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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17화 (117/200)

기공술사 117화

털썩.

횃불과 함께 힘을 잃은 호흡이 바닥에 떨어졌다.

천애랑은 앞서 처리했던 것처럼 시신 두 구를 조용히 숲속으로 끌고 갔다.

“으음?”

동쪽 순찰을 관리하던 오(五) 십부장의 시선이 횃불이 꺼진 곳으로 향했다.

기름을 먹여 불을 붙인 횃불은 바람이 좀 분다 해서 쉽게 꺼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날씨.

아무리 봐도 매우 수상쩍었다.

오 십부장은 사라진 횃불의 위치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너희랑 너희, 가서 확인해봐.”

그는 순찰 2개조를 보냈다.

그리고 일각이 채 지나지 않고 순찰 2개조의 횃불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 어떤 소란도 없었다.

횃불이 휙 하고 꺼진 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발생했다면 소리를 지르든 횃불을 흔들든 순찰조에게서 무언가의 조치가 있었어야 했다.

오 십부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혹여 진짜로 귀신이라는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들었다.

“설마.”

그는 머리를 흔들며 냉정하게 생각했다.

귀신이라는 가능성과 탈영이라는 가능성을 제외하면, 남은 건 적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뿐이었다.

오 십부장은 품에서 피리를 꺼내곤 잠시 고민을 했다.

‘분명 싸가지 없는 놈들이 비아냥댈 텐데.’

다른 십부장의 놀림을 걱정하던 오 십부장은 작게 혀를 차고선 피리를 입에 대었다.

삐익---

위기의심상황을 의미하는 피리 음이 주위로 퍼져갔다.

이에 인접한 곳을 순찰하던 부하들과 삼(三) 십부장의 분대가 다가왔다.

오 십부장은 삼 십부장을 보고선 한숨을 쉬었다. 제일 사이가 안 좋은 녀석이었다.

“부하들이 당한 것 같다고? 네놈이 싫어서 탈영한 건 아니고?”

아니나 다를까 오 십부장의 말을 들은 삼 십부장이 비아냥거렸다.

오 십부장이 강하게 인상을 썼다.

그러자 삼 십부장이 과장되게 손을 들며 항복을 표시를 했다.

“아, 알았다고. 당연히 도와야지. 크큭. 애들아 겁쟁이들을 찾으러 가자!”

“킥킥. 알겠습니다.”

삼 십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한껏 비웃으며 앞장서 걸었다.

오 십부장은 자신의 남은 부하들을 데리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그는 저 재수 없는 것들에게 비아냥을 듣더라도 이러는 편이 목숨을 지키는 데 안전하다 여겼다.

그렇게 수색하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한 오 십부장은 돌연 앞선 분대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뭐, 뭐야?’

횃불이 꺼짐에 따라 순식간에 어둠이 가까워졌다.

오 십부장은 섬뜩한 예감 속에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삼 십부장…!”

오 십부장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바람에 휘날렸다.

“십부장님….”

오 십부장은 자신을 부르는 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하들의 시선 끝엔 죽은 듯 쓰러진 삼 분대가 있었다.

그때.

털썩하고 오 십부장의 부하들마저 쓰러졌다.

순식간이었다.

병장기를 휘두르고 말고 할 겨를도 없었다.

횃불의 그림자 사이로 무언가 나타났다 느껴진 순간 버들나무 물 적시듯 남은 부하들마저 쓰러질 뿐이었다.

‘이, 이대로면 나도 죽는다!’

죽음의 공포에 빠진 오 십부장은 다급히 피리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나타난 젊은 청년의 손이 자신의 손에서 피리를 빼앗아 으그러뜨렸기 때문이다.

오 십부장은 자신의 횃불에 어스러지듯 보이는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아닐까 싶은 잘생긴 외모에 깊고 차가운 눈빛이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것이 오 십부장이 세상에서 보는 마지막 빛이었다.

으득.

강렬한 힘에 의해 머리가 돌아간 오(五)십부장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천애랑은 적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적들에게 어쭙잖은 동정은 필요 없다.’

천애랑의 행동지침은 한 가지.

