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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66화 (66/200)

기공술사 66화

천애랑은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알아보자 의아하게 쳐다봤다.

남자의 외침이 이어졌다.

“난 남림야수왕 맹건이다! 그대가 기공가주 천애랑이 맞느냐!”

그간 다짜고짜 공격을 해왔던 사파인들과는 다른 접근에 천애랑은 일행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서며 내공을 실어 대답했다.

“그래. 내가 기공가주 천애랑이다! 그대는 어찌 나를 아는 것인가!”

천애랑의 외침에 내기가 섞여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맹건은 그 기파를 느끼며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목소리가 아주 남자답고 좋다! 그런데 팔각사를 잡으러 간다지?”

천애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아는 거지?”

맹건은 대답 대신 천애랑에게 좀 더 다가왔다.

맹건의 행동을 보며 천애랑도 일행들을 제자리에 두고 맹건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둘의 제공권이 서로를 침범하면서 대기가 진동했다.

제공권은 각 무인들의 공격과 방어의 범위를 나타내는 특유의 공간 감각이다.

본인과 상대방의 공격범위를 알아야 본인의 공격을 성공시키고 상대방의 공격을 피할 수 있기에 고수가 되기 위해선 매우 필요한 공부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와중에 완벽하게 자신과 상대방의 제공권을 파악하는 것은 절정의 고수도 어려워하는 공부였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제공권은 단순히 서로의 공방범위만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제공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렇게 된다면 본인의 제공권 안에 상대방을 두고 상대방의 제공권을 무너뜨려 확실한 우위에 설 수 있게 된다.

무림에서 하수들은 상대방의 경지를 가늠하기 어려워 불필요한 싸움이 잦지만 고수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제공권에 있었다.

굳이 검을 들고 싸우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제공권 겨루기로 서로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고수들은 이 과정을 통해서 불필요하게 싸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곤 하지만 제공권도 나름 내공이 가미된 감각의 영역이었고 감각이 발달된 고수들은 그런 내공의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약 제공권을 펼쳤는데 상대방이 못 깨닫는다면 자신보다 하수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했다.

지금은 맹건이 다가오는 천애랑에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제공권을 펼쳤는데, 그 기운이 고강해 천애랑은 경시하지 않고 마주 제공권을 펼친 것이었다.

또한 둘의 제공권이 서로의 영역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듯 기 싸움을 하자 대기가 진동했던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제공권 안에 완전히 들어가자 맹건은 낮게 웃었다.

엄청난 밀도로 자신을 밀어내는 느낌에 절로 호승심이 일었다.

맹건이 타고 있던 호랑이도 크르릉 거리며 주인의 감정과 교감했다.

천애랑이 걸음을 멈추고 맹건과 마주 서자 맹건이 천애랑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화경고수 둘의 제공권이 대기를 흔들고 있기에 다른 이들이 아무리 내력으로 청력을 높인다 한들 둘 간의 대화를 들을 수는 없었다.

“하오문주.”

맹건의 입에서 나온 짧은 단어에 천애랑의 미간이 좁혀졌다.

“갑자기 무슨?”

맹건은 하오문주에게 들었던 내용을 천애랑에게 말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천애랑은 놀란 눈을 하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역할은 따로 있다더니 이런 것들을 말한 것이었나.’

소림에서 사천당가로 떠나기 전 하오문주와의 대화에서 이런 것들을 암시하는 말들이 있긴 했었다.

천애랑 자신은 치료제를 위한 직접적인 행동, 하오문주는 그 외적인 것의 보조.

다만, 맹건에게 들은 사파와의 전투는 ‘굳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하오문주라면 생각이 있을 터.

‘무언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가.’

하오문주로부터 시작된 맹건의 제안은 결과적으로 천애랑 자신에게 나쁠 것이 없었기에 천애랑은 순순히 동의를 했다.

천애랑이 맹건에게서 거리를 벌려 비무를 준비하려 할 때 맹건이 눈을 좁히며 당정아와 당가십이가 있는 곳을 봤다.

“그런데 말이야. 저들은 혹 당가인가?”

