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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13화 (113/200)

기공술사 113화

담선웅이 말했다.

“지금쯤 형님은 제남성주로부터 군권을 받아 제남성문을 걸어 잠갔을 거요. 그리고 담가는 최후까지 결사 항전을 할 것이오. 그리하여 전쟁이 길어지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소?”

“흐음…….”

항상 공자의 가문으로 안위를 지켜왔던 이들은 학문적 지식이 높을지는 모르나 전쟁에 대해선 잘 몰랐다.

좀 더 정확히는 전쟁에 대해 알 필요 없다고 터부시해왔었다.

지금의 황실이 세워질 때도 공자의 가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안위를 지킨 그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담선웅이 말했다.

“이 전쟁은 분명 산동 전역을 함께 불태울 것이오. 우리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대군을 이끌고 온 황군은 현지에서 군량을 조달하고자 하겠지.”

“음.”

공가의 인물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까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황군이 군량만 조달할 것이라 안일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오? 그렇지 않소?”

“크흐흠.”

안일한 생각을 했던 몇몇이 헛기침을 했다.

“병사가 부족하면 인간방패 삼을 장병들을 강제 징병할 것이고,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이를 달래줄 술과 여인들을 약탈할 것이오. 제남의 문이 잠겼으니 분명 그 주위에서 말이지. 아마 곡부와 같은.”

사람들이 동요가 거세졌다.

담선웅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황군의 최종목적지는 담가가 아니오. 그들은 아마 우리를 벌하고 그대로 남하해 강남에 세력을 둔 홍건적을 멸할 생각이오.”

“흐음. 허면…….”

무언가 반박의 말을 꺼내려던 누군가가 공후의 손짓에 물러났다.

공후가 입을 열었다.

“황군의 행사에 협조하든 말든 우리에게 큰 위기가 올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겁니까?”

담선웅이 크게 끄덕였다.

“맞소. 지금이야 담가를 치기 위해 수만이 진격했지만 만약 황군이 남하를 시작하면 수십만의 병사들이 집결을 할 것이오.”

“그러면 그대의 말처럼 군량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맞소. 앞서 누누이 얘기했던 화마가 곡부를 빗겨나리라 생각하는 건 매우 안일한 생각일 것이오.”

담선웅과 공후 둘의 시선이 빠르게 오갔다.

천하의 정세와 향후 발생할 경우의 수가 그들의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나열되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공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다소 귀를 닫고 산다 하지만 세상의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은 아닙니다. 천하의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그저 학자이고, 그 그릇이 천기(天器)가 아니기에 그저 곡부의 안정이면 족하다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그릇이자 현실적인 인(仁)이라고 생각했었죠.”

공후의 말에 장내의 다수가 공감을 했다.

공후가 담선웅의 호안을 직시했다.

강물처럼 맑고 깊은 수양과 바위처럼 단단한 의지가 비쳤다.

“담가에서는 저희 공가에게 어떠한 도움을 원하시는 겁니까.”

대화의 종지부가 보이자 담선웅이 다소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말했다.

“산동의 백성들을 지켜주시오.”

“…….”

황군으로부터 담가를 지키는데 협조해 달라는 말을 들을 거라 예측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대답에 공후는 물론 장내의 인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백성을 지켜 달라 하셨습니까?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그저 선조를 모시는 학자들일 뿐입니다.”

담선웅이 옅게 웃었다.

그러곤 붓을 쥐듯 손 모양을 만들었다.

“황군과 담가의 전쟁으로 스러져갈 무지한 백성들이 최소한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시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제남으로 도망쳐 오라는 격문을 부탁드리오. 담가가 그대들을 지켜주겠노라고.”

담선웅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천하가 공자의 가르침 아래에 있소. 고로 만백성들이 나처럼 공자의 자식과 같다고 할 수 있소. 그래서 그대들에게 이러한 부탁을 하는 것이오. 공자의 자식 된 도리와 인(仁)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기에.”

