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92화 (92/200)

기공술사 92화

화르르륵!

본격적으로 화룡단에서 기운을 뽑아내자 외피만 벗겼을 때완 차원이 다른 화기가 날뛰었다.

쿵! 쿵!

심지어 화기는 자신을 옭아맨 강기의 장벽을 부수고 싶은 듯 거칠게 움직였다.

천애랑은 과감하게 화룡단에서 기운을 더 뽑아냈다.

화라락!

쿠구궁!

화기의 기운이 급격히 강해졌다.

‘마치 용처럼 생겼네.’

화룡단에서 뽑아진 화기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과 비슷했다.

천애랑은 남림야수족 전사들에게 들은 팔각사의 숨겨진 전설이 떠올랐다.

그들은 팔각사가 9개의 뿔을 가지게 된다면 화룡이 되어 승천한다고 했다.

‘얌전히 있어라.’

천애랑의 붉은 눈이 번들거리자 날뛰던 화기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화기는 자존심이 상한 듯 더욱 성을 부렸다.

‘네놈 장단에 느긋하게 놀아줄 시간 없다.’

동생을 살리고자 하는 집념이 가득한 천애랑은 화룡단의 앙탈을 받아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

천애랑은 더욱 눈을 빛내며 화룡단의 기운을 억눌렀다.

마치 야생 동물을 길들이듯 당근과 채찍을 주면서 그 기운을 다스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은 남림야수족 전사들을 보고 배운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과 연결되는 야생동물들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이들을 길들이는 두 가지 요령이 있었다.

첫째, 그들을 이해할 것.

길들이고자 하는 야생동물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백날 노력해 봐야 헛수고라 했다.

천애랑의 몸에 깃든 화기가 화룡단의 화기와 어울리며 너울거렸다.

둘째, 야생동물의 야수성과 자유를 살릴 것.

이는 방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신뢰를 얻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말하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생이기에 당연히 힘에 따른 종속관계가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힘으로 굴복시켰다고 해서 곧장 억압하며 데리고 다니지 않고 그 야생동물을 자유롭게 풀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수차례 종속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 그 야생동물이 결국엔 스스로 굴종한다 했다.

그렇게 되면 영혼과 이어진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주인을 따르며 본연의 가진 바 야수성을 잃지 않는다 했다.

이는 남림야수족의 먼 과거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다.

사람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종족을 제외하곤 타인을 잘 따르지 않는 남림야수족이지만 자신들을 힘과 자유로 굴종시키는 이가 있다면 간혹 따르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먼 과거 제갈량을 따른 맹획이라는 선조였다.

천애랑은 남림의 맹우들을 추억하며 그들의 가르침대로 화룡단을 제압했다 풀어줬다 반복했다.

그리고 완전히 기운이 길들여졌을 때 기공을 입혔다.

이 작업은 꼬박 2주일이 걸렸다.

화룡단까지 작업이 끝난 천애랑은 마충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특제 자양강장제를 먹고 대충 기력을 회복한 후 빙백단의 작업에 들어갔다.

북해빙궁의 설엄에게 듣기론 빙백단은 화룡단과 같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었다.

팔각사처럼 북해의 영물에게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북해에서 자란 풀이나 특별한 돌 등이 인고의 시간을 지나 빙백단의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빙백단이라고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지만 품은 내공에 따라 그 등급이 나눠진다 했다.

북해빙궁주 설엄이 천애랑에게 챙겨준 것은 무려 빙(氷)의 내공이 일 갑자(60년)나 담긴 최상품의 빙백단이었다.

천애랑은 빙백단을 다루면서 엄동설한 북해의 날씨가 느껴졌다.

그들의 기상과 호연지기가 추억처럼 떠올랐다.

‘잘들 지내겠지.’

호탕하고 신의를 가진 북해빙궁의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야수족 전사들과 북해빙궁의 전사들이 잘 어울릴 것도 같네.’

