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97화
천애랑의 눈썹이 들썩였다.
“무림맹?”
송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확히는 무림맹 군사가 개방의 소방주를 통해 자네를 찾고 있다 하네. 이는 소방주가 직접 전해 준 말이니 확실하다 보네.”
천애랑의 미간이 좁혀졌다.
“설마 여기 의각원의 위치가 알려진 것이오?”
천애랑은 만약 의각원의 위치가 크게 노출됐다면 장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을 했다.
송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이곳은 소희를 위해 지원을 보내는 담가주의 측근과 하오문의 일부밖에 모른다네. 당연 개방의 소방주도 모른다네.”
천애랑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림맹이든 군사든 날 찾는 이유가 뭐요?”
하오문주 송강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네. 짐작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천애랑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왜 날 찾는지 특정할 수 없겠소?”
“흠……. 고려되는 것이 많긴 하네만. 아무래도 자네를 통제권에 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조심히 짐작해본다네.”
“통제……?”
송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 그들의 입장에서 자네는 전혀 교류를 해본 적도 없고 통제되지 않는 돌출 인물일걸세.”
천애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러한 모습에 송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약하기라도 하거나 그 업적이 추악하기라도 하다면 그들은 오히려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네.”
“왜?”
“그야 자신들이 명분을 쥐고 자네를 제어할 수 있을 테니까.”
송강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자네는 세간에서 칭송하는 대단한 업적들을 세워왔기에 무림맹이 긴장을 하는 것이지.”
“그게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내가 무슨 업적을 세웠다고.”
천애랑은 황당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에 송강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간 세간에 알려진 자네의 업적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는가?”
천애랑이 다시금 고개를 갸웃했다. 몰랐다.
이에 송강이 말했다.
“개방 소방주를 구한 협사, 광산전투의 주역, 당가의 독으로부터 민간인들을 구한 영웅, 모용세가와 함께 마교 흑풍대를 섬멸한 북해의 영웅 등 말일세.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이 정도라네.”
“흐음…….”
천애랑은 저 업적들이 뭐 그리 대단한 것들인가 싶었다.
“자넨 어느새 무림의 신진영웅이 되어 있네. 자네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이나 민간인들 중에는 무림맹보다 자네를 더 신뢰한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라네.”
송강이 이어 말했다.
“이는 전 무림의 책임자를 자처하는 무림맹으로선 달갑지 않을 수 있는 일이야. 그들의 입장에서 자넨, 자신들의 권위와 업적을 뺏는 미운 미꾸라지일지도 모르네.”
“황당하군.”
천애랑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다 천애랑이 질문했다.
“헌데 무림맹은 정의를 지향한다고 들었소만? 지금 들은 추측들만 봐서는 영 아닌 것 같은데.”
천애랑의 물음에 송강이 비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들이 정의를 지향하긴 하지. 하지만 그것은 정도 무림맹의 허울일 뿐 그 내부엔 욕망과 이권이 첨예하게 얽혀있다네.”
“흐음.”
천애랑은 자신이 죽인 당가주 당천금이 떠올랐다.
하오문주가 말하는 무림맹의 모습이 보잘것없는 권력 때문에 추악하게 변했던 당천금의 모습과 비슷한 것인지 경각심이 들었다.
“여하튼 내 생각이네만 아마 그들은 자네라는 사람이 자신들의 편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네.”
“그게 무림맹에서 날 찾은 이유 중 핵심일 것이다 말하는 것이오?”
송강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애랑은 복잡한 머리를 차분하게 식혔다.
무기는 대장장이에게, 약은 의원에게 구하면 될 뿐이다. 그래서 송강에게 물었다.
“그대가 생각하기에 내가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은?”
천애랑의 질문에 송강은 미소를 지었다.
“무림맹이 친히 자네를 찾는다곤 하나 내 생각에 만남은 온전히 자네의 의지에 달렸다 보네.”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겠군. 일 없소. 안 그래도 바쁜 몸이오.”
천애랑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답의 거절을 하는 천애랑을 보며 송강이 더 큰 미소를 지었다.
권력이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천애랑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 또한 정파의 이런 위선적인 행태가 싫어 정파와 사파의 중간에서 지내지 않은가.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지. 알겠네. 혹여 개방 소방주가 묻거든 내가 잘 돌려 말하겠네.”
“알아서 해주시오.”
“알겠네.”
* * *
하오문주와 대화를 마친 천애랑은 진법 앞 공터로 향했다.
사전에 마충을 통해 의각원생들에게 소집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송소걸을 만났다.
“형님!”
송소걸은 천애랑을 보자마자 달려오며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 있어?!”
천애랑은 갑작스런 송소걸의 눈물에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나 이어진 송소걸의 행태에 헛웃음을 지으며 경계의 마음을 풀었다.
“저 때문에 무슨 고생이었어요. 어어어엉!”
송소걸은 천애랑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대성통곡하듯 크게 울었다.
천애랑은 자신의 옷에 은근슬쩍 콧물을 닦는 송소걸을 살며시 밀어냈다.
송소걸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천애랑을 바라봤다.
마치 불쌍한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소림사, 사천당가, 남림의 팔각사, 북해빙궁 등 아버지한테 다 들었어요. 어어어엉!”
‘아…….’
천애랑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일이 설명하기 멋쩍고 귀찮아 하오문주에게 설명을 떠넘긴 거였는데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천애랑이 우는 송소걸을 달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의형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마음 쓰지 마.”
“어허허헝! 역시 애랑 형님! 까칠한 찬호 형님과는 비교도……, 헙!”
습관처럼 나온 단어에 송소걸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곤 천애랑의 눈치를 보았다.
천애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후…….’
