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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23화 (123/200)

기공술사 123화

쿠르르릉!

섬전과도 같이 날아드는 무언가에 부관은 본능적으로 내려치던 검의 방향을 틀었다.

까아아앙!

“크윽!”

엄청난 반탄력에 부관의 발이 고랑을 만들며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부채?!’

뒤에서 지켜보던 우장군은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가 날아와 부관의 검을 쳐내기에 유심히 봤더니 검은 부채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엄청난 속도로 뒤따라와 부채를 잡았다.

자신조차 잠시 신형을 놓칠 정도의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부관의 검강을 쳐낼 때의 저릿한 기파가 인상적이었다.

이내 우장군의 눈이 좁혀졌다.

‘그런데 너무나 젊지 않나.’

엄청난 움직임과 기세를 보여주기에 담가에서 숨겨놓은 노고수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외관이 너무 젊어 당혹스러웠다.

‘흐음.’

우장군은 자신의 부관을 보았다.

자존심에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반탄력에 부르르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는 게 보였다.

‘대단하군.’

우장군은 감탄의 표정으로 젊은 청년을 보았다.

자신을 수행하는 부관은 무림인들의 경지로 따지면 초절정의 극에 달하는 고수였다.

‘그런 이에게 이 정도의 타격을 주다니.’

“장군님!”

갑작스런 위험요소의 등장에 다른 부관들과 병사들이 우장군을 호위하듯 곁으로 집결했다.

이에 우장군은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그는 담가의 성벽 위에서 담 가주가 ‘처, 천… 천 가주!’라고 들뜬 외침을 뱉는 것을 보았다.

그 외침에 담가의 분위기가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고작 한 명.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놈일 뿐인데.’

무림인간의 결투라면 개개인의 무위가 승패를 가르는 중요 요소겠지만 이곳은 무려 수천수만의 병력이 부딪히는 전장이다.

한 손으로 열 손 감당 못 하듯 제아무리 고수라고 할지라도 이 많은 수의 병력 앞에선 당랑거철일 뿐이었다.

‘재밌군.’

우장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청년을 죽인다면 잠시 불타오른 저들의 희망도 확 꺼지겠지. 그것도 볼 만 하겠어.’

담가에서 보낸 수급 때문에 수치심을 느낀 우장군은 철저하게 저들을 농락하고 유린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관에게 명을 내렸다.

“부관. 황실의 위엄을 보여라.”

우장군의 질책 섞인 듯한 말에 부관이 검을 꽉 쥐었다.

“목숨으로 보이겠습니다.”

담하웅의 반가운 외침을 무시하고 천애랑은 뒤를 돌아봤다.

그는 내심 속으로 안도의 숨을 뱉는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팽풍궐과 동창의 내시들을 따돌린 후 곧장 이곳으로 온 천애랑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쉬지도 않았던 것이 다행히도 유효했다.

담소연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천애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랜만이다.”

“오, 오라버니…….”

담소연은 두려움, 놀라움, 반가움 등 복잡 미묘한 감정들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천애랑은 그런 그녀를 다독이곤 백호를 보았다.

“고생했다. 그리고 잘했다.”

천애랑은 백호를 쓰다듬으며 대자연의 기운을 끌어와 불어넣어줬다.

그러자 백호가 기분 좋은 울음을 뱉으며 천애랑에게 머리를 비볐다.

“호야. 이들을 성 안으로 모두 모셔라.”

천애랑의 말을 알아들은 백호가 일차적으로 담소연을 등에 태웠다.

그러곤 부상에 신음을 흘리는 호위대장을 입에 물었다.

“오라버니는요?”

담소연의 걱정스런 물음에 천애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관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곧이어 천애랑의 몸에서 파지직 거리는 전류가 흘러나왔다.

부관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기세를 끌어 올리며 천애랑에게 신형을 날렸다.

“차핫!”

부관의 검이 천애랑을 일도양단 할 듯 매섭게 움직였다.

천애랑은 몸을 회전시키며 천선을 강하게 휘둘렀다.

단번에 기선제압을 할 생각이었다.

까아아앙!

굉음과 함께 부관이 놀란 눈을 했다.

장수들에게 주어지는 흑철검이 두 동강 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야가 자의와 상관없이 팽그르르 돌았다.

단 일합에 부관이 목이 잘려 죽은 것이다.

“……!”

이에 우장군은 물론 지켜보던 황실군이 깜짝 놀라했다.

“이 새끼가!”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다른 부관들이 활을 쏘았다.

쒜에엑!

화살엔 내기를 가득 실려 파공성을 만들어냈다.

천애랑은 이기어검을 펼치듯 화살들을 향해 천선을 날렸다.

그러곤 곧장 우장군에게 신형을 날렸다.

“장군님을 보호해라!”

갑작스런 천애랑의 돌진에 화들짝 놀란 기병들이 바짝 밀집대형을 취하며 천애랑의 앞길을 막았다.

천애랑은 높게 뛰어올랐다. 그러곤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기병들의 말머리를 박찼다.

