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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96화 (96/200)

기공술사 96화

천애랑은 송소걸을 데리고 진법을 빠져나왔다.

하오문주를 따로 찾으러 갈 필요는 없었다.

진법 앞에 하오문주 송강이 마충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딸아…….”

건강해진 딸을 바라보는 송강의 눈시울이 살며시 붉어졌다.

천애랑은 그의 표정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의외네.’

표정을 연기할 때가 아니라면 시종일관 표정의 변화가 없던 하오문주였다.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온 습관 때문이라던 그가 딸의 완치에 이리 한달음 달려오고 저런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다.

“아버지!”

송소걸은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를 반가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품에 안겼다.

“참으로 고생 많았다.”

송강은 자신의 품에 안긴 딸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딸의 달라진 기도에 살며시 감탄을 했다.

딸에게서 정제되지 않은 기운들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후 사정을 잘 아는 송강은 감사의 눈으로 천애랑을 보았다.

자신은 그 누구보다 천애랑의 노력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의각원주 마충을 통해 천애랑이 얼마나 전심으로 딸을 치료했는지 들었다.

송강은 품에서 딸을 살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천애랑에게 깊은 포권을 취했다.

“딸을 살려주어 고맙네.”

천애랑은 그의 행동에서 진심을 느꼈다.

천애랑은 가볍게 마주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의형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래. 피차 서로의 진심을 잘 안다 믿기에 길게 감사를 표하진 않겠네.”

송강은 포권을 풀고서 천애랑과 시선을 마주했다.

진지하게 두 눈을 마주하는 두 사람을 보며 송소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송소걸은 아버지가 하오문주이기에 정보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왔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버지가 천애랑은 물론이고 의각원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 같았다.

천애랑과 의각원, 진 신의가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정도만 들었지 상세한 내용을 듣지 못한 터라 더욱 송소걸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대체 제가 쓰러진 사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랑 애랑 형님은 어찌 그리 잘 아는 눈치고?”

송소걸의 말에 송강 또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애랑이 송강에게 말했다.

“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소. 살렸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니. 둘도 오랜만일 테니 편히 해후를 푸시오. 원한다면 하오문주 그대가 그간의 일에 대해 설명을 해도 되오.”

“그랬는가?”

송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파악한 천애랑은 자신이 이룬 업적들에 대해 자랑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마 말하기 멋쩍은 것이 컸으리라 생각됐다.

“그렇다면 그리하겠네.”

천애랑은 송소걸에게 말했다.

“소걸이 너는 잠시 휴식이다. 휴식이 끝나면 다시 훈련이니 그리 알아라.”

“알겠습니다. 형님.”

송소걸은 눈치껏 대답하고선 송강의 팔짱을 꼈다.

“하춘!”

천애랑의 부름에 천애랑의 인근에서 시립하고 있던 하춘이 빠르게 다가왔다.

“예. 가주님.”

“알다시피 매우 귀한 손님이시다. 편히 대화를 나눌 장소로 안내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드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하춘은 천애랑의 명에 고개 숙여 답하고는 송강과 송소걸에게 정중히 손짓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송강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지배자의 면모가 풍기는 천애랑을 흡족하게 바라봤고, 송소걸은 다소 낯선 천애랑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춘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진법 앞엔 천애랑과 마충만 남게 됐다.

그때 마충이 말했다.

“잠시 걷겠느냐?”

마충의 물음에 천애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좋습니다.”

둘은 의각원을 벗어나 한적한 산길을 거닐었다.

둘은 말없이 한참을 걷기만 했다.

그러다 마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젠 어찌할 생각이더냐?”

마충의 목소리엔 깊은 걱정과 신뢰가 담겨있었다.

“복수를 해야죠.”

천애랑은 담백하게 답했다.

“그러하더냐.”

마충 역시 짐작한 듯 쉽게 수긍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에요.”

마충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계획이 있는 게냐?”

천애랑이 다짐을 하듯 답했다.