‘내 사람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처음 세상에 출도 할 때엔 ‘내 사람’은 가족이었고, 복수의 대상은 오직 마교뿐이었다.

그러나 담가 남매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여러 인연들을 쌓으면서 ‘내 사람’이라는 범주가 커져만 간 그였다.

그만큼 그가 지키고 상대해야 할 대상의 범위도, 그 규모도 커져만 갔다.

이에 송소걸은 모두를 지킬 수는 없는 거라며 걱정을 했고, 이는 천애랑 자신 또한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만 있다면 모두를 위하고 싶다.’

달빛에 흔들리는 천애랑의 눈빛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내 천애랑은 멀찍이서 일렁이는 적들을 살폈다.

내공으로 강화된 천애랑의 시야가 어두움을 뚫고 상세한 파악을 가능하게 했다.

‘남은 적들의 숫자는 약 30여 명.’

꽤 많은 숫자가 아직 남았기에 천애랑은 작은 고민을 했다.

조금 전까지 천애랑이 순찰조들을 유인해 죽인 것은 소란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나 작은 소란이 지척의 도시에 전달되고, 그로 인해 보급부대를 처리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됐다.

‘다리를 지키는 자들과… 그 근처를 순찰하는 이들….’

그가 보기에 경계조는 다리와 그 근처, 그리고 발치에 쓰러진 이들처럼 외곽 순찰을 도는 이들로 구성된 것 같았다.

산이 있던 동쪽 순찰조를 모두 쓰러뜨렸는데 더 이상의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더는 유인할 무언가가 없어보였다.

‘직접 가야겠네.’

그렇기에 천애랑은 적들이 모인 다리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상황을 가늠했다.

‘저들이 지키는 다리는 총 3개.’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 중 가장 넓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들이었다.

‘다리를 지키는 병사 12명.’

다리의 양측을 2명씩 지키고 있었다.

‘인근을 순찰하는 20여 명.’

천애랑의 머릿속으로 그가 행동할 동선이 그려졌다.

천애랑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행동을 개시했다.

***

이른 아침.

보급부대의 등장에 청현의 사람들은 바짝 목을 움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의 수레를 이끄는 500여 명의 일꾼들, 이를 지키는 약 50여의 기마병과 3백여 명의 창병들이 날 선 기세를 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어쭙잖게 인사를 하겠다고 나섰던 토호가 오줌을 지리고 도망치듯 물러났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더더욱 보급부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릴 뿐이었다.

종래엔 별다른 통제 없이도 청현 사람들 모두가 성벽 안으로 쥐죽은 듯 물러났다.

보급부대의 선봉에 있던 장수는 이런 분위기에 흡족해하며, 청현의 외곽을 지나 강가로 향했다.

그는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것들이 다 어디 갔어?”

장수는 텅 빈 다리를 보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증발이라도 한 듯 경계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이사항이 발생함에 장수는 말머리를 돌려 본대의 상관에게 갔다.

“교위님. 현장에 있어야 할 병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교위가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전장의 선봉에 서야 하지만 징계를 받은 탓에 보급을 맡게 된 그였다.

앞서 달려간 전투부대들의 뒤꽁무니만 따라가며 그들의 물자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 못내 불만족이었다.

“멍청한 것들. 만약 발견되면 이유 불문하고 참해라.”

교위의 말에 그를 보좌하던 장수가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잡았다.

이어 강가에 도착한 교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수하의 말마따나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그 어떠한 움직임도, 심지어 동쪽에 있는 산새들도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고요했다.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교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병사들을 추려 다리를 확인해라!”

불안한 것이 있다면 확인하면 될 일.

교위의 명에 따라 빠르게 추려진 병사 열댓이 창을 내밀며 전진을 했다.

병사들은 다리를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다리를 건넜다.

“아무런 이상이 없나 봅니다.”

이상 없다는 병사들의 수신호를 본 장수가 교위에게 말하자 교위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했다.

‘그렇다면 여길 지키고 있어야 할 병사들은 어디 갔단 말인가.’

“어떻게 할까요?”

수하의 물음에 교위는 혀를 찼다.

수백의 병사들이 있는데 이리 겁을 낼 이유가 없었다.

