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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69화 (69/200)

기공술사 69화

뇌룡강림(雷龍降臨).

천애랑의 몸에 뇌기가 가득 차오르며 뇌전이 번쩍거렸다.

준비하는 천애랑을 보며 당정아는 즉시 품에 손을 넣었다.

만천화우(滿天花雨).

하늘을 가득 메꾸며 비처럼 쏟아지는 당가 암기술의 극의였다.

공격하는 암기의 개수가 많아야 의미가 있기에 휴대보관이 용이한 침을 주 공격무기로 사용했다.

당연히 수백 개의 침을 거의 동시적으로 날릴 수 있는 기술과 이 침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엄청난 내공과 그 운용 또한 필요했다.

당정아가 끌어올린 내기에 그녀의 피풍의가 펄럭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독침들이 쏘아졌다.

빠른 속도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침들은 당정아의 손짓에 따라 팔각사의 머리로 유도되듯 쏘아져 내렸다.

피피피피피피피핏!

수백 개의 얇은 독침들이 팔각사의 머리를 때리며 튕겼으나 그중 십 수개가 박혀 들어갔다.

그간 어떤 공격도 막아내던 강력한 외피가 얇은 침에 뚫렸는데 그 이유는 당가의 야금술에 있었다.

암기술이 발달한 당가는 그 암기를 만드는 야금술 또한 발달했는데, 당정아의 침들은 그 강도와 희귀성이 매우 높은 흑철과 현철들을 고련한 것이었다.

현철은 운석에서 추출한 금속으로써 녹는점이 너무 높아서 가공하기가 어렵지만 제련에 성공한다면 어떤 광석들보다 가장 강한 강도와 내공 전도율을 가지는 걸로 유명했다.

즉 당정아의 내공을 가득 담은 현철 침들이 팔각사에게 통했던 것이었다.

쏘아낸 침의 끝에는 천애랑이 훈련했던 오보단장독보다 더 독한 칠보추혼독이 발려있었다.

끼에에엑---!

뿔에 기운을 집중하던 팔각사는 갑작스레 침투하는 독성에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지금입니다!”

당정아의 외침과 동시에 천애랑의 신형이 섬전처럼 번쩍이며 팔각사의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갔다.

천애랑은 팔각사의 입안을 지나 빠르게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파지직 거리며 팔방으로 뻗치는 천애랑의 뇌기에 팔각사의 식도에선 순식간에 타는 냄새가 났다.

이미 화접탄으로 난리가 난 팔각사의 내부는 수많은 그을음과 상처로 약해져 있었다.

상처들의 주위로 역한 냄새와 지독한 독성의 점액질이 위액처럼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치이익---!

때마침 천애랑의 위로 무엇이든 녹여버릴 것 같은 독액이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천애랑이 몸에 두른 호신강기와 부딪혀 타듯이 연기가 되었다.

‘지독하다.’

내공의 운용에 매우 신경 써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호신강기였음에도 방금의 액체 한 방울에 주먹만 한 크기의 호신강기가 깎여나갔다.

즉시 천애랑의 내기가 호신강기의 무너진 틈으로 흘러가 공간을 메웠다.

‘시간을 끌수록 호신강기는 무너지고 내공은 고갈될 터.’

천애랑은 되는대로 뇌기와 화기를 흩뿌렸다.

최대한 화접탄에 상처를 입은 곳을 위주로 겨냥해 날렸다.

팔각사의 ‘끼에엑’거리는 울음소리가 긴 동굴 끝에서 퍼져오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천애랑은 식도 안 깊숙이 빠르게 파고들면서 좀 전과 같이 기운들을 흩뿌려 상처를 크게 만들었다.

‘여기도 아닌가.’

천애랑은 지금 팔각사 내부에서 최대한 타격을 주면서 화룡단의 위치를 찾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최대한 날뛸수록 바깥 일행들이 안전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기운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감각을 확장해 화룡단을 탐지했다. 아마도 화기(火氣)가 제일 강한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파지직! 화르륵!

