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04화
무아의 말에 마락이 흥분한 듯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크하하! 알겠습니다!”
쾅!
무아의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마락은 거칠게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에 무아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방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끼익.
무언가 마찰음이 들린 후 돌아온 무아의 손엔 망치가 들려있었다.
망치는 어두운 밤에 보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흑색이었는데, 담금질을 하는 면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가지.”
담소연은 무아를 따라서 집을 나섰다.
“무아 님!”
무아처럼 길진 않지만 상당한 길이의 수염을 가진 사내들이 다가왔다.
담소연은 무아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봤다.
마치 거푸집으로 찍어낸 듯 똑 닮은 사내들에게서 차이점이라고는 수염뿐이었다.
‘이 마을 사내들의 나이는 수염의 길이로 파악하면 되려나.’
나이에 따라 수염의 색이나 길이가 다르다는 점만 빼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운 마을이었다.
“무아 님께서 직접 무기를 만드신다고요?! 갑자기 왜……?”
한 사내가 놀란 눈을 하며 무아와 담소연을 번갈아 봤다.
그 시선에 무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옛날에 말했던 담반후를 기억하나?”
“그럼요. 우리들의 글 선생 아닙니까.”
둘의 대화에 담소연이 놀란 눈을 했다.
‘고조할아버지가 이들의 글 선생?’
이내 담소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아라는 어르신이 150년도 훌쩍 넘은 과거의 인연을 경험한 것이야 이래저래 그렇다 쳐도, 눈앞의 사내들까지 그렇다는 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100살이 넘을 정도로 장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귀함인데 여기 모인 사내들이 모두 그렇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저기…, 혹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어찌하여 제 고조할아버지를 마치 직접 뵌 것처럼 말씀하시는지……?”
의아함 가득 품은 담소연의 눈빛에 사내가 도리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200살도 안 먹었으니까?”
“예?!”
뒤로 까무러치려는 담소연의 놀람과 별개로 사내와 무아의 표정은 평온했다.
사내가 말했다.
“그나저나 시간 참 빠르네요. 글 선생이 벌써 고조할아버지 소리를 듣다니요.”
“허허허. 그러니까 말이다.”
담소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무언가 자신의 상식이 부정 받는 듯한 괴리감에 혼란스러웠다.
간혹 천하를 호령할 수준의 무인들이 지고한 내공으로 장수한다는 말은 듣긴 했었다.
‘설마 이들 모두 그런 고수들인 건가…….’
담소연은 호위대장과 같이 올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초절정의 경지이자 세상 경험이 많은 호위대장이라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소연은 침을 꼴깍 삼키며 무아를 봤다.
“혹… 무아 님께선 나이가 어떻게….”
너무나 놀람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200살이라는 저 사내가 무아에게 극히 존칭으로 대하고 있었다.
무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나이를 센 지가 오래인지라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한 300년쯤 살았으려나.”
“…….”
담소연은 생각을 포기했다.
진정 사실인지,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등 입안에 맴도는 말들을 공허하게 삼켰다.
그리고 순순히 수긍을 했다.
아무래도 그게 정신건강에 편할 것 같았다.
“그렇군요…….”
해탈한 듯한 담소연의 표정을 뒤로하고 무아가 사내에게 말했다.
“천하제일인의 무기를 의뢰한다는군.”
무아의 말에 사내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호오. 천하제일인의 무기 말입니까? 재밌겠군요. 그럼 어떤 무기를 만들 계획이십니까?”
무아는 대답 대신 담소연을 봤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무공을 아느냐?”
담소연이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적수공권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여러 자연의 기운들을 이용하는 기공가의 무공을 사용합니다.”
“아 천하제일인이라는 이가 기공가문이었습니까?”
사내가 아는 체를 하자 무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들에 담소연이 참았던 질문을 했다.
“혹시 기공가문도 인연이 있으신 겁니까?”
대답은 무아에게서 나왔다.
“있다마다. 여기 터에 진법을 설치해준 것이 기공가이거늘. 어찌 모를까.”
“예?!”
담소연은 자신의 뺨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이곳에 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놀랄 일만 가득하니 살짝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적수공권이라면 권갑이라도 만들어야 할까요?”
사내의 말에 무아가 다시 담소연에게 물었다.
“혹 생각해 놓은 무기가 있더냐?”
이에 담소연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정확히 그런 건 없지만 대자연의 기운을 다루는 천 오라버니에게 도움이 되는 무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아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고민을 했다.