자신들이 건너야 할 다리의 입출로는 너른 평지여서 딱히 기습에 용이한 지형이 아니었다.

강이 굽이치는 동쪽에 작은 산이 있고, 만약 그곳에 적이 있다 한들 다리와 거리가 있어 그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혹여 다른 보급부대보다 도착이 늦는다면 분명 큰 수치를 당할 것이 뻔했다.

이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생각을 정리한 교위는 수하에게 말했다.

“모두 다리를 건넌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명을 받고선 크게 외쳤다.

“모두 다리를 건넌다! 백부장들은 세 개로 나뉘어 다리를 건너라!”

이에 우렁찬 대답과 함께 수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부장을 필두로 한 창병들이 순식간에 다리를 건너고는 멀리까지 경계의 범위를 넓혔다.

그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신호들을 주고받았다.

그 뒤를 따라 수백의 수레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건너고 나서야 교위와 장수들의 기마병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올랐다.

그리고 그때 기병들이 올라탄 다리가 출렁거렸다.

“……!”

갑작스런 상황에 교위와 기병들이 흥분하는 말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광경에 입을 벌렸다.

쿠과가가가강!

아래로 흐르던 강이 크게 출렁이더니 용이 승천하듯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다리가 결계에 갇힌 듯 물기둥에 가려졌다.

바깥에서는 놀란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지만 다리 내부의 상황이 보이지가 않았다.

갑작스런 물난리를 당한 교위는 휘청거리는 다리 위에서 말고삐를 강하게 틀어 당겼다.

엄청난 수압에 나무다리가 출렁이며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말들은 물론 기병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교위의 눈이 좁혀졌다.

오랜 실전경험과 초절정 경지의 무인으로서의 직감이 말했다.

‘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야.’

하지만 이성이 지금의 기현상을 부정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다.’

그때 다리 밑에서 누군가가 뛰어 올라왔다.

물에 젖은 천애랑이었다.

교위가 무어라 입을 열기 전, 천애랑의 신형이 움직였다.

천애랑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병의 머리를 걷어찼다.

빠각!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기병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그러나 기병은 말에서 떨어지거나 즉사하지 않았다.

‘……?!’

천애랑은 움찔하며 그 기병을 보았다.

투구의 한쪽이 크게 찌그러져 있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상당한 강도의 투구임이 확실했다.

기병으로 나라를 세운 황실인 만큼 기병에 대한 투자가 상당한 듯했다.

“방심하지 말고 저 자를 막아!”

교위가 크게 소리쳤다.

만약 저 사내가 지금과 같은 물기둥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대상이었다.

교위의 외침에 기병들은 말에서 뛰어 천애랑에게 몸을 날렸다.

물기둥에 제 기능을 못하는 말 위에서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천애랑은 손에 든 천선을 허리춤에 넣고선 기병들에게 몸을 날렸다.

“죽어라!”

기병들이 천애랑을 향해 간결하고 효율적인 검식을 펼쳤다.

이에 천애랑은 몸을 움츠리듯 하며 두 손을 품에 모았다.

수룡여의주(水龍如意珠).

천애랑의 주위로 물이 모이더니 마치 거대한 여의주처럼 펼쳐졌다.

까가가가가강!

병사들의 검이 거대한 물의 호신강기에 막혀 거친 쇳소리를 토해냈다.

“무슨?!”

병사들이 놀란 눈을 할 때 천애랑의 눈이 번쩍였다.

“하앗!”

천애랑의 기합성과 함께 호신강기를 이루던 물이 하나의 무기가 되어 병사들을 덮쳤다.

“크아악!”

“으악!”

“내 눈!”

“커억!”

병사들에게 있어 갑주와 투구는 상당한 방어능력을 제공했지만, 이것이 곧 완전한 방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투구 사이의 눈, 갑주 사이의 목, 관절 사이의 빈 공간 등에 공격을 받은 병사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어찌저찌 갑주로 방어를 한 병사들도 찌그러지는 갑주에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며 마찬가지로 쓰러졌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놈!”

어찌 참전할 기회도 없이 벌어진 상황에 교위가 사자후를 토해내며 몸을 날렸다.

그러한 교위를 수행하던 수하들도 함께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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