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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25화 (125/200)

기공술사 125화

진법에 발을 들이자마자 기의 흐름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길을 바꾸었다.

하지만 천애랑의 눈엔 또렷하게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다.

그럼에도 천애랑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진법 초입에 매복한 암살자 셋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진법에 빠진 것을 알고 당황하는군.’

‘빠져나가려고 해도 소용없다. 이곳은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환속진도 설치되어 있으니까.’

‘조금만 더 걸음을 내딛어라. 그러면 바로 그 잘난 멱을 따주마.’

천애랑은 땀을 삐질 흘렸다.

너무나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쳐다보는 암살자들의 시선에 하마터면 마주 시선을 던질 뻔했다.

진법에 빠진 듯 모르는 척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천애랑이 모르는 척 걸음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 암살자들이 신형을 날려 왔다.

이미 알고 있던 천애랑은 천선의 날을 세워 빠르게 휘둘렀다.

촤차차착!

일 합.

단 한 번의 움직임에 암살자 셋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마지막 숨이 빠져가는 그들의 눈엔 이해 못 할 당혹감이 들어있었다.

천애랑은 쓰러진 암살자를 넘어 걸음을 계속 옮겼다.

진법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진법의 기운은 더욱 요동치며 나아가야 할 길을 어지럽혔다.

작정하고 만들었는지 엄청난 수준의 진법이었다.

적벽 제갈량의 진법보단 위험도와 복잡함이 아래였지만, 짧은 시간에 만들었음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했다.

분명 천하에 내로라하는 최고급 주술석과 진법가들이 투입되었을 것이었다.

새삼 황실의 저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 진법이라면 확실히 절대고수라도 낭패를 볼 수도 있겠네.’

지금 당장도 일 보 앞이 생문이었다가 순식간에 사문(死門)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게다가 호시탐탐 노려보는 암살자들의 기운도 능히 절정에서 초절정의 경지로 보였다.

간부들마저 동원한 듯했다.

천애랑은 또다시 모르는 척 걸음을 내디뎠다.

사문이 생문으로 전환되는 찰나의 걸음인지라 암살자들의 눈엔 그저 천애랑이 운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천애랑이 몇 보 걸음을 더 옮기자 참다못한 암살자들이 암기를 날렸다.

암기는 빠르게 날아가 그대로 천애랑을 꿰뚫었다. 그들은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암기에 맞았다 싶었던 천애랑의 신형이 흐물거리며 사라졌다.

‘이형환위!’

암살자들이 당황할 때 천애랑의 신형이 그들의 뒤에 나타났다.

으득.

그대로 목이 꺾이며 죽은 암살자를 필두로 천애랑과 암살자들의 전투가 시작됐다.

물론 진법의 길이 훤히 보이고, 환영유령보보까지 펼치는 천애랑의 일방적 학살이었다.

화르륵!

사문에 떨어진 암살자의 몸이 불타올랐다.

다른 사문에 떨어진 암살자는 극심한 갈증을 느끼듯 목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절명했다.

다른 암살자는 어떤 환각에라도 빠졌는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천애랑은 종횡무진 움직이며 춤추는 암살자를 제외하고, 십여 명에 달하는 암살자 모두를 처리했다.

요란한 소리가 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진법이 계속 변하는 터라, 후방의 암살자들이 이곳의 상황을 전혀 모를 것이었다.

천애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핏빛처럼 저물고 있었다. 곧 어둠이 내릴 것이었다.

만약 진법을 볼 수 없었다면 금세 들이닥친 어두움에 진법과 암살자들로부터 큰 곤욕을 당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천애랑이 되려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어둠이 더 완벽해지기까지 기다려볼까.’

천애랑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진법 내부의 배치를 보니 관문처럼 구간마다 암살자를 배치하고 자신을 곤궁에 빠뜨리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걸음을 늦추면 후방의 이들은 전방의 암살자들에 의해 내가 곤궁에 빠졌다고 여길 터. 이곳의 상황을 파악하기까지의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천애랑은 변화하는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무 하나를 골라 그곳에 기대었다.

‘어두워지면 그때 움직이자.’

천애랑은 사문에 빠져 열심히 춤을 추는 암살자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환술에 걸렸기에…….’

어떤 환술인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설동이에게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천애랑이었다.

***

달이 구름에 걸친 어두운 밤.

우장군은 막사에서 자신의 무기들을 점검했다.

군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무기는 항상 정성으로 길을 들여야 하는 법.

창과 검의 날을 확인하고 활시위의 장력을 확인하던 그는 천애랑을 떠올렸다.

