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107화 (107/200)

기공술사 107화

제갈청은 접객실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편히 자리하시지요.”

그는 미리 준비해 놓은 찻잔 3개를 탁자 위에 놓았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진주언가의 귀안지장(鬼眼之匠)님과 당가의 만독각주님.”

제갈청이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이에 제갈청과 나이가 비슷한 언춘술은 정중했고, 보다 연배가 많은 당염은 다소 가벼이 인사를 마주 했다.

“반갑소이다.”

“오랜만이네.”

귀안지장 언춘술.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마른 체형에 장님처럼 흐릿한 눈을 가진 그는 진주언가 내에서도 강시술을 가장 잘 다루는 장로 중 하나였다.

만독각주 당염.

그는 독에 대해서라면 현 당가 내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들은 제갈청이 이 둘을 초청한 이유였다.

가벼운 인사들이 오가자 제갈청이 찻잔에 손짓했다.

“귀한 겁니다. 용정차 중에서도 상품이라더군요. 대화에 앞서 목부터 좀 축이시지요.”

제갈청의 공손한 권유에 두 문파의 인물은 점잖게 찻잔을 입에 대었다.

호록.

이들의 가벼운 입 넘김과 함께 은은한 향이 방안을 채웠다.

“귀한 차 고맙소이다.”

언춘술이 감탄을 하자 당염도 함께 공감했다.

“괜찮군.”

둘의 긍정적인 반응에 제갈청이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하시니 다행입니다.”

가볍게 차를 홀짝인 제갈청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곤 말을 이었다.

“바쁘신 분들을 모셨기에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시면서 봤던 뇌옥의 그것에 대해 고견들을 듣고자 합니다.”

언춘술과 당염이 동시에 침음을 흘렸다.

당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먼저 말하지. 독에 대해 살펴본 결과 상당한 극독이더군.”

제갈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한순간에 사람의 대부분을 녹일 정도의 극독이었다.

당염이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당가의 독이더군.”

당염이 불편한 듯 턱을 긁었다.

제갈청이 놀란 눈을 했다.

“당가의 독이라니요?”

당염이 고개를 흔들며 단호히 말했다.

“어떤 경우인지 나도 모르겠네. 당가의 독은 현 가주님의 체계 아래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으니.”

“흐음.”

제갈청이 눈을 좁히자 당염이 불편한 기침을 했다.

이에 제갈청이 과장되게 미소 지으며 손을 저었다.

“만독각주님의 진위를 의심하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관절 무슨 일인지 의아해서 말이죠.”

당염은 제갈청의 말에 대충 반응하며 팔짱을 끼었다.

그의 머릿속에 의심되는 부분들이 떠올랐지만 섣부르게 입에 담진 않았다.

‘설마 사라진 암각과 무각의 장로들인가.’

당천금이 죽었던 그날부터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던 두 장로와 세력들이다.

평소 전 당가주인 당천금을 극도로 잘 따랐던 그들은 가끔 중요한 외부 임무를 수행하곤 했었다.

당가에선 이들을 수색하는 데 있어 그러한 점들을 깊이 고려했었다.

그럼에도 그 흔적이 나타나지 않자 일부에선 그들의 사망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당염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어디 가서 쉽게 봉변당할 이들이 아니다.’

당가의 여러 부서 중 암각과 무각은 만독각과 더불어 당가 최고의 정예들이 있는 곳이다.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생존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고 설마하니 이딴 짓을…….’

당가가 정파이긴 하지만 독이라는 무학의 특성상 매우 비인도적인 연구들도 존재한다.

특히 강해져야 했던 과거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연구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독으로 사람을 녹인다든지.’

당염이 표정을 감추기 위해 차를 홀짝였다.

‘아니면 독인이 아닌 자의 신체에 강제로 독을 주입시킨다든지.’

마치 뇌옥의 무언가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것들을 당가는 가능케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방법들은 당가 내에서도 극히 소수만 아는 극비 정보였다.

천하의 모든 독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만독각주인 자신은 물론이고.

‘무각주 당충수 장로인가…….’

당가의 훈련과 모든 무공들을 관리, 담당하는 무각의 각주라면 이런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싶었다.

당염은 제갈청을 태연하게 마주 봤다.

무공도 정치도 노회한 당염은 사람을 꿰뚫는 듯한 제갈청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았다.

“귀안지장님께선 의견 있으십니까?”

만독각주 당염이 조용히 입을 다물자 제갈청이 화자를 돌렸다.

귀안지장 언춘술은 퀭한 시선을 제갈청에게 보내며 입을 열었다.

