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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95화 (95/200)

기공술사 95화

의각원에 평화가 찾아왔다.

최근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엔 진법 안에 있었던 치료 인력뿐만 아니라 의각원에서 일상을 보내는 원생들도 초 긴장 상태였었다.

혹여나 진법이 잘못될까 싶어 원생들은 의각원 내에서 움직이는 모든 때의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교대로 돌아가며 진법의 주술석을 확인했다.

그러다 의각원생들은 진법을 빠져나온 마충과 진 신의, 화란을 통해 송소걸의 치료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에 모두들 한 마음으로 소리치며 기뻐했다.

그리고 마충은 제자들을 모두 모아 그간의 치료에 대해서 강론을 했다.

본인의 깨달은 바가 제자들에게 지식과 영감을 주어 제자들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강론은 ‘단전이 깨지고 선천지기가 소실된 이에 대한 치료 총론’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졌다.

이 자리엔 진 신의도 함께해 깨달음을 보탰다.

자리한 모든 이들은 의원으로서 내상과 외상에 대한 수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단전 및 선천지기의 부상에 따른 치료는 모두 처음이었기에 눈을 빛내며 마충의 강의와 진 신의의 첨언들을 귀 기울였다.

단전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폐인이 된다는 것과 치료방법이 없는 것이 이 시대에 사는 의원 및 모든 무림인들에게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세간의 상식을 깨고 치료에 성공한 사례가 있기에 이들 모두는 작은 흥분상태에 빠져있었다.

강론이 끝난 뒤 이들은 자리를 파하지 않고 토론을 이어갔다.

만약 무림인들이 내상과 단전에 대한 치료수준이 지금보다 높아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를 모두 상상했다.

선순환으로는 부상 등으로 안타깝게 은퇴할 수밖에 없던 협객들이 기회를 얻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순환으로는 만약 사마외도의 인물들이 이를 비틀어 연구하면 기이한 악의 결과물들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외적으로는 모든 무림세력에서 천금을 주어서라도 이런 치료가 가능한 의원을 모셔갈 것이었다.

그만큼 무림인에게 있어서 단전은 모든 것의 근본이자 가장 큰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의각원이 새로운 의학의 영역과 교류로 바쁜 지금, 천애랑과 송소걸은 여전히 진법 안에 있었다.

그곳에서 천애랑은 송소걸의 몸 상태를 봐주고 있었다.

매우 오랜만에 일어나는 송소걸이기에 신체를 사용하는 하나하나가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천애랑은 본인이 근육과 신체능력을 단련했던 것을 토대로 송소걸의 상태를 점검해주었다.

“형님. 이젠 몸을 움직이는 게 제법 괜찮아진 것 같은데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마보자세를 하고 있던 송소걸이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안 돼.”

천애랑이 단호하게 말했다.

천애랑은 송소걸의 맞은편에서 송소걸과 마찬가지로 내공 없이 마보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만 한 다리로만 버티고 있었다.

“이왕 하는 김에 몸 상태를 제대로 끌어올려 놔야지. 난 네가 이제 더는 어디 가서 다쳐오지 않았으면 한다.”

송소걸은 천애랑의 농담 없는 표정을 보며 땀을 삐질 흘렸다.

“형님. 말씀드렸다시피 그간은 역용술을 하느라 내공을 억제하고 있었다니까요? 제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만한 실력은 아니에요.”

그러나 천애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약해. 당장 드라쿠만 와도 넌 위험하다.”

“예? 갑자기 드라쿠가 왜 나와요. 그것도 화경의 고수인 자를?”

송소걸은 황당함에 벌떡 일어났다.

“어허! 자세 바로 잡아!”

천애랑의 호통에 송소걸은 다시 마보자세를 취했다. 슬그머니 쉬려고 했던 꼼수의 실패였다.

그래도 송소걸은 여전히 황당함 속에 있었다.

“형님. 막말로 그런 고수를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다른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송소걸의 말에 십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평생 동안 초절정 고수 한 명 만나보기도 힘든 경우도 많았다.

하류인생의 경우엔 절정 고수도 평생에서 만난 가장 대단한 고수일 가능성도 있었다.

“많이도 만나더라.”

천애랑은 그간의 만남을 떠올리며 말했다.

“물론 형님이 고수들을 꽤나 만나긴 했지만 화경의 고수는 드라쿠랑 황실 내시영감…, 주원장이랑 고 노인 정도 아니에요? 아따, 말하고 보니 많이 만나긴 했네.”

송소걸은 말을 하며 새삼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천애랑은 담담하게 송소걸의 말에 덧붙였다.

“소림방장과 사천당가주도 화경이었다. 남림야수왕도, 그리고 북해빙궁주와 공주도, 마교의 우호법이라는 자도, 흑풍대주라는 자도 화경이었다.”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름 하나하나가 천하를 호령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천애랑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니 송소걸은 의아함이 가득해졌다.

“설마 다 만나보신 건… 아니죠?”

송소걸은 설마 했다.

그러나 이어진 천애랑의 덤덤한 말에 송소걸은 눈을 크게 떴다.

“만나고 하는 말이다.”

송소걸은 혼란이 찾아와 생각을 쉬이 정리할 수 없었다.

그때 천애랑이 몸을 세웠다.

천애랑은 눈치를 보는 송소걸도 일어나게 했다.

송소걸은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몸을 세웠다.

“끄응.”

송소걸이 근육통에 인상을 썼다.

그간 병상에 누워있었기에 근력이 약해진 것도 있지만, 천애랑의 훈련 탓이 컸다.

잘 안 쓰는 근육들을 어찌나 자극시키는지 조금만 해도 근육통이 아우성이었다.

천애랑이 말했다.

“세상은 넓더라.”

