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94화
천애랑은 너무나 그립고 너무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리자 왈칵 눈물이 흘렀다.
“혀, 형님. 왜 우세요……?”
천애랑의 눈물에 송소걸이 당황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이내 휘청거렸다.
“에고.”
“소걸아! 괜찮은 것이냐!”
천애랑은 화들짝 놀라며 송소걸을 부축했다.
그때 물러나 있던 신의와 마충이 감탄을 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수개월을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으니 당연한 게지.”
“그래.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다.”
“그나저나 내심 치료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막상 그 결과를 보니 할 말을 잃겠구만.”
“허허, 그러게 말일세. 이것 참. 진짜로 치료할 줄이야.”
천애랑의 부축을 받아 침상에 앉은 송소걸은 두 신의를 확인했다.
“어? 신의님?”
“날 바로 알아보는 걸 보니 머리에 큰 이상은 없나 보군.”
신의가 미소를 지었다.
“이게 무슨? 여긴 어디?”
송소걸이 어리둥절 주변을 살폈다.
천애랑이 송소걸과 눈높이를 맞추고 따스하게 말했다.
“의각원이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널 치료하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
송소걸이 천애랑과 시선을 마주했다.
“치료요? 저를요?”
송소걸은 자신의 몸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엄청난 내공이 내부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공은 이전보다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정제되고 더욱 거대해졌으며 원활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송소걸은 자신이 인지하던 기존 몸과의 괴리감을 느끼다가 불현듯 자신의 외견을 보았다.
“얼레?”
자신의 가슴을 가리던 갑주가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역용술로 숨겼던 가슴이 봉긋하게 나와 있었다.
송소걸은 당황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얼레레?”
그간 역용술로 만들었던 얼굴이 아닌 송소희의 뽀얀 피부가 느껴졌다.
송소걸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인들을 살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따뜻한 미소로 말했다.
“소걸아. 당황할 필요 없다. 네가 여자라는 것도, 하오문주의 딸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혀, 형님? 그걸 어떻게……?”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 너는 모르겠지만 넌 생사의 기로에서 수개월 만에 깨어난 몸이다. 우선 몸을 추스르는 게 먼저지 싶다.”
“그래. 우리가 살펴보마.”
천애랑의 시선을 받은 마충과 신의가 가까이 다가왔다.
“가주님. 저는 소저가 갈아입을 옷 좀 챙겨 오겠습니다.”
화란은 말을 하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가주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송소걸이 의아한 눈으로 천애랑을 보았다.
천애랑은 손짓으로 마충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분은 이곳 의각원의 원주이시자 이제는 내 가족이다. 방금 나간 화란은 여기 마충 할아버지의 손녀고.”
송소걸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머릿속으로 정리할 때 하는 습관 중 하나였다.
“잠깐. 마충… 마충……, 의원 마충…… 헉! 설마 마 신의십니까?”
송소걸의 놀람에 천애랑은 물론이고 두 신의 모두 놀라 시선을 모았다.
“허허. 이 늙은이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것도 애랑이처럼 젊은이가 말이야.”
“하오문의 정보력이 뛰어나다더니 역시 그 딸이라는 게냐.”
두 신의의 감탄에 송소걸이 진위여부를 파악하고선 나지막이 탄성을 뱉었다.
“평생 만나기도 힘든 전설의 신의 두 분이 한자리에 있다니…….”
천애랑은 여전한 송소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걸 보니 신의 말대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이오.”
천애랑의 말을 신의가 받았다.
“다행이지. 선천지기를 폭발적으로 쓰게 되면 대개 뇌를 다치기 마련인데, 자네의 처치가 참으로 좋았었네.”
마충이 둘의 대화를 가로지르며 송소걸에게 다가갔다.
“대화는 천천히 하고 우선 몸을 살피겠다.”
마충이 먼저 송소걸의 상태를 살폈다.
송소걸은 지금 상황이 명확하게 이해되진 않았으나 천애랑을 믿고 얌전히 진맥을 받았다.