팔각사의 내부가 초토화 되었지만 화룡단의 위치는 쉬이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는가. 한참을 달리던 천애랑의 눈에 상당한 크기의 주머니가 보였다.

‘혹시.’

외견상 별다른 화기(火氣)가 느껴지진 않았는데 매끈하던 팔각사의 위 내벽과는 다른 특이점에 천애랑은 주머니에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천애랑은 수강으로 조심히 주머니를 갈랐다.

주머니 안에는 두 손 가득한 크기의 녹색 구체가 있었는데 육안으로도 문제점이 보였다.

당가에서 훈련기간 동안 수없이 보았던 독연(毒煙)이 갈라진 주머니 틈새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천애랑은 순간적으로 고민을 했다.

팔각사의 내부로 들어오고 나서 무지막지하게 내공을 소모했다.

보통이라면 대자연의 기운이 즉시 비워진 공간을 채우며 상당하게 내기를 회복했겠지만 독기가 강한 팔각사의 내부에선 그 회복이 매우 더뎠다.

그 때문에 호신강기를 유지하기가 힘겨워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특이사항을 만난 것이었는데 그냥 피해버리기가 꺼려졌다.

‘그래.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천애랑은 독연이 흡입되지 못하게 호흡을 차단하고선 강기를 두른 두 손으로 녹색 구체를 끄집어냈다.

치이익---!

천애랑의 수강과 만난 독연은 거친 비명을 지르듯 타오르며 흩어졌다.

천애랑은 직감이 시키는 대로 독연을 견디며 녹색 구체의 표면을 벗겨내고자 했다.

‘크흡!’

더욱 거칠어지는 독기에 강기를 둘렀음에도 손이 얼얼해져 왔다.

생각보다 단단한 표면에 천애랑은 손톱으로 뜯어내듯 녹색 구체의 표면을 잡아당겼다.

콰드득!

단단한 나무껍질을 뜯어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엄청난 독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독기는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천애랑의 호신강기와 충돌했고 틈을 만들며 무섭게 뚫고 침입했다.

호신강기를 뚫은 독기는 천애랑이 호흡을 차단했어도 모공 등으로 집요하게 파고 들어왔다.

“커억!”

천애랑은 엄청난 격통에 눈을 부릅떴다.

천애랑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근처의 위벽을 짚었다.

그런데 촉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소리가 들리지 않고 독의 냄새가 흐릿해지더니 눈앞이 뿌옇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방금 분명 위벽을 짚은 것 같은데 하늘이 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진 후 공간감각과 방향감각이 헷갈렸다.

갑자기 주변 땅에서 해골들이 땅을 뒤엎으며 일어났다.

일어난 해골들은 어기적대며 천애랑에게 다가왔다.

몇몇의 해골들이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말했다.

[살마단은 담가의 자제들을 납치한다.]

한 해골이 수줍게 팔을 모았다.

[낭자라고 불러주세요.]

한 해골의 턱뼈가 웃는 듯 달그락거렸다.

[천 소협 만두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하하하.]

십 수개의 해골들이 뼈로 앙상한 팔을 나풀거렸다.

[도망쳐!]

[요향 님을 지켜라!]

한 해골이 허리를 곧게 펴고 한 손을 들어올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로군.]

수십의 해골들이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취했다.

[의각원은 천 가주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한 해골이 삐그덕 댔다.

[반갑네. 찬호라고 하네.]

다른 해골도 삐그덕 대며 다가왔다.

[송소걸입니다.]

삐그덕.

[나도! 나도 도원결의할래!]

삐그덕.

[형님들이랑 지내는 게 너무 즐거워요.]

삐그덕.

[아따~ 찬호 형님은 맨날 나한테만 그래.]

삐그덕.

[정말로 미안하네. 자네한테도… 소걸이에도….]

삐그덕.

[애랑 형님…… 찬호 형님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그럴 순 없다. 소걸아. 너를 치료하고 꼭 복수를 할 것이다.”

콰득!

천애랑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어 환각 속에서 강제로 빠져나왔다.

천애랑의 입술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흡!”

환각을 벗어나자 다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면서 해골들이 다시 나타났다.

