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70화
“이 개새끼들이!”
맹건은 다친 왼팔을 쓰지 못한 채 오른팔만으로 당가십이와 싸우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당가십이는 맹건을 보며 혀를 찼다.
왼팔의 부상과 자신들이 입힌 수많은 자상들, 그리고 여러 독에 당했음에도 오히려 기세를 높여 공격하는 맹건의 모습이 징글징글했다.
심지어 저 남림야수왕과 호랑이의 합공에 당가십이 중 십(十)이 죽어버렸다. 대신 거대한 호랑이도 죽었다.
영혼의 단짝이었던 호랑이의 죽음과 사파인들에게 공격을 받으며 죽어가는 야수족들을 보며 맹건은 크게 분노했다.
“크아아아! 개새끼들 죽여 버린다!”
맹건이 맹호참조(猛虎斬爪)를 크게 휘둘렀다.
호랑이가 발톱을 세워 휘두르는 듯한 강기로 사거리와 공격력이 증가한 강맹한 공격이 당가십이를 휩쓸었다.
“크헉!”
십일(十一)과 십이(十二)가 쓰러졌다.
삼(三)은 쓰러진 동료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현재 여기에 없는 일(一)과 이(二)를 제외하고 무려 10명이 맹건을 합공하는데, 쉽지 않은 건 차치하고 되려 당하고 있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맹건의 상태를 보니 곧 숨이 넘어가기 전의 상처 입은 맹호 같았다.
“놈은 지쳤다! 거리를 벌리고 차륜전과 독을 위주로 사용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자 욕심을 부리던 당가십이가 작정하고 시간을 끌자 맹건의 표정이 더욱 파리해졌다.
근육에 그득하게 쌓인 내공들로 독의 침입을 저지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씩 몸 안으로 퍼지기 시작한 독은 엄청난 고통을 선보이고 있었으나 맹건은 이를 앙 다물고 버티는 중이었다.
저들이 육탄전으로 공격이라도 해오면 어찌 해보겠으나 저리 거리를 벌리고 암기들과 독들만 날려대니 죽을 맛이었다.
“이런 시발…….”
맹건은 심각해진 상황에 낮게 침음을 뱉었다.
맹건과는 반대로 당정아는 멀쩡했다.
당정아를 마주한 일(一)과 이(二)가 아무런 공격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주의 딸이라는 점을 떠나서 가주의 명에 의해 당정아는 곱게 당가로 복귀시켜야 했다.
당정아는 일과 이를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당가십이 안에서도 큰 무위의 격차를 가진 두 사람.
다른 당가십이도 초절정이라는 지고한 고수들이지만 저 둘은 화경을 문턱에 둔 초절정 극의에 달한 자들이었다.
경지라는 것은 무림에서 포괄적으로 나눈 하나의 길잡이 느낌이었는데 경지가 오를수록 같은 경지 내에서의 격차가 벌어진다.
또한 경지 간의 벽은 단순히 배열의 수순이 아닌 엄청난 격차의 골짜기가 존재했다.
아무리 초절정의 극의에 들었다고, 곧 화경을 넘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진짜 화경과는 천지 차이였다.
마찬가지로 절정의 극의 또한 초절정과 큰 격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절정의 극을 바라보는 당정아는 일과 이가 자신이 상대할만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독이라도 통한다면 경지의 격차를 메꿀 수도 있겠지만 저들 또한 독에 관해서는 통달한 이들이니 어느 변수 하나 만들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더라도 제 힘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동안 그랬듯 당가십이분들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돌아가세요.”
당정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일과 이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게 저희의 마지막 일입니다. 그리고 가주님의 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정아는 침을 삼켰다. 당가에서 ‘가주의 명’이라는 표현은 절대적인 강제력을 가진 주문이었다.
당정아는 한숨을 쉬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신 야수족들에 대한 공격을 멈춰주세요. 그렇다면 순순히 따라가겠습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이 또한 가주님의 명이기에.”
당정아는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치가 떨렸다.
팔각사 안에 들어간 천애랑 때문인지 팔각사가 발악을 하다가 쓰러진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천애랑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남림야수왕은 다른 당가십이에 둘러싸여 큰 곤욕을 치루는 중이었고 다른 야수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변수를 만들 요소가 없었다.
