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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82화 (82/200)

기공술사 82화

소강상태.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한 사람에 의해 들끓어 오르던 전장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흑풍대주는 인상을 쓰며 갑자기 나타난 인영을 바라봤다.

검은 장단발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빼어난 외모, 완벽하리만큼 균형 잡힌 몸매에 흑색 무복, 그리고 어떠한 무기도 착용하고 있지 않은 젊은 청년이었다.

특이한 점은 무방비로 서 있음에도 청년의 모든 방위에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청년, 천애랑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북해빙궁주를 보았다.

“혹시 북해빙궁주?”

천애랑의 질문을 받은 빙궁주 설엄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만. 그댄 누군가?”

“기공가주 천애랑이오.”

“아!”

천애랑의 대답에 설엄과 설화가 작은 감탄사를 뱉었다.

천애랑은 이들의 반응을 대충 흘려 넘기며 흑색 물결 속에서 흑풍대주를 찾았다.

개중 가장 거대하고 정제된 기운이 느껴지는 이가 있었다.

“저자가 흑풍대주 맞소? 나머진 흑풍대고?”

천애랑의 시선 끝을 바라본 빙궁주 설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대강의 상황 파악이 끝난 천애랑은 설엄과 설화에게 말했다.

“부상이 심하면 물러나서 쉬시오. 전투가 가능한 이들은 전선을 유지하기만 해주고.”

“그럼 그대는……?”

설엄의 질문에 천애랑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날뛰어야지. 어떻게 만난 마교인데.”

천애랑은 내공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 하늘을 수놓는 눈들과 차가운 기운들을 느끼며 수(水)의 기운을 끌어 모았다.

대해(大海)와 같은 천애랑의 기를 지척에서 느낀 설엄과 설화가 깜짝 놀랐다.

천애랑의 주위로 기의 결정들이 회전을 하며 날카롭게 적들을 바라봤다.

북해빙궁의 추위에 수(水)의 기운을 띤 기의 결정들이 만나자 반투명한 화살촉처럼 형상화되었다.

“고수다! 방심하지 말고 공격해라!”

흑풍대주는 천애랑의 행동을 보고선 천애랑과 가까이 있는 흑풍대원들에게 경고를 했다.

흑풍대주의 경고에 잠시 멈추었던 흑풍대원들과 기병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파바바바바바밧!

천애랑은 지체하지 않고 수백 개 기의 화살을 쏘아 보냈다.

“으악!”

“컥!”

“크헉!”

“피해라!”

천애랑의 무작위적인 공격에 기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다.

그에 반해 흑풍대 무인들은 창과 검으로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전진해왔다.

‘화접탄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천애랑은 너무나 추운 북해의 기운 탓에 불의 기운을 다루기가 용이치 않은 게 아쉬웠다.

다수와의 전투에서는 불과 폭발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었다.

뇌룡강림(雷龍降臨).

천애랑의 몸이 순식간에 뇌기에 감싸지며 사라졌다.

파지직!

“큭!”

“당황하지 마라! 크악!”

“혼자 상대하지 말고 협공을…, 으악!”

“적은 하나다! 먼저 처리해!”

흑풍대의 중심으로 파고든 천애랑 때문에 흑풍대에 소란이 일었다.

설엄은 천애랑의 압도적 무위에 감탄했다.

‘엄청나군.’

죽음을 각오한 상황이 허망하리만큼 천애랑의 등장 이후의 전황은 급속도로 반전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전장을 지배하는 천애랑의 무위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때 설화가 크게 소리치며 내달렸다.

“북해의 전사들이여! 긍지를 보여라!”

그러자 급히 뛰쳐나왔던 빙궁의 전사들이 호응하며 돌진했다.

그 방향은 흑풍대가 아닌 다른 마교 무인들이었다.

설화의 검 끝에서 얼음 꽃이 피듯 한기가 퍼져나가자 적들이 속수무책 쓰러져갔다.

빙백신장을 나름의 방법으로 변형한 빙백신검이었다.