천애랑은 맹건의 불타는 시선을 보았다. 그르렁거리는 호랑이와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은 기세였다.

천애랑은 당가일행과 맹건의 시야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순간 시선을 방해받은 맹건이 불쾌한 듯 천애랑을 쳐다보자 천애랑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를 들어서 그대의 마음을 일부 이해한다. 하지만 저 여인은 내가 큰 도움을 받았으니 불가(不可)야. 다만, 나머지 놈들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천애랑의 말에 맹건이 근육질의 두꺼운 목을 뱅 돌렸다. 그의 입엔 미소가 걸렸다.

“그래. 그건 두고 보지. 그나저나 가야 할 길이 머니 가장 강한 한 방으로 남자답게 부딪혀 보자고. 미리 말했지만 자네의 실력이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아까의 이야기들은 다 없는 것이 될 것이야. 팔각사는 객기로 잡을만한 것이 아니니까.”

천애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나 또한 그대의 실력을 기대하지. 맹우가 될 곳의 수장이라는 자가 약해 빠진 놈이라면 별로 못 미더울 것 같거든.”

“크크크큭.”

맹건이 짐승처럼 웃으며 호랑이에게서 내려왔다. 그리고 호랑이를 야수족들이 있는 진형으로 돌려보냈다.

천애랑은 천천히 맹건과 거리를 벌리며 자연체의 자세를 취했다.

당정아는 갑작스레 싸울 준비를 하는 천애랑을 보며 당황했다.

“천 가주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당정아가 크게 소리치자 천애랑이 가만히 기다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갑자기 불어 닥치는 기파에 당정아는 어정쩡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크르르르르륵!

안 그래도 거대한 맹건의 근육들이 더욱 부풀어 오르며 터질 듯한 위용을 뽐냈다.

맹건의 기파가 저릿하게 주변을 잠식해 가며 호랑이의 울음 같은 굵고 낮은 소리가 났다.

파지지지지직!

천애랑의 신형을 중심으로 바람이 일더니 뇌전이 튀었다.

야수족 진형에서 ‘뇌룡이다!’, ‘뇌신이다!’라는 소리들로 소란스러워졌다.

“크하하! 역시 세상은 넓도다! 그리고 역시 남자는 주먹이지!”

거리를 벌렸던 두 사람 사이로 또다시 제공권 싸움이 벌어지면서 지면이 갈라져 비산했다.

그와 별개로 두 사람은 거침없이 뿜어대던 내기를 한 점으로 갈무리하듯 내기를 집약시켰다.

폭풍전야 같은 두 사람의 작은 고요함에 양 진형은 침을 삼켰다.

오직 힘과 힘. 단 한 방에 승부가 갈릴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극성의 외공에 기반한 맹건의 완벽한 정권 찌르기가 산을 부술 듯 뻗어졌다.

바람의 결을 따라 뇌기를 가득 머금고 축지법의 힘까지 받은 천애랑의 주먹 또한 마주 뻗어졌다.

쿠르릉!

콰아아아아아앙------!

뇌성(雷聲)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뒤덮었다.

양 진형의 사람들은 음공처럼 뻗어오는 내기의 기파에 내공을 끌어올리며 양 귀를 급히 막았다.

그리고 땅이 뒤집어지면서 뿌옇게 흙먼지가 뒤덮인 현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말들은 안 했지만 살아생전 처음 보는 수준의 격돌이기에 모두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는 당가십이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천애랑이 화경의 고수라는 것을 알곤 있었지만 내심 그 실력을 경시하고 있었다.

대 당가의 최정예인 자신들이라면 아무리 천애랑이 화경의 고수라고 한들 손쉽게 죽일 수 있다 자신했다.

아니, 자신들이라면 현 천하제일로 논의되는 천마나 신검 백청선도 능히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격돌을 보니 그러한 생각이 조금은 흔들렸다.

크르르르르…….

뇌성의 잔음이 잘게 떨리며 먼지 구름이 흩날렸다. 천애랑과 맹건, 두 사람의 신형이 드러났다.

“푸하! 이것 참.”

맹건은 헛웃음을 뱉으며 자신의 발밑을 보았다.