인상적인 등장과 그보다 더 인상적인 무공들.

‘엄청났지.’

우장군이 활의 수평을 살피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연달아 3개의 보급부대를 와해시킨 의문의 실력자가 누구일지 의아했었다.

그런데 천애랑의 무위를 보자마자 바로 납득이 갔다.

물론 외관과 실력 사이의 괴리감이 아직도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직접 목도했으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설마 나보다 강하나.’

우장군의 표정이 탐탁지 않게 굳어졌다.

천애랑이 마지막에 보여준 무공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그 결과가 천이 넘는 사상자와 후퇴였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천이 넘는 사상자는… 충분히 가능하지.’

녀석처럼 한 번에는 아니더라도 거뜬히 가능했다.

하지만 내공과 체력이 많이 소모됐을 것이다.

‘그런데 녀석에게서 크게 지친 기색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내공이 많은 거지?’

얼마나 내공이 많은 건지 무식하리만치 내공을 쏟아내던 녀석이었다.

내공이 많음으로 유명한 무당파의 노도인을 떠올려 봐도 녀석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한 뒤 재정비를 위한 후퇴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 엄청난 기술을 몇 번이나 더 펼칠 수 있는지도 모르니까.’

우장군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위의 우위를 떠나서 내공만큼은 확실히 본인보다 많은 느낌이었다.

‘황실의 장군으로서 영약을 밥처럼 먹은 나보다 말이지.’

우장군은 기가 찼다.

천하는 넓고 기인이사는 많다더니 딱 이 꼴이었다.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수만 명의 전력이 뒤로 물러났다.

수만의 병력이 움직이기 어려운 지형이라느니, 도시 안에선 기병들이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느니 등의 핑계는 필요 없었다.

‘그놈 하나 때문에 후퇴를 선택한 것만큼은 사실이니.’

무기들의 모든 정비를 마친 우장군은 이어서 갑주를 정비하기 위해 갑주를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보고가 늦지?’

지금쯤이면 수하들이 보고를 해왔어야 했다.

우장군은 진법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그놈이라도 그 진법에서 빠져나갈 순 없다.’

황실의 비보까지 써가며 만든 진법이었다. 그 덕에 생각보다 강력한 진법이 형성되었다.

원래라면 전쟁에서 대규모 병력들을 유인해, 몰살시킬 용도의 비보였다.

그것을 단 한 사람에게 썼으니 과한 처사라고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에 무공이 고강한 장수들은 물론 부관들까지 모두 암행복을 입혀 보냈으니.’

수만의 병력을 처리할 전력을 단 한 사람에게 쏟아부었다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천애랑을 처치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기정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황실군이 얼마큼의 피해를 감수했느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시 말에 천애랑이 진법으로 발을 들였다는 것을 보고 받았으니 그의 죽음은 확실했다.

그러나 우장군은 돌연 묘한 기시감을 받았다.

“흠…….”

서늘한 직감이 심장을 간지럽혔다.

그는 들어 올렸던 갑주를 다시 내려놓고선 슬며시 단검을 빼어 들었다.

그러곤 조심히 막사 문을 열어젖혔다.

“…….”

막사를 나온 우장군은 깊은 어두움만큼이나 고요한 막사 밖의 분위기를 마주했다.

‘횃불이 왜 꺼졌지?’

막사 주위를 밝히던 횃불들이 어느샌가 모두 꺼져있었다.

‘그리고 이놈들 어디 갔어.’

장군 막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이런 변화들이 있을 때까지 자신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우장군은 다급히 전신의 감각을 개방했다.

찰나의 섬뜩함에 우장군은 단검을 뻗었다.

“헛!”

그러나 그의 단검은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손에 가로막혔다.

동시에 또 다른 단검이 우장군을 향해 다가왔다.

우장군은 다급히 철판교의 수를 펼치며 단검을 피했다.

한껏 뒤로 젖힌 몸 위로 단검이 스쳐갔다.

사악!

“크읍!”

피했다 생각한 우장군의 다리를 어디선가 나타난 무언가가 날카롭게 긁고 갔다.

우장군은 다급히 철판교의 수에 이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쳤다.

그러자 곡예를 돌듯 몸이 회전하며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우장군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다리를 베고 간 것의 정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어제 인상적으로 봤던 무기였다.

“부채?”

부채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설마! 진법을 뚫고 나온 것인가!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면 그곳으로 간 내 수하들은?!’

우장군의 표정이 극히 혼란스러워졌다.

‘그렇다면 위험하다!’

우장군은 생각과 동시에 다급히 자신의 막사로 뛰어들었다. 그러곤 빠르게 활을 집어 속사를 했다.

