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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06화 (106/200)

기공술사 106화

담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가와 담가의 피해에 대해서 강하게 말을 해야겠군요.”

호위대장은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한 담소연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담소연이 당차게 이어 말했다.

“듣기론 요즘 무림맹의 무인들이 오라버니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던데. 이번 기회에 오라버니에게 힘을 실어 줄 수도 있겠어요.”

말을 하던 담소연이 인상을 썼다.

“헌데. 죽은 병사들의 복수는 어찌합니까.”

그녀의 말에 호위대장이 씁쓸하게 혀를 찼다.

“가슴이 미어지지만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아가씨께선 그래왔듯 죽은 병사들의 장례와 남은 가족들을 신경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담소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환란의 시대다.

어떻게 살아갈지보다 어떠한 죽음이 좋을지를 고민하는 시대.

특히나 병사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검림(劍林)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런 병사들의 고민 중엔 입신양명도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고민은 소중한 가족을 지키는 것에 있었다.

담가의 사병으로서 담가에 모든 적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담가는 이들을 확실하게 책임져왔다.

살아도, 죽어서도.

그 결과가 백 년이 넘도록 담가를 신뢰하고, 대를 이어 담가의 사병을 해오는 병사들이었다.

호위대장도 대를 이어 호위 업무를 해오고 있었다.

담소연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가문의 책임감을 느꼈다.

권문세가의 아가씨로 공주처럼 편히 지내왔다가 최근 몇 년간 강하게 지도자 수업을 받은 그녀였다.

그래서 호위대장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담소연이 고운 입술을 힘주어 깨물고는 크게 외쳤다.

“저자를 단단히 포획하라! 무림맹에 넘길 것이다! 그리고 죽은 병사들을 고이 모셔라! 담가의 법도에 따라 죽은 병사들의 가족을 책임질 것이고, 성대한 장례를 치를 것이다!”

“명을 따릅니다!”

담소연의 말에 지친 병사들의 기세가 불타올랐다.

***

쾌쾌한 냄새가 풍기는 어두운 공간.

시야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화롯불들을 제외하고는 외부의 빛이 차단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흑녹색의 옷을 입은 한 노인이 탁자 위에 올려진 무언가를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체였다.

노인은 시체의 하단전과 상단전에 각종 침을 찔러 넣고 독을 주입하고 있었다.

노인의 곁에는 지금과 같은 시체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엔 대침이 수없이 찔러져 있었고, 어떤 것은 약탕에 잠기어 있기도 했다.

그때 노인의 뒤로 누군가가 스르륵 나타났다.

흑색의 암행복을 입은 사내였다.

어둠에 동화된 탓에 서늘한 두 눈동자만 흔들거리는 화롯불 속에서 번들거렸다.

사내가 말했다.

“실험체 10호를 잃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노인의 손이 멈추었다.

노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에 따라 깊은 주름들과 상처들이 있었다.

몇몇 부위엔 화상 등 괴상한 상처들도 있었다.

그런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잃었다고? 도주한 실험체를 금방 찾아올 줄 알았는데?”

노인의 말에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더군.”

“어떤 게?”

“담가의 정예병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란을 들었는지 남경의 관군들이 몰려오더군.”

노인의 얼굴이 귀찮음과 피곤함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그대라면 능히 모든 것을 죽여서라도 해결했을 것인데?”

이에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웬 영물 하나가 숨어 있는 나를 끊임없이 노려보는데, 쉬이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영물……?”

“그래. 만약 무리해서 일을 처리하고자 했으면 했겠지만 그럴 필요까진 있었나 싶었다. 그대가 말하길 제때에 주기적인 조치를 받지 못하면 실험체가 녹아내릴 것이라 하지 않았나.”

노인의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그래서 실험체의 성능은 어땠지?”

질문을 하는 노인의 얼굴에 호기심이 서렸다.

사내는 시종일관 덤덤하게 말을 했다.

“뒤늦게 도착한 탓에 모든 것을 보진 못했지만 많은 민간인을 죽였더군.”

“얼마나?”

사람이 죽었다는데도 노인은 오히려 밝은 표정을 지었다.

