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02화
“……?”
“노괴들.”
취옥개는 의문 가득한 방덕의 시선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천마라는 존재보다 마교라는 집단에 충성하는 여러 가문들. 과거 마교 정예가 기공가와 양패구상을 할 때도 오직 마교의 그늘에서 마교를 지키던 이들. 그리고 현재도 숨을 죽이며 숨겨진 검을 자처하는 이들 말이다.”
방덕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자들이 있었단 말이오? 지난한 시간 동안?!”
“그래. 그들이 만약 그 힘을 마교를 지키는 데 쓰지 않고, 확장하는 데 쓴다면….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구나.”
취옥개가 숨을 길게 뱉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못난 제자야. 항상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생각해라. 네가 상상하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 끝이 아니다 하고. 매사 어떠한 일을 대비함에 있어선 과하다 생각이 들 정도로 추측하고 대비해라.”
“……허. 그래서 사부가 그리 숨을 죽이고 살았던 것이요? 마교의 숨은 검에 조금이라도 대비하기 위해서?”
방덕은 오늘따라 커 보이는 사부를 멍하니 보았다.
취옥개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씁쓸했다.
“적을 속이기 위해 아군조차 속였건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마음은 항상 무겁다.”
방덕이 돌연 바닥에 크게 침을 뱉었다.
“카악~ 퉤! 사부답지 않게 뭐 그리 있는 척을 합니까. 뭐 죽기밖에 더 하겠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우.”
따악!
“악!”
방덕이 엄청난 고통에 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놈이! 침을 뱉는 것도 더러운데 그걸 내 쪽에다 뱉어?”
취옥개가 발끝에 묻은 침을 모랫바닥에 문지르며 소리쳤다.
“아이…… 거지가 까탈스럽기는.”
방덕이 연신 머리를 문지르며 노려보자 취옥개가 진지한 표정을 지우고 다시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항룡십팔장의 기수식이었다.
“어, 어? 사부님 그건 아니죠!”
방덕이 화들짝 놀라며 도망칠 준비를 할 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추개였다.
허겁지겁 뛰어오는 추개의 모습에 취옥개는 기수식을 풀었고, 눈치를 보며 방덕도 시선을 모았다.
“허억. 허억. 방주님과 소방주님을 뵙습니다. 허억.”
온 힘을 다해 경공을 펼쳤던 것인지 추개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야 방덕아. 얘 숨넘어가겠다. 가서 물이나 좀 갖다 줘라.”
“아 귀찮게.”
방덕이 툴툴거리며 빠르게 물을 갖고 왔다.
추개가 감사를 표하며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크으!”
헉헉대며 숨을 돌리는 추개에게 방덕이 물었다.
“섬서 분타주 아니냐? 뭔 일이기에 이래?”
추개는 호흡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화산파에서 최극 등급의 요청사항이 왔기에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뭐? 빨리 말해봐.”
놀라하는 취옥개와 방덕에게 추개는 화산파의 협조 요청에 대한 내용을 보고했다.
차분히 듣던 취옥개가 장탄사를 뱉었다.
“허어….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나.”
방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취옥개가 고개를 삐딱하게 틀며 방덕을 쳐다봤다.
방덕은 그 시선을 애써 피했으나 취옥개가 코앞까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참다못한 방덕이 크게 말했다.
“아! 쫌! 나 좀 쉽시다! 존심 때문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부랑 한 훈련으로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리오!”
“크크큭. 목소리 쩌렁쩌렁한 거 보니 천천히 가다 보면 회복하겠네.”
“에이씨!”
방덕은 투덜대면서 추개를 보았다.
“조치는 어떻게 하고 왔어?”
방덕의 말에 추개가 답했다.
“화음현 지타주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명하고 왔습니다.”
방덕의 눈썹이 씰룩였다.
“그건 잘했다만 따로 조사는 안 시켰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날이 서는 방덕의 목소리에 추개가 목을 움츠렸다.
“사안이 중하고 급하기 때문에…….”
“네놈 경공 실력으로는 여기까지 오는데 족히 열흘은 걸렸을 터인데, 그 사이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다라.”
“그게…….”
“실종사건을 중점으로 조사를 명하고 왔으면 될 일 아니냐? 최근 민간인 실종사건도 많고 하니 적당히 조사대상을 버무릴 수 있었을 것인데?”
“……죄송합니다.”
방덕의 질타에 추개가 고개를 숙였다.
“크큭.”
심각한 방덕의 옆에서 취옥개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씨! 사부는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봐라. 결국 네놈이 움직여야 일처리가 될 것 아니냐. 그런데 뭘 그렇게 뜸 들여?”
“……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소.”
이에 취옥개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여물지 않은 자식들이니 네가 앞장서 가르쳐라. 추개 저놈도 이런 심각한 사안은 처음 겪는 것일 것 아니냐.”
것도 맞는 말이라 방덕이 탐탁지 않게 혀를 찼다.
“시간 많은 사부가 돌아다니며 애들 좀 가르쳐도 되지 않소?”
이에 취옥개가 익살스런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난 숨겨진 검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추개가 고개를 갸웃했고 방덕이 한숨을 쉬었다.
“에휴. 내 어릴 때 거지가 되면 한량처럼 살 수 있다던 사부의 꼬드김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방덕이 의지를 다지듯 몸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며 걸음을 옮겼다.
“뭐해? 따라와!”
멍하니 눈치를 보는 추개를 채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섬서 분타주 추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추개는 다급히 취옥개에게 예를 차리고는 방덕의 뒤를 쫓았다.
취옥개는 그늘진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방덕과 추개를 지켜봤다.
“드디어 앞 물결이 사라져갈 때가 오는 건가…….”
***
사천당가의 가주전.
