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09화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의 전쟁이 진행될 때.
방덕은 개방의 영물인 똥개와 함께 실종된 화산파인들의 흔적을 쫓았다.
추적은 어렵고도 길었다.
‘화산…이군.’
방덕은 눈을 좁히며 숲속 이곳저곳에 늘어진 전투의 흔적을 살폈다.
낙엽과 시간의 흐름 때문에 분석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방덕의 눈에 화산파 특유의 보법 흔적이 보였다.
그러한 화산의 보법들과 상대하는 이들의 흔적도 있었는데.
‘엄청난 고수.’
분주하게 어지러이 밟힌 화산파의 보법과는 다르게, 서 있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적은 발자국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그 수는 둘인가.’
방덕은 바닥에 코를 대며 킁킁거렸다.
내공의 잔향을 맡는 것이었다.
이는 추적술에 일가견이 있는 방덕의 능력 중 하나였는데, 내공의 흔적을 따라 추적을 할 수 있었다.
한참 냄새를 맡던 방덕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아마… 실종됐다는 매환검의 흔적. 그리고… 이건 새로운 흔적.’
방덕이 연신 코를 벌렁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내공의 냄새가 극히 흡사하다. 거의 똑같다고 할 정도로.’
내공이라는 것에도 그 나름의 성격이 있는 법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성격이나 특유의 냄새와도 같았는데, 일반적으로 정도의 내공들은 은은하고 맑은 기운이 났다.
그중에서도 화산파는 매화를 닮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그 내공에서도 매화의 향이 났다.
물론 같은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더라도 비슷한 냄새가 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훈련한 방덕의 코는 꽤나 정확한 편이었기에 그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같은 사문의 내공이 확실해 보이는군.’
방덕이 몸을 일으켰다.
‘흑화…가 아직까지도 실존하다니.’
그때 똥개가 멀리서 달려오며 낑낑거렸다.
무언가 발견을 했다는 의미였다.
“가보자.”
방덕의 말에 똥개가 앞장서 나아갔다.
일 각(15분)쯤 나아가니 더욱 빼곡한 나무숲이 있었다.
똥개는 여러 나무 중 한 곳에 가까이 가더니 방덕을 보며 맴돌았다.
방덕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진법인가.’
추적에 능한 개방의 영물답게 진법을 알아채는 능력 또한 뛰어난 똥개였다.
방덕이 똥개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연인목처럼 크게 꼬아진 나무가 있었다.
그 틈새가 제법 커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방덕은 유심히 나무의 틈을 살폈다.
‘진법이 맞네.’
그 틈이 어두워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순 없었으나 기이하게 흐르는 이질적인 기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주변과 다른 냄새가 났다.
방덕이 똥개를 대충 쓰다듬었다.
“잘했다.”
방덕의 칭찬에 똥개가 꼬리를 흔들며 고갯짓을 했다.
그 시선이 방덕의 허리춤을 향해 있었다.
“지도 개방이라고…. 옜다.”
방덕이 혀를 차며 허리춤에 꼬불쳐 놓은 육포 하나를 꺼내 똥개에게 건넸다.
똥개는 덥석 육포를 받아먹었다.
방덕은 그런 똥개를 뒤로하고 나무의 틈을 살폈다.
흑화와 실종, 그리고 진법이라는 단어들이 합쳐지자 어두운 나무 틈이 무저갱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가봐야지…….’
방덕은 덥수룩한 수염을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중간에 다른 임무로 보낸 추개라도 함께 올 걸 그랬나 싶었다.
“에라이. 가자 똥개야.”
방덕이 거칠게 인상을 쓰며 나무 틈 진법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우웅-
이질적인 감각이 짧게 스쳐간 후 방덕의 눈앞에 새로운 광경과 길이 보였다.
깊은 숲속 나무들 가득한 풍경에서 기암괴석들과 고송들이 어우러진 공간이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기암괴석들은 거대한 절벽을 이루며 하나의 좁은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약 똥개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못 찾았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방덕은 뒤따라 들어온 똥개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좁은 길이라는 점은 여차하면 노출되기 쉽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방덕은 은폐엄폐를 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만약 흑화나 그 외의 적들을 만나면 곧바로 대응하기 위해서 천천히 내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 동안의 긴장과 거북이 같은 나아감에도 그 어떤 생명체의 호흡도 들려오지 않았다.
방덕은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좁은 절벽 길을 나아가자 그 끝에 위치한 너른 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백여 명도 수용 가능할 큰 공간이었다.
