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98화
“컥!”
설동이 짧은 기침과 함께 적은 피를 토해냈다.
‘호오….’
천애랑은 설동의 행동을 보며 감탄했다.
살기가 영향을 미치는 부위인 근육과 폐의 혈도들을 조율해 강제적으로 살기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해낼 줄은 몰랐네. 역시 생각 자체가 의원답군.’
설동의 행동과 그 결과를 곁눈질로 관찰하던 다른 원생들도 설동을 따라 했다.
“쿠엑!”
“컥!”
저마다의 괴성을 지르며 막혔던 호흡을 재개했다.
의각원생들은 여전히 살기의 영향 안에 있고, 압박과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진 표정들을 지었다.
“미쳤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송소걸이 나지막이 감탄을 했다.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접했던 송소걸조차도 지금의 광경은 생경했다.
“허허, 허허허.”
멀찍이 떨어져 훈련을 참관하던 마충 또한 제자들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용기 있게 나아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의각원생들의 기대 이상인 모습에 천애랑은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군. 그럼 강도를 더 높이겠다.”
“예?”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이 긴장을 했다.
방금 전의 살기는 여러 실전을 경험한 자신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저들이 번뜩이는 기지를 보였다고 한들 근본적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송소걸의 걱정과는 달리 원생들은 더욱 눈을 빛냈다.
“살기와 실전에 대한 훈련이지만 신체의 이해도도 높일 수 있는 기회군요?”
“저희의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처음입니다.”
“재밌……다?”
“이거 주화입마에 빠진 환자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으하하하하! 어서 제게 시련을 주십시오!”
“오빠 정신 차려.”
오히려 의각원생들은 즐거워했다.
육체훈련보다 이런 쪽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이미 의술에 미친 이들이니 정신적인 측면이 더 강한 것인지도 몰랐다.
“뭐, 뭐야…, 무서워.”
천애랑의 살기에도 버티던 송소걸이 의각원생들의 광기엔 버티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 * *
의각원의 계절이 지고 피고를 2번 반복했다.
그사이 세상은 더욱 차갑고 더욱 뜨겁게 서로의 욕망과 피를 갈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각원만큼은 매일 반복되는 그들만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속칭 훈련생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아침 일찍 조를 나누어 다섯 봉우리의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걸로 체력훈련을 시작했다.
“허억. 허어억! 죽겠다.”
“으어어어. 이건 왜 항상 힘들어.”
“우웩!”
물론 체력훈련은 쉽지 않았다.
견딜 만해지면 여지없이 추가되는 고리와 조끼에 훈련생들은 죽을 맛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힘든 것은 송소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아직까진 원생들보다 내공과 경지가 높다는 게 나름의 위안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송소걸은 자신의 각 팔에 착용한 고리 7개와 몸통의 조끼 6개를 보았다.
원생들의 평균이 고리 6~8개와 조끼 6개인 걸 생각하면 신체적 차이는 별달리 없었다.
심지어 춘석은 타고남인지 추나요법의 달인이라 그런 건지 근육 성장이 좋아서 고리 10개와 조끼 9개를 착용하고 있었다.
내공을 배제한 수련에선 압도적인 내공 양이 큰 쓰임이 없었다.
“미치겠네.”
송소걸은 헛구역질이 나오는 속을 이겨내며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옆을 보았다.
“헤엑. 헤엑.”
화란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도 송소걸과 같은 무게의 고리와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요?”
송소걸의 말에 화란이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니, 죽겠어.”
천애랑의 훈련은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실전에선 오직 강함과 생존력만이 유의미하다 외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애랑이 훈련을 시키며 떠올리는 자들의 면면들이 만만치 않았다.
강인한 육체는 남림의 야수족들을, 실전의 살기나 기세는 흑풍대를, 강인한 여인은 북해빙궁의 설화와 사천당가의 당정아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애랑의 마음속엔 최소한 이들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잡혀 있었다.
세간의 무림인들이 천애랑의 기준을 들었다면 미쳤다고, 말도 안 된다고 했겠지만 여기선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알 수도 없었다.
“언니, 밥 먹으러 가죠.”
“아…… 입맛 없는데.”
