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118화 (118/200)

기공술사 118화

십여 명의 기병들이 쓰러졌으나 아직 그의 4배나 달하는 기병이 남아 있었다.

혼란을 야기하던 물기둥도 서서히 그 기운이 줄어들고 있었다.

천애랑은 슬쩍 물기둥을 살폈다.

담소연에게 선물 받은 천선으로 만든 물기둥.

그 성능을 훈련을 통해 능히 확인을 해봤지만 이 정도로 기에 대한 감응력이 높을 줄은 몰랐다.

“이 놈! 죽어라!”

천애랑은 흉신악살처럼 열을 내며 다가오는 상대를 보았다.

‘이곳의 대장이겠지.’

저들이 행동하는 것을 물속에 숨어 지켜본 그다.

극히 상전처럼 모시는 다른 이들의 태도가 아니더라도 저자의 기운이 가장 강대했다.

우우웅---

천애랑은 단전에서 내공을 크게 뽑아내 강한 진각을 밟았다.

일제히 달려들던 병사들이 의아한 눈을 했다.

천애랑에게서 느껴졌던 강대한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

그 순간 교위는 자신의 발밑에서 느껴지는 강맹한 기운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콰드득! 콰지직! 콰지지지직!

두꺼운 나무를 켜켜이 층을 세워 만든 두꺼운 다리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천애랑의 발끝에서 퍼진 엄청난 기운의 결과는 다리가 갈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교위는 크게 소리쳤다.

“모두 피해!”

콰아아앙!

폭발하며 비산하는 날카로운 나뭇조각들이 병사들을 향해 강맹하게 쏘아졌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갑주로도 방어할 수 없었다.

푹! 푸욱! 푹!

“크읍!”

자비 없이 날아든 날카로운 나뭇조각에 병사들이 우후죽순 쓰러졌다.

더러는 무너진 다리 아래 강으로 첨벙첨벙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모든 기병들이 전투불능 됐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천애랑을 마주할 뿐이었다.

“크아아아!”

교위는 자신의 어깨에 꽂힌 나뭇조각을 검으로 잘라내며 고함을 내질렀다.

분노가 치밀었다.

북방의 전장에서 외적들을 상대하며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던 자신이었다.

그 잔인한 손속이 아군에게도 향한 적이 있어 징계라는 수모를 당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욱 수치스러운 상황이었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강하다고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죽인다! 죽여 버릴 것이야!”

교위가 핏발 선 눈빛으로 내공을 한없이 끌어올렸다.

하단전에서 광폭하게 뽑아낸 내공 탓에 피가 역류했지만 교위는 이를 억누르며 더욱 내공을 끌어모았다.

교위의 몸에 호신강기가 둘러지고 검엔 누런 강기가 맺혔다.

천애랑은 그런 교위를 노려보며 길게 호흡을 정돈했다.

텅텅 빈 하단전으로 수기(水氣)가 들이차며 빠르게 내공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진가.’

천애랑은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던 물기둥의 기운이 다 한 것을 느꼈다.

생각과 동시에 하나의 결계 역할을 했던 물기둥이 더는 역행하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내렸다.

촤아아아악---!

상당한 양의 물이 쏟아지자 천애랑과 교위가 흠뻑 젖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둘은 그저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교위의 검이 군부 특유의 간결한 쾌를 담아 천애랑에게 쏘아졌다.

강기까지 서린 검이기에 파공성이 함께 뒤따랐다.

물기둥이 사라지고 나서야 다리 위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된 병사들은 모두 놀란 눈을 했다.

반파된 다리는 둘째치고 50여의 기병들이 물에 떠내려가거나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위만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와 겨루고 있을 뿐이었다.

천애랑은 교위의 검강을 수강으로 마주했다.

강기와 강기.

둘 모두 강기를 펼쳤고 비슷한 내공의 겨룸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질적 차이가 있었다.

교위의 강기가 천 번을 재련한 검이라면, 천애랑의 수강은 만 번을 재련한 검.

그 결과는 수십 합 만에 드러났다.

까앙!

거친 반탄력과 함께 교위의 품이 벌어졌다.

이에 천애랑은 교위의 품을 파고들며 발경을 날렸다.

교위는 필사적으로 무릎을 들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빠각!