“거의 천에 달하는 민간인이 죽었다는 것 같더군. 그리고 무공을 익힌 병사들도 여럿 죽이고 말이지. 아! 초절정의 경지로 보이는 무인 하나에게도 큰 부상을 입혔더군. 독의 성능이 대단했다.”

사내의 말에 노인이 클클거리며 즐거운 듯 웃었다.

“당연하지! 누구의 독인데. 그나저나 실패작이라 생각했건만 꽤나 쓸 만하지 않나.”

즐거워하는 노인을 지켜보며 사내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실험체는 무림맹으로 전달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무림맹에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겠지.”

“그런고로 더는 추적이 어려운 상태다.”

노인이 주름진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곤 손을 휙휙 저었다.

“됐다.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것이야. 다만 마교가 이러한 짓을 했다고 양념을 조금 뿌렸으면 좋겠구만.”

이에 암행복의 남자가 수긍했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와서 부하들에게 그러한 지시를 내려놨다.”

노인이 놀란 눈을 하더니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망한 너희들을 무시한 게 조금 민망해지는군.”

시종일관 차분하던 사내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단어의 선택에 조심을 했으면 좋겠다. 교주님께서는 새로운 하늘을 담기 위해 잠시 물러났을 뿐이다.”

사내의 불편한 기색에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아아. 비꼴 의도는 없었어. 다만 서로의 염원에 가까워지는 상황이 반가워서 잠시 들떴을 뿐이야.”

노인의 순순한 사과에 사내가 짧게 끄덕였다.

“그래. 실패작이라고 판단했던 실험체의 성능이 제법임에 나도 놀랐다. 이대로라면 짧은 시일 내에 모두의 염원을 이룰 수 있겠지.”

“큭큭. 그래. 모두의 염원. 그나저나 흑화 그들에게서 연락은 없나?”

“안 그래도 흑화에게서 새로운 소식이 왔다. 화산파의 젊은 제자인데 혼일강천체 대법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에 노인이 반색을 했다.

“좋은 소식이로군. 정말 우리의 대계가 멀지 않겠어.”

“그래. 그래야지.”

처음으로 암행복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

무림맹 하남 낙양지부.

무림맹 군사 제갈청은 집무실에서 하나의 서신을 펼쳤다.

외유에 나갔다가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상황이었다.

‘민간인을 대학살한 범인이 무당파의 도인인 것 같다고?’

제갈청은 인상을 썼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정파인 중에서 주화입마에 빠져 살생을 벌이는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 이유는 정도무공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급히 집을 쌓아 올리는 마공과는 달리, 정파의 무공은 터를 잡는 데만 족히 수십 년도 걸리는 매우 느린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당파의 무공은 특히나 그랬다.

대성하기는 어렵지만 대성하게 되면 그 누구보다 고강한 내공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절대고수가 된다.

제갈청은 조사관이 놓고 간 서신을 같이 펼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그런 무당파에서 무려 장로씩이나 되는 인물이 범인이라고……? 심지어 독을 사용해?’

그는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인상을 썼다.

담가의 서신 말미에 담가 병사들의 희생과 무림맹의 책임에 대해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제갈청이 불편한 침음을 내었다.

만약 담가의 병사들이 그 마을을 지나지 않았다면 더 큰 민가의 피해가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주원장의 군사가 담가의 장자였던가.’

제갈청이 인상을 썼다.

최근 주원장이 무림맹에서 파견한 대형문파의 인사보다 중소문파의 인사를 더욱 중히 쓰고 있었다.

이에 제갈청은 주원장이 무림과 무림맹을 견제한다고 판단하고, 맹에 소속되어 파견 간 이들에게 소극적 행동을 지시했었다.

헌데 직접적이진 않으나 서신에서 그러한 부분들을 은근히 꼬집으니 입 안이 썼다.

‘호부견자 없다던가. 장자만 특출난 줄 알았더니……. 담소연? 쯧.’

제갈청은 서신을 접고는 집무실을 나왔다.

‘뇌옥을 살핀 후 담가엔 적당한 행동을 취해야겠군.’