이 터를 중심으로 높은 절벽들이 솟아있었다.
방덕은 마치 거대한 항아리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방덕은 재빠르게 주변을 경계했다.
어떠한 생명체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제는 벌레나 새소리, 작은 들짐승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진법 안이라고 하나 이상했다.
그때 방덕의 시선을 붙잡는 게 있었다.
절벽들 곳곳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동굴이 있었다.
‘쯔읍.’
방덕은 숨을 죽이며 똥개를 툭 쳤다.
그러자 똥개가 킁킁거리며 동굴들 입구를 살피기 시작했다.
피융.
한참을 살피던 똥개가 방덕을 향해 힘 빠지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입구를 특정할 수 없다는 건가.’
똥개의 의미를 이해한 방덕이 제일 큰 동굴의 입구로 향했다.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어.”
똥개에게 당부한 방덕은 곧장 어두운 동굴로 들어섰다.
순간 깊은 어두움이 방덕을 덮쳤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찻물을 데우듯 단전에서 내공을 자극시키고 있던 방덕이기에 빠르게 어둠에 적응을 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벽에 꽂힌 횃불이 동굴 내 시야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동굴은 일방향의 구조가 아니었다.
동굴 안에도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굴들이 존재했다.
‘너른 터에서 봤던 동굴들이 모두 연결되는 구조 같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아가던 방덕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
방덕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그의 시선이 이르는 곳에 작은 욕조처럼 바닥에 깎인 공간이 있었다.
문양이 새겨진 욕조 공간엔 나체의 시신 수십 구가 쓰러져 있었다.
문제는 그 시신들의 성별과 연령이 제각각이었다는 것이고, 심지어 모든 피가 빠져나간 듯 목내이처럼 변해있다는 점이었다.
‘채혈……? 옷은 벗긴 건가? 아니, 아무래도 불타버린 것 같네.’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시신들을 살피던 방덕은 시신들의 밑으로 뚫린 작은 수로를 보았다.
마치 시신들에게서 빠진 피가 그 수로로 흐르는 모양새였다.
사람이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작은 공간인지라 직접적으로 수로를 관찰하긴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대신 작은 수로가 어딘가로 이어지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방덕은 눈앞의 시신들을 일별하고선 동굴의 길을 더 나아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신형이 멈춰 섰다.
‘또.’
앞선 시신들처럼 욕조 같은 작은 공간에 다양한 성별과 연령이 섞인 나체의 목내이가 있었다.
‘여기에도 수로가.’
마찬가지로 수십의 시신들과 어떠한 문양이 새겨진 공간이 있었다.
방덕은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시신들이 쌓여 있었다.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양들이 있었다.
‘…….’
방덕은 벌써 10군데가 넘는 시신들의 공간을 지나왔다.
‘이것만 해도 벌써 400구 이상의 시신들.’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러한 짓을 벌이는 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살심과 함께 강하게 피어올랐다.
그때 방덕의 시선에 좀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보였다.
방덕은 곧장 어두움에 최대한 몸을 숨기며 움직였다.
길은 투박했다.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시신들의 공간은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았지만 그 외적인 부분은 이동에 목적을 두는 느낌이었다.
계단을 내려온 방덕은 지하 동굴치곤 꽤나 넓은 공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앞서 시신들에게서 보이던 욕조의 구조와 비슷하나 그 규모가 훨씬 거대한 욕조가 있었다.
거대한 욕조 안에는 알 수 없는 핏자국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리고 욕조의 사방으로는 통로들에서 봤던 수로들이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욕조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수로의 개수가 엄청나서 방덕은 말문이 막혔다.
‘이 정도 숫자의 수로 끝마다 아까처럼 시신들이 있다면…….’
족히 수천 명의 시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 방덕이 속으로 욕을 뱉었다.
‘그간의 실종사건들이 이것과 큰 연관이 있었나.’
방덕은 그간의 정보들과 새로운 정보들을 규합하며 거대한 욕조를 살폈다.
‘진법.’
시신들의 욕조와 수로에서 봤던 모종의 문양들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며 거대한 욕조로 이어져 있었다.
‘진법을 통해 피를 이 욕조로 모으고, 무언가를 한 것인가. 그럼 화산파의 인원들은……?’
그때였다.
한참 고민을 하던 방덕이 기감에 섬뜩한 무언가가 감지됐다.
급하게 나려타곤을 펼친 방덕은 팔이 시큰거리는 걸 느꼈다.
휘익!
