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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99화 (99/200)

기공술사 99화

이번 무한대련의 승자는 화란이었다.

초기엔 압도적인 내공과 실전경험을 가진 송소걸이 우승을 도맡아 해왔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른 의각원생들과 화란의 성장이 만만치 않았다.

내공의 양은 여전히 송소걸이 제일 높았지만, 실전적인 측면에선 다른 의각원생들도 그간의 훈련으로 급격히 성장해왔다.

특히나 화란은 치료과정에서 얻은 일 갑자의 내공과 환골탈태가 있었기에 그 성장세가 무시무시했다.

“에고고…….”

송소걸이 약탕에 몸을 담근 채 앓는 소리를 냈다.

1인용으로 만들어진 통엔 마충과 진 신의가 연구해 만든 영약과 약초들이 녹아 있었다.

“에고고오오…….”

“에구우…….”

나란히 놓인 다른 통들에 몸을 담근 추연과 다른 여 원생들도 앓는 소리를 냈다.

훈련생들은 천애랑과의 대련으로 초죽음이 된 뒤엔 항상 이렇게 약탕에 몸을 담가 육체와 피로를 치료했다.

약탕 방은 진법 안에 마련되어 있었기에 방대한 기운이 치료를 보다 효과적으로 도왔다.

“괜찮아?”

여인들의 약탕 방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화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주위를 챙겼다.

“헤. 괜찮아요. 그나저나 언니 실력이 많이 성장했네요.”

“소걸이 네 덕분이지.”

화란이 최후에 붙은 이는 송소걸이었다.

표홀하게 움직이는 송소걸의 움직임이 일품이었는데, 화란의 타고난 안목으로 동선을 읽어내 승리를 얻어낸 것이었다.

“누가 약 아깝게 잡담을 나눠!”

그때 진 신의가 건물 바깥에서 크게 호통을 쳤다.

“천 가주가 전음으로 자꾸 말 시켜서요!”

송소걸이 크게 대답하고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여 원생들에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에 여인들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근처에 있지도 않은 천애랑에게 책임을 떠넘긴 송소걸은 이내 조용히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각자 운기를 했다.

온몸을 통해 기와 호흡하고 받아들이는 기공심법이기에 약탕의 약효들이 급속히 몸에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일정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재량과 속도에 맞게 약탕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인 훈련생은 편한 자리로 이동했다.

이때부터는 자율적으로 운기를 더 하거나 아니면 부족한 공부를 했다.

공식적으로 지정해 놓은 자유시간은 축시 말(03시)까지다.

대부분의 훈련생은 자유시간을 꽉 채워 개인 훈련과 공부를 했다.

수면시간은 아침 체력훈련 집합 전까지인 인시 말(05시)까지만 허용됐다.

살인적인 일정이지만 약탕과 진법 안에서의 운공, 그리고 인간의 생존 적응력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사백님! 여기 청상 사형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헌앙한 청년이 숲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곤 크게 외쳤다.

그의 외침에 주위를 수색하던 사형제들의 시선이 모였다.

총 다섯 명인 그들은 모두 하얀 계열의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각 소매 끝엔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매화는 화산파의 상징이었다.

화산파의 장로 백진은 일대제자 청공이 외친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의 노회한 수염이 다급함에 흩날렸다.

백진은 청공이 말한 지점을 살폈다.

그곳엔 하늘색 수실들로 매듭지어진 작은 장신구가 떨어져 있었다.

일대제자를 상징해 허리춤에 매는 장신구이자 백진 자신이 제자에게 직접 선물한 것이었다.

“……청상의 것이 맞구나.”

말을 하는 백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렇게나 떨어져 짓밟힌 표식이 제자의 안위가 불투명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제자야…….’

백진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장신구 근처의 상태를 살폈다.

‘전투가 있긴 했다.’

다만 격전을 벌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좁고 작은 흔적들이었다.

‘마치 몇 합 만에 제압당한 듯이.’

