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15화
작은 번쩍임과 함께 나타난 천애랑은 객잔 여주인을 압박하던 내시를 그대로 걷어찼다.
콰아앙!
충격과 경악의 분위기 사이 천애랑은 품에서 작은 함을 열었다.
그러곤 속에서 작은 환약 하나를 꺼내 여인의 입에 넣었다.
“치료에 좋은 약이라더군.”
천애랑은 여인의 팔을 점혈했다. 이어서 그의 손에 뜨거운 열기가 일었다.
“참으시오.”
천애랑의 손이 여인의 잘린 부위에 닿았다.
치이이익------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가 나길 잠시.
더 이상 여인의 팔에서 피가 나지 않았다.
그 방법과 외관이 어찌 됐든 완벽한 지혈이 된 듯했다.
거칠게 숨을 내쉬던 여인이 놀란 눈으로 천애랑의 뒤편을 가리켰다.
천애랑을 향해 동창의 내시들이 일제히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조, 조심!”
그러나 여인의 걱정과는 달리 천애랑은 뒤에도 눈이 달린 듯 몸을 움직였다.
버들나뭇잎처럼 천애랑의 몸이 흔들거렸다.
쉬익! 쉭!
날카로운 검들이 허공을 갈랐다.
“히이익!”
객잔 1층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의 다툼에 불똥이 튈까 싶어 화들짝 구석으로 피했다.
‘천선(天扇)까지 꺼낼 필요는 없겠지.’
천애랑은 우선 무고한 사람들로부터 내시들을 떨어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지법을 펼쳤다.
기운이 대지와 맞닿아 감응하니 마치 공간이 접힌 듯했다.
그렇게 천애랑의 신형이 순식간에 내시의 품으로 파고들어갔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엔 사라졌다 나타나는 천애랑이 귀신같았다.
천애랑은 놀란 눈을 하는 내시의 배에 손바닥을 대었다.
발경.
가볍게 밀어내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쿠당탕!
앞서 날라간 내시처럼 천애랑의 발경에 맞은 내시도 객잔의 문으로 날아갔다.
스윽.
천애랑의 신형이 또다시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에 화들짝 놀란 다른 내시들이 천애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람에게 장단점과 특색이 있듯 내시된 이들에게도 나름의 강점이 있었다.
음기(陰氣).
대부분의 내공이 양기인 만큼 수많은 무림인들은 양기를 다룬다.
하지만 내시는 모두 음기가 강하다.
이는 양기를 일순간에 잃은 반동으로 음기가 극히 강해진다는 설이 있었다.
쩌저적!
내시들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가 객잔에 펼쳐졌다.
강력한 음기가 마치 북해빙궁의 빙공처럼 한기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호흡을 가파르게 만들었다.
“흐읍?”
줄기차게 음기를 뿌리며 공격하던 내시가 놀란 눈을 했다.
천애랑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검보다 빠른 천애랑의 움직임에 아찔함을 느꼈다.
어느새 자신의 배에 손바닥 하나가 닿았기 때문이다.
뻐억!
“크허억!”
내시는 실 끊긴 인형처럼 객잔 문으로 날아갔다.
이를 시작으로 천애랑의 신형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뻐억! 뻐어억!
“크악!”
“크아악!”
천애랑의 움직임 하나에 한 명씩, 객잔 내에 있던 내시들 모두가 객잔문을 통해 날아갔다.
객잔 내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천애랑은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계단에 기대앉은 여인을 살폈다.
백지장처럼 창백했던 신색이 조금은 돌아와 있었다.
천애랑은 여인에게 전음을 날렸다.
[저들을 모두 죽일 것이오.]
여인이 움찔거리며 놀란 눈을 했다.
그녀는 무언가 대답하고 싶었지만 전음을 날릴 재주와 기력이 없어 조용히 천애랑을 바라봤다.
[담가를 구하러 가서 어차피 황실과 척을 질 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넘기시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여인이 황망한 표정을 짓자 천애랑이 작게 혀를 찼다.