“허어…….”

장내의 모든 이가 깊은 장탄식을 뱉어냈다.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자신들의 안위가 아닌 무고한 백성을 생각하는 담가의 의(義)와 인(仁)이 빛이 나 보였다.

공후가 가문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안에 대해선 따로 논의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군.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논어 헌문편에 나왔듯이 저희의 작은 행동이 무모해 보이더라도 무고한 백성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했습니다. 그런고로 현 황실은 군자답지 못하다 할 만합니다.”

“황실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행위라면 솔직히 두렵지만 백성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가의 인물들이 긍정적인 의견들을 모았다.

담선웅은 느긋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기다렸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공후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백성을 생각하는 담가의 인(仁)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 공가는 산동 각지에 지금의 위기를 알리고 백성들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감사하오. 그대들 덕분에 많은 생명이 살 것이외다.”

원하는 답을 얻은 담선웅이 미소를 지으며 예를 차렸다.

***

한편.

의각원에서 빠져나온 천애랑은 북경에 들렀다.

가장 큰 이유로는 북경과 천진으로 이어져 남하하는 길이 가장 잘 다듬어져 있었으며 수시로 정보를 파악하는 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역시 크다.’

북경을 처음 방문하는 천애랑은 어마어마한 인파와 도시의 규모에 눈을 크게 떴다.

아침인데도 엄청난 활기가 느껴졌다.

천하의 모든 것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별칭처럼 수많은 것들이 천애랑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천애랑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천애랑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의 헌앙한 외모 때문이었다.

‘자, 잘 생겼다!’

‘어머.’

‘크흠. 기생오라비같이 생겨서는.’

‘학사인가?’

황금빛 수실의 흑색 비단 무복을 입은 천애랑의 자태에 저마다 수근거렸다.

이러저러한 반응을 알 리 없는 천애랑은 곧장 하오문이 운영하는 객잔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어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지만 천애랑은 이 많은 인파 속에서 자신을 아는 이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이! 멈춰!”

누군가 천애랑의 앞을 가로막았다.

엄청난 근육질의 사내였다.

태양의 빛에 그의 민머리가 반짝였다.

“역시!”

근육질의 사내가 눈을 부릅뜨며 천애랑을 쳐다봤다.

천애랑이 살짝 눈을 좁히며 물었다.

“나를 아오?”

사내의 다부진 태양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훈련을 통해 건강해진 몸과 커져가는 내공이 흥분하는 신체와 반응해 일어나는 대표적인 증상이었다.

허나 이러한 증상은 내공의 수발이 비교적 진일보하는 절정의 경지에 들어서면 확연히 줄어든다.

그래서 절정을 넘어 더욱 경지와 완숙도가 높아질수록 겉모습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반인들의 눈에는 태양혈이 돋아나는 무인들이 더 무섭게 느껴지긴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매우 강해보이는 사내가 여리한 천애랑에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꼈다.

‘누구지?’

천애랑은 기억을 더듬었다.

산적이나 흑도처럼 생긴 눈앞의 사내는 마치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운남 사파연합인가.’

표정을 보아하니 인연이 있더라도 좋은 인연은 아닌 것 같았다.

이내 천애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가로막는 녀석들은 거의 죽였는데.’

그리고 그들이 겁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이러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과거 표행에서 만난 산적들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천애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고 하오문도라기엔 접근방법이 말이 안 되고.’

천애랑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자 근육질의 사내가 인상을 쓰며 크게 외쳤다.

“폭류철권의 3대 계승자 파공이다! 기억나지 않는 거냐!”

사내의 소개에 천애랑이 눈을 크게 떴다.

이에 사내는 드디어 천애랑이 자신을 기억했다 생각하고는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허나 천애랑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파공이라 자기소개한 사내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곤 주변을 향해 크게 외쳤다.

“동도들이여 여기 흑의폭군이 있다! 복수를 이루자!”

