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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91화 (91/200)

기공술사 91화

천애랑은 마충의 안내를 따라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바닥과 함께 눈에 익숙한 함 3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소림사와 남림 독무지대, 북해빙궁에게서 얻은 세 가지의 영약들이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세 가지의 영약을 한 번에 담을 특수 제작한 함이 있었다.

“바로 시작할 생각이더냐?”

마충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천애랑을 보며 물었다.

천애랑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지체할 필욘 없겠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하겠습니다.”

“우린 준비가 다 됐으니 걱정 말거라. 애랑아.”

“마찬가지네. 나도 빨리 이 치료의 끝을 보고 싶다네.”

마충은 물론 신의도 강렬한 눈빛을 보였다. 신의의 눈빛엔 설렘이 가득했다.

담가에서부터 순수하게 환자에 대한 치료 의지와 본인의 치료 상식에 대한 한계를 개척하고자 묵묵히 송소걸의 옆을 지킨 그였다.

천애랑은 따스한 눈빛으로 신의를 보았다.

신의는 혀를 찼다.

“여자도 아닌 놈에게 그런 눈빛을 받는 건 달갑지 않네. 할 말 없으면 시작하게나.”

천애랑이 피식 웃었다.

“알겠소.”

천애랑이 가부좌를 틀고 집중을 시작하자 두 신의는 거리를 벌려 물러났다.

후우웅---

천애랑을 중심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천애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과 대자연의 기가 공명하며 부드러운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후우우우---

더욱더 거대해지는 천애랑의 내공에 따라 산들바람은 점차 거세지면서 날바람이 되어갔다.

천애랑의 내공이 거대해질수록 마치 마중물이 된 것처럼 이에 감응하는 대자연의 기 또한 거대해져갔다.

나뭇잎들이 거친 바람에 휘날리며 천애랑을 지켜보던 두 신의의 뺨을 때렸다.

두 신의는 나뭇잎을 맞으면서 그저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천애랑 주위로 오고가는 순도 높고 거대한 내공의 바람은 숱한 시간을 살아온 이 둘에게도 천외의 경지로 보였다.

“대단하구만.”

신의가 짧은 감탄을 했다.

천애랑은 눈앞 3개의 함으로 손을 뻗었다.

딸깍.

내공에 의해 함들이 일제히 열리며 3개의 영약이 두둥실 떠올랐다.

대환단, 화룡단, 빙백단.

극히 다른 성질의 영약들이 내공의 바람 속에서 거칠게 흔들렸다.

“흡!”

천애랑은 작은 기합과 함께 양손을 바깥으로 활짝 펼쳤다.

그러자 영약과 천애랑을 중심으로 투명한 기막들이 둥글게 펼쳐졌다.

거대하게 펼쳐진 기막의 바깥은 여전히 내공의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며 모여들었지만 그 안은 고요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마충과 신의가 기가 차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허, 허허…….”

“말이 안 나오는군.”

지금 천애랑이 하고 있는 행동은 단순히 내공이 많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무당파의 양의심공을 펼치는 것처럼 각기 다른 성질의 내공운용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약들을 허공섭물로 띄워 공중에 머무르게 붙잡을 뿐 아니라, 그 기운들이 외부로 퍼져나가지 않게 각 영약마다 호신강기를 두르듯 보호막을 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방대한 범위로 기막을 펼쳐 잔잔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대자연의 거친 기가 기막을 유지하고 내부로 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이는 4~5개의 내공운용을 동시에 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영역이었다.

만약 2개의 내공운용을 가능케 하는 양의심공의 어려움을 아는 무당파의 인물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기가 차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애랑이 하는 행동의 가치를 아는 두 신의는 오늘을 기억하고자 천애랑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둘은 자신들이 무림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을 목도하는 중이라고 확신했다.

무에는 큰 뜻이 없지만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한다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둘의 의지를 고취시키고 있었다.

두 신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천애랑은 재차 영약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트득.

천애랑의 손짓에 따라 허공을 격하고 대환단의 외피가 조심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개 영약의 외피는 영약 내부의 기운이 쉽게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며, 그러한 성질을 가진 재료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환단의 외피가 벗겨짐에 따라 내부의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턴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우선 외피가 벗겨짐에 따라 흘러나오는 기운들이 일절 새어나가지 않도록 호신강기에 더욱 신경 써야 했다.

그리고 실타래를 뽑듯 대환단에 담긴 모든 기운들을 극히 조심히 뽑아내야 했다.

최종적으로는 뽑아낸 모든 기운들에 일일이 기공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다시 대환단에 집어넣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기운이 소실되거나 작업자체가 실패할 수 있는 극악의 난이도였다.

이러한 작업을 대환단 뿐만 아니라 화룡단, 빙백단까지 해야 했다.

천애랑은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우선 대환단에 집중했다.

그리고 매우 천천히 그 기운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림.’

모든 것을 포용하고 항시 중도를 지키는 소림처럼 대환단의 기운 또한 웅혼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소림방장과 비슷한 기운이네.’

천애랑은 한쪽 팔을 잃으면서도 그 기개를 잃지 않던 소림방장이 떠올랐다.

시절인연이라며 자신에게 극도의 호의를 베풀던 그가 떠오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천애랑은 가벼운 심호흡과 함께 대환단의 기운을 쭉 잡아 뽑았다.

대환단의 묵직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고련을 통해 하나로 집약된 영약이고 그 안에 담긴 기운 또한 큰 대환단이라서인지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제일 쉬운 작업이다.’