그는 생각을 정리하며 곧장 무림맹 지하뇌옥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허락된 이가 아니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무림맹 지하뇌옥은 무림과 관련된 흉악범죄자들만 잡아 놓은 곳이었다.

또한 현철이 가미된 두꺼운 철창과 문들은 절정의 검기로도 뚫을 수 없는 강도를 자랑했다.

철컹.

얼굴이 곧 통행패와 다를 바 없는 제갈청이기에 옥지기들이 곧장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지하뇌옥의 어두움이 순식간에 제갈청을 덮쳤다.

뇌옥 안을 비추는 등불의 불빛에 제갈청의 눈이 적응될 때 그에게 조사관이 빠르게 다가왔다.

조사관은 제갈청에게 인사를 하고는 곁에 붙어 길을 안내했다.

“조사는 어찌 되었나? 무당파의 장로가 확실하나?”

제갈청이 근엄하게 묻자 조사관이 재빠르게 답했다.

“인명록을 살펴본 결과 무당파의 실종된 장로가 맞는 듯합니다.”

“허어…….”

제갈청의 미간이 좁혀졌다.

‘수양이 높은 무당파 도인이 민간인들 학살했다?’

제갈청이 학우선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살랑거렸다.

“왜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있나?”

조사관이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조사관의 심각한 말에 제갈청은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캬아악! 죽여버린다! 죽일 것이야!”

“크크큭. 무림맹의 개가 잘도 고고한 척을 하는구나.”

“내가 만약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반드시 네놈의 자식들을 찢어 먹어 줄 것이야!”

뇌옥을 지나 걸을 때마다 그곳에 갇힌 이들이 제갈청을 신랄하게 저주했다.

쾌쾌 묵은 악의가 지하뇌옥 특유의 공기와 섞여 불쾌감을 자아냈다.

조사관은 그들의 악의와 기세에 살짝 움찔거렸다.

하지만 제갈청은 여유롭게 학우선을 흔들거리며 그들에게 하나하나 시선을 주며 걸었다.

그렇게 지하뇌옥의 쾌쾌함에 지하 특유의 눅눅함이 전신을 물들일 즘 제갈청은 뇌옥 깊숙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갈청은 철창 너머에 쇠사슬로 전신이 묶인 사내를 봤다.

잘린 두 팔과 지져진 흔적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또한 봉두난발한 탓에 얼굴이 명확히 보이진 않으나 제갈청의 기억 속에 짧게 남아 있는 무당파의 도인이었다.

“흡!”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피려던 제갈청이 다급히 소매로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독…….”

조사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이었다.

“조사과정에서 저자가 발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 죽어가던 이가 어디서 그런 힘이 있던지…… 여하튼 제압하는 과정에서 저 자에게 크게 생채기가 났었는데, 그곳에서 독이 흘러 나왔습니다.”

제갈청이 조사관의 말을 들으며 사내를 유심히 관찰했다.

조사관 말처럼 중년인에겐 각종 상처들이 있었고, 개중 조사관이 말한 큰 생채기가 눈에 띄었다.

그곳엔 다급히 불로 지져 상처를 막은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시체 같이 어둡고 창백한 혈색과 흐릿한 홍채의 눈동자가 제갈청의 눈길을 끌었다.

한참을 관찰하던 제갈청의 눈이 좁혀졌다.

‘설마…… 활강시는 아니겠지……?’

수만 가지의 책을 읽은 제갈청이다.

그의 머릿속에 어느 한 잡서에서 읽었던 강시에 대한 인상착의가 스쳐지나갔다.

그때였다.

파각!

파아앗!

시체처럼 조용히 있던 사내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더니 입 등의 구멍들에서 독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물러나게!”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온 독이 그대로 사내를 되 덮쳤다.

“헛?!”

조사관이 놀람에 눈을 크게 떴다.

제갈청 또한 놀라움에 말문이 막혔다.

사내가 녹아내린 것이었다.

뇌옥이 조용했다.

흔적처럼 남은 사내의 거죽들과 독의 기운이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제갈청이 소맷자락 아래 감춰진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곤 말했다.

“당가와 진주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네. 그들에게 내 이름으로 도움을 청하게.”

뇌옥을 근근하게 밝히는 등불이 제갈청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지러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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