송소걸과 화란뿐 아니라 모든 원생들이 토할 정도로 달렸다가 오기에 입맛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다음 일정들을 이겨낼 수 없기에 모두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천애랑은 하오문주에게 부탁해 하오문에 속한 숙수를 특별히 대여해 식당을 차렸다.
훈련생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높아진 음식 수준 덕분에 입맛이 없는 원생들이 가까스로라도 먹을 수 있었다.
“오빠! 빨리 와! 아침 고기반찬이래!”
“어, 어! 간다!”
남매지간인 추연이 오빠 추담을 재촉했다.
“쟤는 어째 저리 팔팔하냐.”
송소걸이 씩씩한 추연을 황당한 눈으로 봤다.
추연과 추담의 몸 곳곳엔 알 수 없는 뜸들이 올라가 있었다. 그들은 연신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기도 했다.
“약재의 달인들이라더니…….”
추연, 추담 남매의 뒤로는 스스로의 몸을 주무르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춘석이 있었다.
그 곁으로는 하춘이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몸에 침을 꽂은 채 따라가고 있었다.
이곳에선 각자의 주특기로 이 지옥 훈련을 나름대로 이겨내고 있었다.
송소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의술을 배웠어야 했나…….”
스스로의 몸에 무언가를 하며 걷는 원생들을 송소걸이 둘러보며 나지막한 한탄을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육체적 훈련으로 오전훈련이 시작된다.
털썩.
“아!”
몸에 착용한 조끼와 고리의 엄청난 무게를 견디지 못한 원생이 넘어지면서 짤막한 탄성을 뱉었다.
그러자 설동이 다급히 외쳤다.
“모두 준비해!”
쏴아아아------!
천애랑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살기가 순식간에 원생들을 덮쳤다.
첫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였다.
심지어 공간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내기도 섞여있었다.
훈련생들 모두 정신력으로 기본적인 살기를 버틸 수 있게 되자 천애랑이 신룡군림보의 압박을 더한 것이었다.
천애랑이 내공을 더한 뒤로부터는 훈련생들도 내공과 정신력, 그리고 본인의 재주에 따라 요령껏 버티면 됐다.
원생들이 천애랑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파팟!
하춘이 자신의 목 부위의 혈들에 대침을 꽂더니 사자후로 크게 소리쳤다.
“갈!”
그러자 하춘을 덮치던 살기와 내기가 일순간 갈라졌다.
하춘이 나름으로 개발한 단발성 사자후였다.
원래의 사자후라면 막대한 내공을 음공이라는 특수한 무공의 묘리에 실어 쏘아내야 했다.
하지만 하춘이 한 것은 침술로 기도와 목의 근육들을 일시적으로 탄력 있게 만들고, 가진 바 내공과 입 앞에 존재하는 대자연의 기를 짧게 폭발시킨 거였다.
설동은 재빨리 품에서 단환을 하나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으스러뜨렸다.
그러자 단환에서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올라 설동의 코로 흡입됐다.
화기를 이용해 단시간에 단환에서 연기를 만든 것이었다.
“흐음~ 역시 부막초가 근육의 강제 이완에 도움이 되는군. 다음엔 비율을 좀 더 달리 해봐야겠다.”
설동의 근처에 있던 추연, 추담 남매 또한 설동처럼 연신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천애랑의 살기와 내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춘석은 몇 번의 손짓으로 온몸의 근육을 부풀리더니 근육 안 공간에 내기를 가득 넣어 외부의 압박을 견뎌냈다.
화란은 몸을 개방해 자연스럽게 천애랑의 살기와 내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송소걸은 이러한 의각원생들의 모습에 기가 차 헛웃음을 뱉었다.
“하… 대단하긴 한데. 어째 점점 괴집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네.”
이렇게 말하는 송소걸 또한 내공을 몸 안에서 매우 빠르게 주천시켜 외부의 압박을 견뎌냈다.
송소걸의 몸 안에서 움직이는 내공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만약 다른 무인들이 봤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오전의 훈련이 끝나면 훈련생들은 짧게 점심식사와 휴식시간을 가지고 무한대련에 들어간다.
무한대련.
말 그대로 훈련생들끼리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무제한으로 대련을 하는 것이었다.
승자판별의 조건은 각자의 허리에 멘 띠가 떨어지느냐였다.