또다시 섬뜩한 기운이 들자 방덕은 등에 매어 놓은 취옥장을 급히 휘둘렀다.
꽝!
엄청난 반탄력에 방덕의 발이 바닥에 줄을 만들며 밀려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방덕은 보았다.
깊은 주름과 굽은 허리의 노인.
검을 든 자세에서 느껴지는 빈틈없는 자연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보이는 절대자의 자신감.
‘그리고 검기에서 느껴지는 매화의 향…….’
방덕은 머릿속으로 지하 동굴의 길들을 추슬렀다.
그의 머릿속에서 도주로와 여러 가지 만들 수 있는 변수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당장이라도 도망칠 방법 몇 가지가 머릿속을 웅웅 울리며 재촉했지만 방덕은 몸에 꾹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노 선배가 흑화요?”
본능은 당장 도망치라고 외치지만, 조사의 막막함에 한 줄기의 대답을 얻고 싶었다.
현곽은 방덕의 기개를 흥미롭게 보며 답했다.
“역시 개방의 거지로군. 그런데 아직 젊어 보이는데 방주인 건가?”
현곽의 시선이 방덕이 든 타구봉, 취옥장에 향해 있었다.
방덕은 침을 삼켰다.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망령, 흑화가 맞는다면 당장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욕심이라는 것이 끈적하게 발바닥을 붙잡고 있었다.
“이런 장소를 만들려고 아주 고생을 하셨겠소이다. 헌데, 다 죽인 것이오?”
“아주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구나. 내 그런 것을 말해줄 것 같으냐?!”
현곽이 낄낄거렸다.
“동문의 후배들을 죽이는 것이 재밌으셨던 모양이오.”
방덕은 보았다.
후배와 재미라는 표현에 현곽의 표정이 살며시 굳었다 펴지는 것을.
그 변화가 워낙 미세하고 찰나였지만 말이다.
방덕이 이어 말했다.
“화산파의 백진 장로. 세간에선 매환검이라고 불리는 화산파의 고수가 죽었소. 그렇지 않소?”
“좋을 대로 생각해라.”
현곽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방덕이 이어 물었다.
“매환검과 함께 있던 화산파의 일대제자들도 죽고?”
현곽이 귀찮은 듯 슬며시 검을 들어올렸다.
방덕이 빠르게 질문을 이었다.
“헌데 일대제자 청상은 죽이지 않았구려.”
현곽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멈칫했다.
이에 방덕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상은 생존, 나머지는 전멸이라…….’
생각을 정리한 방덕은 곧장 기마자세와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항룡십팔장 제 1초식 항룡유회였다.
질문과 함께 은밀한 준비를 한 그였다.
방덕의 주먹엔 방주 취옥개와 지옥 같은 훈련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짙게 녹아 있었다.
내공을 밀었다 당겼다하며 막힌 둑처럼 거대한 내공을 모으는 항룡유회.
여전히 제약점이 많지만 예전처럼 긴 준비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방덕의 주먹 끝으로 기함할 내공이 쏘아졌다.
그리고 그 방향은 현곽이 아닌 동굴의 천장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방덕의 공격에 지진이라도 난 듯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쿠루루루루루---
동굴에 쩍쩍 금이 가며 기둥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금이 간 천장이 방덕이 위치한 중앙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방덕은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는 현곽을 일별하고는 뒤도 보지 않고 반대로 내달렸다.
머릿속에 그린 지도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쿠루루.
쿠루루루.
동굴의 무너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켜켜이 뒤통수를 때렸다.
콰과과광!
현곽이 발악이라도 하는 것인지 간헐적으로 강렬한 기파의 충돌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방덕은 돌아보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었다.
머리 위로 돌들이 떨어질 때면 취팔선보까지 펼치며 휘청거리듯 나아갔다.
그렇게 달려 순식간에 동굴을 빠져나온 방덕은 어두움 속에 몸을 숨긴 똥개를 찾았다.
나름 누런 털과 안광을 숨긴다고 오줌을 싸서 젖게 만든 흙을 온몸에 묻히고 있었다.
“똥개야 도망가자!”
방덕의 다급한 외침에 똥개가 번뜩 일어나며 합류했다.
쿠구구구구---!
조금 전, 방덕이 빠져나온 동굴입구가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동굴 입구들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위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항아리처럼 공터를 둘러싼 높은 절벽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에 방덕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제엔장! 맨날 나만 고생해!”
내공의 고갈로 비릿하게 역류하는 피를 삼키며 방덕은 열심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