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08화
피곤함에 눈가를 주무르던 제갈청이 부하의 보고서를 대충 풀고선 눈으로 읽었다.
[중원 각지에서 암살사건 속출. 하북팽가의 소가주와 진주언가의 소가주 죽음. 그 외 여러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암살에 죽음. 참변을 당한 문파들의 항목을 맨 아래에 첨부함.]
서신을 읽는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무나 놀란 탓에 피로가 강제적으로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제갈청의 시선이 아직 못다 읽은 서신의 끝에 머물렀다.
서신을 읽는 그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남궁가의 공자 남궁억과 제갈가의 공자 제갈효가 죽음. 두 시신의 장소에 격한 비무의 흔적이 있음. 남궁가에선 진위를 밝힌다며 남궁억의 시신을 데려감.]
서신을 잡은 제갈청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콰앙!
평소 평정심 가득하던 제갈청이 흉신악살 같은 표정으로 접객실 탁자를 날렸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군사부의 무인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제갈청이 무인에게 보고서를 보이며 악을 쓰듯 외쳤다.
“당장! 군사부를 총동원해 이 보고에 대한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도록! 아니, 무림맹을 총동원해서라도 반드시 확인하도록!”
“예, 예!”
무인은 빠르게 보고서를 읽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갈청이 왜 저리 분노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무인은 제갈청에게 경례를 하고 빠르게 접객실을 나섰다.
으드득.
아무도 남지 않은 접객실에서 제갈청이 이를 갈았다.
‘효야! 감히……. 남궁 이것들이!’
자식을 생각하는 그의 푸른 안광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
“억이가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범인이 제갈효라고?!”
콰앙!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수검이 수하의 보고에 거칠게 탁자를 내려쳤다.
낭궁수검의 힘에 탁자가 산산조각 부서졌다.
“내 당장 대갈세가놈들을 그냥!”
“아버지!”
남궁수검이 허공섭물로 가문의 보검인 청룡검을 집자 대공자인 남궁강이 급히 말렸다.
이에 남궁수검이 벼락같이 화를 냈다.
“비켜라 이놈! 네놈의 동생이 죽었다는데 지금 나를 말리려 드는 것이냐!”
노도처럼 뻗어 나오는 남궁수검의 기파를 남궁검이 버텨내며 대답을 했다.
“엄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아버지. 제갈세가가 무엇 때문에 우리 억이를 죽인단 말입니까?”
남궁수검이 이를 갈았다.
“제깟 놈들이 무림맹으로 권력 맛 좀 봤다고 그러는 거겠지! 아니면 산동에서 만족 못하고 안휘까지 노리려는 거든지.”
“아버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제갈세가가 그런 마음을 품었다고 한들 감히 대 남궁을 그런 허접한 방법으로 자극하겠습니까.”
이번 남궁강의 말이 먹혔는지 분노하던 남궁수검이 조용히 아들을 바라봤다.
남궁검은 아버지의 행동을 잠시만 막았음을 알았다.
평소엔 태산같이 행동이 무겁지만 필요할 때는 번개처럼 움직이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분이었다.
이는 남궁가의 가풍이기도 했다.
남궁가의 대표적인 검공 중 하나인 제왕검형.
제왕이 들어간 것처럼 그 자존감과 기개는 일절이라고 자칭, 타칭 일컬어지는 가문이었다.
그리고 세가라는 특성상 문파보다 더욱 끈끈한 혈육의 관계를 보인다.
특히나 아버지 남궁수검은 막내인 남궁억을 유별히 예뻐했다.
남궁억은 정치, 경제, 교섭 등 가주가 되기 위한 재능들은 부족했지만 무에 대한 재능만큼은 뛰어났었다.
아마 이대로 성장한다면 미래의 남궁제일검이자 천하제일인은 남궁억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남궁억이 죽었단다.
이대로 아버지의 발걸음을 막지 못한다면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와의 전면전뿐이었다.
남궁강이 다급히 말했다.
“제갈세가. 우리들 표현대로 대갈세가인 자들입니다. 무공은 모르겠지만 머리 쓰는 것 하나만큼은 일품인 음습한 놈들이란 말이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체 말고 말해라.”
분노에 이글거리는 남궁수검의 눈치를 살피며 남궁강이 말했다.
“헌데 이렇게 허술하게 행동하겠습니까? 만약 저희를 경계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최소한 이런 방법은 아닐 겁니다.”
