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100화 (100/200)

기공술사 100화

‘당황한 탓에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다 나의 불찰이야. 흑화라니……!’

카득.

초조함에 빠진 백진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과거엔 화산파 내부는 꽤나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었다.

사제지간으로만 화산파의 무공을 계승하는 화산파의 특성이 당시엔 더욱 강해서 은거하듯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고로 사문의 다른 인물들과 교류가 없는 경우도 꽤 있었다.

특히나 이대제자였던 시기의 백진은 폐관수련을 하다시피 무공수련에만 전념할 때였기에 소식에 둔했었다.

그런 백진이 지금은 등선한 스승님에게 들은 주의사항이 있었다.

‘정확히는 두려움에 가까운 경계였었지.’

백진은 인상을 쓰며 눈앞의 노인을 봤다.

화산파에서 불세출의 기재들이 머문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는 스승님보다 바로 위의 배분인 현 자 배라고 했다.

그중 최고가 현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성과 함께 신룡이라 불리던 현곽.

백진의 시선이 찰나 간 일대제자들과 마주하는 노인에게로 향했다 돌아왔다.

백진은 스승님의 말씀을 계속 떠올렸다.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면 현성과 현곽, 이 둘은 너무나 타고난 탓에 정신이 미쳐버렸다고 했다.

이들은 최고의 무인이 되는 것을 넘어서 최고의 무인을 만들어 내는 것에도 욕심을 부렸다고 했다.

‘정확히는 현생에서 신을 보고자 했다던가.’

도가의 끝은 우화등선으로 신선이 되는 것이다.

무당보다 비교적 속세적이지만 도가의 명맥을 잇는 화산파도 궁극적으로 등선을 꿈꾼다.

그런데 당시의 현성은 현생에서 사라져 신이 돼봐야 무엇하냐는 의견을 냈었다.

그리고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증명하지 못하는 신이 되기 위해 백날 도호를 외쳐봐야 무엇하냐는 의견을 내곤 했었다.

그는 오히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도가의 존재의의를 완성시키는 길이다고 설파했었다.

그렇게 그는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흑화’였다.

당연 화산파에서는 흑화를 부정하며 탄압했고, 여러 갈등들이 존재했었다.

그렇게 흑화는 파문당하다시피 화산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에 화산파 제자들과 민간인들의 대량실종이라는 사건들이 터졌다.

‘그때 배분들의 숫자가 현격이 적었던 이유!’

백진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눈앞의 노인, 현성을 봤다.

‘충격에 의해 다소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과거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십 년 전 사라졌다 생각했던 이야기를 마주하자 백진은 바짝바짝 목이 말라왔다.

‘진정 이들이 흑화가 맞다면 청상이 납치된 이유가 설핏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 누구도 생존하기가 어려워진다.’

과거의 망령을 이런 자리에서 마주칠 줄 몰랐던 백진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과거에도 화경 초입의 경지였다던 선배들이다. 보아하니 지금은 더한 괴물이 됐을 터. 이기려는 것보단 시간을 끌어야 한다.’

백진은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조심히 청공에게 전음을 날렸다.

백진의 갑작스런 전음에 청공은 일순 움찔거렸으나 이내 침착하게 백진의 말을 경청했다.

청공에게 당부를 마친 백진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선배께선 우리를 어찌할 생각이시오.”

현성의 입꼬리가 틀어졌다.

“우리가 흑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질문은 하나? 이래서 화산이 발전이 없는 것이야. 여전히 우화등선 같은 개소릴 지껄이고 있겠지?”

‘역시나인가.’

백진이 이를 악 다물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지금이다!”

백진은 사자후를 터트리며 현성과 현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쾌와 변, 그리고 강이 뒤섞이며 온 세상이 매화로 가득 찼다.

심지어 짙은 매화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전신의 모든 내공은 물론 무리하게 선천지기까지 끌어올린 탓에 백진의 입가로 연신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두 명의 노인은 매화의 벽에 가로막혔다.

“크윽!”

청공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 다물고는 등을 돌려 신형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일대제자들도 산개하며 도주를 했다.

