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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74화 (74/200)

기공술사 74화

천애랑의 말에 당가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의미지?”

그 모습을 천애랑이 차갑게 비웃었다.

“고독이 있는 위치나 말해라.”

당정아와 함께 가주의 직계만 아는 비밀통로로 들어와 고독을 찾았으나 그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 때문에 천애랑은 작전을 약간 변경했다.

지금 당가주의 머릿속은 여러 경우의 수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정황상의 추측들이 나열되면서 지금 상황의 최선책들을 고민했다.

당가주의 몸에서 오보단장독이 뿜어져 나왔다.

독인(毒人)이 고련을 거쳐 화경의 경지를 넘으면 신독합일(身毒合一)을 이룰 수 있었다.

독이 곧 내공이 되는 건 물론이고 내공을 곧 독으로 쓸 수 있게 된다.

천애랑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음에도 갑작스레 느껴지는 독향과 독기에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퍼억!

“큭!”

당가주는 천애랑이 몸을 빼면서 내지른 적화권(赤花拳)을 등에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찰나에 침투경의 묘리까지 들어갔는지 내장이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당가주는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공격을 맞았지만 잡혔던 뒤를 해결했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천애랑은 익히 훈련했던 오보단장독의 고통을 빠르게 해소시켰다.

고통에 익숙해지고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뿐이지 여전히 오보단장독은 극심한 고통을 가져왔다.

‘칫.’

천애랑은 당가주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독을 뿌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천애랑은 즉시 환영유령보보를 펼쳤다.

스르륵.

소리 없이 사라지는 천애랑을 보며 당가주는 긴장을 했다.

아무리 내독성을 훈련했다지만 자신의 내공이 가미된 오보단장독을 이리 빨리 해소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천애랑의 경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다 느꼈다.

당가주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천애랑을 보며 전방위적으로 침을 날렸다.

만천화우. 당가주의 손에서 완숙한 만천화우가 세상의 틈을 메꾸듯 퍼져나갔다.

천애랑은 피할 곳 없는 공간에서 맞이한 만천화우를 경시하지 못하고 내공으로 쳐냈다.

침들의 끝마다 은밀하게 발린 독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따당!

당가주는 여전히 천애랑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침이 튕겨진 소리의 근원지로 즉시 내공을 돌렸다.

팔방으로 무작위하게 뻗어가던 침들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천애랑의 위치로 일제히 쏟아졌다.

‘5대세가의 당가주라 이건가…….’

당정아가 팔각사에게 쏘아냈던 만천화우와는 비교되지 않는 양과 속도, 그리고 기세였다.

천애랑은 내공을 많이 소모하고 당장은 필요 없을 환영유령보보를 풀었다.

적룡여의주(赤龍如意珠).

독이 묻은 침들을 상쇄하기 위해서 독에 강한 화기(火氣)를 품은 호신강기로 대응을 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당------!

콩 볶는 소리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가까운 굉음이 울렸다.

만천화우가 끝나자 천애랑은 즉시 신룡지탄을 날렸다.

당가주는 소리장도처럼 쏘아져 오는 탄지공을 급히 막아냈다.

빠각!

만천화우의 잔음 속에 섞여 날아오는 터라 대비가 늦어 당가주가 큰 피해를 입었다.

“흐읍.”

당가주는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파고들려고 하기에 다급히 내공으로 뼈를 붙잡아 독으로 접합시켰다.

독초를 연구하는 당가의 특성상 의술 또한 기이하게 발달했는데, 그 정점에 있는 당가주는 이런 식의 자가 치료가 가능했다.

물론 회복불능의 상태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했지만 어느 정도의 응급처치는 가능한 정도였다.

밥 먹듯 독을 먹어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한 당가주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순식간에 응급치료를 마쳤다. 그러나 여유를 가질 순 없었다.

토룡지와(土龍之臥).

천애랑의 발을 타고 뻗어간 기운이 당가주의 지반과 균형을 무너뜨렸다.

토룡지주(土龍之宙).

곧이어 무너진 지반이 솟아올라 당가주를 가두듯 압박하며 작은 봉분을 만들었다.

끄드드득.

땅들이 밀착되면서 거친 소리가 났다.

“끄으으으아아!”

당가주는 엄청난 강도로 신체를 압박해오는 흙더미를 순수한 내기로 밀어냈다.