남궁강이 이어 말했다.
“우선 억이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만약 그때도 제갈세가의 짓이 확실하다면 그 전쟁의 선봉엔 제가 서겠습니다. 아버지.”
남궁강의 말에 남궁수검이 보고를 한 수하를 보았다.
남궁억을 호위하라고 남궁수검이 직접 붙여준 수신호위였다.
무공은 물론이거니와 절대라고 자신할 정도로 거짓을 고하지 않는 수하였다.
“우리 억이가 죽은 것이 확실하나?”
그런 수하가 남궁수검에게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억 공자님의 시신은 고이 모셔 오는 중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먼저 전하기 위해…….”
빠아아악!
갑작스런 남궁수검의 일격에 보고를 하던 수하의 신형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수신호위라는 놈이 감히 주인을 지키지 못했으니 당장 그 목을 쳐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허나 네놈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만약 제갈세가와 전쟁을 한다면 선봉에 서 주인의 복수를 해라.”
“존, 존명!”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임에도 수하는 자세를 바로하며 포권을 취했다.
이어 남궁수검은 남궁강을 봤다.
“대공자는 억이의 시신이 도착하는 즉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진위를 파악하라.”
남궁강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남궁수검은 이어 크게 외쳤다.
“총관!”
그의 부름에 한쪽에 조용히 물러나 있던 총관이 다가왔다.
“총관은 가문의 모든 이에게 나의 명을 전하게. 외유에 나가 있는 이도 예외는 아닐세.”
총관이 공손히 자세를 잡았다.
“명을 받듭니다.”
남궁수검이 크게 외쳤다.
“남궁억이 죽었다! 남궁세가는 범인을 찾는 즉시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복수를 이루리라! 이에 남궁의 모두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전쟁을 준비하라!”
뇌성이 치는 듯이 울부짖는 남궁수검의 목소리에 총관이 깊게 읍을 했다.
“기꺼이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
남궁세가가 분노에 전쟁을 준비할 때.
귀주의 삼도검문.
이곳도 남궁세가처럼 아들을 잃은 슬픔에 가주가 분노를 했다.
“분명 파검문의 짓이다! 내 반드시 그들을 벌하리!”
귀주의 파검문.
“감히! 감히이이! 삼도검문 따위가! 모두 전쟁을 준비하라!”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오해는 업보처럼 쌓여가 피로써만 그 관계를 풀게 만들었다.
이는 중원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이은 암살 사건들과 더불어 수시로 등장하는 비동은 문파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만약 적대세력이 더 강하다면 주변의 힘을 규합해서라도 대응하고자 힘을 썼다.
그렇지 못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인간의 탐욕, 그리고 무림인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무공과 복수이니 이러한 사태가 조용해질 기미는 없었다.
물론 무림맹이 나서서 이러한 갈등들을 관리하고자 노력하긴 했었다.
“모두 진정하시오! 무림맹에서 이를 통제하겠소!”
무림맹에서 파견된 무인들이 비동을 통제하면.
“거대문파들이 모든 것을 독식하고자 하는가! 중소문파는 무림맹의 일원이 아닌 것인가!”
욕심을 채우지 못한, 그리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문파들이 큰 분노를 표출했다.
심한 경우엔 무림맹의 파견인을 죽고 비동의 보물들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쯤 되자 무림맹도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무력단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워낙 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건들이 발생한 터라 3명에서 5명으로 쪼개진 무력단들이 보내졌다.
그리고.
그렇게 통제를 위해 파견된 무림맹의 무력단도 죽음을 맞이했다.
범인은 알 수 없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무림맹에선 또다시 무력단이나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게 죽음이 연이어지는 상황에서 무림맹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름의 재능을 인정받는 이들은 주원장의 부대에 백부장으로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고, 최근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해 극심한 인력난에 부딪히고 있는 무림맹이었다.
그렇게 무림맹은 극심한 유감을 표하며 죽음을 당한 무력단원의 가문들에서 자체적 조사를 실시해주길 권고했다.
이러한 무림맹의 태도에 자식을 무림맹에 보낸 정도 문파들이 분노했다.
인재들을 모집할 때는 각종 혜택 등을 강조하면서, 막상 사고가 나자 나 몰라라 하는 그들의 태도에 신물이 난 것이었다.