때가 되면 무조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치라는 백진의 명을 따르기 위함이었다.

결사항전을 각오하던 그들이었지만 무림의 안녕과 화산의 존폐여부를 거론하는 백진의 말을 마냥 경시할 수만은 없었다.

일대제자들은 백진이 강조한 ‘흑화’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도주에 전력을 다했다.

“건방진!”

매화의 벽에 가로막힌 현성의 몸에서 기함할 내공이 뿜어져 나왔다.

내공은 검에 모여들더니 자줏빛 검강을 만들어냈다.

이를 본 백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어떻게……?!”

현성은 백진의 반응을 무시한 채 자줏빛 검강을 횡으로 크게 그었다.

콰과과과과과과!

현성의 공격에 하늘을 수놓던 매화가 찢어발겨졌다.

그리고 그 기운은 멈추지 않고 도망치는 일대제자들을 향해 나아갔다.

“안 돼!”

백진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날렸다.

한참을 도망치던 청공은 가공할 기운에 뒤를 돌아봤다.

“사백님!”

자신을 대신해 온몸으로 기함할 기운을 막는 백진이 보였다.

‘가!’

몸이 절단되면서도 애써 뻐끔거리는 백진의 입모양에 청공은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백님…….”

청공은 목에 한껏 힘을 주어 차오르는 울음을 참았다.

‘반드시 알리겠습니다.’

청공은 반드시 지금의 상황들을 반드시 본산에 알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내달렸다.

그는 들고 있던 검조차 납검하고 오직 경공을 펼치는 데 최선을 다했다.

* * *

어두운 지하 공간.

거대한 천연동굴을 개조해 만든 의식의 장소였다.

원형으로 생긴 지하의 벽엔 횃불들이 일렁이며 근근하게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한 불빛이 여러 차례 흔들거렸다.

이내 깊은 주름의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엔 피로감이 가득했다.

“쯧. 간만에 무리를 했더니 피곤하군.”

그는 손에 쥔 화산파 일대제자 둘을 대충 던졌다.

쿵.

현성이 던진 곳엔 일대제자 둘 뿐만 아닌 수십의 시체가 쌓여있었다.

특이점이라면 시체들이 모인 곳은 작은 욕조처럼 바닥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욕조의 한쪽엔 수로가 있어 한 방향을 향해 이어져있었다.

이러한 시체들의 욕조는 원형의 지하 공간을 둘러 수십 개가 존재했다.

그리고 각 욕조마다 수십의 시체들이 피를 쏟아내며 쓰러져 있었다.

현성은 검을 들어 일대제자들의 혈맥을 잘라냈다.

절묘한 베임에 피는 분수처럼 뿜어지지 않고 바닥으로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현성은 이내 검으로 한쪽 바닥에 놓인 돌을 살며시 밀었다.

드으으윽.

작은 공명음이 들렸다.

이내 일대제자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어떠한 이끌림이라도 있는 듯 수로를 통해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하 동굴의 정 중앙이었다.

그곳엔 거대하고 둥그런 욕조가 있었다.

이 욕조는 앞선 시체들의 욕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너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엔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 청년이 죽은 듯 피에 잠겨 있었다.

청상이었다.

그때 다른 쪽 욕조에다가 일대제자 둘을 처리하고 온 현곽이 손을 털며 다가왔다.

“그 백진이라는 놈은 아깝소.”

현곽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설마하니 내 검격을 맨몸으로 받아버릴 줄 누가 알았나.”

“그놈의 내력이 깃든 피가 있었다면 꽤나 쓸 만했을 것인데.”

현곽의 이어지는 핀잔에 현성이 인상을 썼다.

“나도 안다고 했다.”

사형인 현성의 언짢음에 현곽이 한 발 물러나며 주름지게 웃었다.

“끌끌. 알겠소. 그나저나 사형.”

“……?”

현성의 시선에 현곽이 불편한 듯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난 아직도 그들을 합류시킨 것이 정녕 잘한 일인지 의구심이 드오.”

