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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22화 (122/200)

기공술사 122화

콰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일었다.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말 위에 폭약으로 묶은 민간인들이 계속 밀려왔다.

심지어 황실군이 말꼬리에 불을 붙인 탓에 말들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왔다.

어찌 화살로 막아보려 해도 날뛰는 말들을 저지할 순 없었다.

콰앙! 콰아아아앙!

연이은 폭발에 성벽 한쪽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궁병들만 남고 모두 무너진 성벽으로 집결하라! 적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

담하웅과 장수들이 소리를 치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성벽을 뛰다시피 내려온 담하웅은 제남의 양민들을 보았다.

그들은 열심히 불을 피워 기름을 끓이고 돌들을 주워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담소연이 있었다.

그녀는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담하웅은 자신의 딸을 불렀다.

“아버지!”

담하웅은 다가오는 딸을 살폈다.

얼마나 동분서주 했는지 신발은 다 까져 맨발이나 다름없었고, 발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불을 피우느라 온몸엔 온통 검댕이가 가득했다.

담하웅은 담소연에게 말했다.

“사람들을 담가의 성벽 안으로 대피시켜라. 저들이 곧 몰려올 것이다.”

“알겠어요!”

담소연도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봤기에 빠르게 명을 받아들였다.

담하웅은 딸의 외침에 따라 물러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다시 시선을 성벽으로 던졌다.

콰아앙!

연이은 폭발로 좁게 무너졌던 성벽의 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성벽이 더 무너진다면 적들의 공세를 막기 어려울 것이다.

“힘겹군.”

담하웅이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크게 외쳤다.

“모두 힘을 내거라!”

***

담가 원정을 온 황실군의 진형.

이곳을 지휘하는 우(右)장군은 무너져가는 제남의 성벽을 서늘한 눈빛으로 보았다.

“건방진 것들.”

으득.

이를 가는 우장군의 곁엔 수급 3개가 놓여있었다.

이 수급 때문에 8만에 달하는 황실군의 발이 멈추었었다.

가장 기마술이 좋은 기병들을 보내 빠르게 확인한 결과, 누군가에 의해서 무려 세 개의 보급부대가 와해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생존한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 한 사람이었다는데 우장군 그가 생각하기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절대고수라도 그렇게 하긴 어렵다.’

무너진 3개의 보급부대는 일반적인 병사들이 아니었다.

십 번 이하의 보급부대는 무려 잘 훈련된 황실병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런 보급부대를 이끄는 대장들은 다들 초절정의 경지를 가진 장수들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보급부대 3개를 혼자서 무너뜨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그것도 연달아 3개의 보급부대를 무너뜨렸다니 더더욱 말이 안 되지. 게다가 부상도 안 당하고?’

우장군 그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의 성과를 보일만 한 고수는 황실 내에서도 대장군이나 팽 태감, 그게 아니라면 표기장군이나 거기장군 정도뿐이었다.

물론 무리한다면 본인도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상대는 부상도 없었다지 않나.

우장군은 인상을 썼다.

‘만약 진정 혼자서 그러한 일을 해냈다면 분명 천하에 내로라할 노고수일 터. 대체 누가……?’

천하는 넓고 숨은 고수들이 많다지만 이 정도의 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없을 것이었다.

‘홍건적인가…….’

우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장군과 이하 장군들이 갔으니 이를 막느라 정신없을 터.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이런 고수를 뺀다? 말이 안 된다.’

홍건적과 황실군의 전장은 이곳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마교가…….’

그가 알기에 마교는 무림세력 중 가장 고수가 많은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황실과 긴밀한 협약관계를 맺고 있는 마교가 굳이 황실에 해를 끼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특히나 황실의 전권을 잡고 있는 재상과 마교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다는 것은 황실에서도 유명한 사실.

게다가 북방의 외세를 물리치는데 함께 고생한 탓에 마교는 나름 황실군과 끈끈한 전우애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사파는… 그럴만한 인물이 없지.’

그 어느 때보다 사파의 인물이 없는 시대.

만약 이 정도의 절대고수가 있었다 한들 그동안 꽁꽁 감출 필요도, 그렇다고 황실을 공격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정파인가?’

우장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고루하고 쉽게 잃을 것이 많은 놈들이 감히 황실을 척지진 못하겠지. 게다가 마교와의 전쟁에 온 정신이 팔렸을 것이니.’

우장군은 혀를 찼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누구의 소행인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더 이상 보급부대의 피해는 없는 게 다행이군.’

만약 보급부대의 피해가 3개에서 끝나지 않았고 계속 이어졌다면 그 상황이 매우 심각했을 것이다.