설화는 공격 중간중간 천애랑을 보았다.

흑풍대라는 전설의 중심에서 종횡무진 움직이며 적을 도륙하는 천애랑의 모습에 감탄했다.

“하하하! 멋지잖아!”

설화의 검이 더욱 빠르고 더욱 차갑게 움직였다.

천애랑은 흑풍대를 공격하면서 내심 감탄했다.

‘연계가 좋고 지독하다.’

천애랑은 자신의 모든 방위를 겹겹이 둘러싸고 차륜전을 펼치는 흑풍대를 보았다.

천애랑이 느끼기에 흑풍대는 개개인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제일 무서운 점은 이대도강(李代桃僵)의 자세였다.

흑풍대 모두가 살을 내어주더라도 뼈를 취하려는 행동을 보이기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웠다.

‘그래도 상관없다.’

천애랑은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토룡지와(土龍之臥).

대지의 결들이 폭발하면서 천애랑 주위를 점하던 흑풍대가 디딜 곳을 잃은 채 급히 산개했다.

신룡지탄 난사(亂射).

천애랑은 공중에 뜬 흑풍대들을 향해 탄지공을 난사했다.

“크학!”

무너진 자세로 공격을 허용한 흑풍대원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속수무책 당하는 흑풍대를 보며 흑풍대주 초여운은 전체적인 전장지휘를 포기하고 천애랑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성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급히 시선을 돌렸다.

무수히 많은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죽음의 비명들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무슨……?”

흑풍대주의 의문을 풀 듯 성 밖에서 큰 사자후가 들렸다.

“모용의 검은!”

“북두에 빛나며!”

“모용의 기상은!”

“천하에 울리네!”

“세상의 환란에!”

“모용이 있으니!”

“평화를 찾으리라!”

와아아아아아!

천애랑은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오문주의 안배로 이동 도중 만난 모용세가의 천중모용대(天中慕容隊)였다.

모용세가의 현 가주인 단화대협 모용단이 직접 200명의 정예를 이끌고 왔는데, 정도 무림문파 중 드물게 기병을 운용하는 모용세가의 정예 기병무력집단이었다.

이때 전장을 울리는 또 다른 사자후가 들렸다.

“주 대장의 군대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라! 적은 황실과 나라를 환란에 빠뜨린 주범들이다! 모두 용감무쌍 적들을 섬멸하라!”

우아아아아아!

목소리에 호응하는 거대한 인원의 발구름에 대지가 진동했다.

“이건 또 무슨…….”

흑풍대주는 심상치 않은 성벽 너머의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인상을 썼다.

천애랑은 근처에서 강맹하게 검을 휘두르는 설화를 향해 말했다.

“지원군이 왔소! 적들을 몰아붙이시오!”

천애랑의 말에 설화는 놀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의 전사들이여! 지원군이 왔다! 적은 궁지에 몰렸으니 가차 없이 몰아붙여라!”

으아아아아!

설화의 말이 아니더라도 분위기를 읽고 있던 빙궁의 전사들이 분기탱천 고함을 지르며 초인적인 힘들로 적을 공격했다.

저들 때문에 죽은 동료의 복수를 하고자 함이었다.

단숨에 전장의 흐름이 꼬이자 흑풍대주는 흑풍대와 격전을 벌이는 천애랑을 노려봤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전쟁이 천애랑이 나타난 순간부터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흑풍대주는 검을 뽑아 들고 천애랑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날아오는 무시 못 할 기운에 급히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까앙!

흑풍대주는 힘껏 쳐냈음에도 살짝 방향만 꺾였을 뿐 그대로 땅에 박힌 무언가를 보았다.

“화살?”

평범한 화살대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빙궁주처럼 거대한 화살이 아님에도 이런 위력을 내는 궁수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흑풍대주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살피니 성벽 위에서 재차 활을 장전하는 노인이 보였다.

피윳.

노인이 활을 겨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미 화살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엄청난 속사와 공력이었다.