파팟! 파파팟!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 막사 천막을 꿰뚫었다.

한편.

화살을 피한 천애랑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단번에 제압하려 했건만.’

어둠은 물론 진법 안을 훤히 볼 수 있는 천애랑의 눈앞에선 제아무리 많은 매복과 함정들이라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진법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됐기에 진법 내부의 실력자들을 확실히 처치하는 게 용이했다.

‘이젠 우장군만 죽이면 된다.’

지나온 진법 안에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투입됐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호재였다.

도마뱀 사살 작전.

천애랑이 담하웅에게 제안한 작전이었다.

도마뱀은 꼬리를 자르면 계속 자라나지만 머리가 잘리면 죽는다.

보급부대를 처치하면서도 느꼈지만 이런 대규모 부대에선 적장을 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그 지휘체계가 압도적인 곳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천애랑은 어떤 함정일지 모르면서도 이를 돌파하고 황실군의 지휘체계를 무너뜨리겠다고 엄포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 후 신호를 보내면 어둠 속에서 은밀히 접근해온 담가의 전 병력이 야간 기습을 할 계획이었다.

‘지금쯤이면 담가의 병력이 가까이 왔을 터. 그들이 들켜 큰 곤경에 빠지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

많은 변수와 선결과제들, 그리고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 작전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넘어 단숨에 이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

천애랑은 천선을 막사 안으로 날렸다.

샤아아아악!

빠르게 날아가는 천선을 따라서 천애랑도 막사 안으로 진입했다.

천애랑의 눈에 우장군이 활로 천선을 쳐내는 것이 보였다.

터엉!

활은 평범한 방법으로 무두질 된 것이 아닌 듯 천선을 쳐내고도 멀쩡해 보였다.

천애랑은 튕겨 나오는 천선을 뛰어 잡으며 다시 쏘아 보냈다.

이어서.

신룡지탄. 난사.

천선과 수많은 탄지공이 우장군의 전방위를 위협했다.

“으하아압!”

우장군이 다급히 활을 던지곤 허공섭물로 자신의 애검을 쥐었다.

그러곤 빠르게 검막을 만들어냈다.

따다다다다다당!

콩 볶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우장군의 신형이 살짝 밀려났다.

우장군에게 접근하는 천애랑의 주변으로 기운들이 밀집되고 일렁였다.

제공권을 강하게 펼친 천애랑의 눈이 노랗게 번들거렸다.

“무, 무슨?!”

방어를 하던 우장군은 매우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제공권이 자연스럽게 침범당하는 기분이 마치 대장군을 마주할 때와 비슷했다.

‘죽음의 감각.’

우장군은 다급히 전력을 다해 호신강기를 펼쳤다.

천애랑은 반드시 이번의 공격으로 우장군을 끝장낼 작정이었다. 그래서 손을 멈추지 않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콰지직.

천애랑이 접근함에 따라 우장군의 호신강기가 일그러지고 부서졌다.

“크흑!”

다급해진 우장군은 천애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천애랑은 황금빛 검강이 서린 우장군의 검을 수강으로 쥐고는 빠르게 파고들었다.

파앗.

강기를 입힌 손이지만 검을 으스러뜨리듯 꽉 쥔 탓에 천애랑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검을 회수하려던 우장군은 깊은 암석에 검이 박힌 듯 검이 떨어지지 않자 다급히 검을 놓았다.

‘이대로는 당한!’

어떻게든 천애랑의 공격을 방어하려던 우장군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부채를 보았다.

“감히 대 원의 장군인 나를…….”

“잘 가시오.”

천애랑은 우장군의 심장에서 꽂아 넣은 천선에 뇌기를 한껏 밀어 넣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아악!”

심장이 불타는 생전 처음의 고통에 우장군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털썩.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우장군이 쓰러졌다.

천애랑은 우장군의 죽음을 확인하곤 급히 숨을 골랐다.

‘다행이군.’

제일 중요한 선결과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다.

적당히 호흡을 정리한 천애랑은 우장군의 수급을 취했다.

그러곤 한쪽에 잘 벼려진 창대에 매달아 막사 밖으로 향했다.

활과 기름먹인 화살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휘관들 막사의 어두움과는 다르게 병사들이 머무는 진형엔 밝은 횃불들이 어두운 밤을 경계하고 있었다.

천애랑은 병사들의 막사에 다가가기 전, 기름먹인 화살촉에 삼매진화로 불을 붙였다.

화륵.

그는 손쉽게 불타오르는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는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피이이이------

불화살이 효시처럼 밤하늘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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