한참을 달그락거리며 무어라고 소리치던 해골들이 가루로 부스러지며 지면으로 쏟아지더니 하나의 형상으로 합쳐졌다.

나체의 송소걸이었다. 창백하게 쓰러졌던 모습과는 달리 생기 가득한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갈(喝)!”

천애랑의 거친 외침과 함께 검은 핏덩이가 뱉어지면서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

춘독이 퍼지기 직전에 내상을 감수하고 강제적으로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젠장.”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독에 의한 가짜들이었지만 감정의 격류는 남아 심장을 두들겼다.

여러 감각들이 무너진 상태 때문인지 처음 경험하는 환각의 여파가 상당했다.

당정아와 훈련했던 독의 강도보다 수배는 강한 독들이었다.

독 때문에 잃었던 감각들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리고 천애랑은 보았다.

“화룡단.”

두 손안에는 더 이상 독연과 녹색 구체는 없었고 심장처럼 검붉은 구슬이 있었다.

오묘한 색깔은 계속 시선을 끌어당겼다.

치이익!

천애랑은 손에 감각이 돌아오면서 엄청난 화기(火氣)의 뜨거움을 느꼈다.

살이 타는 냄새에 다급히 손에 기를 둘렀다.

강기를 두르고 나서야 화룡단을 온전히 견딜 수 있게 됐는데 서서히 시간이 지나자 화룡단 외부의 열기가 식어갔다.

마치 용암이 굳듯 화룡단의 외피가 잿빛으로 굳었다.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온전했기에 당장은 외부의 변화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천애랑은 웃음이 나왔다.

온몸의 상처들은 물론 입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양 손바닥은 완전히 그을려 얼마간 치료가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웃음이 나왔다.

“으하하하하하!”

천애랑은 한참 광소(狂笑)를 뱉다가 눈을 부릅뜨며 정신집중을 했다.

원하는 바를 이뤘으니 이제는 쥐꼬리만큼 남은 내공으로 팔각사의 내부에서 벗어나야 했다.

천애랑은 화룡단을 꽉 쥐고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흩뿌리는 뇌기와 화기 덕분에 시야가 확보됐던 좀 전의 상황과는 다르게 지금은 어두움이 눈앞에 가득했다.

천애랑은 나아가면서 오직 감각만으로 떨어지는 위액들을 기민하게 피해냈다.

시각을 방해받는 팔각사 독 훈련의 일환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먹었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급해지는 것만으로도 신체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때 천애랑은 눈앞을 가로막은 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벽엔 큰 주름들이 있었는데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목표지점을 찾은 천애랑은 아껴놨던 남은 내기를 이용해 발경을 사용했다.

쿠웅!

거대한 주름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쿠웅!

다시 한 번 날린 발경에 거대한 주름이 더욱 움직였다.

“후우…….”

천애랑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남은 모든 기운을 모아 발경을 날렸다.

쿠우웅!

묵직한 반탄력과 함께 요동을 치던 주름은 슬며시 빛의 구멍을 선사했다.

천애랑은 지체 없이 온 힘을 다해 빛의 구멍 속으로 몸을 날렸다.

쿠당탕!

높이가 있었는지 거칠게 떨어진 천애랑은 충격을 받으며 바닥을 굴렀다.

“푸하!”

천애랑은 즉시 크게 호흡을 했다.

팔각사의 내부와는 사뭇 다른 신선한 공기가 전신을 짜릿하게 했다.

의식하지도 않았음에도 대자연의 기는 밀물처럼 천애랑에 들어왔다.

“후우…….”

몸에 어느 정도 내공이 들어오고 회복이 되자 혼란스레 갈피를 못 잡던 천애랑의 시야가 또렷하게 되돌아왔다.

그런 천애랑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죽었는지 옆으로 쓰러져 미동 없는 팔각사였다.

천애랑은 팔각사에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계획대로 화룡단 취득과 탈출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팔각사까지 죽은 것 같으니 당연히 주위엔 야수족들과 맹건, 당정아가 보일 줄 알았다.

물론 그들이 보이긴 했다. 그런데 정체 모를 이들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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