔으니, 마음 약한 소리는 저희들에 대한 배려가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당상호와 함께 지원 온 당가의 인물들과 사천 문파의 무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에 곤륜파 장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허허허. 이 모습을 선배님들이 보셨으면 좋았을 것을.”

장문인은 과거 정마대전으로 목숨을 달리했던 곤륜의 선배들이 떠올랐다.

마교의 본산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정파 그 어느 세력보다 가장 많은 피를 흘렸던 곤륜이었다.

그 탓에 곤륜의 많은 인재들이 사라졌고, 재물들도 대부분 소진됐었다.

하지만 무림이 안정을 찾고 무림맹이 창설된 후에도 곤륜의 피해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곤륜의 후인들 중 불만을 가진 자들도 더러 있어왔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항상 허울 가득한 말로 달래던 것이 장문인 현원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는 가까스로 눈물과 마음을 다스렸다.

장문인이 다시 고개를 내렸을 땐, 그의 눈빛은 푸른 하늘만큼이나 더없이 청명하게 빛이 났다.

“그대들의 마음이 보잘것없는 본도를 울리는구려. 알겠소. 내 약한 마음은 먹지 않으리다. 하지만!”

장문인의 눈이 굳세어졌다.

“무림인의 싸움에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될 일이요.”

장내의 인물들도 장문인의 말에 공감했다.

“그래서 이것만은 확실하게 하고자 하오.”

각오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장문인이 말했다.

“만약 곤륜이 무너진다면 민간인들만은 대피시켜야 하오. 이는 사천당가에게 부탁을 드리고자 하오.”

“하지만…….”

당상호가 황망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려하자 장문인이 제지했다.

“자네는 아직 어리네. 그리고 우리 곤륜이 무너지면 청해 무림도 마교의 기치 아래 안전한 곳이 없을 터. 그리되면 아마 전선을 사천까지 물려야 할 걸세.”

당상호는 장문인의 말을 곧장 이해했다.

그렇기에 딱히 부정할만한 논리를 떠올리지 못하며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당상호에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염치없지만 곤륜의 미래들도 부탁함세.”

“물론입니다.”

이대로 손 놓고 곤륜파의 모든 인물이 죽는다면 곤륜파는 그대로 멸문함과 같았다.

“무학당주.”

“예. 장문인.”

무학당 장로 현륜이 대답을 했다.

그의 표정은 오만가지의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어질 장문인의 말이 무엇일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장문인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은 현륜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곤륜의 미래를 네게 부탁을 하마.”

“장문인. 차라리 장문인께서 가심이…….”

장문인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이 되어서 어찌 제자들보다 먼저 등을 돌린단 말이냐.”

“허나…….”

“현륜아.”

현륜은 자신의 어깨에 얹은 장문인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감을 느꼈다.

그리고 평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절대 이름으로 부르지 않던 장문인이 이름으로 부르자 강하게 의견을 내밀 수가 없었다.

현륜은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표정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현륜을 보며 장문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 무거운 짐을 너에게 맡겨서 미안하구나.”

“…….”

“만약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제자들을 데리고 사천당가를 따라가거라.”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미안하구나.”

현륜은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도 곤륜파의 명맥을 잇는 일에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학당주라는 자리가 그러했다.

본신의 무위보다는 곤륜파를 사랑하는 마음과 무공을 분석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중시했다.

그래서 곤륜파의 무공들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무학당주인 자신은 비록 무공은 약할지언정, 곤륜의 모든 무공을 알고 있다 해도 무방했다.

게다가 현륜은 마을에서의 전투에서 크게 내상을 입은 상태이기에 당장의 전력에서 열외 됨이 맞았다.

“장문인!”

그때 접객당의 문을 열고 접객당주가 다급히 들어왔다.

“진법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습니다!”

긴급한 접객당주의 말에 장문인이 명을 내렸다.

“곧 나가겠네. 제자들과 함께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있게.”

“알겠습니다!”

접객당주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간 후 장문인은 장내를 둘러봤다.

모두 올 것이 왔다는 각오의 눈빛을 장착하고 있었다.