“내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 겁니다. 제가 자리를 비워도, 또는 저와 함께하더라도 제 한 몸 지킬 수 있도록.”

마충은 빠르게 천애랑의 의도를 파악했다.

“직접 훈련을 시킬 생각이더냐?”

“그래야죠.”

“허허. 애들이 죽는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생겼구나.”

천애랑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기가 의각원이지 않습니까. 부상을 입으면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천애랑의 말과 미소에 마충은 속으로 제자들을 위로했다.

“어느 정도를 바라보고 있는 게냐.”

생각 정리를 위해 천애랑은 짧게 눈을 감았다 떴다.

마충의 질문은 천애랑이 가솔들의 훈련을 계획한 후 이미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못해도 절정, 아니 모두 초절정의 경지 정도는 되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허, 허허, 허허허…….”

마충은 그저 허허로운 표정과 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 번 제자들의 앞길에 깊은 위로의 기도를 했다.

천애랑의 말대로만 된다면 20여 명의 초절정 고수집단을 만들겠다는 건데, 이 정도 숫자는 거대 문파에서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천애랑이 하는 말이니 마냥 허언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그간 모두가 말도 안 된다 했을 기적들을 행한 천애랑이기에 어떻게든 이룰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하던 마충은 문뜩 불안한 시선으로 천애랑을 보았다.

“혹시…… 그 훈련에 나도 포함되는 건……?”

천애랑은 헛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시니까요. 건강만 유의해주세요.”

“허허. 고맙다.”

마충은 슬며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 천애랑의 눈빛은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모두 부러뜨려서라도 지나갈 것 같은 의지를 보이고 있기에 괜한 걱정이 됐었다.

나름 호신수준의 무공을 익혔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현실적으로 육체와 근육이 노화되는 것을 느끼는 나날들이었다.

그때 천애랑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 심법은 집중적으로 살펴드릴게요.”

“알았다…….”

천애랑은 걱정 가득한 표정의 마충을 보며 작게 웃었다.

다들 자신을 욕하고 곡소리를 내더라도 반드시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천애랑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다음날 일찍 천애랑은 하오문주 송강의 조용한 방문을 받았다.

천애랑은 방 안에 마련돼 있는 다기(茶器)를 대충 꺼내와 차를 준비했다.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물을 부은 후 삼매진화로 차를 데웠다.

천애랑은 송강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아직 아침이 긴데 편히 쉬시지 그러오?”

“덕분에 딸과 긴 대화를 나눴고 오랜만에 편하게 잠을 취했다네.”

“그랬다면 다행이오. 그간 그대의 활동만 봐도 잠은 자나 싶어 걱정이 들 지경이었소.”

송강은 천애랑의 말에 실소를 터트렸다.

“자네에게 그런 소리 들을 자격 못 되네. 자네야말로 엄청난 거리를 잠도 아껴가며 오갔지 않았는가. 심지어 격한 전투까지 치르면서.”

“그래도 버틸만하니까. 하지만 그대는 나이도 있지 않소.”

송강의 눈이 커졌다.

“으하하하! 세상천지 누가 천면수라 송강에게 이런 걱정을 한단 말인가!”

송강은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어제 말을 하려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서 못한 것들이 있다네.”

“편히 말하시오.”

“우선, 앞으로 하오문은 기공가와 맹우의 관계를 맺고자 하네. 이는 나와 딸의 생전에 유효한 신의로 지켜질 것이야.”

“고맙소. 나 또한 하오문을 맹우로서 대하겠소.”

천애랑과 송강은 그간의 교류와 관계를 통해 이런 결론이 날 것임을 서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놀람이나 당황함 없이 자연스럽게 맹우의 맹세를 했다.

송강은 흡족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었다.

“자네가 부탁한 것들을 살막주에게 무사히 보냈네. 매우 좋아하더군.”

천애랑이 반가운 미소를 했다.

“고맙소. 앞으로 그들의 쓰임이 더 커질 터. 염치불구 한 번씩 그들을 신경 써 주면 좋겠소.”

