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67화
당가십이(唐家十二).
사천당가의 가주를 수호하며 당가주의 명령만을 따르는 당가 최정예 조직이다.
오직 재능만을 보고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은 채 선별되어 어린 나이부터 극한을 훈련을 통과한 이들인데, 별다른 이름 없이 지내다 모든 훈련을 종료할 때의 성적으로 일부터 십이까지의 번호를 부여받는다.
이들은 가주의 정예친위대를 목적으로 조직된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엄청난 무위를 가지고 있는데, 전 인원이 초절정의 경지를 가진 전무후무한 무림 조직이었다.
절정의 고수만 되어도 작은 문파를 세우는 경우도 많았고 초절정의 고수라면 규모가 큰 문파들의 장문인이나 장로가 되어도 무방한 경지였었다.
그리고 어느 세력이든 초절정의 고수가 당가처럼 많을 경우 이런 식으로 사용하진 않는다.
만약 전투 가능한 초절정의 고수가 5명이 있다면 무력대 5개를 만들어 각 대주들의 자리에 초절정의 고수를 임명할 것이다.
그래야 세력구성에 대한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이 방식이 대부분의 문파들이 취하고 있는 방식이었다.
이는 당가에게도 적용되는 내용이지만 당가주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고수 12명을 오직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만듦으로써 권력을 확고히 하고, 철저한 수직구조 사회의 정점에 서는 것을 원했다.
당가주는 그 틀이 깨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명령불복종은 자신의 권위를 넘보는 행위라고 규정을 했다. 그 대상엔 자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가 내에선 가주의 명은 절대적인 신의 명령과 같았고 명령불복종에 대한 최대처벌은 죽음이었다.
처벌을 집행하는 선두에는 당연 당가십이가 있었다.
당가 내의 어느 장로도, 어느 조직도 당가십이보다 아래였으며 유일하게 가주의 직계가족만이 직급상으로 당가십이보다 위에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당가십이가 당정아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존칭과 존중의 행동을 취하는 것이었고 당정아는 가주의 명만 따르는 당가십이에게 쉽게 명을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당가십이가 당정아를 따라나서겠다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었고 가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주의 명에 기반 했기 때문에 당정아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현재 당가십이는 가주의 명에 따라 업무수행을 하는 중이었다.
운남 사파연합.
무법지대가 된 운남의 사파들 중 가장 세가 강한 다섯 문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연합체였다.
운남의 모든 사파들이 연합을 따르는 건 아니지만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산검문, 대리검문, 혈극문, 신평창가, 곤명흑혈파. 운남 사파연합의 중심이 되는 이 다섯 문파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당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
“남림의 주인을 쳐라?”
사파연합의 수장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당가십이의 일(一)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의 명이다.”
일(一)은 짧게 말하며 작은 약병들을 수장들에게 내밀었다. 그 약병을 보며 수장들은 인상을 썼다.
고독(蠱毒).
매우 특수한 독충으로써 그 크기가 아주 작고 사람의 몸에 침투하면 심장, 뇌, 단전 등 치명적인 부위에 기생하기에 그 제거가 아주 힘들었다.
만약 고독이 몸에 기생하기 시작한다면 일정 기간마다 약을 먹어야 했는데, 이는 벌레는 죽이는 약이 아니라 벌레의 활동을 잠재우는 약이었다.
만약 제때 약을 먹지 않아 벌레가 활동을 한다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각자가 위치한 곳을 갉아먹으며 숙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다가 무조건 사망에 이르게 한다.
내공 또한 양분으로 인식해서 내공으로 공격해보려 해도 잘 죽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았다.
너무나도 비인도적인 방법이라 무림에선 금기하는 독충이자 방법인데, 당가주는 당가십이를 시켜 여기 다섯 수장들은 물론 수장들의 자식들에게까지 고독을 심었다.
그 때문에 이곳 수장들은 당가주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가주가 무림의 공분을 사도 무방한 일을 자행한 이유는 어떤 사건에 따른 삐뚤어짐과 함께 무림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사천당가의 위치가 중원 무림에서 벗어나 있고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것이 비겁하단 이유로 정도 무림에선 당가를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당가가 오대세가 중 하나인 이유는 당가십이를 비롯한 압도적인 무력과 지독한 성격들 때문이었다.
변방에 있지만 민간의 수호자로서 존경을 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는 모용세가와는 조금은 다른 기준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 속에서 당가주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무림맹의 결성.
당시 당가주는 정도 무림회의를 하겠다는 소집장을 받았는데 그 위치가 사천과는 너무나도 멀어 불참을 했었다.
그런데 그 회의에서 대뜸 정도 무림맹을 결성하고 자기네들끼리 맹주를 선임하고 각 요직을 다 차지해버리는 행태에 당가주는 분노를 했다.
당가주의 분노가 더욱 극에 치달은 것은 비상시 정도 무림의 문파는 무림맹주의 명을 들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신처럼 군림하고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던 당가주였기에 이러한 상황들은 불쾌함을 넘어 치욕이었다.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림맹에 대놓고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가가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한 손으로 열손은 막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가주가 생각한 것은 절대적인 무력과 세력, 두 가지를 갖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무력은 그간 준비해온 것이 있기에 차질은 없어 보였지만 세력이 문제였다.
필요시 무림맹 전체를 적으로 만들어도 두렵지 않을 세력, 최소한 무림맹에게 팽 당하지 않을 만큼의 세력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 결과가 현재 운남의 상황이었다.
남림과 독무지대의 금광 소재에 대한 정보를 유출해 불필요한 사파들을 솎아냄과 동시에 실리를 챙기고 그 틈에 고독으로 운남 사파연합을 발아래 두는 것.