환경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세력이었지만 그 성정이 비슷해 금방 친구가 될 것도 같았다.

물론 현실적으론 거리가 너무 멀어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천애랑은 뜻깊은 맹우들을 떠올리며 빙백단의 작업을 이어갔다.

* * *

총 한 달.

천애랑이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영약들의 작업을 한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마충과 신의가 챙겨주는 보양식품으로 체력을 보충했을 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 험난한 시간이었다.

“이제부턴 두 분에게 달렸습니다.”

천애랑은 작업이 끝난 특별한 함을 건넸다.

그 안에는 각각 성질이 다르지만 천애랑에 의해 길들여지고 기공이라는 색깔을 공유하는 세 영약들이 함께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로 천애랑에게서 함을 건네받은 마충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간 고생 많았다 애랑아. 바로 진행하마.”

“고생 많았네. 우리가 영약들을 합치는 동안 자넨 좀 쉬고 있게나.”

신의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천애랑만큼이나 마충과 신의도 옆에서 고생을 했다.

언제 천애랑의 작업이 끝날지 모르고, 어느 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두 사람은 수시로 송소걸을 챙기면서도 천애랑의 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두 사람의 기민한 보조가 있었기에 원활한 작업이 됐음을 아는 천애랑이었지만 마음의 긴장을 풀지 않았다.

“격려와 축하는 모든 치료가 끝난 후에 나눕시다.”

“그러자꾸나.”

“물론일세.”

천애랑이 대화를 마무리 하듯 말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체 없이 부르세요.”

이에 고개를 끄덕인 마충과 신의는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둘은 가진 바 최고의 지식과 기술들로 세 영약을 작업해 쓰러진 송소걸이 먹기 편하게 만들어 낼 것이다.

천애랑은 둘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며 쓰러지듯 오랜만에 잠을 취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긴장이 풀리자 잠이 쏟아지듯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아무리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잠은 버텨내는 것이지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절하듯 꼬박 하루를 자고 난 후 아침이 되어서야 천애랑은 화란의 방문에 잠에서 깼다.

“오랜만입니다.”

화란의 수줍은 인사에 천애랑은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랜만.”

화란은 천애랑의 미소를 보자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이 멋쩍어졌다.

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흐르는 찰나 화란이 말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가주님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애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랜만의 숙면과 함께 화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잠시 몽롱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천애랑은 벌떡 일어났다.

“가자!”

천애랑은 한달음에 송소걸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안엔 마충과 신의가 경건한 자세로 천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그간 송소걸을 치료한다고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집기류와 향초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직 특수제작한 주전자가 중앙 침상에 누인 송소걸의 옆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기공가에서 만들던 만병통치약은 대개 일반적인 영약처럼 환단 형태를 가진다.

하지만 마충과 신의는 움직일 수 없는 송소걸을 위해 이를 액체 형식으로 만들었다.

“왔느냐.”

마충이 반가운 눈으로 천애랑을 맞이했다.

“예. 할아버지. 벌써 준비가 다 된 건가요?”

“애랑 네가 고생한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천애랑이 두 사람을 살폈다.

짐작하건대 꼬박 날을 샌 것 같았지만 둘에게선 전혀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동자 안에는 오직 치료에 대한 기대와 열망만이 가득했다.

“준비는 끝났나요?”

천애랑이 묻자 마충과 신의는 의지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다.”

“당연하네.”

천애랑은 반듯이 누워있는 송소걸을 보았다.

죽은 듯이 다소 창백한 피부와 미동 없는 몸은 여전했다.

하지만 깔끔한 머릿결과 옷이 단순히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천애랑은 뒤따라 건물로 들어온 화란을 돌아봤다.

“항상 고마워.”

“당연한 일인걸요.”

화란의 대답은 건조했으나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천애랑은 화란에게 미소로 화답하며 양팔을 벌렸다.

