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19화
“요, 용을 어떻게 막아….”
거대한 화룡의 등장에 병사들이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움이란 감정의 숨을 뱉어냈다.
이에 백부장은 물론 십부장들이 다급하게 바락 소릴 질렀다.
“막아!”
“모두 밀집해 막아!”
“정신 차려 이것들아!”
어떻게든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하는 발악이었지만 십부장이나 백부장 모두 난생 처음 보는 화룡에 떨리는 시선을 던졌다.
쿠아아아아---!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날아오른 화룡은 병사들을 지르밟듯 거대한 몸체를 들이밀었다.
“으으…….”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에 병사들은 방패를 꽉 붙잡으면서도 두려운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내 방패와 화룡이 충돌했다.
꽈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선두열의 방패병들이 날아가 쓰러졌다.
화룡과 충돌한 방패들은 엄청난 충돌에 한껏 찌그러져 기이한 모양새를 보였다.
화룡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방패 뒤로 밀집한 병사들 사이로 돌진했다.
이때부터 아비규환이 시작됐다.
더는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 아닌 태곳적의 전쟁을 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화룡은 병사들에게 공포를 선물하며 종횡무진 지옥 같은 숨결을 뱉어냈다.
“크아악!”
“으악!”
“뜨거워!”
“물! 강에 뛰어들어 몸에 붙은 불을 꺼!”
혼란의 비명과 대화들이 전장을 채웠다.
“이대론 안 된다.”
물려놓은 일꾼들과 함께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던 백부장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이대로 도망쳐 살아난다 하더라도 황실의 중요한 명을 수행하지 못했기에 무조건 죽은 목숨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순 없는 노릇.’
‘교위님의 신병이라도 확보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작은 방법이라도 생길 것이다.’
이내 그들은 화룡이 활개 치는 전장의 중심을 우회해 멀찍이서 쓰러진 교위에게로 향했다.
교위가 지금은 비록 징계를 받은 상태라곤 하지만 장군부 우(右)장군과 각별한 사이였다.
어떻게든 교위를 살려야 우장군을 통해 오늘의 책임을 면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백부장들의 공론이었다.
한편, 화룡을 조종하는 천애랑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중이었다.
천선의 도움을 받았다곤 하나 화룡을 통제하는 일은 대자연을 지배하는 수준의 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대자연엔 화, 수, 목, 금, 토의 오행(五行)이 있고, 오행 간엔 상극이 있었다.
천애랑과 병사들이 전투를 치루는 이곳은 강이 있기에 당연 수(水)의 기운이 제일 강한 곳.
수(水)와 상극인 화(火)의 기운이 활개를 치기엔 많은 제약이 있는 환경이었다.
천애랑은 이를 신병이기인 천선과 그간의 훈련에 따른 성취로 극복해봤지만 서서히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이룬 성취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의각원을 불태울 마음이 없기에 그간은 이런 대규모의 기공술을 펼쳐본 적이 없었다.
그저 심상으로 다뤄봤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들.’
천애랑은 우회하는 백부장들을 보았다.
‘저 자에게 가고자 함인가.’
천애랑은 힐끗 죽은 듯 쓰러진 교위를 보았다.
그는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교위를 살려둔 것이었는데, 여기에 백부장들이 추가된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지겠다 싶었다.
“흐으읍!”
천애랑은 화룡을 통제하느라 휘적거리던 두 팔을 크게 펼쳤다.
그러자 종횡무진 병사들을 불태우던 화룡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 몸집을 부풀렸다.
“어, 어어어?”
화룡의 변화에 백부장들이 주춤거렸다.
그러곤 몰래 우회하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이어지는 광경을 쳐다봤다.
순식간에 배를 불린 화룡을 보며 천애랑의 홍염이 번들거렸다.
이내 벌어졌던 그의 팔이 손뼉을 치듯 힘차게 전방으로 모아졌다.
콰과아아아앙---!
세상의 종말이라도 오는 듯 엄청난 폭발의 굉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태풍처럼 병사들을 덮쳤다.
폭발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병사들은 처참한 몰골로 즉사했다.
폭발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던 병사들은 목을 쥐며 고통스런 호흡을 뱉어냈다.
“커억!”
“괴, 괴로워!”
“으아아아악!”
내공을 다룰 수 있는 병사들의 경우엔 어찌저찌 열기를 막아냈다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은 폐부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쓰러져갔다.
천애랑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독하군.’
지금의 것은 전 당가주 당천금의 최후를 보며 떠올린 무공이었다.
화룡을 유지하기 위해 높였던 화기의 밀도를 반대로 가볍게 하여 넓은 범위에 영향을 준 방식이었다.
생각만 했을 뿐 이 또한 화룡처럼 처음 써보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내기 소모와 지독한 살상력에 절로 인상이 쓰였다.
“후우.”
천애랑은 복잡한 심정을 가벼운 호흡을 통해 털어냈다.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천애랑은 곧장 활짝 펼친 천선에 내공을 담아 강하게 날려 보냈다.
쒸리리리릭!
수십 마리의 매가 한꺼번에 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천선이 백부장들의 다리를 지나갔다.
“으아악!”
세 백부장들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우당탕 쓰러졌다.
백부장들은 천애랑을 극히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떨어진 거리가 백 보를 훌쩍 넘음인데 이러한 공격이라니.
마치 자신들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떠한 발악을 하든 절대적으로 통할 리 없다는 절망감이 백부장들의 눈에서 의지를 뺏어갔다.
천애랑은 전투불능이 된 백부장들을 확인하곤 다시금 병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탱. 챙그랑.