특히나 규모가 작은 중소문파의 입장에선 무림맹에 보낸 인재는 가문이나 문파 내에서도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그런 인재가 죽거나 불구가 되기라도 하면 그 가문과 문파의 미래가 크게 꺾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점점 탈맹을 하는 중소문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청이 묘책이라도 내어야 하나 그럴 수도 없었다.
남궁세가에서 대대적으로 전쟁을 공표하며 제갈세가로 진격했기 때문이다.
***
전쟁소식에 허겁지겁 가문으로 돌아온 제갈청은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가문의 기문진법들을 모두 작동시켜라!”
쿠구구구구------
하나의 성과도 같은 제갈세가의 거대한 장원이 흔들거렸다.
제갈세가 특유의 기문진법들이 작동된 것이다.
숨겨진 진법과 기관들의 함정은 다가오는 적들의 발을 붙잡을 뿐만 아니라 살상까지 가능하다.
제갈공명의 후예로서 타고난 두뇌와 그들만의 교육체계로 천재들이 많이 태어나는 제갈세가다.
그러한 천재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시킨 기문진법이다.
그 아무리 절정의 고수들이라도 파훼법을 모른다면 꼼짝없이 당할 방어체계였다.
제갈청은 눈을 좁히며 멀리서 우르르 몰려온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보았다.
“남궁의 가주가 직접 왔는가…….”
평소 대외활동을 자제하기에 구설수에 잘 오르지 않는 남궁의 가주지만 무(武), 특히나 검(劍)에 관해서는 항상 입에 오르는 인물이었다.
현 무림맹주 백청선과 함께 신검이라는 호칭을 겨뤘던 만큼 검에 대해선 지고한 경지를 가진 이였다.
그런 남궁수검이 직접 검을 뽑아들고 노려보니 제갈청은 절로 침음이 나왔다.
그 기세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젠장!”
제갈청은 작금의 상황에 극히 난감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저런 조사 결과 죽은 남궁억의 몸에서 제갈효의 무기와 무공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채의 살.
남궁억의 시신에 꽂힌 날카로운 무기였다.
학우선을 쓰던 제갈공명을 따라 부채와 관련된 무공이 발달한 제갈세가였다.
그런 제갈세가 내에서도 가주의 직계인 제갈효의 부채는 특이했다.
그 부채의 살들은 날카로운 검과 같아서 경우에 따라 베거나 찌르기가 가능했고, 때로는 암기처럼 사용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전 무림을 통틀어도 이러한 무기를 쓰는 이가 드물기에 제갈청은 이 조사 결과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제갈효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제갈효의 시신을 지키며 현장을 통제하던 무인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독의 흔적도 발견이 되었다.
제갈청은 이 보고를 듣자마자 뇌옥에서 스러졌던 무당도인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본인의 의심을 조사해줄 이가 없었다.
귀안지장은 가문의 소가주가 죽었다는 소식 때문에 급히 돌아갔기 때문이다.
또한 뒤숭숭한 무림의 분위기에 만독각주도 거두절미하고 무림맹을 떠나 가문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제갈세가 자체적으로라도 조사해야 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갑작스런 남궁의 출격에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갈청이 인상을 썼다.
그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그 어떠한 공통점이 있고, 무언가 모종의 음모가 있음을 직감했다.
마치 누군가가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한 판 속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지금 남궁과 자신들 간의 사태도 거대한 그림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의심의 대상도 추측이지만 나름의 심증이 있었다.
마교.
지금은 죽은 듯이 조용하지만 그들의 야망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아는 제갈청이었다.
다만 중간중간 일정하지 않은 불협화음 때문에 이러한 추측이 흔들리곤 했다.
대량의 실종과 독, 강시의 경우가 불협화음이었다.
그래서 제갈청의 이성은 지금 같은 시국에 남궁세가와 전면전을 하는 것은 절대 불필요한 행위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그리고 위기에 처한 가솔들을 지켜야 하는 그의 감성은 이성과 정반대되는 선택을 하게 했다.
제갈청이 두 눈을 서늘하게 떴다.
‘그래. 비록 누군가의 그림에 놀아나는 기분이지만, 우린 제갈세가며 나 또한 오대세가 일좌의 주인이다. 이 검에 미친 무식한 것들아!’
사라진 제갈효에 대해선 따로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당장은 저 무식한 검쟁이들이 가문의 식구들을 죽이는 것을 막아야 할 때였다.
제갈청이 사자후를 뱉듯 크게 외쳤다.
“모두 가족을 지키고, 저들에게 제갈세가의 무서움을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