천애랑의 뜬금없는 말에 송소걸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한 말 아닙니까?”

“그만큼 고수도 많더라.”

뭐라 툴툴대고 장난칠만한 말을 생각하던 송소걸은 천애랑이 나열한 이름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신 순순히 천애랑의 말에 동조했다.

“그래 보이네요.”

송소걸은 천애랑이 어떻게, 왜 그런 요주의 사람들을 만났는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그저 습관처럼 미간을 좁히며 추측을 했다.

“내가 가야할 길엔 그런 고수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럴 겁니다.”

송소걸은 천애랑이 말하는 길이 마교에 대한 복수임을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에선 마교의 전력이 세간에 드러난 것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이는 마교의 비보를 털었던 하오문주 송강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천애랑이 말했다.

“분명 난 그 길에서 많은 적들과 은원을 만들겠지.”

“그러겠죠.”

송소걸이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은원과 적들이 몰고 오는 피의 칼날이, 날 따르고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미칠 것이야.”

송소걸은 천애랑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싶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에야 모든 것을 제어하고 책임질 순 없다.

천애랑의 생각이 멋지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고, 무림인으로서는 다소 유약하다고 송소걸은 생각했다.

“형님. 사람은 죽습니다.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특히나 무림인은 스스로의 의지로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하는 자들 아닙니까. 그런 죽음 하나하나를 모두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천애랑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다. 모든 죽음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난 내 사람이라면 가능한 모든 노력으로 지키고 싶다. 거기엔 너도 포함이야.”

송소걸은 여전한 천애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애랑이 비현실적인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역시 형님이네요. 그러니 짧은 인연일 뿐이던 산적 형제들을 구하고자 수천 병사들 사이에서 죽을 고비도 넘기고, 주원장에게도 화를 내신 거겠죠. 형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송소걸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리 마음 따뜻해지는 일인지 새삼 느껴졌다.

송소걸은 앞으로 천애랑이 시키는 훈련을 따지지 않고 잘 따라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은 그 다짐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 마음을 이해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소걸이 네가 화경의 고수도 이길 수 있도록 훈련시킬 생각이다.”

“아, 아? 잠시만요! 화경의 고수에게서 버티거나 도망치는 게 아니라 이긴다고요? 에헤이~ 이 형님이 그새 장난이 느셨네?”

송소걸의 손사래에도 천애랑의 진지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송소걸이 침을 꼴깍 삼켰다.

“형님…… 정말 제가 화경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물론이다. 너의 내공 양만 보면 이미 화경의 수준을 넘어섰다. 품고 있는 양만 따지면 거의 나와 필적할 것도 같다.”

물론 단순히 보유하는 내공만 비교했을 때의 말이긴 했다.

천애랑은 소모된 내공을 일정 부분 수시로 채울 수 있어서 실제 사용 가능한 내공의 양은 송소걸을 압도한다.

게다가 각자가 가진 무공의 강함과 효율성 측면까지 따지면 복잡해지는 비교이긴 했다.

“허어…….”

송소걸이 나지막한 감탄사를 뱉었다.

깨어난 후 운기조식을 해봤고, 가진 내공의 양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화경이라는 경지가 막연해서 많은 나이가 들고 나서야 가능할까 싶었었다.

“허어어…….”

천애랑은 연신 감탄사를 뱉는 송소걸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심으로 송소걸이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心), 기(氣), 체(體).

모든 무(武)의 완성을 이루는 3요소였다.

심(心)은 깨달음.

즉, 경지마다 필요한 지식과 그 안에 담긴 오의가 이에 해당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완성코자 하는 무공의 끝이 여기에 있었다.

비유를 하자면 만들고자 하는 요리였다.

기(氣)는 내공. 축기를 통해 쌓은 단전의 내공으로써 깨달음이라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였다.

체(體)는 무공을 펼치기에 적합한 근육 및 혈도 등을 말한다.

이는 완성하고자 하는 요리를 위해 재료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도구에 해당했다.

재료가 부실하면 아무리 산해진미를 의도한다 한들 불가능할 것이고.

반대로 고급진 재료는 많은데,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소면뿐이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또한 섬세하게 포를 뜬 회를 의도한다 한들 그 도구가 방망이라면 불가능할 것이고, 산해진미를 만드는 방법과 재료가 있다 한들 요리를 할 도구가 형편없다면 큰 애를 먹을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것엔 균형이 중요하고, 그 균형의 동반 성장이 있어야 진정한 경지의 성장이 있는 것이었다.

천애랑이 보기에 송소걸은 이미 좋은 재료와 나쁘지 않은 요리도구를 가졌다.

다만 좋은 재료에 어울리는 더 나은 도구와 요리방법이 부족할 뿐이었다.

즉, 송소걸은 현재 화경 수준으로 늘어난 기(氣)를 받쳐줄 체(體)와, 심(心)을 성장시킨다면 능히 화경의 경지에 발을 디딜 것이었다.

그중 가장 직관적인 훈련관 성장은 체(體)였다.

심(心)은 깨달음이라는 오묘한 영역이기에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천애랑은 자신의 지도가 있다면 송소걸의 이러한 부족분들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만 믿고 따라와라. 그렇다면 넌 반드시 화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이 의형의 마음이 좀 놓일 것 같다.”

“하, 하하…….”

송소걸은 천애랑의 굳은 의지를 보며 당혹감과 고마움, 그리고 설렘이라는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동안 잊고 지낸 무공에 대한 열의가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때 진법이 미세하게 일렁거렸다.

누군가 진법 안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였다.

내공에 예민한 두 사람은 이 사실을 바로 알아채고 시선을 모아 진법의 입구를 바라봤다.

그곳에선 의각원생 하춘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곧장 천애랑에게 다가와선 말했다.

“가주님. 하오문주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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