그 과정에선 편 가르기나 내공사용이 허용되고 합공도 가능했다.
다만 탈락한 이들은 천애랑과의 즉시 대련이 있었다.
이들에게 무한대련의 목적은 우승이 아니라 천애랑과의 대련을 피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이 그 말이긴 했다.
“젠장!”
견제를 받아 조기 탈락한 설동이 울상을 하며 천애랑에게 다가갔다.
천애랑은 설동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설동, 죽이진 않는다.”
천애랑의 눈이 노랗게 번들거렸다.
“아, 아! 가주님! 뇌기(雷氣)는 아니죠!”
쿠르릉!
뇌성과 함께 천애랑의 신형이 사라졌다.
“으힉!”
설동은 재빨리 몸을 날리며 품에서 단환 10개를 꺼내 동시에 태웠다.
순식간에 연기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화(火)!”
설동은 불의 기운을 만들어 연기에 흩날렸다.
타다다다닥!
그러자 연기가 폭탄의 심지라도 되는 양 불타면서 삽시간에 주변이 불난리가 됐다.
천애랑의 접근을 막음과 동시에 불로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약을 만지는 설동은 화기(火氣)에 친화력이 있었고 이를 집중적으로 훈련한 결과였다.
하지만 설동의 기대와는 달리 천애랑은 순식간에 설동의 등 뒤에 도착해 있었다.
빡!
“꾸웩!”
천애랑의 일격에 설동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갔다.
“아뜨뜨뜨!”
설동이 자신이 만든 불의 연기를 뜨거워하며 연신 팔을 퍼덕였다.
설동은 재빨리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바닥에 착지했다.
다가올 천애랑의 공격을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한 번 대련이 시작되면 완벽한 전투불능이 되기 전까지 천애랑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천애랑과의 대련을 끝낼 방법은 천애랑을 제압하거나 제압당하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물론, 2년 동안 단 한 번도 훈련생들이 천애랑 제압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쿠르릉!
뇌성이 울리자 설동이 울상인 채로 입에 약을 털어 넣었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부막초를 특별한 조합으로 재탄생시킨 약이었다.
“제발 대 부막초야 내게 힘을 다오. 흡!”
설동을 팔을 교차하며 몸을 웅크렸다.
뽀오옥!
눈에 보이지 않는 천애랑의 공격에 설동이 거침없이 날아갔다.
‘뽀오옥?’
의외의 소리에 천애랑이 고개를 모로 하고 날아간 설동을 찾았다.
설동은 큰 타격이 없는 듯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기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호라.”
천애랑은 설동을 때린 주먹을 들어 올려 신기하게 쳐다봤다. 엄청난 탄성이 느껴졌었다.
천애랑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설동, 재밌는 것을 또 개발했나 보구나!”
그때 설동의 곁으로 여러 원생들이 합류했다. 추가 탈락한 이들이었다.
“설동오빠! 우리가 왔어. 합공하자!”
그때 추연이 품에서 알 수 없는 약재들을 꺼내 천애랑을 향해 마구잡이로 던졌다.
“오빠!”
여동생 추연의 부름에 추담이 응답했다.
“알았다!”
추담의 손이 나풀거리듯 휘둘러지자 천애랑의 화접탄처럼 불꽃으로 형상화된 참새가 약재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폭발이 시작됐다.
퍼버버벙!
“추담 오빠 좌측! 난 우측! 풍기와 화기를 가진 이들은 우릴 따르고 나머진 설동 오빠를 따라서 전방 돌파!”
추연의 외침에 숫자가 많아진 원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두 번 해본 합격술이 아니었다.
‘설동 부대가 몸으로 미끼 역할을 하고 나머지가 차륜전을 하는 건가.’
천애랑은 미소를 지었다.
그간 강하게 만들겠다는 목적하에 거침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큰 흐름이 같을 뿐 세부적인 결은 각자의 성향에 따르는 기공가문의 가풍처럼 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을 해주고 있었다.
물론 아직 성에 차진 않았지만 이러한 성장들이 기꺼웠다.
“하하하! 좋다! 와라!”
천애랑은 가솔들의 성장에 기쁨을 표하며 뇌기를 가득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