무릎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으나 교위는 피가 나도록 이를 악 다물고는 검을 휘둘렀다.

쾌에 이어 변이 담긴 검식이 천애랑을 압박했다.

이를 지켜보는 병사들의 눈엔 번쩍거리는 검의 잔상만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천애랑은 모든 것이 보이기라도 한 듯 간단히 움직이며 교위의 검을 피해냈다.

“크윽!”

내공을 과하게 쏟아낸 교위의 힘이 급속도로 빠지자 천애랑은 이화접목의 수로 교위를 제압했다.

“그냥 죽여라!”

교위가 발악을 했다.

천애랑은 그의 심장 부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곤 적당량의 뇌기(雷氣)를 쏘아 보냈다.

파지지직!

“끄어어억!”

감전된 교위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을 했다.

천애랑은 인상을 썼다.

‘아파라.’

본인도 물에 젖은 걸 무시하고 교위에게 쏘아낸 뇌기가 날뛰며 역류했다.

그 덕에 단전은 물론 근육이 잠시 경직됐다 풀렸다.

천애랑은 얼얼한 손을 털며 뒤를 돌아봤다.

경악에 찬 표정을 한 수백의 병사들과 인부들이 보였다.

“후우우우.”

천애랑은 깊게 숨을 내뱉었다.

“쓰으읍!”

이내 깊게 숨을 들이켰다.

폐부에 시원한 공기가 차오르듯 대자연의 기가 천애랑의 온몸으로 내달렸다.

“후우우우.”

천애랑은 수백의 병사들 앞에서 태연하게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러한 천애랑을 지켜보던 3명의 백부장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저놈은 지친 듯하다.’

‘교위님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다리 위에 있지 않나. 이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싸우기엔 불리한 지형이다.’

지형이 불리하다는 백부장들의 고민이 무색하게 적당히 회복을 마친 천애랑은 병사들에게로 걸어왔다.

툭.

천애랑은 병사들과 멀찍한 곳에 기절한 교위를 던졌다.

천애랑의 행동에 백부장들의 눈썹이 실룩였다.

‘합공하자.’

순식간에 의견이 일치한 백부장들은 검을 뽑아들고 외쳤다.

“감히 황군의 행사를 막고 공격을 가한 역도다! 저자를 처단하라!”

“저자를 처단하는 이에겐 황금을 내리리라!”

“놈은 지쳤다! 저자의 목을 치는 이에겐 진급을 보장하겠다!”

적은 단 한 사람.

기현상을 보인 지고한 경지라지만 지쳤을 것이라는 말.

그리고 그 무엇보다 돈과 권력을 보장한다는 백부장의 외침에 병사들의 눈이 희번득해졌다.

각 백부장 아래의 십부장들도 눈에 불을 켜고 수하들을 재촉했다.

“죽여라!”

“우리 분대가 공로를 차지해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아------!

병사들은 창을 꼬나들고 천애랑을 향해 내달렸다.

천애랑은 해일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사들을 둘러봤다.

정면에서 마주하는 수백 병사들의 기세는 일대일로 마주하는 전투와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피식.

천애랑은 실소를 뱉었다.

‘나도 참.’

그는 강한 적을 만날수록, 위기를 마주할수록 더욱 흥분되는 이 기분을 규정할 수가 없었다.

모든 무림인이 이런 것인가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의 감정이었다.

천애랑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가까스로 회복한 내공도 3할이 채 되지 않았다.

천애랑은 허리춤의 천선을 꺼내 들었다.

‘피곤한데 오래 끌 필욘 없겠지.’

천선이 천애랑의 기운과 감응하며 웅웅 울어댔다.

‘무기의 소리가 들린다며 신부합일(身斧合一)을 외치던 그 변태영감이 떠오르는군.’

팽풍궐과의 대화를 떠올린 천애랑은 천선을 펼쳤다.

촤악!

완벽한 균형에서 오는 경쾌한 부채 펴짐의 소리가 났다.

천애랑에게 달리던 병사들이 알 수 없는 느낌에 움찔거렸다.

이에 뒤에서 지켜보던 백부장이 미간을 좁혔다.

‘음공인가?’

단순하게 부채를 폈음인데 그 영향을 받는 기분이었다.