꽤나 긴 시간을 진맥하던 마충이 놀란 눈으로 시선을 천애랑에서 신의로 돌렸다.
“진 신의, 자네도 확인해보게.”
“알겠소이다.”
그렇게 마충에 이어 신의도 송소걸의 상태를 진맥했다.
이내 두 사람은 교차검증을 하듯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모든 의견을 나눈 두 사람은 천애랑에게 말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완벽하게 치료가 되었다.”
두 신의의 말에 천애랑은 깊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간의 걱정이 사르륵 흘러내려 녹는 기분이었다.
진 신의가 말을 더했다.
“그런데 치료가 되다 못해 과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네.”
그의 말에 천애랑이 걱정스레 되물었다.
“문제가 있는 거요?”
대답은 마충에게서 나왔다.
“그럴 리가. 애랑이 네가 치료를 할 때 저 아이에게서 삼화취정이 있었단다. 기억나느냐?”
천애랑은 고개를 저었다.
송소걸의 내부를 관조하고 치료하느라 바빠서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 덕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더할 나위 없이 상태가 좋다. 원래의 경지를 모르니 쉬이 말할 순 없겠으나 아마 경지도 더 오르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러니까. 더 이상 문제없이 소걸이가 완치가 되었단 말이지요?”
천애랑은 송소걸의 경지가 어쨌다는 말보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확신이 더 중요하고 급했다.
마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단시간에 완벽한 치료가 이루어진 터라 진 신의와 의견을 나눴단다.”
신의도 말을 보탰다.
“그렇네. 내가 보기에도 완벽하게 치료가 됐다 생각하네. 보다시피 혈색도 너무 좋고 말이야. 물론 혹시 모를 후유증이 있을까 싶지만 그 또한 내 소견으로는 없다 판단되네.”
“내 소견도 진 신의와 동일하단다.”
천애랑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됐습니다. 소걸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치료가 됐다면 됐습니다.”
천애랑은 두 신의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애랑아. 과례다. 우린 가족이 아니더냐.”
마충이 흐뭇한 미소로 천애랑의 어깨를 토닥였다.
천애랑의 인사를 받은 신의는 예의 찡그린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그간 고생은 하긴 했지. 이게 어디 쉬운 일이었던가. 그래도 내 앞에서 쓰러진 환자가 일어났으니 다행이네. 그리고 치료 과정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도 적지 않으니 그리 유난 떨 것 없네.”
천애랑은 신의를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천애랑은 화란을 보았다.
“매번 말하지만 고마워.”
“저도 매번 말씀드리지만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치료를 축하드립니다.”
송소걸은 조용히 지금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흐으음~.”
천애랑은 송소걸의 콧소리에 돌아봤다.
송소걸은 팔짱을 끼고 눈을 좁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흐. 형님. 그새 형수님이 바뀐 겁니까?”
방 안의 인물들이 송소걸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뭐?”
천애랑은 당황했고 화란은 조용히 얼굴을 붉혔다.
“허허허.”
마충은 그저 웃었고 신의는 남 일이라는 듯 짐을 챙기고 있었다.
“실없는 소리도 곧잘 하는 걸 보니 조금은 남아있던 내 걱정이 무색하구만. 난 먼저 쉬러 가겠네.”
신의가 휘적휘적 건물을 빠져나갔다.
천애랑은 그 모습을 보고선 서둘러 마충과 화란에게 말했다.
“두 사람도 이만 쉬러 가세요.”
화란과 마충이 천애랑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하려 하자 천애랑이 손을 저었다.
“그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했잖아요. 쉬세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요. 보아하니 소걸이한테 당장 필요한 것은 운기조식일 것 같네요. 심기체가 일그러졌을 테니까요.”
마충은 천애랑과 송소걸, 화란의 얼굴과 방 내부의 상태를 최종적으로 살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랑이 네 말이 옳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려느냐?”
“소걸이가 몸을 살피는 동안 저도 운기조식 하면서 휴식을 취할게요.”
마충이 쉽게 수긍했다.
“그러려무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체 없이 말해주세요.”
