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03화
“백호야. 찾을 수 있겠지?”
백호의 등에 올라탄 담소연이 백호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더욱 거대해진 백호의 덩치를 쓰다듬기엔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그녀의 손이지만 백호는 기분 좋은 콧소리를 냈다.
그르르릉.
담소연은 그런 백호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담가를 부탁한다는 천애랑의 당부 때문인지 백호는 종종 담가로 놀러 왔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몰래 챙겨놨던 영약들을 백호에게 간식으로 주곤 했다.
이렇게 빼어난 영물이 가문과 자신을 지켜줌이 고마웠고, 백호를 보고 있자면 천애랑이 생각났기에 더욱 잘 챙겨줬다.
그 덕분인지 이제는 경공을 펼치지 않으면 올라타기 어려울 정도로 백호의 덩치가 거대해졌다.
담소연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숲속을 나아가던 백호가 돌연 절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백호가 절벽에 코를 킁킁거렸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었지만 백호는 마치 무언가가 있는 듯 행동했다.
이에 담소연이 품속의 단검을 살며시 쥐었다.
하오문주를 통해 천애랑이 선물로 보내준 단검이었다.
송소걸을 살렸다는, 그리고 단체로 기약 없는 폐관수련에 들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온 단검이었다.
천애랑을 떠올리자 담소연은 절로 두려움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백호가 절벽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찌 반응할 겨를도 없이 절벽에 부딪힐 것 같자 담소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런 그녀의 눈에 절벽을 지나 새로운 광경이 들어왔다.
그리고 갑작스런 공격을 보았다.
‘헛?!’
담소연이 단검을 뽑아 공격을 막으려 할 때 백호가 먼저 앞발을 휘둘러 공격을 쳐냈다.
까아앙!
백호의 거대한 앞발에 날아가듯 밀려난 이가 무기를 들고 노려봤다.
담소연은 눈을 좁혔다.
‘망치?’
자신을 공격한 것은 검이나 도, 또는 암기 같은 것이 아니라 망치였다.
‘망치로 공격을 한 건가.’
담소연이 다소 특이하다는 감상을 느낄 때 더욱 특이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공격한 이는 난쟁이처럼 작은 키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두꺼운 근육질 몸매, 그리고 장비도 울고 갈 정도의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남자였다.
한껏 그을린 피부와 수염에 가려진 얼굴은 쉬이 나이를 짐작기 어렵게 했다.
채채챙!
뒤늦게 따라 들어온 담가의 기병들이 담소연을 호위하듯 급히 둘러싸며 검을 뽑았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호위대장이 송구스런 표정으로 묻자 담소연이 그저 미소 지으며 백호를 토닥였다.
그 의미를 안 호위대장이 백호를 쳐다보자 백호가 거들먹거리듯 콧김을 내뱉었다.
그런 백호를 담소연은 쓰다듬으며 다시 눈앞의 남자를 봤다.
그는 수백의 병사들을 홀로 마주하면서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남자가 기세를 끌어올리자 담가의 병사들이 더욱 긴장을 하는 상황이었다.
난쟁이 남자가 백호는 물론 담가의 병사들과 눈빛으로 기 싸움 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이에 담소연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는 산동 담가의 담소연이라고 합니다. 무아님과 가문의 인연을 빌어 방문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남자의 경계어린 표정이 놀랍도록 빠르게 변했다.
명백히 호의 가득한 표정이었다.
갑작스런 분위기 변화에 담소연이 당황을 했다.
남자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무아 님의 손님이었나.”
남자는 치켜세우던 망치를 흐르듯이 내리고는 이어 말했다.
“난. 마락이라고 한다. 볼 일이 있어 온 거라면 너만…….”
크르르르.
백호가 경고하듯 으르렁거리자 마락은 혀를 차며 덧붙였다.
“아니, 너랑 그 호랑이만 따라와!”
그제야 백호가 코를 찡긋거리며 콧방귀를 꼈다.
호위대장이 담소연에게 다가와 말했다.
“위험합니다.”
위험하니 따라가겠다는 호위대장의 강경한 의견이었다.
담소연은 잠시 마락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문에서부터 따라온 병사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세상 평온한 주변 숲속 정광과 태연한 백호를 봤다.
이내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호위대장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백호가 있으니까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크흥!
노파심에 담소연을 말리려던 호위대장은 자신의 코앞에서 콧김을 내뿜는 백호에 의해 입을 다물었다.
호위대장은 태연한 담소연과 그녀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하는 듯한 백호를 보았다.
호위대장은 욱신거리는 가슴께를 문지르며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담가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담소연과 노는 백호의 강함을 이래저래 확인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모두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조심하십시오.”
호위대장의 걱정에 담소연은 미소로 답했다.
상황이 정리됨을 지켜본 마락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무방비하게 앞장서 걸었다.
짧은 다리로 걷는대도 마치 경공술을 펼치듯 빠르게 나아갔다.
“따라가자.”
담소연이 백호를 쓰다듬자 백호가 순순히 마락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따라 걷길 일각 여(15분).
나무 가득한 공간을 지나자 광산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까앙!
까앙!
대장간이 여럿인지 이곳저곳에서 연신 다듬질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리로.”
마락은 고개를 까딱이며 마을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담소연은 신비한 분위기의 마을과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눈앞의 마락처럼 난쟁이 같이 작은 키에 근육질의 몸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여인으로 보이는 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수염이 없고 가슴이 나왔으니까 여…인이 맞겠지?’
담소연은 매우 낯선 상황에 손등을 긁적였다.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는 마을에 거대한 백호와 젊은 여인이라는 이색조합이 등장했음에도 큰 주목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담소연과 백호에게 본능적인 시선을 잠깐 줄 뿐, 금세 시선을 거두고 각자의 할 일에 몰두했다.