“먼저 강시와 관련해서 우리 진주언가가 높은 지식을 가진 것은 맞으나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안다고 하진 않겠소.”

제갈청이 미소를 지었다.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강시에 관해서 귀안지장님이 천하제일임은 민간인들도 아는 사실이지요. 그저 경청하겠습니다.”

가볍게 띄워주는 제갈청의 언사에 언춘술이 내심 흡족해하며 말했다.

“단편적인 육편들밖에 없어 제대로 확인하긴 어려웠으나 내 소견으로는 새로운 방식의 활강시로 보이오.”

“새로운…… 방식이요?”

강시술이라고 함은 작게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법부터, 크게는 잠시나마 혼을 붙잡아 생전의 모습을 지키는 방법 등 다양했다.

대체로 이러한 방법은 사이하다고 하여 정파에선 배척됨이 일반적이나 진주언가는 당당히 정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거대문파로서.

그 이유는 황실과 정도문파 모두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죽음과 가까이 있는 무인들은 타지에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는 군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정도무림인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죽은 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는 필요였다.

전장의 시체에서 나오는 시독(屍毒)의 위험 등을 차치하고서도 고향으로 데려 가야하는데서 오는 필요였다.

천리 길 타지에서 고향까지 돌아가게 된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에 이들은 시신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원했다.

그 결과가 진주언가였다.

언가권으로 유명한 작은 문파이기도 했지만, 이들은 시신을 다루는 재주 또한 뛰어나 그와 관련된 일들을 도맡아 해왔다.

황실과 무림, 많은 곳에서의 필요에 화답하다 보니 자연스레 진주언가는 정도문파로 인정받고, 오대세가에 버금가는 세력을 구사하게 됐다.

그렇게 작금에 와서는 이런 시신과 강시에 관한 지식을 독점하고 이 분야 최고를 유지하는 게 진주언가였다.

그런 진주언가 내에서도 최고라는 의미로 장인(匠)이라는 별호가 끝에 들어간 귀안지장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귀안지장의 입에서 ‘새로운 방식’이라는 표현이 나왔으니 제갈청이 놀란 것이었다.

제갈청의 놀람에 언춘술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그렇소. 진주언가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에 특별한 약제처리와 부적을 이용하는 것이오.”

제갈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진주언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었다.

“헌데 내가 들은 정황 진술들과 눈으로 확인한 것은 진법, 침술 등 복합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 같더이다. 이는 현 진주언가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오. 심지어 독까지 있으니.”

제갈청의 미간이 좁혀졌다.

“현재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혹 그 말을 분석하면 이 방법과 시전자를 알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제갈청이 언춘술의 표현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내 묻자 언춘술이 천천히 대답했다.

“과거 우리 언가에서도 혼을 붙잡을 방법으로 진법을 연구했었다오. 하지만 포기했지. 그 방법이 매우 까다롭고 불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오.”

언춘술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언가에선 끊임없는 연구와 개선의 결과로써 지금은 혼을 붙잡기 위해 간편한 부적을 사용하오.”

제갈청이 잠시 침묵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뇌옥의 그것은 진주언가도 기피하는 진법에 의해 활강시가 되었다?”

언춘술이 말을 덧붙였다.

“거기에 내공을 붙잡는 특별한 침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질 특수한 약제들이 쓰였을 것이오.”

“이러한 지식을 가진 곳을 혹시 짐작하십니까?”

이에 언춘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기론 없소. 강시는 좀 미흡해도 혼과 관련돼 일가견이 있던 곳이 혈교였지만 그조차도 이미 사라졌다 들었으니.”

제갈청은 침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사건이 복잡했다.

살아있는 신체 안에 독을 품게 하는 방법은 현 강호에서 당가밖에 답을 내놓을 수 없기에 당가를 초청한 것이었다.

즉, 방식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했는데, 의외로 독의 출처가 그들도 모르는 당가의 독이 맞는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생전 사내에게서 느꼈던 강시와의 유사점을 확인하고자 진주언가를 초청한 것이었는데 그 방식이 진주언가도 포기한, 그리고 새로운 방법이란다.

‘복잡하군.’

제갈청이 차를 마시며 생각을 이었다.

‘최근 비동 때문에 발생하는 분쟁들도 골머리가 아픈데 새로운 사건이라…. 심지어 범인을 특정할 수도 없는.’

제갈청이 당염을 보았다.

‘무언가 더 말해줄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강요할 순 없겠지.’

무림맹의 창설과정에서 배척당했던 당가였다.

이렇게 된 것엔 제갈청의 생각이 들어가 있었다.

‘당천금은 욕심이 많은 자였다. 분명 무림맹주에 신검님이 되는 것에 큰 반기를 들었을 터.’