화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천애랑에게 말했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방에서 내보냈다.
그제야 방 안에는 천애랑과 송소걸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형님.”
좀 전과는 다르게 무거워진 송소걸의 목소리에 천애랑은 의아함을 느꼈다.
“필요한 것이 있어?”
송소걸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 진중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찬호 형님은 어디 갔습니까?”
천애랑의 표정이 순식간에 서늘하게 굳었다.
“네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운기조식이다. 무너진 심기체의 균형을 어느 정도 잡고 나면 차분히 말해줄게.”
천애랑은 찬호에 관한 대화를 피하고 싶었다.
소걸이가 완전히 몸을 추스르고 난 후에 대화해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혹시…… 찬호형님이 마교와 관련이 있습니까?”
천애랑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타이르듯 송소걸에게 말했다.
“……몸부터 추스르자. 이후에 대화해도 충분하다.”
이에 송소걸은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애랑 형님은 거짓말을 못하시네요.”
“…….”
천애랑은 혀를 차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감하거나 할 때 머리를 긁는 습관도 여전하고요.”
송소걸은 마른세수를 했다.
“꿈을 꿨습니다.”
천애랑은 잠자코 송소걸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서 형님과 찬호형님이 서로 죽일 듯이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님의 품에서 죽은 듯 쓰러져 있었고요.”
천애랑의 신형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송소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냥 꿈이 아니었나 보네요. 그 꿈에서 찬호형님이 처음 보는 엄청난 마기를 내뿜었습니다. 심지어 마기가 아수라의 형상까지 유형화 시킬 정도였죠.”
천애랑은 다소 놀란 눈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소걸 네 말이 맞다. 마교가 널 해쳤으며 찬호가 그 마교의 소교주였다. 그간 우리를 속여 왔던 것이지.”
“그런…… 무슨 오해가 있겠죠.”
천애랑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다시피 마교와 천마는 우리 가문을 멸문시켰다. 날 사랑했다던 수백의 식구들이 그들의 욕심 때문에 허망하게 죽었단 말이다. 심지어 마지막까지 날 보살피셨던 할아버지는 마교에게 당했던 부상 때문에 돌아가셨다.”
송소걸은 천애랑의 눈동자에 담긴 가슴 시린 그리움과 슬픔, 진득한 살기를 보았다.
“그리고 마교는 소중한 너를 죽이고자 했으며 소교주는 형제의 우애를 우롱했다.”
“하, 하지만. 찬호형님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천애랑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예전에 말했지. 착한 개인은 있을 수 있어도 착한 집단은 없다고.”
“그건…….”
“마교는 나와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지원수다. 그 속에 어떤 사연이 있든 신경 쓸 이유도, 마음도 없다. 그건 그 녀석도 마찬가지다.”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이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마교 그놈들 때문에 소걸 너는 단전이 깨지고 선천지기가 폭발해 곧 죽을 위기였었다. 다행히 많은 도움으로 너의 악화를 막고 치료약을 만들어 기적적으로 치료에 성공한 거다.”
천애랑은 차가운 표정을 풀었다.
그리곤 풀이 죽은 송소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아앗!”
갑작스런 천애랑의 행동에 송소걸이 천애랑을 올려다봤다.
천애랑은 송소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마디로 오늘은 내 소중한 동생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기쁜 날이란 말이다. 그러니 복잡하고 우울한 건 추후에 이야기 하자.”
송소걸은 천애랑의 미소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래. 난 건물 밖에 있을 터이니 차분히 운기조식을 해라. 필요하면 옷도 갈아입고.”
“예.”
송소걸은 문을 열고 나가는 천애랑의 등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힘차게 손뼉을 쳤다.
“후우. 그래. 정신 차리자! 내가 그래도 형님의 오른팔 아닌가. 나 없으면 어리버리한 애랑 형님인데 내가 빨리 정신 차리고 도와야지.”
건물 밖으로 나온 천애랑은 안에서 들려오는 송소걸의 다짐소리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라졌었던 소중한 무언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