오래지 않아 고민을 끝낸 무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재료는 어딨지?”
담소연은 무아의 건물 앞에 내려놓은 보따리들을 가리켰다.
“현철 사십 근이에요. 그리고 운철도 함께요.”
사내가 현철의 양에 놀란 눈을 했다.
“세상에. 이 정도 현철이면 작은 마을을 통으로 사겠네요. 그리고 운철이라니?!”
무아 또한 눈을 크게 떴다.
“담가의 배포가 크구만. 그리고 현철이 이렇게 많다면 이리저리 과감하게 시도해 볼 수 있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담소연이 조심히 말했다.
“보수를 나름 챙겨오긴 했습니다만 부족하면 가문에 말해 더 챙겨오겠습니다.”
담소연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열었는데, 오색찬란한 보석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제값만 받는다면 가져온 광물들에 준하는 귀보들이었다.
오랜 시간 대장장이 일을 하며 귀보의 가치를 아는 무아였지만 담소연을 향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넣어둬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담반후 그 친구와 우리는 인연은 꽤나 깊다. 게다가 기공가와도 관련된 의뢰이니 옛 인연들의 보답 정도로 생각하고 값을 치르지.”
“그래도…….”
담소연이 머뭇거렸다.
세상을 살며 제대로 된 것을 얻고 싶다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고 배운 그녀였다.
그 눈빛을 읽은 무아가 손사래를 쳤다.
“귀찮게시리 두말하게 하지 말거라. 여기 있는 재료를 다룰 수 있음으로 충분하다.”
단호한 무아의 어투에 담소연이 쭈뼛거리며 보석들을 정리해 품에 다시 넣었다.
크르릉.
담소연에게 목소리를 높인 무아를 보며 백호가 옆에서 작게 으르렁거렸다.
어느새 거대한 몸체로 돌아온 백호였다.
그 모습에 무아가 클클 거리며 웃었다.
“아주 든든한 호위를 뒀구만.”
담소연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자신을 위해주는 백호를 쓰다듬었다.
무아는 백호에게서 관심을 거두고는 크게 외쳤다.
“어찌 됐든 간만에 재미가 있겠구만. 가자!”
“예!”
활력 넘치는 무아와 사내의 걸음을 담소연과 백호가 뒤따랐다.
***
석 달.
담소연이 무아의 제작을 기다리며 이곳 촌락에 머무른 기간이었다.
무아의 전용 대장간에선 연신 밤낮 가리지 않고 소란이 일었다.
무슨 작업을 하는 것인지 출입금지인지라 볼 순 없었지만,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지기도 하고 지진이 나고 태풍 같은 바람이 불기도 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의 시간을 촌락의 사람들과 주로 보냈다.
특히 아낙들과 주로 어울렸는데, 덕분에 석 달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이곳 촌락엔 특별한 이름은 없었으며 이곳에 지내는 이들 모두는 불을 다룰 줄 알았다.
그래서 무아가 무기를 만드는 곳에 남녀의 구분 없이 최고의 실력자들만 소집돼 갔다.
무기제작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각자의 할 일을 했는데, 이곳 아낙들이 담소연에게 장신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담소연도 아낙들과 함께 비녀 같은 장신구를 만들면서 노는 것을 즐거워했다.
‘나중에 천 오라버니 줘야지.’
담소연은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장신구를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허리춤에 찰 수 있는 수실 달린 나비모양의 장신구였다.
그때 멀리서 촌락의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그 필두엔 무아가 있었다.
그의 옆엔 마락이 얇고 길쭉한 함을 들고 있었다.
담소연은 부탁했던 무기가 완성됐음을 직감하고 반갑게 일어섰다.
“다 되신 겁니까?”
기대 가득한 담소연의 표정에 촌락의 이들이 껄껄 웃었다.
이들은 담소연의 이런 순수한 모습을 기꺼워했다.
무아도 마주 미소 지으며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락이 담소연에게 함을 내밀며 그 뚜껑을 열었다.
파앗!
눈이 부시진 않으나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담소연의 눈을 좁히게 만들었다.
담소연은 집중해서 함 안의 내용물을 봤다.
“부채?”
현철 특유의 흑색 바탕에 금빛으로 문양 새겨진 부채가 있었다.
학우선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 접고 피는 부채였다.
무기를 만들어주길 바랐는데 학사들이나 쓸법한 부채가 나오자 담소연의 눈이 당황에 물들었다.