솨아아---

천애랑의 기가 순식간에 방안의 공기를 순환시켰다. 방 안에 청량한 기운이 맴돌았다.

천애랑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건물 내부 가득히 기막을 펼쳤다.

먼지 같은 불순물이 치료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천애랑은 모든 준비가 됐음을 확인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죠.”

천애랑의 말에 신의는 송소걸의 입을 조심스럽게 벌리고 식도가 편할 수 있도록 자세를 유지시켰다.

마충은 주전자를 조심히 들어 송소걸의 입에 천천히 기울였다.

또로록.

주전자에서 오묘한 색깔과 향을 가진 액체가 송소걸의 입안으로 흘러 내렸다.

천애랑은 일전에 신의를 도와 했던 것처럼 송소걸의 목과 단전에 손을 올리고 약을 인도했다.

식도를 타고 넘어온 약이 천애랑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위로 넘어갔다.

약의 기운이 어찌나 대단한지 위에 도착하기 전부터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생(生)의 기운이 가득한 약이기에 먹이기만 하여도 알아서 치료가 되겠지만 천애랑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천애랑은 몸에 흡수되어 전신으로 퍼지는 만병통치약의 기운을 놓치지 않고 모두 조절했다.

천애랑은 우선 약의 기운을 하단전으로 이끌었다.

지독한 산공독의 영향으로 밑 빠진 독처럼 깨진 하단전이 느껴졌다.

이 때문에 부상 당시 송소걸은 많은 선천지기를 사용했고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영약을 먹이지 않거나 기운을 불어넣지 않으면 언제든 모든 기운을 소진하고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천애랑은 소중한 동생을 이렇게 만든 마교에 대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빠르게 마음을 추스렸다.

당장의 치료에 있어서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간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송소걸의 깨지지 않은 부위의 하단전은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천애랑은 만병통치약의 기운으로 조심히 하단전을 어루만졌다.

배가 아플 때 배를 문지르듯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하단전이 점점 생기를 갖고, 하단전의 깨진 곳에선 새살이 돋듯 그 그릇을 메꾸어갔다.

메꿔진 곳의 내구성이 아직은 연약하지만 온전한 그릇이 완성되자 그릇에 기운이 차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약효가 확실히 있음을 확인한 천애랑은 기쁜 마음으로 약의 기운을 다음 행선지로 인도했다.

하단전에서 이끈 기운들로 주요 혈도를 작게 한 바퀴를 도는 소주천을 이루었다.

이때쯤 마충과 신의는 송소걸에게 만병통치약을 모두 먹인 상태였다.

둘은 집중하는 천애랑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뒤로 물러나 지켜봤다.

천애랑은 소주천에서 멈추지 않고 중단전과 상단전까지 약의 기운을 인도했다.

중간중간 혈도가 울퉁불퉁하거나 막힌 곳이 있다면 대장장이가 검을 다듬듯 일일이 손을 대었다.

결국 천애랑의 의지대로 약의 기운은 중단전과 상단전까지 깨우고 대주천을 돌았다.

우우웅---

방 안에 형용할 수 없는 공명음이 울리며 송소걸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 송소걸의 정수리 쪽에 있는 백회혈에서 3개의 연꽃잎이 피어올랐다.

화란과 두 신의는 엄청난 현상 앞에서 감탄사가 나오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송소걸의 임독양맥과 모든 세맥들을 어루만진 천애랑은 마지막으로 약의 기운을 심장으로 끌고 갔다.

생사의 기로에서 급격한 선천지기를 사용하며 약해진 심장 또한 치료할 생각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천애랑은 깊은 숨을 뱉으며 손을 뗐다.

“후우…….”

천애랑이 눈을 뜨자 그제야 화란과 두 신의도 틀어막은 입을 풀고 참았던 호흡을 자유롭게 했다.

천애랑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대화를 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밑에서 들린 작은 음성에 모든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형님……?”

송소걸이 누운 채 천애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