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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68화 (68/200)

기공술사 68화

남림의 밀림이 습하고 매우 덥다는 점만 빼면 꽤나 가벼운 일정이었다.

벌레를 다루는 야수족과 설치류를 다루는 야수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길을 열자 쓸데없이 독충 등에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또한 모든 이들이 무공을 익혔기에 행군 속도도 엄청나서 거대한 남림을 단 3일 만에 돌파할 수 있었다.

“이곳이 독무지대.”

천애랑은 남림을 벗어나자마자 누구 하나 설명해주지 않아도 눈앞부터가 독무지대라는 것을 느꼈다.

독 때문에 죽어버린 땅의 경계선과 함께 음습함이 가득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해가 뜬 이른 아침임에도 가시거리를 짧게 만드는 뿌연 안개가 보였는데 이게 당정아가 말했던 산공독이 섞인 안개인 듯했다.

천애랑은 고개를 돌려 야수족들을 보았다.

항시 호탕하고 용맹하던 야수족들이 긴장된 얼굴로 조용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애랑은 맹건을 보았다. 다른 야수족들처럼 긴장하고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감회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당정아를 보았다. 긴장되는지 손은 계속 암기를 만지고 있는데 그 눈빛은 흥미로운 것을 눈앞에 둔 느낌이었다.

남림의 숲을 지날 때도 눈에 띄는 독초들이 있으면 장신구를 선물 받은 여인들처럼 신나하며 구경하던 것이 떠올랐다.

천애랑은 고개를 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당가인들의 사고방식이었다.

당가십이는 오늘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천애랑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소걸이를 살릴 화룡단이 가까이 있었기에 쓸데없는 것에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당가십이들이 화룡단의 취득을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 준다면 그간 있었던 마음의 의심을 지울 요량이 있었다.

천애랑은 그간의 일정 속에서 어떻게 사파들이 그런 빈도수로 시비를 걸었는지 나름 짐작하고 있었다.

왜의 해적들이 나타난 날, 그들의 공격이 있기 전 당가십이는 주변을 둘러본다며 자리를 비웠었다.

그런데 왜의 해적들이 공격해올 때 천애랑은 반대편에서 당가십이의 기척 또한 느꼈었다.

유심히 살피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의 은밀함이었는데 이들은 해적들이 다 죽을 때까지 가만히 숨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천애랑은 이들이 수상해서 그 뒤로도 유심히 지켜봤지만 그날 이후로 당가십이가 별달리 자리를 이탈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파 놈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천애랑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행선지를 아는 것처럼 길목에서 마주친 경우가 많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별말은 하지 못했으나 분명 당가십이가 연관돼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천애랑은 당가십이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맹건에게 말했다.

“자! 가자!”

천애랑의 씩씩한 말에 맹건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그래! 남자답게 가보자고!”

크으헝!

맹건의 외침에 맹건의 호랑이가 크게 포효했고 이를 따라 다른 동물들도 포효하며 기세를 드높였다.

야수족들도 하나의 의식처럼 자신과 교감하는 동물들의 소리를 내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일행들은 팔각사 사냥을 위해서 독무지대에 들어섰다.

독무지대에 들어서는 첫 느낌은 끈적함이었다.

일반적으로 흩어지는 가벼운 안개와는 달리 독무지대의 안개는 점성이 있는 듯 끈적하게 호흡이 되었다.

이 때문인지 안개 또한 일반적인 안개와 다르게 밀집도가 높아 시야를 더욱 가렸다.

천애랑은 훈련받은 대로 미세한 산공독이 느껴지는 즉시 독을 배출해 내며 나아갔다.

외공을 익히고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한 야수족들은 큰 불편함 없이 전진했다.

다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욱더 짧아지는 가시거리에 야수족들은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맹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살폈다. 과할 정도로 짙어진 안개가 신경 쓰였다.

“예전보다 안개가 훨씬 짙어진 것 같다.”

“생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하더니 관련이 있는 건가?”

천애랑의 말에 맹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긴 한데. 이래서야 기습에 너무 취약할 것 같은……? 피해!”

쉬이익------ 콰가각!

순식간이었다.

안개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오는 거대한 기둥 같은 것에 야수족 셋이 충돌해 즉사했다.

“팔각사다! 전원 전투준비!”