그리고 갑작스런 내기의 덩어리를 맞고 튕겨져 날아갔다.

천애랑은 쉬지 않고 당가주를 공격했다.

내공소모가 큰 기술들만 쓰느라 단전에서의 허탈감이 계속 밀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만천화우를 막을 때 난 굉음 때문이라도 아마 당가의 누군가는 눈치를 챘을지도 몰랐다.

그런 경우 당정아가 가문의 식솔들을 통제해준다고 했지만 그녀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미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천애랑은 날아가는 당가주를 축지법으로 따라잡고선 그의 팔목을 잡아 내동댕이치듯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아앙!

거친 충돌음과 함께 당가주의 신형이 3척(약 90cm)이나 땅에 파묻혔다.

천애랑은 끝을 내고자 당가주의 단전을 향해 수강을 뻗었다.

“흐읍?!”

하지만 손을 거두고 몸을 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이질적 기운이 체내에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천애랑은 다급히 단전 모두에서 내공을 뽑아내 전신세맥으로 밀어내듯 운용하고선 이를 왼손 끝으로 모아 내공과 함께 털어냈다.

콰광!

천애랑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내공이 인근 암석과 부딪히고는 폭발했다.

치이익---!

부서진 암석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독?”

천애랑은 이질적인 기운이 지나간 혈도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독에 대한 훈련이 없었다면, 체내의 내공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 않았다면 반응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독을 발출할 문으로 사용한 왼손은 마비되듯 감각이 저하되었다.

‘독 특유의 냄새도 색도 없었다.’

천애랑이 혹시 모를 체내의 잔독을 점검할 때 당가주가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천애랑에게 잡혔던 그의 팔은 덜렁거리고 있었고 온몸엔 흙과 상처, 피가 가득했다.

“무형지독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하다니…… 쿠웩!”

말을 하던 당가주가 피를 토했다.

“내상까지 입었나…… 하아…….”

당가주는 토혈에 섞인 큼직한 내장 조각을 보며 내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가 치료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상이었다.

“당가십이는 어찌 됐지?”

당가주는 힘없는 목소리로 천애랑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천애랑의 말을 들은 당가주의 표정이 힘없이 굳었다.

“죽은 건가…….”

천애랑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당가주는 대답을 들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속으로 한탄했다.

가주로서 정보를 소홀히 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기공가주 천애랑에 대해 어렴풋이 들은 것은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저 능력 뛰어난 후기지수 정도로만 받아들였었다.

젊은 시절 만났던 소림방장의 추천서를 들고 왔을 땐 놀라긴 했었다.

후기지수를 아득히 넘기는 경지와 소림의 은인이라는 것이 예상 밖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팔각사를 잡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곧 사라질 열혈남아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쩌면 내독성 훈련에서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기간에 훈련을 마친 것도 모자라 딸을 길잡이로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이때 판단을 잘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지금에서야 들었다.

“내 딸은 어디 있지?”

천애랑은 당가주의 입에서 나오는 저 호칭을 들으면 썩은 애벌레가 입안에서 터져 역겨움과 텁텁함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잘 있으니까.”

당정아가 잘 있다는 말에 당가주의 눈에서 진득한 탐욕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촤악!

천애랑의 손에서 떠난 작은 단검이 당가주의 허벅지를 찔렀다. 침투 전 당정아가 챙겨준 단검이었다.

“크윽!”

“눈 똑바로 떠라. 그나저나 독인녀가 사실이었던가.”

천애랑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당가주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 눈빛을 본 천애랑이 서늘하게 말했다.

“설마 인간이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할까 싶어 일말의 반발심이 있긴 했다만 반응을 보니 확실하군.”

“네놈이…… 뭘 안다고 그딴 소릴 하느냐!”

당가주가 으드득 거리며 이를 갈았다.

힘을 주자 내상이 도지는지 당가주가 쿨럭거렸고,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천애랑은 차가운 눈빛으로 신룡군림보를 펼쳤다.

구구구구구------

내기의 압력이 당가주에게 가해지자 당가주가 또다시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끄으으윽!”

천애랑은 천천히 당가주에게 다가갔다.

“모르지. 그래도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당가주는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도 입꼬리를 올려 천애랑을 비웃었다.

“크큭. 가족? 무정강호 강자독식의 무림에서 그런 순수한 관계와 감정을 따지나? 아직 어리군. 어리석기도 하고. 그리고 가족이라면 가문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천애랑은 조금 몸을 숙여 무릎을 꿇은 당가주의 눈과 마주했다.