장문인은 이들을 보며 마지막 감사와 당부를 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말하네. 다시 한 번 모두들 고맙네.”

모두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은 특히나 당상호에게 시선을 더 보냈다.

이에 당상호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장문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 눈빛에 만족한 장문인이 옅게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럼 가세.”

***

마교의 장로인 혈해검마(血海劍魔)는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곤륜파의 진법에 인상을 찌푸렸다.

“더럽게도 단단하군.”

혈해검마의 푸념에 곁에 있던 만곡음마(萬曲音魔)도 동조하며 혀를 찼다.

“그러게 말이야.”

“네놈의 그 잘난 음공으로 진법을 부술 순 없는 거냐?”

혈해검마가 만곡음마의 등에 메인 거문고를 가리키며 말하자 만곡음마가 웃었다.

“나의 무공은 대인전에 특화된 거지 무식하게 진법을 부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그건 네놈도 마찬가지 아닌가.”

혈해검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그렇지. 내 검이 어서 피를 먹여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말이야. 이깟 진법에 시간을 잡아먹히고 있으니 원.”

혈해검마가 자신의 검집을 툭툭 치며 말하자 만곡음마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뱉었다.

그때 산 아래서 차가운 표정의 노인이 이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올라왔다.

“아직도 진법을 뚫지 못하고선 희희낙락 하는 꼴이라니. 가관이군. 다른 장로들은 벌써 서장과 감숙을 파죽지세로 장악하고 있다던데.”

노인의 건조한 말에 혈해검마와 만곡음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우리의 상전인 것처럼 말하는 잘난 네놈의 부재만 없었다면 진즉 곤륜파를 멸했겠지.”

“맞아. 철혈검마(鐵血劍魔) 네놈은 지금껏 어디에서 놀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서 그래?”

혈해검마와 만곡음마의 핀잔에 철혈검마가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의 수하를 가리켰다.

그 행동을 혈해검마와 만곡음마의 시선이 의아하게 따라갔다.

이내 두 사람은 놀란 눈을 했다.

“폭약?!”

철혈검마의 수하들 손엔 황실에서만 사용 가능한 폭약들이 상자째 들려있었다.

놀라는 두 장로를 보며 철혈검마가 파리 쫓듯 손짓을 했다.

두 장로는 자존심이 상했으나 확실한 해결책을 가져온 철혈검마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는 두 장로를 보며 철혈검마가 말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진입할 준비나 해라. 진법은 곧 무너질 테니.”

철혈검마가 수하들에게 손짓하자 수하들은 빠르게 진법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흩어지며 폭약을 설치했다.

“크큭. 그래. 네놈이 공을 세우는 게 마음에 들진 않으나 곧 정파 놈들의 피를 본다 생각하니 그냥 넘어가주지.”

“대인전은 우리의 주 영역이니 철혈 네놈은 진법만 부수고 구경이나 하라고!”

혈해검마와 만곡음마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을 철혈검마가 차갑게 보고선 외쳤다.

“일제히 폭약에 불을 붙여라! 오늘 우리는 무림에서 곤륜을 지울 것이다!”

그의 명에 준비된 폭약들이 굉음을 내며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광------!

곤륜파를 지키던 진법이 격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진법이 해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 더 이 정도의 폭발이 난다면 진법을 지탱하는 지형 자체와 함께 진법이 무너질 것이 확실해 보였다.

“다시 한 번 폭약을 설치하라!”

세 장로들은 이번엔 반드시 진법이 무너지리라 확신하고선 자신들의 애병을 꺼내들었다.

“진법이 무너지면 돌격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살육한다!”

장로들의 명에 수백에 달하는 수하들이 마기를 끌어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철혈검마는 폭약이 다시 설치되었다는 신호를 받고선 크게 외쳤다.

“폭파!”

콰과과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진법을 지탱하던 암석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눈앞을 가리던 곤륜산 특유의 운무가 걷히며 곤륜파로 향하는 길들이 환하게 보였다.

“가라!”

“돌격한다!”

장로들의 외침에 마교의 병력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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