[저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곳이 하오문의 지점인 줄 모르는 것 같더군. 그렇지 않소?]
여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조차 힘에 부치는지 여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면 굳이 하오문이 드러날 필요는 없지. 다만 저들을 다 죽이면 동창에서 이곳으로 조사차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오.]
여인이 마찬가지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보면 이곳이 큰 피해를 볼 수 있겠소. 보아하니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매우 하찮게 여기는 것 같소만.]
여인은 천애랑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했다.
‘정보를 이용해 동창의 시선을 본인에게 돌려라.’
‘그리고 죽을 수도 있으니 사전에 피해라.’
천애랑은 여인이 이해한 듯하자 허리를 곧게 펴고 객잔의 사람들을 봤다.
그들 중 손이 잘려 끙끙거리는 학사에게 다가갔다.
천애랑이 다가감에 따라 사람들이 놀라움과 두려움, 경외 등의 감정을 보이며 길을 비켰다.
“무, 무슨……?”
학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천애랑이 손을 뻗어 지혈되지 않은 학사의 손을 건드렸다.
그러자 감쪽같이 학사의 손이 지혈되어 더는 피가 나지 않았다.
천애랑은 이어 근처에 있던 무인에게 말했다.
아무렇게 생긴 복색을 보니 낭인인 듯했다.
“피를 많이 흘린 터라 의원에게 가봄이 좋을 것이오. 그대가 힘이 좋아 보이니 이 자를 챙겨 주오.”
“아, 알겠소이다.”
낭인은 천애랑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은 두려워 나서지도 못했던 동창을 엽전 뒤집듯 제압한 그의 무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동창임을 알면서도 과감히 날려버린 천애랑의 용감함에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아니.”
천애랑은 생각을 고치고선 품에서 적당한 돈을 꺼냈다. 그러곤 낭인에게 건넸다.
상당한 금액인지라 낭인은 물론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여기 객잔 주인도 부상이 심하니 차라리 의원을 불러오시오. 그 정도면 이곳에서 괜찮은 의원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소만?”
“무, 물론이오.”
낭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천애랑의 의협심에 깊은 감탄을 했다.
“감사합니다. 혹 존함이…….”
학사가 천애랑에게 감사를 표하며 묻자 천애랑이 짧게 답했다.
“천애랑이오.”
천애랑은 귀를 쫑긋거리며 객잔 밖을 봤다.
날려 버린 내시 중 몇몇이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을 지켜보던 여인이 점소이에게 손짓했다.
이에 점소이가 황급히 여인의 오른편으로 다가갔다.
오른팔만 남은 여인이 자신을 부축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점소이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일어난 여인이 나가려고 하는 천애랑에게 읍을 했다.
“감사합니다.”
기력이 쇠한 탓에 부축한 점소이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였지만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을 나온 천애랑은 쓰러진 내시들과 이를 둘러싼 수많은 인파를 보았다.
그는 모인 사람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황실의 안녕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동창이! 사사로이 민간인을 핍박하기에 흑의폭군인 내가 나섰다!”
사람들이 놀란 눈을 했다.
“허업!”
몇몇은 두려움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여 천애랑의 언행에 연루될까 싶은 것이었다.
“이들에 의해 무고한 학사가 글을 써야 할 손을 잃었으며! 객잔의 여주인도 팔을 잃었다! 무공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여러분들과 같은 이들이 말이다!”
사람들이 경악성을 뱉었다.
자신들과 같이 흔한 인물들이 여기 쓰러진 내시들에게 큰 피해를 당했다고 하자 그들은 금세 감정이입을 했다.
천애랑은 대중들의 집중도가 급속도로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내 비록 의와 협을 쫓는 협객은 아니나! 이들의 행태를 보고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바! 이들을 직접 징벌하고자 한다!”
천애랑의 말에 놀라던 사람들은 이어진 천애랑의 행동에 더욱 놀란 눈을 했다.