백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자신의 하나뿐인 제자는 화산파 내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인재였다.

대제자인 청번을 제외하고는 일대제자 중 가장 성취가 높은 아이기도 했다.

세간에선 환류삼검이라 불리며 그 명성을 차근히 쌓아가고 있는 자랑스런 제자였다.

‘헌데. 감히 누가!’

으드득

백진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

“사백님.”

그때 옆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청공이 백진을 달랬다.

청공의 뒤로도 함께 수색을 하던 다른 제자들이 모여들어 걱정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백진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못난 꼴을 보였다.”

백진의 말에 청공이 고개를 저었다.

“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청상 사형을 생각하는 사백님의 마음을 저희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흔적을 보고 나니 청상사형이 무탈할지 심히 걱정됩니다.”

백진이 공감을 했다.

“그러게 말이다. 누가 감히 화산의 제자를…….”

백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화산의 제자를 납치한 것인지 이해할 수도 추측할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백진과 일대제자들 주위의 나무 사이에서 정체불명의 노인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굽은 허리, 깊게 주름진 얼굴 등이 나타난 둘의 나이를 짐작케 했다.

“요즘 제물이 많이 필요했는데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소.”

한 노인의 말에 곁에 있던 다른 노인이 천천히 화산파의 인물들을 둘러봤다.

“그래. 또 화산의 제자들이라니 반갑고도 반갑구만.”

노인은 누렇게 썩은 이빨이 다 보이도록 활짝 미소 지었다.

“해도 저물어가니 빨리 처리하고 가자.”

두 노인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대들은 누구시오! 누구기에 화산의 앞을 막는 것이오!”

정체불명 노인들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백진이 크게 외쳤다.

백진의 웅혼한 내공이 들어간 외침은 숲속을 흔들릴 정도였다.

곁에 있던 다른 일대제자들이 백진의 경지에 기세를 얻으며 노인들을 노려봤다.

이러한 모습에 노인들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귀엽군.”

노인 중 한 명이 백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100보 가까이 떨어져 있기에 화산의 제자들이 보기엔 다소 당황스런 행동이었다.

그러나 백진은 놀란 눈을 하고 다급히 마주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엄청난 검기와의 격돌에 백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엄청난 충격에 검을 놓칠 뻔한 그였다.

‘무슨 내공이…….’

차앙!

백진의 놀람과 별개로 일대제자들이 검을 뽑았다.

어떤 사연이 됐든 화산파가 공격을 받은 것이기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사백님 괜찮으십니까?”

청공이 백진의 곁으로 붙으며 말했다.

이에 백진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시하지 말거라.”

그러자 청공은 눈을 부릅뜨며 답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매화검수입니다.”

백진은 일대제자들을 둘러봤다.

두려움 없이 기세를 끌어올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기 있는 제자들 모두 고련을 거치고 화산파의 최정예라는 매화검수가 된 이들이었다.

“그래. 우리가 곧 화산이지. 그리고 짐작건대 저 노괴들이 청상의 납치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때 노인들의 신형이 움직였다.

두 명의 노인 중 한 명은 백진에게로, 다른 이는 화산파의 일대제자들에게로 향했다.

노인 2명과 화산파 정예 5명.

그렇게 숲속에선 때아닌 격돌이 발생했다.

일대제자에게 향한 노인은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신형을 흔들거렸다.

그러자 일대제자들의 검이 마치 합을 맞춘 것 마냥 노인을 비켜갔다.

노인은 검기는 기본이고 검진까지 구사하는 매화검수들을 상대로 시종일관 여유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제법이군.”

노인의 말에 일대제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차올랐다.

마치 노인이 자신들의 공격을 미리, 그것도 완벽하게 읽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대제자들의 당혹감은 백진 또한 느끼고 있었다.

어떠한 공격을 해도 눈앞의 노인에게 손쉽게 막혔기 때문이었다.

백진은 이를 악다물고 검에 더욱더 힘을 실었다.

깡!