물론 담가에 대한 징벌은 문제도 아니었다.

언제든 총력을 기울이면 성벽을 무너뜨리고 저들의 목을 칠 수 있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담가 이후에 징벌해야 할 홍건적이었다.

보급이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홍건적을 치기까지 이 많은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와해된 3개의 보급부대를 제외하곤 속속들이 다른 보급부대가 도착했기에 보급에 대한 걱정을 일단락할 수 있었다.

우장군은 폭발에 의해 틈이 벌어지는 제남성벽을 봤다.

때마침 거대한 폭발과 함께 성벽이 와르르 무너졌고, 기병이 나란히 달려도 될 정도로 널따란 틈이 생겨났다.

“건방진 것들. 감히 황실에 반하다니. 모조리 죽여주마!”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낮게 읊조린 우장군은 자신의 애마에 올라탔다.

붉은 깃이 인상적인 거대한 전마(戰馬)였는데, 마치 옛 삼국시대의 적토마를 연상시켰다.

우장군의 기마와 함께 그를 보좌하는 부관들이 빠르게 옆으로 붙었다.

이에 우장군이 명했다.

“역적들을 도륙할 시간이다. 기병들을 출격시켜라. 그리고 저 성 안에 있는 것들은 남녀노소, 개새끼들마저 가리지 말고 죽여라. 모두 역적들이다.”

살기 가득한 우장군의 말에 부관들이 갑주를 쾅쾅 치며 명을 받들었다. 그러곤 바삐 말을 몰아 달려갔다.

“출격의 시간이다! 역적들을 도륙하라! 이랴핫!”

기병들은 명이 떨어지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마쳤기에 장수들의 명에 따라 힘차게 말을 몰았다.

“히랴앗!”

“끼요호!”

말과 함께 나고 자라는 몽고 기병들은 기마술의 달인답게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특히나 가벼운 갑주를 입은 경기병들의 속력은 하나의 바람과 같았다.

이들은 최선봉에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키햐앗! 나와라!”

경기병들은 거치적거리는 민간인들을 창대로 후려쳐 날려버렸다.

황실군에 강제징용 돼 인간방패 역할을 했던 이들은 끝까지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슬픈 피를 흘렸다.

“히랴! 죽어라!”

제남성벽을 순식간에 뛰어넘은 경기병들은 가로막는 담가의 병사들을 향해 창을 날렸다.

쒜에엑!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창이 병사들을 꿰뚫었다.

담가의 병사들이 어떻게든 창을 막아보고자 했으나 기세를 탄 기병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크흑!”

“크악!”

황실의 경기병들은 비명소리를 음미하며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그간 자신들이 많이 참았다고 생각했다.

드넓은 초원을 내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자신들이 이것저것 먹물쟁이들의 조심성에 억눌러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재상은 그런 먹물쟁이들을 모두 참하고 전쟁을 윤허했으니 이들이 느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크하하하! 모조리 죽여주마!”

경기병들은 달리던 속도를 줄이지 않고 허리춤의 활을 꺼내 빠르게 쏘았다.

“어억!”

말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면서 엄청난 정확도의 속사를 선보이는 그들 하나하나는 담가 병사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후퇴! 후퇴하라!”

“창병과 방패병은 후미를 지키며 후퇴를 도와라!”

담가의 병사들이 담가주의 명에 따라 일사불란 움직였다.

경기병 중 하나가 멀찍이서 명을 내리는 담가주를 발견하곤 활시위를 걸었다.

그는 곧장 담가주를 향해 장전한 활시위를 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하나의 암기가 활을 쥔 경기병의 손을 꿰뚫었다.

경기병은 놀란 눈으로 암기가 날아온 방향을 봤다.

성내 대로에서 한 여인이 거대한 백호를 타고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쐐기진을 형성한 중기병들이 철그덕 소리를 내며 뒤따르고 있었다.

“적들을 몰아내라!”

담소연과 그녀의 호위 기병대가 등장하자 먼저 진입한 황실의 경기병들이 당황을 했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담소연은 호위대장이 걱정서린 외침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저를 신경 쓰실 때가 아닙니다! 아군이 후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적들을 교란하세요!”

호위대장은 용맹한 담소연의 말을 들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가자!”

황실의 경기병들에 고전을 하던 담하웅과 병사들은 담소연과 호위기병대의 등장으로 한숨을 돌렸다.

공격일변도의 경기병들이 갑작스런 교전에 기동력을 잃자 그들의 위력이 급격히 반감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속도를 중시해 가벼이 입은 탓에 경기병들은 백호의 발톱이나 호위기병대의 창을 막아낼 수 없었다.