“그러지. 그리고 의각원 입구 밖에 자네가 주문한 물건들을 챙겨왔다네.”

천애랑이 반색했다.

“고맙소. 안 그래도 최대한 빨리 훈련을 시키고 싶었는데 잘 되었군.”

“대체 어떤 훈련을 시키려고?”

천애랑은 그저 미소로 답했다.

송강도 대답을 굳이 강요하지 않고 화제를 전환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 혹시 관운장의 비동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가?”

“모르겠소만?”

천애랑은 고개를 저었다.

“감숙 서북쪽 기련산에 관제묘(關帝廟)가 나타났다네. 그래서 현재 무림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네.”

‘적벽의 숨겨진 비동 같은 것이 그곳에도 있나 보군.’

천애랑은 송강의 말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러오?”

“그곳에서 금으로 만든 다양한 동물상과 입구를 막는 진법이 발견됐네. 이때만 해도 인근 중소문파나 상인들이 관심을 가졌지. 그런데.”

“그런데?”

“최근 운장(雲長)의 무공비급이 발견됐다 해서 전 무림의 관심이 쏠렸다네.”

천애랑은 고개를 모로 했다. 잘 이해가 안 갔다.

아무리 미확인의 새로운 무공비급이고 과거의 영광이 높은 관우의 것이라고 한들 과한 관심이지 않나 싶었다.

그 표정을 읽은 송강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라면 별다른 관심을 보내지 않을 것 같았지.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위인의 비급이 확실하다면 인생역전을 노리는 누군가들에겐 희대의 소식일 것이네.”

“그러한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가 뭐요?”

송강은 차를 홀짝이며 진중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수상한 점들이 있네.”

“수상하다? 지금 관제묘의 소문이 수상하다는 말이오?”

“그렇네. 소문의 근원지가 기련산을 타는 약초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조사 결과 그자의 진위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네.”

“그렇다는 말은?”

송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위적인 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금으로 된 동물상이나 진법의 여부는 확인됐다는 것 아니었소? 그렇다면 너무 앞서가는 억측일 수 있지 않소?”

천애랑의 의문에 송강이 쉽게 수긍했다.

“맞네. 금과 그 발견자들은 실제로 존재한다네. 진법 또한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관운장의 무공비급 진위가 더욱 신빙성 있이 알려진 것이고.”

“그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가 문제인 것이오?”

“소문이 너무 빠르네. 그리고 너무 광범위해. 이건 자연스런 소문의 속도와 형태가 아니네.”

“……?”

천애랑의 의문스런 표정에 송강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현 무림 최고의 정보단체로 꼽히는 개방이나 우리 하오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이리 빠르게 소문을 퍼트리진 못한다네. 엄청난 자금과 인원이 필요하니까.”

그제야 천애랑은 송강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혹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고, 그 내면엔 모종의 음모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누군가 또는 세력은…….”

“맞네. 내 추측에 아마 마교이지 않을까 싶네. 물론, 아직까진 단순한 추측이고 억측일 가능성이 있네.”

“아니오. 그대의 정보분석 능력을 믿소. 허나 그게 지금의 나와 큰 상관이 있소?”

송강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없네. 다만 자네나 나나 마교라는 공동의 적이 있지 않은가. 그저 맹우로서 작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일세.”

“……고맙소.”

천애랑은 순수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정보라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아마 하오문주의 이런 정보가 누군가에겐 천금의 가치를 가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것을 하오문주는 신의의 증표로써 공유해준 것이니 천애랑은 기꺼운 마음으로 하오문주의 성의를 받았다.

하오문주 송강이 대화를 마친 듯 다 마신 찻잔을 다탁 위로 슬며시 밀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는 듯 송강이 손뼉을 쳤다.

“아! 어찌 보면 이게 더 중요한 말이었을 텐데 깜빡했구만.”

“……?”

천애랑은 송강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송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무림맹에서 자네를 보고자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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