노인과 백진의 검이 허공에 수놓아지며 작은 불꽃의 파편들을 만들어냈다.

쉬이익!

초절정 극의 경지인 백진의 검에서 검강이 일었다.

그의 검은 마치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러 개로 흩어져 떨어져 내렸다.

화산파의 대표 검식 중 하나인 낙화유수였다.

매환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백진답게 그의 검강이 머무는 자리마다 매화 꽃잎이 형상화되어 보였다.

노인의 지척까지 다가가는 매화들의 향연에 백진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대로 눈앞의 노인을 제압해 제자의 행방을 추궁해볼 요량이었다.

허나 이내 백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노인의 검이 흔들리더니 자신의 낙화유수와 똑같은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렇게 노인의 검 끝에선 강기의 매화가 꽃피었는데 그 색이 흑색이었다.

심지어 매화의 수가 백진 자신보다 더 많았다.

“무, 무슨?! 큭!”

당혹감에 검 끝이 흔들린 백진이 상처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상처의 크기를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큰 피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백진의 복부 부근의 하얀 도복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졌다.

“사백님! 크윽!”

청공이 백진의 낭패에 몸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가로막듯 뻗어오는 노인의 검에 낭패를 보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청공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숫자는 분명 자신들이 우세한데 다 늙어 허리까지 굽은 노인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백진은 검을 내리고선 눈앞의 노인을 노려봤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탓에 무방비한 상태가 된 것도 잊고 있었다.

“어찌 화산파의 무공을?!”

백진은 악을 쓰듯 눈앞의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노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놈의 도명이 무엇이더냐?”

백진은 이해할 수 없는 노인의 물음에 절로 눈이 씰룩거려졌다.

오만가지의 추측을 하며 백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진이오.”

백진의 말에 노인이 엉성해진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백 자 배의 후배였군. 본좌는 현성이다. 들어본 적이 있느냐?”

후배라는 단어와 화산파의 도명과도 같은 노인의 이름에 백진의 표정이 놀라움에 빠졌다.

“현…, 현…….”

백진은 상처의 지혈과 호흡을 고르면서 연신 노인의 이름을 고민했다.

현 자 배의 배분에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면 아마도 전전대 선배들의 배분일 것이었다.

한 마디로 과거 자신이 이대제자일 때 화산의 큰 어른이 현 자 배였다.

지금은 이미 등선하거나 은거 중인, 심지어 그 수도 매우 적은 배분이었다.

“……화산파의 선배이시오?”

백선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앞서 뭘 들은 거지? 무공만 수련하고 머리는 멍청한 건가. 그렇다기엔 무공도 별론데…….”

현성이라는 노인의 말에 백진은 당혹감에 빠졌다.

이때 현성이 말했다.

“내가 왜 나의 이름을 말했을까.”

노인의 비릿한 미소에 백진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검을 치켜 올리는 노인의 행동과 그 표정이 이미 뒷말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진은 그사이 지혈된 복부의 상태를 느끼며 검을 마주 들었다.

동시에 일대제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제자들의 복색은 자신의 복부와 같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제자들의 의지가 아닌 상대하는 노인의 의도인 것 같았다.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노인을 보니 언제든지 제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다만 현성이라는 노인과 본인과의 대화 일변도 상황에 일대제자들을 몰아붙이던 노인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절정의 끝에 있는 매화검수 넷이서 노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다니. 설마 저 노인도 눈앞의 노인만큼 강한 것인가……?!’

고심하던 백진의 머릿속으로 문득 한 개의 정보가 스쳐지나갔다.

백진이 고개를 획 돌리며 현성이라 소개한 노인을 봤다.

“설마 흑화?!”

백진의 말이 의외였을까 현성이 감탄사를 뱉었다.

“그 단어를 아는 후배가 있다는 게 놀랍군. 화산에선 아마 우리들의 존재에 대해서 극비로 다뤘을 것인데 말이야.”

노인의 수긍에 백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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