“젠장!”

황실 경기병들이 위태하게 물러날 때 황실의 중기병들이 제남성의 성문을 넘어 등장했다.

그러자 전황은 다시 황실군의 우세로 급격히 넘어갔다.

기병대의 수준은 둘째 치고 황실 기병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황실의 기병들은 하류에 도착하는 강물처럼 계속 밀고 들어왔다.

호위대장은 서서히 포위되는 것을 느끼며 상황을 살폈다.

그러곤 빠르게 담소연에게 외쳤다.

“아가씨! 물러나야겠습니다! 더는 위험합니다!”

백호와 함께 종횡무진하며 암기를 날리던 담소연은 호위대장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최대한 적들을 몰아내고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몰입하다 보니 포위되고 있는 줄도 몰랐었다.

“호야 물러나자!”

담소연의 다급한 말에 백호가 크게 앞발을 휘둘렀다.

콰직!

엄청난 힘에 가까이 있던 말의 머리가 철퇴를 맞은 것 마냥 찌그러졌다.

크허엉!

이어 백호는 영기를 뱉어냈다.

이에 다른 말들이 화들짝 놀라며 앞발을 크게 들었다.

아무리 피와 살이 난무하는 전쟁에 특화된 전마일지라도 수백 년을 산 백호의 위엄 앞에서 주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퇴로를 확보한 담소연은 호위대장에게로 물러나며 아버지를 살폈다.

다행히 담가의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후퇴하죠!”

“후퇴한다!”

담소연과 호위대장은 빠르게 병사들을 챙기며 후퇴를 했다.

이들은 이대로 담가의 성벽 안으로 후퇴해 다시금 농성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담소연과 호위기병들이 담가의 성문 가까이 후퇴했을 때.

맹렬한 파공성이 뒤따르는 화살 하나가 호위대장에게 날아들었다.

호위대장은 기함할 기운에 놀라며 황급히 몸을 비틀었다.

“크학!”

“아저씨!”

호위대장이 낙마를 했다.

쒜에엑---!

다시금 강맹한 화살이 날아들었다.

“크억!”

호위기병 중 하나가 화살에 맞아 날아갔다.

화살의 위력이 어찌나 센지 사람이 날아갈 정도였다.

쒜엑! 쒜에엑!

연이어 화살이 날아와 호위기병들을 쓰러뜨렸다.

쒜에에엑---!

이번의 화살은 담소연을 향해왔다.

떨어진 호위대장을 챙기던 담소연은 어찌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까앙!

그때 백호가 다급히 화살을 쳐내며 담소연을 지켰다.

그사이 순식간에 담소연과 호위기병들이 포위됐다.

이어 황실 기병들 사이에서 황금빛 갑주를 입은 우장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그는 자신의 화살을 막은 백호를 감평하듯 시선을 던졌다.

“내 화살을 막다니 대단한 영물이로군. 저 정도 되는 영물이라면 내단이 있으려나.”

우장군은 전장의 중심에서 엄청난 여유를 보였다.

그를 올려다보던 담소연은 두려운 감정을 느꼈다. 엄청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피를 보아야 저런 눈과 기운을 가질 수 있는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위축된 몸을 풀고자 이를 악 다물었다.

“소연아!”

담가의 성벽 위로 올라온 담하웅은 위기에 처한 담소연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활을 늘어뜨리듯 쥐고 전장의 중심에 있는 우장군은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위기감에 담하웅의 수염이 쭈뼛쭈뼛 떨려왔다.

“형님! 위험하오!”

담선웅은 갑자기 담하웅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자 그를 다급히 붙잡았다.

“놔! 놔라! 소연이, 소연이가 위험하다!”

담선웅은 발버둥 치는 담하웅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여기서 가주인 담하웅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담가의 난리에 우장군은 모든 승기를 잡은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장군은 곁에 있는 부관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소연에게 다가갔다.

담가의 여식을 죽여 담가의 사기를 확 꺾어놓을 요량이었다.

부관은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았다.

“발악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해 보거라. 그것 또한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으니.”

담소연을 조롱하는 부관의 말에 우장군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그러자 황실의 기병들도 우장군을 따라 담가를 비웃듯 크게 웃었다.

담소연은 엄청난 위기 상황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의 곁을 지키던 백호도 위기를 느끼곤 한껏 경계 자세를 취했다.

“호랑이와 함께 두 동강 내주마!”

하늘 높이 치켜든 부관의 검에서 검강이 씌워지더니 이내 백호와 담소연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백호는 어떻게든 방어해보고자 발을 들었고, 담소연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번쩍임과 함께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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