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20화
하북 천진, 개방의 총본타에 있던 방덕은 놀란 눈으로 눈앞의 상황을 보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아랫것들이 소란을 피우기에 나온 현장이었다.
총본타 앞 너른 터엔 수백의 일꾼들과 수백의 수레가 있었다.
그리고 육안으로 보더라도 수레엔 엄청난 양의 식량들이 있었다.
“이게 무슨……?”
놀라는 방덕에게로 거지 하나가 종이를 건넸다.
방덕은 의아한 눈으로 부하가 건넨 종이를 받았다.
종이엔 먹이 아닌 피로 글이 쓰여 있었다.
[이것들은 백성의 고혈을 빨아 장만한 것이라 들었소. 그래서 이를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싶으나 그 방법을 몰라 그대에게 보내오.]
방덕의 눈이 좁혀졌다.
거두절미한 내용만 있어 누가 보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방덕은 개방의 거지들에게 둘러싸여 두려움에 떠는 일꾼들에게 다가갔다.
“대체 이 수레는 무엇인가?”
방덕의 질문을 가장 가까이서 받은 이가 바짝 마른 입술을 열었다.
“원정을 떠난 화, 황실군의 군량미이옵니다.”
“……뭐어?!”
방덕은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었다.
그래서 눈앞의 일꾼에게 되묻고 싶었는데,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는 그의 상태에 그러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방덕은 수많은 궁금증들 중에서 가장 필요하다 싶은 것을 다른 이에게 물었다.
“이게 군량미인 건 둘째 치고 대체 누가 보낸 것인가?”
방덕의 질문을 받은 이는 물론이고 뒤로 줄 지은 수백의 일꾼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일제히 부복을 했다.
뼛속 깊이 새겨진 경외감이 그들의 행동을 강제한 것이다.
“왜들 이래?”
방덕과 다른 개방의 거지들이 놀란 눈을 할 때 일꾼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강에선 수룡을, 땅 위에선 화룡을 만드시는 젊은 신선이셨습니다.”
“수룡으로는 거대한 다리와 기병들을 벌하시고.”
“화룡으로는 수백의 병사들을 벌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명해 저희와 이것들을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일꾼들의 말에 방덕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들이야!’
어찌 사람이 수룡과 화룡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방덕은 그리 생각하며 일꾼들의 말을 황당하게 받아들일 때.
한 일꾼이 말을 추가했다.
“그분께선 아름다운 붉은 나비 수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비는 병사들과 닿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방덕의 미간이 좁혀졌다.
‘천 가주?’
폭발하는 붉은 나비에 대해서 익히 들은 적이 있던 방덕이다.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붉은 나비들이 백두신룡의 손짓에 흩날리니 그 적을 참하더라.’
당가의 사건을 처리하며 접한 운남에서의 노래였다.
천애랑이 당가십이를 처치하는 과정을 봤던 운남 사파연합의 일원들에게서 흘러나온 대화가 하나의 노래가 되어 시전을 떠도는 거였다.
‘수룡이나 화룡이라……. 그래, 천 가주라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소리였지만 그 대상을 천애랑이라고 규정하자 그리 허황되지 않게 느껴졌다.
심지어 광산전투에서 천애랑이 수룡을 만들었다는 목격담이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황당하군.’
방덕은 헛기침을 뱉으며 눈앞의 수레들을 봤다.
‘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식량이라면 수확철이 오지 못해 배를 곯는 수천의 백성들을 구휼할 수도 있겠군.’
배불리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닌 최대 다수의 구휼에 목적을 둔다면 만 명이 넘는 백성들도 구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천 가주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방덕은 남쪽을 바라봤다.
***
산동의 제남.
어두움이 피곤함의 어깨에 내려앉은 밤.
성주의 집무실을 개조해 만든 회의실에 담가의 가주 담하웅과 간부들이 열띤 회의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한바탕 전투를 치른 탓에 한껏 지친 몰골들을 하고 있었다.
“금일의 피해가 어찌 되나.”
“삼백여 명 정도 됩니다.”
담하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농성만 할 뿐인데도 말인가?”