빠악! 빠악!

머리가 부서진 말들이 고통스런 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에 따라 그 위의 기병들도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건방진.”

성큼성큼 다가오는 천애랑을 보며 우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다.

그 행위가 지극히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우우웅---

황금갑주만큼 빛나는 황금빛 강기가 활촉에 어리는 순간,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파아아아---!

적들을 뚫고 우장군에게 다가가던 천애랑은 가공할 위력의 화살에 허공을 노닐던 천선을 빠르게 불러들였다.

그러곤 강기를 실어 화살을 막았다.

카가가가강!

천선에 부딪힌 화살은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모든 것을 뚫어버릴 듯 강맹하게 회전을 했다.

발을 디딜 공간이 불안정한 천애랑은 어쩔 수 없이 신형이 띄워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착지한 천애랑은 화살을 옆으로 쳐냈다.

‘공력이 상당하다.’

천애랑은 우장군의 공격에 감탄을 했다.

공격에 실린 엄청난 공력뿐만 아니라 그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급소인 목과 그 바로 아래.’

화살이 쏘아진 위치는 단순히 고개를 비켜 피할 수 없는, 피하려면 상체 자체를 비틀어야 하는 위치의 공격이었다.

즉, 부득이하게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막더라도 힘을 제대로 싣기 어려운 자세를 갖게 하는 공격이었다.

‘상당히 실전적이군. 군인이라 그런가.’

우장군에게 감탄하는 천애랑과 마찬가지로 우장군 또한 천애랑을 보며 감탄을 했다.

‘부관을 일격에 죽인 것이 우연은 아니군. 호승심이 들긴 하다만.’

우장군이 부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유는 끝이다. 담가를 멸할 것이니 전 병력을 데리고 돌진하라.”

“명을 받듭니다!”

황실군의 기병들이 분주해졌다.

무소뿔로 만든 나팔소리가 전장의 소음을 뚫고 후방에 전달됐다.

이내 수만에 달하는 보병들이 우장군과 기병들을 가로지르며 담가로 진격했다.

엄청난 병력의 움직임에 지진이 난 듯 땅이 진동했다.

우장군은 분주하게 변하는 전황을 일별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천애랑은 혀를 찼다.

‘빠르게 머리를 끊어 이득을 보려 했건만.’

보급부대를 와해시켰을 때처럼 그 부대의 머리를 먼저 처치하고자 했던 천애랑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전면전으로 전황이 흘러가자 아쉬움이 남았다.

“오라버니 물러나요!”

천애랑은 담가의 성문에서 외치는 담소연을 보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담가의 병사들이 황실군을 견제하며 빠르게 호위기병의 사상자를 옮기는 게 보였다.

“문을 닫아라! 곧 가겠다!”

천애랑은 시야를 가득 메우며 돌진해오는 수천수만의 보병들을 보았다.

거친 풍랑이 몰아치듯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사들을 보니 그저 실소가 나올 뿐이었다.

과거 담대혁과의 만남에서 도시의 사람들이 많다고 놀랐던 자신이 민망할 따름이었다.

천애랑은 장판파의 장비처럼 담가의 성문 앞에 섰다.

“천 가주! 물러나시게!”

성벽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담하웅이 걱정스레 외쳤다.

이에 천애랑은 담하웅이 들리게 크게 말했다.

“덕분에 소걸이가 살 수 있었소! 그러니 작은 보답을 하겠소!”

“뭐?!”

천애랑은 담하웅의 놀람을 무시하곤 천선을 활짝 펼쳤다.

“후우읍!”

짧은 심호흡과 함께 천애랑의 무복이 펄럭였다.

바다와 같이 깊고 많은 내공이 천애랑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천애랑의 내공은 순식간에 불의 기운으로 변환되었고, 이내 다인 전투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공술이 펼쳐졌다.

화접탄(火蝶彈).

천애랑의 전방으로 거의 만에 달하는 숫자의 불꽃 나비가 날개를 펼쳤다.

용감무쌍하게 달려들던 병사들은 갑작스런 붉은 나비에 당황했다.

“뭐해! 공격해! 물러나는 놈은 죽는다!”

뒤로 물러난 기병들과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채근했다.

이에 병사들은 기합을 지르며 천애랑과 성벽으로 내달렸다.

천애랑은 지척까지 다가온 병사들을 향해 펼친 천선을 크게 휘둘렀다.

대난무(大亂舞).

기천의 붉은 나비들이 허공을 수놓으며 날아갔다.

한편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한편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높게, 한편은 발목을 적시는 냇물처럼 낮게.

붉은 나비들의 춤에 보병들이 방패를 높이 들었다.

갑작스런 나비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막으며 돌파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전장에 엄청난 폭발이 시작됐다.

콰앙!

콰과광!

콰과과과과광------!

전장을 가득 메우는 폭발음과 뒤따르는 후폭풍.

“으아아악!”

“아악!”

병사들의 고통스런 비명이 전장에 울렸다.

천애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람의 결을 따라 뇌기를 담은 천선을 크게 날렸다.