아직 작업에 들어가지 않은 화룡단이나 빙백단은 더 극악의 난이도를 보일 것이었다.

천애랑은 인내심을 가지고 매우 천천히 대환단의 기운을 실타래 뽑듯 뽑아냈다.

아침에 시작한 대환단에 대한 작업은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찾아와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이어졌다.

“후우…….”

드디어 대환단의 기운들을 모두 뽑아낸 천애랑이 가벼운 숨을 토해냈다.

송소걸에게 주기적으로 약을 먹여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속 옆을 지켰던 두 신의는 천애랑을 걱정스레 보았다.

그들의 상식에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지금처럼 무지막지한 내공과 심력을 소모하면서 쓰러지지 않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애랑아. 좀 쉬었다 하는 게 어떻겠니?”

천애랑이 눈을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충이 걱정을 표했다.

하루 종일 이루어진 작업에 천애랑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마실 물 좀 주세요.”

“여기 있네.”

신의가 재빠르게 박에 담긴 물을 가져왔다.

그는 천애랑이 쳐놓은 기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천애랑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에 천애랑은 허공섭물로 신의가 가져온 박을 당겨와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고맙소.”

천애랑은 신의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마충을 보며 말했다.

“대환단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이제 기공을 입히는 중요한 작업이 남았지만요. 그럼, 다시 진행할게요.”

천애랑은 허공섭물로 물을 마셨던 박을 기막 밖으로 밀어 보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집중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환단에 담긴 기운을 손실 없이 꺼냈으니 이제는 그 기운들에 천애랑의 기운인 기공을 입힐 차례였다.

이 작업이 끝난다면 기공으로 재탄생한 대환단이 그 성질이 매우 다른 두 영약들을 연결해주는 중심축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후우우!”

천애랑은 불필요한 상념들을 긴 날숨으로 뱉어내고선 작업을 시작했다.

* * *

천애랑의 눈이 다시 떠졌을 때는 첫날 이후로 꼬박 삼 일이 지났을 때였다.

천애랑과 멀찍이 떨어진 나무둥치에 기댄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신의가 벌떡 일어났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신의는 천애랑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몰라 준비한 것들을 보이도록 내밀었다.

기막 밖에 준비된 몇 개의 박에는 물, 영약으로 다려진 물, 영양가 높은 음식들로 만든 죽 등이 있었다.

그리고 천애랑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갈아입을 수 있도록 천애랑이 즐겨 입는 흑색의 무복도 준비되어 있었다.

천애랑은 영약 물이 담긴 박을 허공섭물로 끌어와 마셨다.

신의가 신경을 많이 썼는지 마시자마자 천애랑은 몸에 활력을 느꼈다.

예민하게 활성화된 단전과 전신혈맥 덕분에 마신 영약들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지며 기력을 회복시켰다.

“고맙소.”

천애랑은 박을 기막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설마 바로 시작하려는 겐가?”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는 천애랑을 보며 신의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환자치료를 위해서 며칠, 몇 주를 꼬박 날 새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의 천애랑과 비할 바는 아니라 생각했다.

신의는 천애랑이 하는 일이 마치 천 길 낭떠러지 위의 외줄을 타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심지어 그 외줄 위로는 난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절대 실패가 존재해서는 안 되기에 매 순간 초인과 같은 집중력을 필요로 할 것이었다.

“지체할 이유가 있겠소. 이 정도로는 끄떡없소.”

“허허…….”

신의는 천애랑의 말이 허세가 아닌 것 같아 그를 대단하게 쳐다봤다.

천애랑은 잠시 숨을 고르고선 눈을 감았다.

성공적으로 대환단의 기운에 기공을 입혔던 감각이 살아있을 때 잇따라 화룡단과 빙백단까지 연이어 작업할 계획이었다.

“후우우…….”

천애랑은 보다 섬세해진 내공운용으로 팔각사의 내단이었던 화룡단의 외피를 벗기기 시작했다.

이 짓도 연습이 되는 건지 천애랑은 허공섭물과 내공운용 실력이 나날로 향상함을 느꼈다.

화르륵!

화룡단의 작은 외피 틈으로 엄청난 불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화기(火氣)는 마치 팔각사가 꼬리를 휘둘러 주변을 초토화시켰던 것처럼 마구잡이로 주위를 공격하려 했다.

저항감만 있을 뿐 누군가를 해칠 의도가 없던 대환단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천애랑은 호신강기로 확실하게 화룡단의 기운을 옭아매었다.

화기는 그런 구속이 싫은 것인지 그 안에서 더욱 요동을 쳤다.

기운은 호신강기 안에 붙잡혀 있었지만 그에 수반되는 열기는 그 밖으로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기막 안을 가득 채웠다.

기막 밖에 있던 신의는 갑작스런 열기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허어…….”

신의는 대장간의 불꽃처럼 엄청난 열기를 뿜는 기막 안의 상황에 걱정의 눈을 했다.

‘역시 만만치 않네.’

화룡단의 열기에 흠뻑 땀에 젖은 천애랑은 주위 가득한 화기에 집중했다.

‘후우…….’

천애랑의 안광이 번뜩였다.

천애랑의 홍채가 불꽃처럼 붉게 변하며 기이한 빛을 내었다.

뇌기를 몸에 입히듯 주위에 가득한 화기를 몸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천애랑은 지옥처럼 주위를 달구던 열기가 편안해짐을 느꼈다.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된 천애랑은 대환단 때보단 과감하게 화룡단의 외피를 벗겨내고 기운들을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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