‘끝났나.’
천애랑의 시선을 받은 병사들이 들고 있던 창, 검, 방패 등 병장기를 떨구곤 무릎을 꿇었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아직 생존한 병사들이 100여 명은 남아있었지만 이미 전의상실이었다.
이들은 절대고수 한 사람 앞에서 어떠한 반항심도 드러내지 못했다.
그저 용을 부리는 절대자의 자비만을 바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멀찍이서 그 누구보다 지금의 상황들을 지켜봤던 일꾼들도 천애랑의 시선이 닿자 즉시 바닥에 부복을 했다.
모두 자세를 낮춘 덕에 시야를 가리는 건 그 무엇도 없었다.
천애랑은 피로감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참한 전투의 흔적들이 아직도 마음을 격앙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차분해진 강물소리가 달떴던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켜주었다.
천애랑은 빠르게 호흡을 정리했다.
대자연과 소통함에 탈진된 내공이 차올랐지만 그 회복의 수준은 조금이었다.
제대로 된 회복을 위해선 운기조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천애랑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병사들을 보고는 말했다.
“앞에 있는 너희들.”
천애랑의 지목을 받은 병사들이 놀람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병사들을 포박해. 포박을 받는 이들도 협조하라. 그렇게 한다면 살려준다. 만약 그러지 못하겠다면 모두 죽이는 수밖에.”
“며, 명을 따르겠습니다!”
살기등등한 천애랑의 말에 지시를 받은 병사들은 황명이라도 받듯 극히 공손하게 행동했다.
모든 병사들은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다.
이대로 죽인다고 해도 저항할 수가 없는데, 협조하면 살려준다 하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두려움에 잠식된 몇몇 병사들은 어서 자신을 묶으라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병사들의 처분을 일단락한 천애랑은 백부장들에게로 향했다.
“으으으.”
백부장들은 이빨까지 부딪히며 공포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눈앞의 괴물 앞에선 절정이라는 자신들의 경지는 그저 잘린 다리의 지혈만 가능하게 할 뿐 큰 의미가 없었다.
천애랑은 그들 가까이 다가가 차갑게 말했다.
“정보를 구한다. 협조하도록.”
“어, 어떤……?”
협조하는 병사들을 살려준다 함을 봤기에 백부장들은 살기 위해 기꺼이 협조할 생각이었다.
다만 천애랑의 질문이 막연하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너희 중 가장 쓸 만한 정보를 말한 이는 살려줄지 모른다.”
“……?!”
천애랑의 말에 백부장들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영원 같은 찰나의 고민이 지나고 한 백부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6보급부대입니다.”
그러자 다른 백부장들도 경쟁을 하듯 다급히 말을 했다.
“이번 원정에 계획된 보급부대는 총 20부대입니다.”
“전쟁이 길어진다면 아마 현지에서 조달할 계획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애랑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흐음.”
백부장들은 자신들의 정보가 천애랑의 마음에 들고 있음을 느끼곤 더욱 열심히 입을 놀렸다.
“저희를 통솔하는 교위님과 기병들은 원래 북방의 이민족들을 상대하던 장군부 소속이었습니다.”
“교위님은 초절정의 경지로 기마전술과 창술의 달인으로 유명했습니다.”
천애랑은 아직까지도 죽은 듯 기절해있는 교위를 보았다.
‘꽤 강하다 싶더니 이유가 있었군.’
교위의 강맹한 공격이 떠올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공격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천애랑이 다시 백부장들을 보았다.
그러자 백부장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정보를 쏟아냈다.
시종일관 침묵하는 천애랑에게 애가 탄 그들은 하다 하다 자신들의 인생이야기까지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성함까지 말하는 이도 있었다.
더는 얻을 정보가 없다 판단한 천애랑은 백부장의 곁에 놓인 검을 뽑아 들었다.
이에 백부장들이 놀란 눈을 했다.
“저,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제가 길을 잘 압니다!”
“아닙니다! 저는 잡지식이 많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모셔야 하는 노모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오만가지 이유를 드는 백부장들을 보며 천애랑은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촤악!
백부장 하나가 목에 피 분수를 뿜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이에 천애랑이 피를 뒤집어썼지만 그는 그저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다른 백부장에게 다가갔다.
“이, 이이익!”
다음 죽음이 자신일 것이라 직감한 백부장은 인상을 쓰며 천애랑에게 몸을 날렸다.
동귀어진을 각오한 공격이었다.
촤악! 촤아악!
그러나 천애랑의 휘두른 검격에 백부장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죽음을 맞이했다.
“사, 살았다…….”
유일하게 남은 백부장은 자신이 살아남았음에 안도를 했다.
하지만 천애랑은 그 백부장에게도 검을 휘둘렀다.
“커억!”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백부장의 뜬 눈이 천애랑을 노려봤지만 그저 힘없이 쓰러질 뿐이었다.
‘굳이 살려둬 후환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이어서 천애랑은 교위에게 향했다.
감전돼 그을린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한참 교위를 내려다보던 천애랑은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교위의 머리채를 들어올렸다.
천애랑은 그대로 교위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히익!”
멀찍이서 지켜보던 병사들이 놀란 숨을 들이켰다.
교위의 머리만 가지고 돌아오는 천애랑의 모습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퉁!
천애랑이 포박을 마친 병사들 앞으로 교위의 머리를 던졌다.
“선물로 보낼 것이다. 상자에 담도록.”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허겁지겁 수레로 달려가 적당한 상자와 소금을 챙겨왔다.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뒤로하고 천애랑은 수레 근처에 부복하고 있는 일꾼들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그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