당정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끔찍한 꼴을 당하고 죽을 것이었다.
독인녀(毒人女).
독함과 잔혹함이라면 둘째도 서러운 당가에서도 비인륜적인 이유로 철저히 금지되다 사라진 내공 향상 방법이다.
정확히는 지독히도 수련이 어려운 독공(毒功)의 경지를 단숨에 몇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사기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인녀의 방법이 철저히 금지되고 사양된 이유가 있었다. 이는 그 조건 때문이었다.
친 혈육이어야 할 것, 처녀여야 할 것, 독인의 훈련을 마치고 절정의 경지를 넘은 이여야 할 것, 그리고 음양합일 방법의 흡정마공으로 조건에 충족한 여인을 취할 것.
조건 자체부터가 구역질이 나는 비인륜적 사항들이었는데 가장 절정은 성교 후의 여인이 목내이처럼 모든 생기를 빼앗기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모든 내공은 물론 선천지기까지 다른 사람에게 흡수되는 마공(魔功)이었다.
무림맹 때문에 수치심을 받은 당가주가 절대적 무력과 세력이라는 해결책 중 무력을 얻고자 선택한 방법이었다.
당가주는 가문의 서고에서 여러 파편들로 흩어진 자료들을 집념 하나로 취합해 복원하고선 독인녀의 방법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대상이 비록 자신의 하나뿐인 딸일지라도 말이다.
당가주의 광적인 권력욕의 집착과 그 방법에 대해서 당정아는 동생인 당상호를 통해 전해 들었다.
당상호는 평소 독단적인 성격이었으나 누나인 당정아를 잘 따랐다.
그런데 우연하게 아버지의 계획을 알게 되고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의 탐욕으로 누나가 죽을 운명에 놓여있다는 사실 때문에 당상호는 며칠을 칩거했었다.
아버지를 말리고 누나를 살리고 싶었지만 자신에겐 신(神)과 같이 군림하는 아버지를 말릴 방법도 힘도 없었다.
그 뒤로 당상호의 성격은 현실을 도피하듯 더욱 삐뚤어졌고 대신 누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남동생이 되었다.
당정아는 지금 가문으로 데려간다는 당가십이의 말을 듣곤 그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정아는 의지를 다잡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불가능에라도 부딪혀볼 생각이었다.
마치 천애랑과 야수족들이 팔각사를 상대했던 것처럼.
그리고 천애랑이 실낱같은 가능성 하나만으로 팔각사의 입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파파파파팟!
당정아의 손에서 현철로 만든 침들이 쏘아져 나갔다.
따다다다당!
하지만 일과 이가 마주 쏜 침들에 의해 당정아의 기습적인 공격이 실패했다.
“발악입니까? 상처를 내긴 싫으니 곱게 갑시다.”
일이 짜증 나는 표정으로 당정아를 채근했다.
“죽어라!”
당정아는 품속의 암기들을 강하게 뿌리고 칠보추혼독을 풀었다.
“소용없습니다.”
일은 당정아가 날린 암기를 피하며 칠보추혼독의 해독약을 마주 풀었다.
높은 경지의 당가인들은 어지간한 독들은 그냥 받아들여도 몸에서 해독할 수 있지만, 칠보추혼독은 그 고통이 너무 강해 몸으로 그냥 받아내기엔 부담이 있었다.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자 당정아는 뒤로 물러나며 만천화우를 펼쳤다.
만천화우에 절실함과 내기를 가득 담았다.
“하압!”
“소용없다니까 그러네.”
시야를 빼곡하게 채우며 날아오는 침들에 일이 짜증을 내며 양손을 펄럭였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피풍의에서 침들이 쏘아지며 마주 만천화우가 펼쳐졌다.
당정아보다 더 많은 숫자의 침들이었다.
따다다다다다다당------!
수백 개의 침이 마주 충돌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기름에 튀겨지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젠자앙…….”
모든 공격들이 무위로 돌아가자 당정아는 허탈감을 느꼈다.
아마 더 발악해봐야 소용없을 거란 패배감이 전신을 감싸왔다.
“그럼 이제 곱게 가문으로 갑…….”
퍼억!
승리에 취한 일(一)이 당정아에게 다가가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선 날아갔다.
“……?!”