맹건이 다급히 소리치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쉬이익------

“흐아아압!”

짙은 안개 속에서 다른 야수족을 공격해오는 팔각사를 맹건이 몸통으로 박았다.

쿠우우웅---!

맹건과 충돌한 팔각사의 몸이 안개 속으로 날아가며 사라졌다.

잠시의 소강상태에 맹건이 주위를 살폈다. 야수족들이 팔각사의 두려움에 잘게 떨고 있었다.

“새끼들아 정신 차려! 회피기동을 해! 막을 생각도 말고 무조건 피해! 알았어?!”

거칠게 소리치는 맹건에 의해 다소 정신을 차린 야수족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야수족 및 그들과 교감하는 동물들 모두의 눈빛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횡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쉬이익------

다시금 안개 속에서 팔각사가 머리를 들이받는 공격을 해왔지만 이번엔 아무런 사상자도 없었다.

야수족들이 좀 전과는 다르게 모두 회피한 것이었다.

야수족들의 상황을 보던 맹건은 천애랑에게 다가왔다.

“동물들의 오감을 빌려 쓰는 거다. 그리고 약아빠진 팔각사 놈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이들부터 공격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럼 괜히 피해가 커지기 전에 시야를 방해하는 안개부터 걷겠다.”

천애랑이 자세를 다잡으며 말하자 맹건은 눈을 좁히며 물었다.

“그게 정녕 가능하나?”

“나도 연습만 해보고 실전에서 쓰는 것은 처음인지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이대로는 답이 없으니 해봐야지.”

말과 함께 천애랑의 주위로 거센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천애랑은 지금 바람의 결을 인위적으로 이동시켜 모으는 중이었다.

후우우우우------

그간은 자연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결들을 적재적소 이용해 더 강한 효과를 얻어냈다면, 지금은 반대로 강한 효과라는 결과를 위해서 원인이 되는 자연의 흐름을 강제로 바꾸고 있었다.

천애랑의 앞으로 바람의 결들이 하나씩 끌어와 쌓이고 있었다.

피이이이익------

바람들이 강제로 겹쳐지면서 피리 부는 소리가 거칠게 났다.

“옆으로 좀 더 비켜.”

옆에서 천애랑이 준비할 수 있도록 지키던 맹건과 당정아가 급히 거리를 벌렸다.

천애랑은 지체하지 않고 전방에 쌓인 십 수 개의 결에 내공을 가득 방출했다.

파바바바바바바------!

“으헉!”

몸을 피하던 야수족들이 엄청난 강풍에 의해 놀라 넘어졌다.

그들은 족히 오 장(15m)은 넘어 보이는 공간의 안개가 바람에 날아가 걷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대한 팔각사가 있었다.

맹건이 황당함에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완전 미친놈이네 이거. 이걸 진짜 해낼 줄이야.”

천애랑이 호흡을 정리하며 말했다.

“걷힌 안개와의 경계에 있는 대기의 결에 진법처럼 대자연의 기를 불어넣어 안개가 다시 채워지는 것을 막긴 했는데 오래가진 않을 거다.”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시야가 확보됐으니 확실히 작업은 해준다! 그대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해보도록. 크하하하! 애들아 가자!”

달리며 외치는 맹건의 옆으로 잠시 몸을 피해 있던 호랑이가 달려왔다.

맹건은 자연스럽게 거대한 호랑이의 등으로 올라타며 앞장서 달렸다. 그 뒤로 야수족의 전사들이 뒤따라 뛰었다.

쉬이익!

팔각사가 다가오는 야수족들을 보며 꼬리를 횡으로 길게 휘둘렀다.

야수족들은 일제히 회피기동을 했다.

곰과 늑대를 탄 야수족의 전사들은 가뿐하게 팔각사의 꼬리를 뛰어넘으며 피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팔각사의 사각을 노려 공격을 했다.

쿠엉!

거대한 곰이 발톱을 휘둘렀고 그 등에 탄 야수족 또한 극한의 외공으로 단련된 손을 곰처럼 휘둘렀다.

콰득!

둘의 공격이 팔각사의 몸통에 강하게 부딪혔으나 가죽에 생채기만 날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늑대를 탄 야수족들도 함께 공격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팔각사의 시선이 자신을 공격한 야수족들에게 돌아갔다.