천애랑과 당가주 당천금과의 전투로 인해 반파됐던 모습은 사라지고 과거보다 더욱 거대한 전각이 세워져 있었다.
과거보다 더욱 웅장하고 위엄이 넘치는 가주전의 복원과 함께 가주전에 크게 바뀐 점이 있었다.
가주전의 외벽.
그간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과 통제를 위해서 세워졌던 가주전 외벽이 지금은 허물어져 있었다.
그럼으로써 마당과 내당으로 향하는 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물론 길의 좌우로는 예전처럼 여러 초목들이 있어 조경과 연막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덕분에 가솔들이 가주와 가주전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폐쇄성은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당가십이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던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당가의 인물들은 절차에 맞게 자유로이 가주전을 오가게 됐다.
이러한 가주전의 변화를 당가인들은 번영과 소통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날도 바깥 임무를 수행하고 온 당가칠영의 당철이 빠른 걸음으로 가주전을 찾아왔다.
“당철입니다.”
당철의 보고에 가주전의 문이 열렸다.
당가칠영은 가주전 내로 걸음을 옮겼다.
가주전 안.
과거 당천금이 왕좌처럼 앉던 높은 단상 대신 가솔들과 눈높이가 맞는 낮은 단상이 있었다.
“왔습니까.”
현 사천당가의 가주 당정아는 가주전에 들어오는 당철을 반겼다.
정중히 예를 차리는 당철의 인사를 받은 당정아가 물었다.
“어찌…… 찾았습니까?”
당정아의 물음에 당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가칠영이 혼심의 힘을 다해 찾고는 있으나…. 죄송합니다.”
“그대들만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고개를 드시죠.”
미소를 짓는 표정과 달리 당정아의 고심은 깊어졌다.
‘어디로 간 것이지.’
천애랑과 함께 당가의 기치를 바로 세우던 그날, 당가의 대표 단체인 암각과 무각의 장로 및 그의 측근들이 사라졌다.
당시엔 워낙 급박한 선결과제들이 있었기에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넘어갔었다.
옛 당가주 당천금에 의해 외부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빠른 시일 안에 당가의 모든 인원들이 정상화가 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꽤나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당가 내외부에서 발견된 암각, 무각의 각원들을 조사한 결과에도 달라질 건 없었다.
‘무슨 봉변을 당한 것인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은 명색이 사천당가다.
당가의 대표 각주인 두 장로는 모두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이기에 어디 가서 쉬이 봉변을 당할 인물들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측근까지 함께 한다면 작은 문파정도는 쉬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때 당철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헌데.”
당철의 말에 당정아가 상념에서 빠져나와 시선을 보냈다.
당철이 말을 이었다.
“최근 사천 인근의 실종사건에서 독의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당정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독이요?”
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간 민간인들은 물론이고 중소문파의 무인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암각과 무각의 흔적을 찾던 중 우연히 저희도 그 현장들을 살폈습니다.”
당철의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의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허나 독이라는 것이 당가의 전유물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철이 수긍의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된 독은 당가의 것이었습니다.”
“……?!”
당정아가 놀란 눈을 했다.
당철이 보고를 이었다.
“우선 사라진 각주들과 그 측근들의 추적은 뒤로 하고, 독에 대한 조사와 현장 정리를 다른 당가칠영에게 명하고 온 길입니다. 특히나 이 사안은 대외비여야 하기에 서신으로 대체 할 수 없었습니다.”
당정아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매우 잘 하셨습니다.”
당철의 말이 맞았다.
중원 무림, 특히나 정도 무림에서는 그 수법이 비열하다고 인식되는 것들은 배척되어 왔다.
그러나 당가는 암기와 독이라는 정도무림의 관념과 상반되는 수단을 사용하면서도 정도문파로 입지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 사용의 철저함 때문이었다.
옛 정도무림의 원로들은 당가의 암기를 검처럼 하나의 무기로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독의 경우엔 절대적인 관리를 당부했다.
그리고 당가는 지금까지도 이를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금처럼 실종이라는, 절대로 이어져선 안 될 상관관계에 당가의 독이 연관돼 있다고 밝혀진다면 정도무림의 질타를 받을 건 당연했다.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는 비동의 소유권에 따른 정도 문파 간의 다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당정아는 굳은 표정으로 당철에게 말했다.
“가주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명을 전달하세요.”
“존명!”
당철이 당정아의 명을 받아 빠르게 가주전을 벗어났다.
당정아는 의자에 앉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가주라는 무게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당정아는 의자에 기대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을 가로로 받드는 보에 뇌룡과 불의 나비가 음각되어 있었다.
가주 전용 의자에서 올려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당정아는 그러한 뇌룡과 나비를 보며 천애랑을 떠올렸다.
항상 용감무쌍하고 위기를 잘 헤쳐 나가는 천애랑을 생각하자 당정아는 용기와 힘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당정아의 지쳤던 눈이 점점 힘을 되찾아갔다.
***
중원 동남쪽 끝에 위치한 절강성.
풍부한 해양자원과 평야, 산 등의 자연들이 어우러지는 곳.
그런 절강성의 성도인 항주는 인근 서호라는 명소와 더불어 용정차의 원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먼 과거 오나라와 월나라의 흥망성쇠를 논하며 ‘와신상담’의 고사를 알린 곳이자, 월나라를 구한 최고의 미인인 서시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러한 항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막간산’이라는 산이 있다.
막간산은 항주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이유는 막야와 간장의 검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지금까지도 막야와 간장의 명맥을 잇고 이들이 있었다.
다만 진법에 의해 외부와의 교류를 철저하게 단절했기에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천하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막간산을 담소연과 그녀를 지키는 담가 정예기병 오백여 명이 오르고 있었다.
백호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