제갈청은 신검 백청선이 무림맹주가 되고 자신이 군사가 되어야 무림맹이 올바른 길로 간다고 믿는 이었다.

누군가는 잘못된 신념이라고, 또는 오만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제갈청은 잘할 자신 있었다.

그렇게 신검과 자신을 주도로 꾸려질 무림맹에 방해가 될 이들은 의도적으로 배척한 것이었다.

당가에게 무림맹 회합에 대한 소식도 의도적으로 늦게 알렸었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당가가 무림맹에 가진 불만이 적진 않을 것이라 제갈청은 짐작하고 있었다.

제갈청은 당가주가 바뀌었다는 것을 듣고는 지난 3년여간 무림맹에 초청을 했었다.

하지만 현 당가주는 불안한 민심과 내실을 다잡아야 할 때라며 정중히 사양을 해왔었다.

그런 당가에서 이번의 도움 요청엔 가주 다음의 권위를 가진 만독각주를 보낸 것이 의외였다.

겉에서 보이기로는 명백한 그들의 호의였다.

‘현 당가주는 속이 없는 이인가, 아니면 능구렁이인 것인가.’

제갈청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능구렁이 같은 만독각주가 괜한 인물을 가주로 추대했을 리는 없지. 그 아무리 전 가주의 직계라고 할지라도.’

제갈청이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어리숙했던 소가주가 가주가 되는 편이 다루기 쉬었을 터인데. 아쉽군.’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는 것 외에는 큰 소득이 없게 된 제갈청이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오늘의 담화는 이쯤 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리고 먼 길 오신 두 분을 위해 회포를 풀 작은 연회를 준비했으니 두 분께서는 크게 사양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독각주 당염과 귀안지장 언춘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제갈청이 마무리를 하듯 천천히 이어 말했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것도 강시라는 존재와 독에 말이죠. 그래서 두 분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범인을 제대로 밝혀야 무당파에 정당한 추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갈청이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뇌옥의 출입에 대해 미리 말을 해놓겠습니다. 언제든지 편히 가셔서 조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무림의 안녕을 위해 한 배를 탄 사이 아니겠습니까.”

제갈청이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말을 마무리했다.

그 모습에 당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차가운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예의 바르고 정중한 것 같지만 제갈청의 몸 안엔 수백 마리의 구렁이가 살고 있음을 아는 당염이었다.

그가 느끼기에 이런 유형이 무력만 강한 이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 까다로웠다.

지금도 은연중 민간인의 대량 학살에 당가의 독이 영향을 끼쳤음을 주지시키는 거였다.

만약 당가의 독에 대한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무당파에게 추궁해야겠다고 하는 것처럼 당가도 유념하라는 의미가 있었다.

당염이 불편한 속마음을 숨겼다.

‘그간 가주님이나 당가칠영 등 젊은이들과 지내서 그런가. 고작 이 정도 도발에도 불편함이 느껴지는군.’

혈기왕성한 청년일 때야 무(武)로써 갈등을 해결했지만 이렇게 노회한 이들 간엔 말로 해결하는 법.

“당가는 은원에 대해선 10배로 갚네. 이렇게 당가의 독을 악용한 이를 찾는다면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네. 무조건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말이지.”

당가의 독이라고 밝힌 이상, 독에 관한 부분은 당가가 책임질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혹여 그 범인이 당가인이라면 무림맹의 법도가 아닌 당가의 법도로 처리하겠다고, 그러니 추후에 간섭하지 말라고 미리 공표한 것이었다.

이것이 당염이 선제적으로 당가의 독이라고 밝힌 이유였다.

이러한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제갈청이 웃었다.

“물론입니다. 당가의 철저한 은원을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가의 철저한 독의 관리수준을 제가 모르겠습니까. 당가의 독이 왜 외부에서 등장한 것인지는 조사하다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그럴 것이네.”

서로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오가는 둘의 뜨거운 시선에 장내의 공기가 일렁이는 듯했다.

그때였다.

“군사님. 급보입니다.”

접객실의 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제갈청이 자리에 일어나 공손한 자세를 잡았다.

당염과 언춘술도 눈치껏 몸을 일으켜 세웠다.

“좋은 차 고맙네. 먼 길 왔더니 피곤하군.”

“나 또한 좋은 차 고맙소. 군사 덕분에 맨 시체만 만지던 놈이 바깥 공기도 쐬고 좋소.”

둘은 적당한 인사와 함께 접객실 문을 열고 나갔다.

완전히 그들이 떠난 후 군사부의 일원이 제갈청에게 다가와 복잡한 방식으로 묶어진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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