그때 파리와 같은 작은 벌레들 수백 마리가 웅웅거리며 날아가 팔각사의 눈을 공격했다.

안구 또한 단단하기에 타격은 없었지만 까마득히 들러붙어 시야를 방해하는 통에 팔각사는 짜증 나는 듯 몸을 비틀었다.

맹금류의 새들은 팔각사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틈이 나는 대로 팔각사의 머리나 안구를 쪼아 공격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그 틈에 맹건은 팔각사의 몸을 타고 머리 위까지 올라가선 그대로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극성의 야수공 맹호격권(猛虎擊拳)이었다.

꽈아아앙!

뇌를 울리는 충격에 팔각사가 입을 벌리며 포효했다.

끼에에에엑------!

그 모습을 보고 맹건이 소리쳤다.

“지금!”

상황을 지켜보며 준비를 하던 천애랑은 팔각사가 벌린 입의 높이까지 뛰어오르며 손을 뻗었다.

천애랑의 손짓을 따라 수백 개의 붉은 나비가 빠르게 날아 팔각사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화접탄(火蝶彈).

극도의 내기운용으로 만든 내기의 폭탄이었다.

광폭환처럼 내기를 충돌시켜 즉시 폭발을 일으키는 방법이 아닌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폭발이 일어나게 만든 공격법이었다.

화접탄의 근간이 되는 화기(火氣)는 뇌기(雷氣)처럼 인간이 다루기 힘든 기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능히 다루게 된다면 불에 약한 생명체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한 전쟁 같은 다대일의 상황에서도 큰 효과를 보는 기운이었다.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팔각사라지만 그 내부까진 그러지 않을 터.

천애랑은 독무지대의 뜨거운 기운을 이용해 화기를 적극 활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준 것은 맹건과 야수족들이었다.

팔각사는 갑작스런 불의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다.

쿠구구구구구구------!

팔각사의 내부에서 거친 폭발음이 연달아 퍼지며 팔각사가 괴로워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에엑!

“회피기동!”

몸부림치는 팔각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흉기였다.

맹건은 다급히 야수족들을 통솔하며 팔각사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완벽히 피하지 못한 몇몇 야수족들이 크게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젠장!”

맹건은 달리던 방향을 꺾어 쓰러진 부족원들에게 다급히 뛰어갔다.

그리곤 휘둘러져 오는 팔각사의 꼬리를 정통으로 맞으면서 쓰러진 야수족들을 집어 날렸다.

뻐억!

“크윽!”

쿠다당!

부족원들은 구했으나 맹건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그대로 날아가 고꾸라졌다.

맹건은 즉시 일어났다. 그는 어깨가 빠지고 부러졌는지 덜렁거리면서 움직이지 않는 왼팔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외공으로 화경의 고수가 된 자신이 고작 공격 한 번을 정통으로 허용했다고 이런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맹건은 이를 악 다물고선 왼팔을 잡고 강하게 틀어 올렸다.

으드득!

“크학!”

강제적으로 어깨에 뼈를 맞춘 맹건은 힘없이 흔들거리는 왼팔을 보았다. 당장은 손을 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때 당정아가 맹건에게 다가가 피풍의를 찢어 만든 긴 천으로 팔을 고정시켜줬다.

맹건은 당정아가 손을 뻗자 움찔했다가 그 하는 양을 보고 가만히 있었다.

빠르게 끝난 응급처치에 맹건이 헛기침하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맹건의 인사를 당정아가 덤덤히 받으며 말했다.

“팔각사의 뿔에서 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부족원들을 데리고 거리를 벌리세요.”

당정아의 말처럼 팔각사는 공격을 멈춘 채 뿔에서 빛이 났는데 점차 그 밝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8개의 뿔 모두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큰 위기를 느낀 팔각사의 극단적인 대처였다.

당정아는 경신법으로 천애랑에게 달려갔다.

“천 가주님. 정녕 그 계획을 시행하실 겁니까?”

천애랑은 당정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너머에 부족원들을 다급히 대피시키는 부상당한 맹건을 보았다.

천애랑은 다시 당정아를 보며 말했다.

“가능하겠소?”

천애랑의 의도와 의지를 안 당정아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디 살아오세요.”

천애랑은 피식 웃었다.

“그대도 살아있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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