천애랑과 격돌한 위치로부터 다섯 보나 밀려나 있었다.

그에 반해 천애랑은 격돌위치 그 자리에서 오연하게 서있었다.

맹건은 자신이 힘의 대결에서 질 줄은 몰랐다.

물론 실제 전투에서의 승리는 힘이나 내공의 양, 무기의 유무 같은 걸로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만류귀종이라지만 화경의 고수도 주특기가 있는 법이다.

검으로 극을 이룬 이는 만류귀종의 경지에 오른 고수가 되어도 검을 쓸 것이고 도로 극을 이룬 이는 도를 쓰는 것이 당연한 이치.

자신은 오직 외공과 주먹으로 극을 이루었으니 지금의 방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방법이었다.

즉,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맹건은 눈앞의 흙먼지를 손부채로 휘휘 저어 시야를 확보하며 말했다.

“졌다.”

맹건의 깔끔한 시인에 천애랑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주먹이었다.”

“크흐흐흐흐.”

천애랑의 칭찬이 나쁘지 않은지 맹건이 낮게 웃으며 야수족들을 돌아봤다.

“다들 이리와! 새 친구가 생겼다!”

맹건이 소리치자 야수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왔다.

천애랑은 저들의 눈빛 속에서 강함에 대한 순수함을 보았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간만에 힘을 쏟아내자 기분 좋은 해소감이 느껴져 기분이 상쾌했다.

천애랑도 당정아와 당가십이를 불렀다.

가까이 모인 이들은 즉시 가볍게 자기소개들을 했다.

당정아와 당가십이는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남림야수왕 맹건과 그 부족들이라는 것에 깜짝 놀라했다.

반대로 야수족들은 당가라는 소개에 즉시 이를 갈며 화를 냈는데 맹건이 제지해 상황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애랑은 당가의 인물들을 관찰했다.

당정아는 야수족들이 왜 화를 내는 건지 몰라 당황하는 눈치였고 당가십이는 저들과 싸울 기세로 매섭게 노려볼 뿐이었다.

당가십이는 천애랑의 시선을 느끼고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  *

야수족이 합류해 길 안내를 돕게 된 후 천애랑의 행보는 더욱 평온하고 빨라졌다.

그간 길 안내를 해오던 당정아는 야수족들을 만난 후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이곳 남림의 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야수족들이기에 또 다른 길잡이가 필요 없었고, 이들이 극도로 당가를 경계하는 것도 큰 이유가 됐다.

천애랑은 아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물러나 준 당정아의 수고와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남림에 들어서자 숲이 미로처럼 방향감을 어지럽혔는데 야수족들은 빠르게 길을 찾아 앞장을 섰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빠르게 최단거리로 남림을 가로질러 독무지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이동하던 일행들은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야영을 준비했다.

야영 준비는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완료되었다.

다람쥐나 쥐 등 작은 설치류들이 먹을 만한 열매들을 가지고 왔고, 늑대나 곰 등 덩치가 있는 포유류들이 장작으로 쓰일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왔다.

그 덕에 일행은 그저 자리를 정리하고 간단한 준비만 하면 됐다.

“크흐흐. 신기하나?”

천애랑이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자 맹건이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물론 대단하긴 한데 그리 신기하진 않군.”

“뭐? 크하하! 난 또 동물들이 저리 움직이는 것을 신기해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맹건의 폭소에 천애랑은 어깨를 으쓱였다.

“태산에 백호라는 친구가 있어서 말이야. 동물들과 소통이 되는 광경이 낯설지만은 않아.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백호는 그대의 호랑이보다 더 위용이 넘치지.”

크르릉.

맹건의 몸에 볼을 부비던 호랑이가 천애랑의 말에 불쾌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맹건은 그런 호랑이의 이마를 투박하게 긁으며 달랬다.

“크큭큭.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백호라는 그 친구를 봤으면 좋겠군.”

“그러던지.”

천애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한쪽 구석진 곳에 앉아 쉬는 당정아를 보았다.

당가라는 이유로 야수족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었다.

그런데 당가십이는 자리에 없었다. 당가주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리를 벗어났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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