흑풍대주는 화살을 쳐내고는 인상을 썼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크학!

흑풍대주의 귓가로 비명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문제는 아군의 비명이 주를 이루었기에 흑풍대주의 고심은 깊어졌다.

이성은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자존심의 감성이 이를 부인하고 있었다.

흑풍대주 초여운은 지금껏 작전을 실패한 적이 없던 흑풍대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등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싶었다.

흑풍대주는 구겨지는 자존심에 이를 갈며 외쳤다.

“흑풍대! 퇴(退)!”

아무리 흑풍대의 자존심이 중요하다지만 마교 대계의 가치만큼은 아니었다.

마교의 대계를 위한 죽음의 장소는 결코 지금과 이곳이 아니었다.

자신이 참전하고 필사의 의지로 싸움을 이어간다면 북해빙궁을 멸한다는 목표를 이룰지는 모르나 상황상 양패구상의 가능성이 높았다.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천애랑에 의해 수십의 흑풍대원이 죽었다. 냉정하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으드득.

흑풍대주는 재차 이를 갈았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천애랑과 북해빙궁을 일별하고선 앞장서 길을 뚫었다.

“길을 뚫겠다. 따라라!”

“대주님의 뒤를 따라라!

흑풍대는 흑풍대주의 명령에 일사불란 천애랑을 떨쳐내며 후퇴를 시작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들러붙는 천애랑과 어느새 합류해 발을 붙잡는 설화, 성벽 위를 점한 채 연신 화살을 쏘아대는 노인 때문에 후퇴가 쉽지 않았다. 피해만 더 커져갔다.

흑풍대주는 길을 뚫으며 외성벽의 정문을 벗어났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적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외성벽 바깥에 대기하던 기병들만 해도 2천은 될 터인데 적들의 수는 이에 3배는 되어 보였다. 물론 대다수가 보병이긴 했지만 창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기병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닌 듯했다.

“모두 후퇴한다! 뒤따라라!”

흑풍대주와 흑풍대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성 밖에 세워뒀던 자신들의 말에 기마했다. 그리곤 다급히 쐐기형 돌파를 시도했다.

밖에서 대기하며 전투를 치르던 마교 기병들도 회피기동을 펼치며 다급히 흑풍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저들이 흑풍대다! 막아라!”

천애랑은 뒤따라 정문을 빠져나오면서 소리쳤다.

“천 가주!”

정문을 빠져나온 천애랑의 곁으로 모용단이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달려왔다.

모용단이 천애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애랑은 이내 그 의미를 알아채고 모용단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안착했다.

“적들을 추격해라! 마교 놈들을 살려두지 마라!”

모용단이 천중모용대를 재촉하며 흑풍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흑풍대는 무림 최고의 기병임을 증명하듯 내달리기 시작하자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을 자랑했다.

말에서 내려서 전투를 치를 때와는 격이 다른 기세였다.

이들은 겹겹이 포위하던 창병들을 힘으로 단숨에 뚫으며 돌파했다.

하지만 뒤따르던 다수의 마교 기병들은 흑풍대처럼 수 겹의 창병들을 돌파하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다. 재차 혼란스런 전장이 벌어졌다.

천애랑은 흑풍대에 의해 뚫린 병사들의 틈을 지나며 이들을 지휘하던 이와 눈을 마주쳤다.

“화운! 저들은 우리가 추격하겠소. 북해빙궁을 도와 여기 상황의 수습을 부탁하오!”

“알겠소!”

주원장의 오른팔이자 호위를 담당하는 화운이 천애랑의 말에 재빨리 대답했다.

천애랑은 이들이라면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수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주원장이 친히 자신의 오른팔과 병사들을 대거 지원 보내준 것뿐만 아니라 병영 내 최고 고수인 고 노인까지 보내줬으니 말이다.

특히나 북해빙궁의 전력이 기대 이상이기도 했기에 이들 모두를 믿고 흑풍대만 바라보기로 생각했다.

“단화대협! 좀 더 빨리!”

천애랑이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단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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