“이도 많이 준 것입니다. 첫날엔 무려 3천여의 사상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한 장수의 말에 담하웅이 납득을 하면서도 입맛이 씀을 피할 수 없었다.
담하웅은 이곳에 자리한 사람들을 보았다.
오랜 시간 담가를 함께 지켜온 가솔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천하의 기재들이었다.
특히 무인가문의 가솔들의 경우 천하 백대고수에 비빌만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직접 훈련시킨 담가의 사병들 또한 능히 정예라 부를 만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압박하는 황실군은 이러한 담가 정예를 뛰어넘는 물량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물량만이 문제가 아니야.’
폭약.
그 희소성과 위험성 때문에 황실에서 철저하게 관리한 전투물품이었다.
수십 병사의 위력을 단 한 줌의 폭약으로도 능히 이루니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특히 저들은 이러한 폭약을 성벽에다 사용하고 있기에 골치가 아팠다.
“외성벽이 얼마나 버틸 것 같나.”
“솔직히 오늘내일합니다. 저들이 작정하고 다량의 폭약을 사용한다면 당장이라도 위험합니다.”
담하웅은 침음을 흘렸다.
나름 이번의 농성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었다.
담가 장원에 성벽을 구축한 것은 물론, 제남의 전권을 뺏어 제남성을 방비했다.
그리고 공가의 격문을 통해 산동성의 여론을 등에 업었다.
그 결과로 뜻이 있는 장정들이 병력에 충당됐고, 보급품 및 식사제공에 필요한 인력을 민가의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반대로 직접적인 지원을 주지 못하는 산동성의 양민들, 특히나 제남과 가까운 곳은 잠시 터전을 비우게 하고 멀리 피난을 보냈다.
덕분에 제남성 밖 전 방위의 민가 건물들을 허물어 말들이 달릴 길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전 준비들은 황실군과의 전투시작과 함께 꽤나 효과를 거두었다.
기병의 기동력을 살리지 못하게 된 황실군은 곧장 보병들로 이루어진 공성전에 돌입했고, 담가는 제남성문을 꼭 잠근 채 농성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소정의 성과를 통해 담가는 농성의 성공을 점쳤다.
성내 식량은 부족함이 없고, 병사들의 사기는 높으니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황실군이 폭약을 사용하는 순간 이러한 성과들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지부진해지는 공선전에 성벽을 무너뜨리고자 황실군이 폭약을 사용한 지는 금일로 삼 일째.
불과 삼일일 뿐이지만 폭약의 위력은 대단했다.
두껍게 보강된 성벽이 제구실을 못 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이대로라면 담가의 성벽 안으로 후퇴해야 할지도.’
담하웅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담가로 물러난다는 의미는 담가를 제외한 제남 안 모든 것을 방치한다는 것과 상통했다.
이는 분명 담가에서 담지 못한 무고한 피가 제남 어딘가에서 흐를 것을 예시했다.
“가주님. 그래도 적들의 공세가 줄어들고 있으니 농성을 이어감과 함께 약해진 성벽을 보수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저들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나마 기병들을 막기 좋은 성벽에서의 방어를 유지해야 합니다.”
장수들이 저마다의 식견을 쏟아냈다.
말투는 달랐지만 하나같이 농성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리 해야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적들의 공세가 약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것이 공론이었다.
이에 담하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들의 공세가 주춤한 이유를 아는가?”
수만의 황실군이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하지 않고 소극적인 전투를 치루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그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기척에 잠시 회의가 멈추었다.
전령이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주님. 급보입니다.”
전령은 상자 하나와 서신을 내밀었다.
장수 하나가 담하웅을 보호하듯 상자를 대신 받으며 담하웅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에 담하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수가 상자를 열었다.
“허억!”
장내의 인물들이 상자 안의 내용물에 놀란 숨을 들이켰다.
“……?!”
담하웅 또한 놀란 눈으로 상자 안 내용물을 봤다.
거기엔 목이 잘려 염장된 하나의 수급이 있었다.
수급 옆에는 ‘교위’라고 직급을 나타내는 명패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놀라운 상황에 담하웅은 서둘러 서신을 펼쳐 봤다.