내공이 가미된 사자후가 아님에도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거리를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흑의폭군?”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찰나 천애랑의 주위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둘러쌌다.

모두들 한 덩치 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흑의폭군! 우리들은 기억하겠지?!”

천애랑이 더욱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모로 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흑의폭군이라는 별호를 언급하는 것을 보니 하오문을 찾겠다고 움직였던 당시를 기억하는 어떤 이들인가 싶었다.

모르쇠 가득한 천애랑의 표정에 그를 둘러싼 사내들이 인상을 썼다.

“참산검류의 파구검이다! 기억하는가?!”

“…….”

“유창문의 추려다!”

“…….”

“낭인 추보도다!”

“…….”

천애랑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는 이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람을 잘 못 본 듯하오.”

천애랑은 이들을 무시하는 선택을 취했다. 괜히 엮여봐야 피곤해질 것만 같았다.

“이, 이! 흑의폭군!”

폭류철권의 계승자 파공이 천애랑에게 날 듯이 다가가 다짜고짜 주먹을 내질렀다.

부웅!

엄청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주변에 바람을 일게 만들었다.

천애랑은 몸만 살짝 틀어 가볍게 파공의 주먹을 피해냈다.

사람들은 학사같이 생긴 천애랑이 예상외의 움직임을 보이자 저마다 감탄사를 뱉었다.

천애랑은 무심한 표정으로 파공을 봤다. 파공의 볼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 잘난 표정을 유지하나 보자!”

천애랑의 지척에 있던 파공이 양 주먹을 자신의 가슴께로 모으더니 강한 내공과 함께 뻗었다.

“폭류철권 제 5초 거암파폭권!”

무시무시한 파공의 기세에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사내의 초식 명처럼 그의 주먹에서 거대한 암석을 크게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위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파공의 주먹에 천애랑이 그대로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

일단의 여인들은 ‘아, 안 돼!’하며 안타까운 탄식을 뱉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파공의 주먹이 천애랑에게 닿으려는 찰나 천애랑이 가볍게 한 손으로 파공의 두 주먹을 막아낸 것이었다.

대단한 움직임도 충돌음도 없었다.

그저 먼지를 흩날리듯 가벼운 손짓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껏 내공을 끌어올렸던 파공의 입장에선 전혀 가볍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

노도처럼 움직이던 내공의 흐름이 예측 못 한 상황에 의해 급격히 역류를 시작했다.

“크윽!”

파공이 진탕되는 내부를 느끼며 몸을 숙였다.

그때, 지켜보던 다른 이들이 파공의 부상을 살피며 가까이 모여들었다.

“과연! 명불허전 흑의폭군이로군. 그댄 능히 우리의 합공을 받을 자격이 되네.”

파공을 살피던 이 중 하나가 천애랑에게 감탄하듯 말했다.

‘뭔… 개소리지?’

다짜고짜 길 가던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합공하겠다는 소리를 이렇게 아름답게 하나 싶었다.

천애랑은 십여 명의 인물들이 무기를 들고 위협적으로 맴도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저들 너머에서 호기심 가득히 구경하는 행인들을 보았다.

소란을 들었는지 구경하고자 하는 행인들이 더욱 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천애랑은 행인들 사이사이와 주위 건물들 창에 존재하는 관찰의 눈빛들을 보았다. 그들 중엔 은신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적당히 빨리 끝내고 움직여야겠군. 피곤해지겠어.’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이 희대의 악인인 것도 아니기에 딱히 크게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

빠르게 제압만 하고 자리를 뜨면 될 터.

그래서 천애랑은 둘러싼 이들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인파에 피해를 주지 않고 한 번에 정리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가벼운 도발에 넘어간 사내들이 인상을 쓰며 공격을 해왔다.

“흐아압!”

참산검류 특유의 쾌검에 유창문의 특유의 중검, 낭인 특유의 변칙적인 공격 등 다양한 공격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들의 유려한 공격을 본 구경꾼들은 크게 감탄을 했다.

허나 천애랑은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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