촤아악! 촥! 촥!
수강을 만든 천애랑의 손이 쓰러져 끙끙거리는 동창 내새들의 목을 그대로 쳐냈다.
가차 없는 손길에 동창의 인물들이 모두 목이 잘려 죽음을 맞이했다.
“히이이이익!”
구경하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더러는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천애랑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동창이나 관군이 방관죄를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천애랑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고선 다시 객잔으로 들어갔다.
“헛!”
객잔 내에서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당탕거리며 천애랑의 앞길에서 비켜났다.
객잔의 2층과 그 위의 층에선 소란에 몸을 피했다가 자라목처럼 상황을 살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애랑의 시선을 피해 쭉 뺐던 목을 움츠렸다.
천애랑은 모든 시선들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서 객잔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피 냄새가 나는 천애랑의 거친 등장에 두 마리의 준마가 코를 벌렁거렸다.
천애랑은 말들의 목을 부드럽게 쓸어 진정시키곤 날 듯이 뛰어서 올라탔다.
그러곤 말허리를 박찼다.
히이이잉!
거친 투레질과 함께 두 마리의 준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천애랑은 두 마리의 말을 번갈아가며 몰면서 쉬지 않고 달릴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그리 많은 시간이 지체된 것은 아니지만 동창을 대놓고 죽였으니 추격자들이 붙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쓸데없는 시간이 낭비될 수 있었다.
“이랴!”
천애랑은 재차 말고삐를 휘둘러 말을 재촉했다.
***
황궁 내.
동창의 전각이 있는 곳에 동창 전령 하나가 바삐 뛰어 들어갔다.
전각 안 깊숙한 곳엔 무료한 표정의 팽풍궐이 손톱을 매만지고 있었다.
“태감님을 뵙습니다!”
극히 공손한 전령의 예에 팽풍궐이 느릿한 시선을 옮겼다.
“무슨 일인고?”
내시 특유의 고음이 팽풍궐의 고강한 내공과 만나 하나의 음공처럼 뻗어갔다.
이에 전령이 전신에 내공을 뿜으며 간신히 견뎌냈다.
팽풍궐에겐 지루함에서 나오는 장난일지 몰라도 당하는 입장에선 생사결과 다를 바 없었다.
“왜 말이 없을꼬?”
전령이 눈에 실핏줄이 터짐에도 이를 악다물고 버티자 팽풍궐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미없는 보고면 죽일지도 모른다?
“끄윽.”
팽풍궐의 음공 같은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버티던 전령은 신음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팽풍궐은 호롱불을 끄듯 숨을 뱉어냈다.
“후!”
그러자 전령을 괴롭히던 기운이 바람처럼 날아가 사라졌다.
숨통이 트인 전령은 팽풍궐에게 감사의 예를 차리며 입을 열었다.
“태감님께서 신신당부했던 인물이 북경 시내에 나타났었습니다.”
무심한 듯 재차 손톱을 살피던 팽풍궐의 시선이 빠르게 전령으로 향했다.
“뭐? 누굴 말하는 거지?”
동창엔 팽풍궐이 내린 중요한 명이 하나 있었다.
‘천애랑을 발견하거든 무조건 데리고 올 것. 또는 그 행선지를 파악할 것.’
임무의 수행 가능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팽풍궐의 명령이기에 동창은 천애랑의 인상착의를 뼛속 깊이 외울 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동창의 많은 이들은 천애랑에 대한 명령이 이렇듯 시간의 흐름 따라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작금에 와서, 그것도 동창이 비밀리 순찰 도는 북경에서 천애랑이 나타난 것이다.
“광산에서의 청년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팽풍궐의 명에 의해 뼛속까지 외워진 천애랑의 얼굴은 그 아무리 이름을 달리 불러도 헷갈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팽풍궐이 벌떡 일어났다.
“나의 천애랑?!”
그의 눈빛에선 더 이상의 무료함은 없어지고 강한 불꽃만이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