물론 아름다워 보이긴 했다.
“흘흘흘.”
담소연의 놀람에 무아가 낮게 웃고는 부채를 쥐어 들었다.
“날붙이가 아닌 부채라 놀랐느냐.”
“예…….”
담소연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럼 보거라.”
무아가 부채를 ‘촤악’소리가 나게 펼쳤다.
쿠루루루.
그러자 땅이 흔들렸다.
잔잔한 진동을 느끼며 담소연이 놀란 눈을 했다.
무아가 가볍게 부채를 흔들었다.
휘이잉.
그러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물러나라.”
무아의 말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무아는 빈 공터를 향해 부채를 던졌다.
파라라라랏.
부채가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회전하며 날아갔다.
그리곤 나무 여럿을 베어 넘기더니 다시 무아의 손으로 돌아왔다.
“후우.”
무아가 가볍게 호흡을 정리했다.
담소연은 연신 놀란 눈으로 무아를 보았다.
무아가 말했다.
“기공가가 대자연의 기운을 다룬다는 것은 우리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큰 신경을 썼다.”
무아의 손짓에 물러나 있던 마락이 다가와 무아에게서 부채를 받아 정리했다.
무아가 말을 이었다.
“내공의 민감도을 극대화 시키는 것은 물론, 어떠한 기운을 담든 버틸 수 있도록 강도를 극대화 시켰다. 좀 전의 시연은 내가 내공으로 가볍게 흉내를 내본 정도다. 기공가주가 사용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도 궁금하구만.”
담소연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까지 부채라고 만만히 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아가 가볍게 시연한 것만 봐도 엄청난 무보라는 것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담소연이 공손하게 읍을 하자 무아가 껄껄 웃었다.
“기공가주라는 이에게 추후 시간이 되거든 방문하라 일러주면 좋겠구나. 이거 참 만들고 보니 그가 무기를 다루는 것을 직접 보고 싶어서 말이지.”
무아의 말에 함께 작업했던 이들이 격하게 공감했다.
“반드시 전할게요.”
담소연이 밝은 미소로 답했다.
그때였다.
“아가씨!”
촌락의 입구에서 갑주를 입은 병사가 다급히 뛰어왔다.
그를 보며 담소연이 놀란 눈을 했다.
호위로 함께한 이들이 아닌 아버지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 가문의 사람입니다.”
담소연의 말에 경계심을 갖던 이들이 물러났다.
덕분에 담소연이 있는 곳까지 곧장 다가온 병사가 가벼운 경례와 함께 말했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병사는 급한지 곧장 보고를 했다.
“가주님께서 아가씨의 귀환을 명하셨습니다. 호위들은 진법 초입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입니다.”
병사는 말과 함께 적색의 패를 내밀었다.
이에 담소연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같은 시국에 자신의 외유를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눈앞의 적색 패는 담가 내에서 시급을 요하는 급보와 중요도를 나타내는 용도였다.
담소연이 무아를 돌아봤다.
이에 무아가 따스한 미소로 말했다.
“가게. 때를 맞출 수 있었어 다행이구만.”
담소연은 주위를 둘러봤다.
짧은 시간 함께 보낸 마을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들, 언니들, 다음에 꼭 다시 놀러 올게요.”
“꼭 그래야 해.”
아낙들이 아쉬움에 담소연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왜 마누라는 언니라고 부르면서 우리에겐 아저씨….”
사내들이 담소연의 호칭에 가벼운 투정을 부렸다.
이에 담소연이 혀를 삐쭉 내밀었다.
“그 얼굴들로 오라버니라고 요구하는 것도 양심이 없네요.”
“하하하!”
담소연의 애교스런 태도에 사내들이 투정을 잊고 거친 수염을 나풀거리도록 호탕하게 웃었다.
담소연이 무아에게 정중히 읍을 했다.
“어르신.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부득이 곧장 떠나야겠네요.”
“그래. 조심히 가거라.”
“네.”
담소연은 부채와 짐들을 챙기곤 등을 돌렸다.
“호야 가자!”
마을 사람들의 인사를 받던 백호가 담소연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와 몸을 숙였다.
담소연은 능숙하게 백호의 등에 올라탔다.
“앞장서겠습니다.”
익숙한 듯 담소연과 백호의 행동을 기다리던 병사가 곧장 앞장서 뛰었다.
병사가 경공술을 펼쳐 순식간에 나아가자 백호가 가벼운 발돋움으로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