오랜 시간 함께한 사제의 걱정에 현성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현곽아.”

“예. 사형.”

“우리의 천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

듣는 현곽은 물론 말을 하는 현성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드리웠다.

현성이 이어 말했다.

“고작 천수라는 이까짓 하늘의 잣대 때문에 신을 만들고 싶다던 우리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난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그렇긴 하오.”

현곽이 혀를 찼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이 있다면 우리의 꿈도 마냥 허황된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과 끝이 비록 혈로(血路)일지라도.”

“…….”

현성의 말에 현곽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공감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무던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많은 것들을 깨우쳤지만, 자신들이 생각하는 궁극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현곽 자신 또한 현성의 말처럼 죽기 전 자신들이 꿈꾸는 신을 만들 수 있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두 노인의 눈이 아집으로 번들거렸다.

이미 이들에겐 잘못된 아집이라는 단어는 날마다 늘어가는 주름과 검버섯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염원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으로 이들의 행동은 매 순간 합리화가 되고 있었다.

“사형의 말이 백 번 천 번 맞소.”

“그래. 우리에겐 흔들릴 마음도, 시간도 없음이니라. 그나저나 준비는?”

현곽이 거대한 욕조가 있는 방향으로 고갯짓을 했다.

“안 그래도 준비가 다 됐다 하오.”

현곽의 말에 현성이 검에 묻은 피를 내공으로 깨끗이 털어냈다.

그리고 납검하며 말했다.

“그래 가자. 신을 만들러.”

말을 하는 현성의 입 꼬리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미소를 짓는 현성은 곧장 지하 동굴 중심의 거대한 욕조로 향했다.

그곳엔 흑화의 노인들이 욕조를 중심으로 둘러 서 있었다.

현성과 현곽은 다른 노인들처럼 욕조의 한 방위에 자리했다.

“시작하자!”

현성의 외침에 노인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내공이 실린 그들의 주문에 수로를 천천히 흐르던 피가 욕조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오기 시작했다.

“더 강하게!”

현성의 강한 외침에 노인들의 주문이 더욱 빠르고 거세졌다.

수로를 통해 모이는 피의 양이 점점 늘어나더니 이내 그 양을 다한 듯 더 이상 수로에 피가 흐르지 않았다.

거대한 욕조에 한가득 모인 피가 꿀렁거렸다.

“더!”

노인들은 더욱 내공을 소모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들의 전신에서 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욕조에 모인 피가 마치 태아를 품은 양수처럼 형태를 이루더니 청상과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

한참을 꿈틀거리던 피의 양이 돌연 줄기 시작했다. 청상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청상의 몸에서 검붉은 색의 불길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청상의 피부가 마치 화상이라도 입는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치이이이익---!

청상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피가 많아질수록 청상의 피부가 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청상의 모든 피부가 화상을 입은 듯 변해가자 이어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드드득!

만약 청상이 깨어있었다면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을 소리와 장면들이었다.

청상의 몸이 괴상하게 뒤틀렸다.

주문을 외우는 노인들의 표정 또한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집중해라!”

현성의 독려에 노인들이 안간힘을 썼다.

우드드드득!

뒤틀려 괴상망측해진 청상의 형태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드득. 드드득!

끝내 청상의 몸이 정상적인 사람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청상이 욕조 안으로 툭 떨어졌다.

더 이상 주문을 외우지 않는 노인들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긴장된 숨을 삼켰다.

“사형.”

현곽이 긴장된 표정으로 부르자 현성이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답을 하는 현성의 시선은 욕조 안에 죽은 듯이 쓰러져있는 청상에게로 향해있었다.

청상을 바라보는 현성의 주름진 얼굴이 푸들거렸다.

“드디어…….”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작게 읊조렸다.

그의 시선 끝엔 청상이 호흡에 의해 작게 들썩거리고 있었다.

“성공…….”

함께 시선을 모으던 다른 노인들도 청상의 고른 호흡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현성이 장내 인물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들 고생 많았다. 다음 단계를 위해 어서 이동을 하자!”

성공의 기쁨에 취해있던 이들이 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사불란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