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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65화 (65/200)

기공술사 65화

어젯밤의 일 이후로 당가십이와 천애랑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불편한 불청객들이 계속 나타났다.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파 세력들이었다.

그 가리지 않는 수단과 방법 안엔 인신매매, 약탈, 강간 등 나라와 민간에서 절대적으로 금하고 처단하는 범죄들이 포함되어있었다.

“크하하! 감히 호혈검문의 영역을 그냥 지나려 하느냐!”

죽였다.

“감히 혈황창독문을 무시하는가!”

죽였다.

“파해혈…….”

죽였다.

“…….”

죽였다.

천애랑은 어떻게든 약탈하려고 덤비는 이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당정아의 몸매와 외모에 음심을 품고 덤비는 이들도 죽였다. 다만 이런 이들은 당정아의 독에 처참하게 죽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당가십이는 시종일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엔 정보 수집을 위해서 몇몇을 생포하기도 했었다.

붙잡힌 사파인들은 대개 입을 굳게 닫고 자존심을 세웠었는데 당정아가 나서서 고문하자 이들은 그만 말하라고 말려도 사정하며 자신의 일대기까지 술술 불어댔다.

대체 당가에선 어떤 교육을 시키기에 고문을 하는 당정아의 표정은 평온함 일관이었다.

마치 밥을 차리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하나씩 손톱을 뽑거나 뼈를 으깨거나 하는 작업이 이뤄졌었다.

그런 당정아의 고문법을 지켜보는 당가십이의 표정은 매우 당연하다는 느낌이라 더 황당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고문들을 통해 얻어낸 정보는 보잘 것이 없었다.

그저 어떤 관리와 뇌물을 주고받았다느니, 외도를 하고 있다느니, 숨겨둔 자식이 있다느니, 재산의 위치가 어디라느니, 자신들이 몰살시킨 마을이 어디 있는지, 누구를 간살 했다느니 등 불쾌한 내용들이 섞인, 지금의 일행들에겐 불필요한 정보들이었다.

그 뒤로는 공격해오는 이들에게 불필요한 고문의 시간을 쓰지 않고 가차 없이 죽이며 나아갔다.

*  *  *

울창한 밀림과 늪지대의 습기가 가득한 곳.

천연 밀실과 같은 숲속에서 거친 시선들이 서로를 오가며 지금의 회동에 대한 저마다의 감정들을 표하고 있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여러 동물과 관련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다양한 동물들이 있는 운남, 그중 남쪽 끝 남림에선 동물들을 길들이고 이들과 함께하는 독특한 무공들이 발달했다.

그리고 이런 무공들을 익힌 이들이 모여 하나의 연합부족을 이루었다.

이들이 동물이라 표현하는 범주에는 벌레(蟲), 쥐, 새 등 그 개체 수가 매우 많은 것들부터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맹수들이 있었다.

대체로 맹수들을 길들이는 부류가 많다 보니 이와 관련된 무공을 야수공(野獸功)이라고 포괄적으로 불렀고 부족명 또한 야수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야수공의 대부분은 험난한 지형에서 살아남기 위한 외공에 치우쳐 있었다.

“조용!”

모인 사람들 중 기골이 장대한 이가 크게 소리치자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남자는 회색 매의 깃털을 기름칠한 장식물을 목에 두르고 무두질한 악어의 가죽을 심장 등 급소에 덧대었으며 호랑이의 가죽으로 만든 팔목,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장식물이 없는 부위는 외공에 의한 강대한 근육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야수공을 익힌 이들은 대개 자신들이 다루는 한 가지 동물의 장식품을 갖는데 그 장식품 종류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높은 권력을 상징했다.

이들을 이끄는 야수족의 족장이자 남림야수왕이라고 불리는 맹건은 무려 세 가지 종류의 장식품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의 끝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만류귀종처럼 외공도 극의로 익히게 되면 내공을 익힌 무림인처럼 기운을 내뿜을 수 있었다.