이런 당가주의 계획은 암암리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림돌이 발생했는데 그건 남림야수왕과 그의 야수족들이었다.
별달리 바깥과 교류를 하지 않던 야수족들의 존재와 그 강함을 뒤늦게 안 당가주는 이들이 자신의 계획에 결정적인 방해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현재는 금광을 사파세력을 솎아내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지만 종래엔 든든한 당가의 자금줄이 되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금광과 독초가 무진한 그 남림에서 지배자를 자처하는 세력이 있으니 당가주에겐 눈엣가시였다.
운남 사파연합처럼 고독으로 협박을 해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나 고독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귀한 것이기에 그 수량이 더는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당가주는 언젠간 남림야수왕은 물론 야수족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고, 이번 천애랑의 팔각사 사냥길을 기회로 삼아 당가십이를 딸려 보내 그 상황판단을 전적으로 위임했었다.
당가십이는 천애랑과 남림야수왕, 야수족들의 화합이 의외인지라 놀랬었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즉시 움직였다.
일(一)은 말했다.
“천애랑이라는 기공가주가 있다. 그 자와 남림야수왕, 야수족들이 팔각사를 사냥할 것이다. 팔각사는 천외의 생물이니 그 사냥이 성공이든 실패든 그들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약해진 순간에 모든 것을 정리할 것이다. 모든 사파 세력들을 이끌고 남림에 천라지망을 펼쳐 도망가는 이가 없도록 해라. 그리고 그대들과 정예는 직접 야수족을 친다. 화경의 고수인 기공가주와 남림야수왕은 우리가 맡는다.”
일(一)의 말에 사파연합 수장들이 침을 삼켰다.
“천애랑이라 했소? 그 광산 전투의 주인공?”
창을 주무기로 삼는 신평창가의 가주는 평소 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일전에 관과 거래를 하다가 황실의 팽 태감과 천지개벽할 전투를 치른 기공가주 천애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一)은 다소 두려운 기색을 보이는 신평창가의 가주를 보며 살기를 일으켰다.
“그대들의 알량한 역량은 잘 파악하고 있으니 허튼 생각일랑 말고 야수족들이나 잘 처리하도록.”
“아, 알겠소.”
일(一)의 무시무시한 살기와 경고에 수장들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야영지에 내려앉은 어둠과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천애랑과 당정아, 맹건이 둘러앉았다.
“팔각사의 약점이라?”
천애랑에게 질문을 받은 맹건은 잠시 고민을 했다.
“흐음……. 솔직하게 약점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뱀이 가진 특징은 다소 알지. 나에게도 혈기왕성한 젊은 날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맹건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십장(30m)이나 되는 엄청난 길이를 가졌고 알다시피 머리에 뿔이 8개나 달렸지. 그 뿔의 크기만도 각각 성인만 하니 엄청났지. 그런 뿔들을 달고 있는 대가리 또한 엄청 크고 말이야.”
“허어.”
천애랑이 감탄을 했다. 그 모습에 맹건이 피식 웃으며 팔을 펼쳤다.
“몸통의 두께는 능히 집채만 했는데 아마 그놈이 못 삼키는 것은 없을 것 같았어. 겉은 악어의 가죽 같은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었고 거대한 이빨이 뻗어오면 거대한 종류석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 몸통으로 박치기를 할 때는 그냥 산이 다가오는 줄 알았어.”
맹건의 몸짓을 이용한 생생한 표현에 당정아는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역시 현장은 문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생생함이 있었다.
맹건은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당정아의 시선이 불편했다.
천애랑이 은혜를 입었다기에 가만히 두곤 있지만 자신들의 영역인 남림에서 수작질을 하는 당가의 인물이라는 점이 계속 불쾌했다.
맹건은 헛기침을 하곤 계속 말했다.
“엄청난 강도의 외피는 절대적인 방어를 하는 듯했고 몸통박치기와 이빨의 공격은 나조차도 정통으로 맞으면 무릎을 꿇을 정도로 강맹했지. 그 무엇보다 뿔에서 나오는 여러 독들은 생전 처음 겪는 공포를 주더군.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속도라고 볼 수 있겠어. 물론 속도가 빠른 편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지라 이 부분을 공략하면 되지 않을까?”
맹건의 말이 끝나자 천애랑은 가부좌 상태에서 편히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심상수련을 하듯 그림을 그리며 여러 경우의 수들을 살폈다.
천애랑의 갑작스런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에 이유를 짐작한 맹건과 당정아는 주변을 물리며 조용히 기다렸다.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만 고요히 남아 천애랑을 지켜봤다.
일 각(15분)이 지나자 천애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 각(30분)이 지나자 천애랑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흐르며 파지직 거리는 전류가 튀었다.
천애랑의 심상은 무려 한 시진(2시간)이나 지나야 끝이 났다.
천애랑은 두 눈을 뜨자 기대 가득한 맹건의 굵은 눈과 차분한 당정아의 시선을 보았다.
“뭔가? 말 좀 해줘 봐.”
맹건은 평소 심상수련을 하지 않았다.
경지에 오른 내가고수들은 육체적 수련에 한계를 맞는데 이 때 심상수련을 통한 경지향상을 이룬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다만 본인은 벽을 마주하면 될 때까지 주먹을 내질러 그 벽들을 넘어섰기에 실제로 심상수련을 하는 것과 하는 이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맹건은 지금 천애랑의 대답이 너무 궁금했다.
천애랑은 그런 맹건을 보며 심상 속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했다.
천애랑의 말을 들은 맹건은 충격과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는 함께 듣던 당정아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