송소걸이 찬호를 말할 때 순간적으로 셋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천애랑이었다.
찰나였지만 그리움이 밀려왔고, 이내 분노와 씁쓸함이 그 뒤를 채웠다.
천애랑은 가볍게 고개를 털어 감정을 쓸어냈다.
“됐어. 괘념치 않아. 너도 따라와라. 향후 일정을 위해서 전체적으로 공표할 것이 있으니.”
송소걸이 고개를 끄덕이곤 천애랑을 쫄래쫄래 뒤따랐다.
“형님. 고마워요.”
조용히 뒤따르던 송소걸이 천애랑의 등에 대고 말했다. 이에 천애랑은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너 또한 버티고 살아줘서 고맙다. 내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책임을 지마.”
감동에 촉촉이 젖어있던 송소걸은 천애랑의 마지막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간다는 말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 * *
천애랑의 소집령에 따라 진법 앞 공터에 의각원생들이 모여 있었다.
진법 앞의 공터는 더 확보되고 잘 다져져서 마치 연무장처럼 되어 있었다.
의각원생들은 눈을 빛내며 천애랑을 기다렸다.
천애랑이 자신들을 위해 직접 수련을 시켜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치료에 있어서 기적을 행하는 가주이기에 내심 이들은 의술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도 의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면 어떤 힘든 훈련도 기꺼이 따르겠다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송소걸이 공터에 들어서며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훈련을 좋아하는 변태들인가?”
분명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원생들은 마치 밥을 간절히 기다리는 새끼 새의 눈을 하고 있었다.
“좋군.”
천애랑은 도열한 원생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천애랑이 원생들의 앞에 서자 시선이 집중됐다.
천애랑이 천천히 입을 뗐다.
“난 내 사람이 쉽게 다치거나 쉽게 목숨이 위태롭지 않았으면 한다.”
천애랑의 말에 의각원생들이 감동의 표정을 지었다. 역시 따뜻한 가주라며 칭찬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 원생들을 보며 천애랑이 크게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강해져라! 스스로의 몸을 지키고 주변 친구와 가족을 지킬 수 있도록.”
기공술과 의술의 상관관계 정도의 강론 시간이라 생각했던 의각원생들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탓이었다.
때마침 하오문의 일꾼들이 수레를 가지고 왔다.
쿵! 쿠궁! 쿵!
그들은 연신 끙끙거리며 묵직한 무언가를 수레에서 내려놨다.
사전에 대화가 이루어졌던 송소걸과 마충은 침을 삼키며 이 장면들을 지켜봤다.
“너희들이 강해질 수 있도록 직접 훈련을 시킬 것이다. 각자 눈앞에 있는 것을 손목과 발목, 몸통에 착용하도록.”
그들의 앞엔 무거운 광물로 특수 제작된 고리와 조끼들이 있었다. 딱 봐도 엄청난 무게가 느껴졌다.
그때 설동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저……. 가주님?”
천애랑이 설동을 보았다.
“말해.”
설동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희가 배운다는 것이…… 의술이 아니라 혹시 무공인 겁니까?”
천애랑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
원생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가득 찼다.
그때 마충이 인자한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원생들을 달랬다.
“의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주님을 통해 직접 보지 않았더냐. 기공술의 경지 상승은 곧 너희들의 의술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마충의 말이 있자 원생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의술에 미쳐 의술에 살고 의술에 죽는 이들이 의지를 불태웠다.
“그래! 우리도 나름 기본공은 익힌 몸이라고!”
“좋아! 해보자!”
“의술실력을 높일 수 있다면 지옥에도 갈 수 있다.”
“아자! 아자!”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지옥을 맛볼 수 있었다.
지옥에도 갈 수 있다고 외치던 원생은 본인 주둥이의 부주의함을 참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천애랑의 첫 훈련은 철저하게 근력과 체력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마보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팔과 다리, 몸통에 착용한 고리와 조끼가 몸에 엄청난 부하를 주고 있었다.
“너희들의 신체는 너무 약하다. 남림 야수족의 전사들은 신체능력만으로도 내공의 경지를 상회하는 수준을 보인다.”
“대자연의 통로이자 그릇이 될 몸이 약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내공을 사용하지 마! 오직 신체의 힘으로 버텨! 완벽한 육체는 완벽한 투로를 완성한다!”
연이은 천애랑의 격려와 외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낙오자가 발생했다.
모두들 천애랑이 낙오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쉴 수 있을까?’
‘제발. 조금만 쉬었으면 좋겠는데.’
‘쉬게 해주나?’
천애랑이 모두를 보며 외쳤다.
“그만! 자세 바로!”
그러자 훈련을 받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쳤다.
“살았다!”
이들은 이제야 휴식시간을 갖는가 싶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천애랑의 표정은 서늘하게 식어있었다.
“전장에서 포기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자살을 하고 싶다면 기꺼이 내가 도와주지.”
천애랑의 몸에서 북풍한설과 같은 냉기가 흐른다 싶을 때 원생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이 살기다. 실전에서 마주한다면 폐와 근육을 위축시켜 호흡과 움직임을 제한한다.”
“끄윽.”
천애랑의 살기에 원생들이 고통스러워했다.
“내공으로 살기를 이겨내는 게 제일 쉽겠지만 격상의 무인을 만난다면 이 방법은 다소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정신력으로도 이기는 걸 단련해야 한다.”
쏴아------
천애랑의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
“육체적 단련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리하도록. 그러면 즉시 이렇게 정신적 단련을 할 것이다.”
쏴아아아------
천애랑의 살기가 더더욱 강해졌다.
“으으윽.”
이쯤 되자 원생들보다 무공이 높은 송소걸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때, 설동이 힘겹게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곤 곧장 자신의 혈도들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