촤라라라라락!

맹조처럼 날아간 천선이 병사들을 공격했다.

방패로 막으려 해도, 검으로 잘라내려 해도, 창으로 쳐내려 해도 천선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순 없었다.

“크하악!”

“내 다리!”

“파, 팔이!”

모든 것을 잘라버리며 날아가는 천선과 폭발하는 나비들에게서 병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후우우------

한바탕의 폭발과 공격이 끝난 후 전장에 작은 적막이 스쳐갔다.

충격과 공포.

놀라움과 경외.

수많은 감상 속에서 천애랑은 허공을 박차며 담가의 높은 성벽 위로 올라왔다.

“오랜만이오.”

천애랑은 지친 숨을 토해내며 담하웅에게 인사를 건넸다.

담하웅은 황당한 표정으로 성벽 아래와 천애랑을 번갈아 봤다.

천애랑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주위 반경이 초토화된 것은 물론이고, 당장이라도 전쟁을 종식시킬 것 같던 적들의 기세가 그대로 멈춰있었다.

짐작만으로도 저들의 사상자가 천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허, 허, 허허허…….”

담하웅은 자꾸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눈앞의 천애랑이 참으로 반갑고 든든했다.

누군가는 속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천애랑에게 투자했던 지난 시간의 자신에게 마구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런 인연을 맺어온 아들과 딸에게도 말이다.

담하웅은 칭찬 대신 천애랑을 와락 끌어안았다.

“반갑네! 참으로 반가워!”

담하웅의 갑작스런 행동에 천애랑이 멋쩍게 웃으며 그를 밀어냈다.

“아직 전쟁중이오.”

“아, 아! 그렇지. 그렇고말고!”

담하웅은 호들갑을 떨며 언제든 재공격 해올 적들을 대비했다.

그사이 천애랑은 성벽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그는 적진의 후방에 있는 우장군과 시선을 마주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시선을 주고받았다.

무서운 눈으로 천애랑을 보던 우장군은 생각했다.

‘저자가 홀로 보급부대를 와해시킨 장본인이었군.’

우장군이 먼저 천애랑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의 눈에 많은 사상자와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장군은 혀를 차며 말했다.

“오늘은 후퇴한다. 다시 정비하고 진격을 할 것이다.”

우장군의 곁을 지키던 부관이 장군의 뜻을 헤아리곤 고개를 숙였다.

“명을 따릅니다!”

병사들은 기세 좋게 달려왔을 때와는 반대로 침중한 분위기로 천천히 후퇴를 했다.

농성에 목적이 있던 담가는 굳이 황실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후퇴를 지켜보던 우장군은 경고하듯 마지막으로 천애랑을 보고선 말머리를 완전히 돌렸다.

황실군이 물러남에 따라 담가에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담가 만세!”

“만세!”

“천 가주 만세!”

마지막은 담하웅이었다.

***

그날 밤.

황실군의 간부막사에선 긴급회의가 열렸다.

우장군을 중심으로 부관들과 장수들이 자리를 했다.

부관들이 조사해온 정보를 말했다.

“새로 나타난 이의 이름은 천애랑. 기공가의 가주인 듯합니다. 담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광산전투에서 팽 태감과 결투를 벌였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팽 태감과?”

우장군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그러고도 사지 멀쩡히 살아남았다고?’

어려 보인다고 쉽게 판단할 이가 아님은 확실했다.

천애랑이라는 애송이를 죽이고 확실하게 적을 유린하려 했다가 역으로 사기를 잃어버린 낮의 일이 떠올랐다.

물론 무리해서 공격을 감행할 순 있었겠으나.

‘놈은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하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만약 늪에 빠지듯 놈의 공격에 병사들이 계속 갈린다면, 그때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기 저하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궁지에 몰렸다고는 하나 담가의 병력은 아직 건재했고, 제남 곳곳에 위험요소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우장군은 고작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진 지금의 상황을 보며 혀를 찼다.

“놈만 처치하면 일이 쉬울 텐데 말이야.”

우장군의 말에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그중 가장 그럴싸한 의견이 나왔다.

“진법을 설치하고 놈을 유인하면 어떻겠습니까. 정파의 놈 같으니 무고한 양민들, 그중 여인과 아이들로 골라 유인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채 부관의 의견이 괜찮아 보입니다. 병사들이 가득해 보이면 위축되어 안 움직일 수 있으니 병사들을 크게 뒤로 물리고, 진법 안에 정예들만 잠복시키면 좋을 듯합니다.”

“제아무리 절대고수라도 진법이 안 먹힐 리는 없으니 괜찮은 의견인 듯합니다.”

우장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밑져야 본전인 계책이었다.

“좋다. 진법을 준비하고 놈에게 나와의 독대를 내세워 유인하라! 이에 응하지 않으면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보이는 곳에서 하나씩 끊어라! 그렇게 놈을 처리하고 나면 그날로 황실에 반기를 든 담가와 제남의 종자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진득한 살기를 풍기는 우장군을 보며 부관과 장수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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