“기다려라.”
멋쩍은 표정을 짓던 담소연은 마락의 말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눈앞엔 마치 동굴처럼 돌로 지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문의 높이는 이곳 사람들에게 맞춰졌는지 다소 낮았다.
덩치가 큰 백호는 물론이고 자신 또한 들어가지 못할 높이였다.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갔던 마락이 고개만 빠끔 내밀고 말했다.
담소연은 몸을 숙여주는 백호의 배려를 받아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백호의 등에 메어놓은 보따리를 끙끙거리며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백호는 잠시…… 그렇구나.”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백호는 입장이 불가능할 것 같아 기다림을 말하려던 그녀는 그새 고양이처럼 크기를 줄인 백호를 보았다.
백호는 담소연은 가로질러 먼저 동굴처럼 생긴 집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에 담소연이 미소를 지었다.
[담가를 부탁할게. 세상이 흉흉하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천애랑이 백호에게 부탁했던 말을 충실히 따라주는 백호가 고마웠다.
담소연은 백호의 뒤를 따라 고개를 숙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낮은 문과는 달리 그 내부는 꽤 높은 층고를 가지고 있었다.
담소연이 숙였던 허릴 피며 내부를 둘러봤다.
동굴처럼 생겨 다소 쌀쌀할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집 안은 포근함이 감돌았다.
매캐한 연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딱 좋은 강도의 불이 한쪽에서 집을 데우고 있었다.
다만 집은 마치 동굴을 그대로 본뜬 것인지 별도의 방이라는 것이 없고 단 하나의 공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중앙엔 노인이 앉아 있었다.
하얀 수염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게 뻗쳐 있었고, 주름진 눈매와 손은 마치 거북이의 주름처럼 깊은 세월이 느껴졌다.
다만 노인답지 않은 엄청난 근육은 묘한 이질감을 표하고 있었다.
“이리와 앉게.”
노인의 말에 담소연이 조심히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산동 담가의 담소연입니다.”
노인이 찬찬히 담소연을 살피고는 미소를 지었다.
“눈매가 담반후와 닮았구만.”
이에 담소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담반후는 오래전 돌아가신 그녀의 고조할아버지였다.
“……고조할아버지를 아세요?”
“알다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찾았다면서?”
“예?”
담소연의 고개가 더욱 꺾였다.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아니라.”
잠시 이해를 못한 담소연의 눈동자가 시간차를 두고 점점 커졌다.
“예에에에?!”
그녀는 너무나도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그녀가 가문에서 알아낸 바로는 송나라 시절, 황실의 승상이던 담반후가 대장장이들의 촌락인 이곳의 촌장 무아와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문의 기록으로도 이곳의 야금술이 천하제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당연 담소연은 과거의 인연을 빌어 이곳에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고, 무아라는 인물은 진즉 고인일 거라 생각했었다.
기록된 그들의 시간이 150년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무아는 기다란 수염을 쓸어내렸다.
담소연은 두 눈을 한참 끔뻑이다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정정하시네요.”
금세 평정심을 찾는 담소연의 모습에 무아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에 담소연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제가 아는 분도 120세가 넘으셨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녀는 경우에 따라서 사람이 180살까지도 산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무아의 경우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무아는 인자한 미소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래. 담반후의 후예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왔을꼬.”
담소연은 무아의 입에서 거론되는 고조할아버지의 성함이 여전히 적응이 안 됐다.
가문에서도 이름만 알 뿐 입에 거론할 일도 거의 없는 배분의 선조셨다.
담소연이 말했다.
“무기를 하나 부탁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들은 거짓을 싫어하고, 단도직입적인 것을 좋아한다.]
담소연은 가문의 기록을 떠올리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숨어 지내는 대장장이의 촌락에 와서 할 부탁이 무엇 있겠는가.
이러한 의뢰가 당연했기에 빙 돌려 말할 것도 없었다.
“무기라…….”
무아가 연신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담소연이 말을 이었다.
“재료는 현철입니다. 그리고 운철도 조금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뛰어난 재료에 대한 욕심이 많다.]
현철조차도 매우 귀한 광물인데 운석에서 얻어지는 매우 희귀한 광물까지 거론되자 무아의 눈에 호기심이 일었다.
담소연은 이들에 대한 기록을 떠올리며 이어 말했다.
“무기의 사용자는 천하제일인.”
[이들은 자신들의 역작이 간장막사처럼 천하를 호령하길 바란다.]
호기심에 수염을 쓸던 무아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대자연의 기운을 가득 품어도 견뎌낼 수 있는 무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은 어려운 난이도의 의뢰를 즐기는 변태다.]
담소연은 고조할아버지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록한 마지막 단어를 애써 무시했다.
“크크큭.”
연신 인자한 미소를 짓던 무아가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고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무아는 즐거운지 눈이 호선을 그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종래에 무아는 고개를 들며 앙천대소를 했다.
얼마나 거침없이 웃는지 침이 사방으로 튀어 수염을 적셨다.
그럼에도 그는 연신 껄껄거리며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담소연은 좀 전에 무시했던 고조할아버지의 ‘변태’라는 표현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한참을 크게 웃던 무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담소연에게 물었다.
“이걸 사용할 천하제일인이 누구인가?”
이에 담소연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기공가문의 현 가주. 천애랑입니다.”
무아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속에 반가움과 이해가 들어 있었다.
“기공가문이라…. 그들이라면 능히 천하제일을 논할 만하지.”
무아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담소연은 그런 무아를 의외의 눈빛으로 보았다.
세상과 격하고 살아가는 촌락이라 세상사엔 까막눈일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무아가 곁에 시립해 있던 마락에게 말했다.
“마을에 알려라. 내 직접 역작을 만들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