서신엔 섬뜩하리만치 충분한 피로 글이 쓰여 있었다.
[그간 담가에 그 어떤 보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오.]
“천 가주?”
필체와 글의 분위기를 보고선 담하웅은 서신의 주인을 바로 짐작했다.
그간 의각원과 주고받았던 서신에서의 익숙한 필체였다.
[이 자는 현재 원정을 떠난 황실군의 보급부대, 6보급부대의 대장이었소.]
서신을 읽는 담하웅의 눈이 점점 커졌다.
[6보급부대는 와해시켰소.]
매우 대단하고 놀라운 사실이 담담하게 적혀 있었다.
“허어…….”
믿기 어려운 정보에 담하웅은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진정 사실인 건가.”
담하웅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저 서신을 읽어 내렸다.
[수급으로 보낸 자는 현재 담가를 공격하러 간 우(右)장군과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선물로 수급을 보내오.]
“허!”
담하웅은 그저 놀라움의 감탄사밖에 뱉을 수 없었다.
[이 수급으로 적들을 흥분시키든 공격을 지연시키든 그대가 적당히 이용하시오.]
담하웅은 천애랑이 앞에 있지 않음에도 대답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천애랑이 보내준 눈앞의 수급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있어서 보급부대의 동선은 엄청난 극비사항이다.
이는 그 중요성 때문인데, 역사를 돌이켜 봐도 원활치 않은 보급에 전쟁 자체가 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걸 적들에게 주면 분명 비밀유출에 대한 걱정이 앞설 터.’
보급부대의 와해, 거기다 이를 증명하는 6보급부대 대장의 수급.
수급을 받아 든 황실군은 수급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것이고, 적진에 우(右)장군이 있다 하니 이는 쉽게 확인될 것이었다.
그리된다면 보급부대의 동선에 대한 정보유출과 그 전력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함이 논의될 것이다.
병력이 많다는 것은 전력상 크나큰 장점이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하루하루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군량미가 엄청나다는 것.
게다가 상당수가 기병인 지금, 말들을 먹이고 건강을 유지할 여물 등의 수급도 시급할 것이었다.
‘잘만 한다면 많은 시간을 끌 수 있겠어.’
담하웅은 천애랑의 선물에 오늘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서신을 장내의 인물들에게 공유하도록 넘겼다.
서신을 읽은 이들이 모두 놀란 눈을 하고 담하웅에게 시선을 모았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담하웅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며 열띤 회의를 이어갔다.
모두 불리해지는 지금의 전황을 개선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한참 회의를 하던 담하웅은 문득 생각했다.
‘대체 천 가주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천애랑은 하간과 무강에서 7보급부대와 8보급부대를 연달아 와해시키곤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쉴 틈 없이 이어진 전투에 온몸이 기진맥진했다.
적당한 객잔의 방에 틀어박혀 꼬박 이틀을 운기조식하고서야 간신히 소모됐던 기운 상당량을 회복할 수 있었다.
운기조식을 마무리한 천애랑은 실소를 뱉었다.
‘지금처럼 지쳤던 모습을 애들이 본다면 한껏 놀리겠군.’
천애랑은 의각원의 이들을 떠올렸다.
‘아니지. 오히려 지친 지금이 기회라며 공격을 해올지도 모르겠군.’
그간 어찌나 독하게 굴렸는지 의각원의 훈련생들은 기회만 보였다 하면 천애랑을 공격했다.
천애랑이 잠을 잘 때나, 식사를 할 때나, 심지어 변소에 갈 때에도 이들은 암살자가 된 듯 공격을 해왔다.
가끔은 너무 굴려서 훈련생들이 미쳐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됐지만, 이렇게 만든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으니 천애랑은 유구무언이었다.
그리 오래 떨어져 있진 않았지만 그들을 떠올리니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가족이 되었음인가.’
흡족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켜던 천애랑은 문뜩 불길한 공기를 느꼈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한 기분에 천애랑이 객잔 방문을 열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2층에 위치한 객잔 방에서 1층의 상황이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천애랑은 불길하고 섬뜩한 기분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팽풍궐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끈적한 눈빛만큼이나 부담스럽게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요호호.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