맹건의 거대한 몸에서 강대한 기운이 뿜어지자 주위의 인물들이 그 강함을 느끼며 조용히 침을 삼켰다.

험한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을 위한 무력이었고 현재 그 무력의 정점에 있는 이가 맹건이었다.

맹건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현 운남의 정세가 어지럽다. 알다시피 관은 무용(無用)인지 오래며 어쭙잖은 사파놈들은 자꾸 우리들의 터전을 넘보고 있지. 이곳 남림은 예로부터 우리들의 유일한 터전이었지만 최근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물론 호시탐탐 금(金)과 영약들을 노리고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파들이 주로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그 무엇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팔각사.”

맹건의 말에 호응하듯 장내에 모인 이들이 한입으로 말했다. 그들의 말에 맹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맞다. 최근 어떤 연유에서인지 팔각사가 날뛰면서 주변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그간은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듯 서로 무시하며 살아왔지만 만약 팔각사가 이곳 남림, 우리의 영토까지 넘어온다면 그 문제가 심각해진다.”

“크흐음.”

모두들 팔각사의 위용을 떠올리며 침음을 흘렸다.

험지에서 사는 남림 야수족들은 대체로 독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외공을 익히는 특성 때문인지 독무지대의 산공독이 이들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그 덕에 야수족들은 남림에서 꽤나 넓은 활동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들에겐 강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삶의 영토를 넓히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팔각사를 마주한 이들이 많았고 그들은 현재 각 씨족장으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당시 팔각사의 강함에 압도됐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팔각사는 승천하기 전의 이무기와 같다. 그 괴물이 이곳까지 온다면 우리는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냥 맞서 싸우자!”

“말도 안 되는 소리! 나이를 처먹더니 기억력도 먹었나!”

“안 될 것 뭐 있나! 그간 우리도 많이 성장했으니 들이받아 보자!”

“개죽음일 뿐이다!”

맹건은 조용히 씨족장들의 갑론을박을 지켜봤다.

화를 내듯 서로 큰소리들을 내고 있지만 그 내면엔 팔각사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

좀 더 지켜보던 맹건이 권풍을 일으켜 장내의 열기를 식혔다.

“그만! 모두의 말이 맞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건 단순히 현 상황의 문제만 이야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맹건의 말에 씨족장들이 모두 집중했다.

“하오문주라는 이가 은밀히 내게 접선을 해 제안한 것이 있다.”

“하오문주? 하오문이 뭡니까?”

남림에만 있어 세상사에 밝지 못한 씨족장 중 한 명이 궁금증을 물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은 다른 다수의 씨족장들도 가지고 있던 것이라 조용히 맹건의 답변을 기다렸다.

“중원의 거대 정보단체다. 개방과 더불어 정보집단 중 최고의 세를 가졌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곳의 수장인 하오문주가 내게 온 것인데 그자의 무위가 나와 비슷했다.”

“헉!”

씨족장들의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 맹건에게 모여들었다.

맹건은 진중한 눈빛을 씨족장들에게 보냈다. 그 눈빛에 씨족장들은 할 말을 잃었다.

남림의 용사들이 자신의 진심을 표현할 때 짓는 눈빛을 맹건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들은 권모술수보다 강직한 돌파로 문제해결 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거짓말을 잘 하지 않았다.

맹건은 씨족장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자가 말하길 기공가의 가주가 팔각사의 내단인 화룡단을 취하길 원하기에 이곳 남림을 지나 팔각사를 사냥하러 간다고 했다.”

“무슨?!”

“미친!”

이들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말인지라 다시 소란이 일었다. 맹건은 인상을 쓰고 크게 소리쳤다.

“그만! 내 말을 막지 마라! 내 말이 끝나거든 그때 의논할 시간을 줄 것이니 기다리라!”

크게 기운을 일으켜 소리치는 맹건을 보며 씨족장들이 찔끔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씨족장들은 무지막지한 맹건의 기세를 보며 오금이 저렸는데 이런 무서운 족장과 무위와 비슷한 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말을 잇자면 하오문주는 현재 우리에게 벌어진 상황들과 우리들의 고민, 그리고 그 해결법에 대해서 말을 했다. 우선 팔각사가 갑자기 날뛰게 된 이유는 사파인들 때문이라 했다.”