젊은 날의 당가주는 어떠했을지는 모르나 지금 그의 눈은 추악한 탐욕만 가득 남아 탁하게 달빛을 담고 있었다.

“아니지. 그건 제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하는 놈이 부리는 오만과 과욕의 변명일 뿐이야. 그리고 희생이라는 숭고한 의지는 다른 이가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천애랑은 말을 하면서 자신과 가문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할아버지와 기공가의 식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키지 못해 쓰러져 있는 송소걸도 떠올랐다.

입이 썼다. 그리고 이곳에 왜 왔는지가 강하게 떠올랐다.

“잡설은 그만하지. 고독은 어디 있나?”

“크크크크크크큭.”

당가주가 대답 대신 낮게 웃기 시작했다.

천애랑은 강기 어린 손날로 당가주의 덜렁거리던 팔을 쳐 날렸다.

툭.

허무하게 떨어져 구르는 자신의 팔을 보면서도 당가주는 짐승처럼 계속 웃었다.

“큭큭큭큭. 감히 당가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거니 걱정 마라. 고독의 위치는?”

천애랑은 당가주의 헛소리를 일축하며 재차 물었다.

당가주는 어두운 밤 휘영청 떠있는 보름달을 보았다.

조금만 더 했다면 저 밤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처럼 자신의 무공도 계획도 모두 성공으로 가득 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할 줄이야…….”

처연한 표정으로 달을 보며 읊조리던 당가주는 돌연 다시 짐승 같은 웃음을 뱉으며 천애랑을 보았다.

“크크큭. 필요한 게 있다면 어디 한 번 직접 찾아봐라. 그리고 내 인생의 끝은 내가 정한다!”

돌연 당가주의 몸에서 혈관이 도드라지기 시작하더니 눈에 보이는 신체의 모든 부위가 녹색으로 변해갔다.

이내 당가주의 모든 신체 부위가 어찌할 새도 없이 부풀어 올랐다.

당가주의 얼굴이 부풀어 커지다가 눈알이 튀어나왔다.

그의 코와 귀 등의 구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색의 고름 같은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천애랑은 갑작스런 당가주의 변화에 심각함을 느끼며 급히 당가주의 목을 수강으로 쳐냈다.

차악!

칼날과도 같은 예리함으로 당가주의 목이 날아가자 그 자리에서 독혈(毒血)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당가주의 몸은 계속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당가주의 몸은 성인 남성 두 명만큼 부풀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천애랑은 당가주의 몸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지금 상황의 여러 결과를 상정했다.

천애랑은 기감을 넓게 펼쳤다. 다행히도 당가 내당 깊숙이 있는 가주전 주위로는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당가십이만이 호위를 했다고 한 것이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된 듯했다.

천애랑은 작은 안도감을 느끼며 즉시 토룡지주로 당가주의 몸을 봉인했다. 그리고 신룡군림보 압(壓)으로 더 압박을 주었다.

하지만 이 방책들은 지연만 시킬 뿐 당가주의 몸은 토룡지주와 압박을 뚫고 더욱 거대해졌다.

그의 몸은 거의 작은 집채만 해졌다. 기사(奇事)였다.

“이런!”

천애랑은 급히 남은 내공을 긁어모아 혼신의 힘으로 호신강기를 펼쳤다. 당가주의 몸이 결국 터졌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에 따른 폭발력과 함께 당가주의 몸에서 독무(毒霧)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밤하늘을 뒤덮듯 순식간에 가주전부터 당가의 내당 끝자락까지 정체불명의 독안개가 퍼져 갔다.

기세를 보니 외당을 넘어 인근 시전까지 독안개가 퍼질 것 같았다.

천애랑은 호신강기를 녹여내는 지독한 독무를 뚫고 다급히 가주전을 벗어나 외당 너머를 향해 달렸다.

내당, 외당에 있는 당가인들이야 지금의 독에 어찌 대응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외당 밖의 민간인들은 무방비일 것이었다.

그리고 당가가 있는 장소는 사천의 성도라서 인구가 많았고 심지어 보름달이 뜬 오늘은 시전에서 밤새 야간 축제를 한다고 들었다.

천애랑은 가장 독기가 강한 가주전을 빠르게 벗어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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