화들짝 놀란 이(二)가 공격의 방향을 보자 손가락으로 겨냥하고 있는 천애랑이 보였다.
퍼억!
“크억!”
이(二) 또한 일(一)처럼 튕겨 날아갔다.
천애랑이 드라쿠처럼 손가락 끝에 내기를 집중해 쏘아낸 탄지공 때문이었다.
천애랑은 몸에 묻은 팔각사의 점액질 등의 이물질들을 털어내면서 당정아에게 다가왔다.
“괜찮소?”
당정아는 거대한 팔각사의 사체를 배경처럼 등 뒤에 둔 천애랑의 모습이 엄청나게 든든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예, 예…….”
“저들을 다 죽여도 무방한 상황인 것이오?”
천애랑의 손짓엔 당가십이와 야수족들을 공격하는 사파연합이 있었다.
당정아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정아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당가의 핏줄답게 자존심이 강한 당정아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천애랑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복잡미묘한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고생했소. 좀 쉬고 있으시오.”
천애랑은 그런 당정아를 가볍게 일별하고는 다시 꿈틀거리며 일어나려는 일(一)과 이(二)에게 탄지공을 날렸다.
그리곤 위기에 처한 맹건을 향해 축지법을 사용했다.
한 호흡에 맹건을 둘러싼 당가십이에게 도착한 천애랑은 대지의 결을 일제히 폭파시켰다.
콰과광!
지면이 폭발하며 거칠게 비산하자 당가십이가 놀라 넓게 산개했다.
그 덕에 맹건에게 가해지던 공격들이 멈춘 것은 물론이고 맹건이 몸을 뺄 공간이 확보되었다.
“알아서 피해라.”
천애랑은 맹건에게 짧게 말하고선 사방으로 탄지공을 난사했다.
신룡지탄(神龍指彈). 난사(亂射).
“크아악!”
“피해!”
당가십이는 천애랑이라는 갑작스런 날벼락에 황급히 방어를 하면서 피하느라 급급했다.
“어우 씨벌!”
피아를 가리지 않고 쏘아대는 천애랑의 공격에 맹건은 부복하듯 다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부상 때문에 낙법 같은 건 생각도 못 하고 떨어지듯 몸을 움직이자 고통이 몰려왔다.
그리고 맹건은 무슨 내공을 오줌 싸듯 사방에 갈기는 천애랑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순식간에 당기십이의 방진과 호흡을 뺏은 천애랑은 뇌룡강림과 함께 섬전처럼 각개격파를 시작했다.
“크아악!”
축지법처럼 지면을 스치듯 이동하다가도 운룡대팔식처럼 공중을 박차면서 천애랑은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했다.
종잡을 수 없는 천애랑의 신법에 당가십이가 궁지에 몰렸다.
방어하기 급급했던 당가십이는 어느새 한 방향으로 몰려 있었다.
천애랑의 등 뒤 너머엔 당정아와 엎드려 구경하는 맹건이 있었다.
천애랑은 내달렸던 호흡을 정리하면서 양손을 흩뿌렸다.
화접탄(火蝶彈).
천애랑의 전방으로 수백의 붉은 나비가 형형색색 펄럭이듯 날아갔다.
나비의 속도는 빠르고 느림이 다양해서 만천화우처럼 순식간에 전방을 가득 메웠다.
신룡지탄(神龍指彈). 난사(亂射).
천애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가십이가 회피할 만한 방위들로 엄청난 속도의 탄지공들을 날려 방해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일(一)은 자신의 퇴로를 방해하며 전 방위적으로 다가오는 화접탄에 기겁을 했다.
앞서 멀찍이 은신해서 천애랑이 이 공격으로 팔각사에게 지대한 충격을 주는 것을 봤기에 지금 공격의 여파가 두려웠다.
“모두 뭉쳐서 최대한 호신강기로 방어해!”
일(一)의 명에 당가십이들이 다급히 뭉치며 호신강기를 펼쳤다.
넓은 면적으로 날아가는 화접탄을 최대한의 합동으로 최소한 맞고자 하는 기지였다.
합(合).
천애랑은 넓게 펼쳐져 날아가는 화접탄들을 이기어검술을 펼치듯 하나하나 조작해서 뭉친 당가십이의 방향으로 모두 보냈다.
그것을 본 일(一)의 표정이 썩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