맹건이 말을 이었다.

“그들은 독무지대에 잠재된 금광들을 노렸는데 그 독무와 독충들을 이겨내고 죽이기 위해 당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사파인들은 금을 얻고 당가에선 독무지대에 있는 귀한 독초와 영약들을 대가로 받고 있다고 하더군. 그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생태계를 파괴해 팔각사가 사는 독무지대의 생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라더군. 그래서 팔각사가 이상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고.”

맹건은 조용히 경청하는 씨족장들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렇게 팔각사가 이상반응을 보인 것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을 하오문주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결법을 제시했다. 기공가주 천애랑이라는 이를 도와 팔각사를 사냥하고 남림의 완벽한 지배자가 될 것. 그리고 또다시 기공가주의 도움을 받아 운남의 사파들을 정리하고 비옥한 운남 산악지대까지 그 영토를 넓힐 것. 최소한 그 기반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기공가의 절대적인 맹우가 되라고 하더군.”

말을 마친 맹건은 팔짱을 끼었다.

맹건의 말이 끝나자 엄청난 정보들에 씨족장들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 중 한 명이 조심히 말했다.

“야수왕 그대가 생각하기에 방금 한 말들이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는 겁니까?”

다른 씨족장들도 깊이 공감하며 시선을 모았다.

맹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른다. 지금은.”

맹건의 말에 씨족장들이 황당해할 때 맹건의 뒷말이 이어졌다.

“하오문주 그자의 말로는 기공가주라는 이가 자신보다 고강한 무위를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하오문주는 기공가주가 팔각사를 잡을 것이라는 것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만한 고수가 말이야. 그래서 난 기공가주라는 이를 만나볼 생각이다. 과연 하오문주가 말한 만큼의 자격이 있는 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허어…….”

감탄사와 함께 씨족장들이 의논을 시작했다.

*  *  *

평온(平穩).

조용하고 평안하다는 단어의 뜻처럼 천애랑 일행의 일정엔 평온이 찾아왔다.

짧게는 몇 시진, 길게는 2~3일 간격으로 시비가 붙던 천애랑이었는데 최근 며칠은 그저 평온했다.

마주치는 사람 없이 평화로운 일정에 천애랑은 당정아에게 독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릴없이 째려보는 당가십이는 무시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걷던 천애랑은 확연히 습하고 더워지는 날씨를 느꼈다.

경지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외부 기온변화에 내성이 생기는 한서불침이 되었지만 이곳은 습한 공기 때문인지 호흡이 끈적하게 방해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남림과 독무지대는 기후가 더 습하고 더워질 것이기에 천애랑은 미리 연습하고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신경 써서 호흡을 연습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환영유령보보도 함께 연습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음을 걷던 천애랑은 전방 멀리서 숨기지 않고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들을 느꼈다.

바로 드는 생각은 ‘또 인가?’였다. 그간 며칠 잠잠하다 했더니 또 시비를 거는 사파인들이 오나보다 했다. 심지어 강한 이들로만 모아서 말이다.

그런데 좀 더 걸음을 옮기다 보니 거대한 기운들은 존재감을 과시할 뿐 숨을 생각도, 기습할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턴 그저 횡으로 도열해 자신들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천애랑이 의아함을 안고 육안으로 확인될 거리까지 다가가자 거대한 덩치에 다양한 동물 장신구로 치장한 근육질의 남자가 중심에 보였다.

남자는 갈색 털의 거대한 호랑이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 남자를 중심으로 양옆으로도 다채로운 복장의 사람들이 있었다.

늑대를 타고 있거나 멧돼지를 타고 있거나 매를 어깨에 올리고 있거나 곰과 함께 있는 이들이 있었고, 심지어 뒤쪽엔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호랑이를 탄 남자가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앞으로 나오더니 크게 소리쳤다.

“그대가 기공가주 천애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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