속이 미묘하게 울렁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작게나마 거리감이 틀어지는 느낌도 받았다.

천애랑은 천선을 펄럭이며 화기(火氣)를 끌어 모았다.

인근엔 물의 기운이 넘쳤지만 살생의 목적으로 다수를 상대하는 데엔 화기만 한 것이 없었다.

펄럭.

천애랑은 펼친 천선을 적당한 박자에 맞춰서 펄럭였다.

신병이기 덕분에 수기가 가득한 상황임에도 화기가 빠르게 모이기 시작했다.

부채를 펄럭일 때마다 화기가 증폭되고, 증폭된 화기가 다시 또 증폭되며 작은 불씨가 점점 덩치를 불려갔다.

후우우욱!

순식간에 모여드는 화기에 천애랑의 젖었던 옷이 급속도로 말라갔다.

천애랑의 숨결이 곧 불이 될 정도로 화기가 가득해졌다.

그 사이 병사들이 지척에 다가왔다.

“황금은 내 거다!”

천애랑은 불꽃같은 홍염의 안광을 번쩍이며 부채를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화접탄(火蝶彈).

천선에서 수백의 불꽃 나비가 날아올랐다.

대난무(大亂舞).

천애랑이 천선을 재차 반대 횡으로 펼쳐 휘둘렀다.

또다시 수백의 불꽃 나비가 휘날렸다.

“이게 뭔……?”

병사 하나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나비에 의아함 가득 창을 찔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콰앙!

콰과과광!

콰------앙!

수백 나비 떼의 춤이 병사들을 덮치며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무, 무슨?!”

뒤에서 지휘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백부장들은 기함할 위력의 폭발에 입을 크게 벌렸다.

그들은 폭약이 아님에도 이러한 폭발을 내는 무공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쟁에 쓰이는 폭탄보다 그 위력이 더해 보였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답다.’

자신의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백부장들의 눈에 들이차는 붉은 나비의 춤은 의외의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끄아아악!”

수하들의 비명소리에 백부장들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명령을 내렸다.

“방패병을 선두로! 부상 입은 창병은 물러나라!”

혼란 속에서도 병사들은 백부장의 명에 따라 일사불란 움직였다.

아무리 후방에서 보급을 책임진다고 하지만 황실 직속의 군대다.

그 훈련량과 보급품, 그리고 개개 병사들의 경지는 같은 구조의 타 부대들보다 상위에 있었다.

파바방! 파방!

순식간에 교차된 병사들의 배치로 천애랑의 화접탄이 방패병들의 방패에 부딪혀 산화했다.

방패가 화접탄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자 방패병들은 밀집해 하나의 방벽을 만들었다.

방패의 틈 사이로는 기다란 창이 뻗어 나와 천애랑을 위협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흐음?’

천애랑은 이렇게 갑주와 방패를 갖춘 군인들과의 전투가 낯설었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과의 전투와는 완전히 다르군.’

무림인들은 철저하게 개인의 강함을 추구한다면, 군부는 철저하게 집단의 강함을 찾는 곳.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거북이가 된 듯 느릿하게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며 천애랑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치고 빠지는 기동력을 발휘해 저 단단한 방벽을 와해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어디 한 번 이것도 막나 보자.’

천애랑은 화기를 한 점에 집중해 모았다.

화르륵! 화르르륵!

강한 화기가 밀집하며 서로를 밀어내고 뭉치고를 반복했다.

방패병들은 천애랑의 하는 양을 방패 틈새로 지켜보며 침을 삼켰다.

폭발하는 나비들을 방패로 막았다곤 하지만 그 반탄력이 어마어마해서 지금도 방패를 쥔 손과 팔이 저릿저릿한 상태였다.

저 괴물 같은 이가 어떤 수를 선보일지는 모르나 만만치는 않겠다는 것은 방패를 든 병사들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그리고 방패병들은 이내 눈앞에 형성되는 무언가에 심장이 바짝 쪼그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모두의 감정을 대변하듯 한 방패병이 다급한 소리를 뱉었다.

“무, 무슨 사람이 용을 만들어?!”

천애랑은 화기를 가득 밀집시킨 화룡(火龍)을 방패병들을 향해서 쏘아 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