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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59화 (59/200)

기공술사 59화

천애랑과 소림방장은 장경각과 약왕전, 계율원을 지나 작은 둔덕 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소림사의 정문 초입에 위치한 집객당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상황을 살폈다.

집객당은 향화객이나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넓은 전각과 마당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 넓은 공터에 마인들과 소림 승려들이 대치하고 있었고, 밤이 늦어 잠시 머무는 향화객들이 두려운 눈으로 물러나 있었다.

마교도들의 소행인지 전각은 불에 타오르며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보아하니 마교도들에 의해서 이미 몇몇의 사상자가 있는 것 같았다.

마교도들 중에는 가장 선두에 있는 세 명이 눈에 띄었는데 거구에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남자를 제외하곤 두 사람은 익히 아는 이들이었다.

천애랑은 내공을 일으켜 크게 소리쳤다.

“찬호!”

구우우웅------!

천애랑의 분노에 찬 사자후가 숭산을 울렸다.

“찬호! 이 미친 마교 새끼들아!”

쿠그그그그!

사자후로 인한 공기의 진동과 함께 땅이 흔들리자 공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천애랑에게 모여들었다.

근육질의 남자, 지휘웅이 위협적으로 인상을 쓰며 반응했다.

“뭣이 어째? 감히 어떤 새끼냐!”

그런 지휘웅의 옆에서 창백한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남자, 드라쿠가 반가운 듯 끼어들었다.

“호오~ 이런 곳에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지휘웅이 불쾌한 듯 드라쿠에게 손을 저었다.

“변태 너는 꺼져. 마교를 욕한 저 시건방진 애송이랑 같이 뭉개버리기 전에.”

지휘웅의 말에 드라쿠의 붉은 입술이 비틀어 올라갔다.

“그럴 능력은 되고?”

“그만.”

지휘웅이 열을 내며 드라쿠에게 한마디를 더 쏘아붙이려는 찰나 둘 사이로 차분한 목소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둘은 동시에 조용히 하고 양옆으로 물러났다.

천애랑의 외침에 잠시 소강상태가 된 장소로 천애랑과 소림방장이 표홀하게 내려왔다.

소림방장의 등장에 마교를 제외한 사람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좀 더 어깨를 펴고 마교도들을 노려봤다. 두려움에 떨던 향화객들도 마음이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찬호는 소림방장은 거들떠보지 않고 천애랑이 다가오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군. 아니, 그리 오랜만은 아닌가?”

천애랑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찬호.”

찬호는 진심으로 반가운 듯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름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친구여.”

으드득.

천애랑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골짜기를 가득 깨물음으로써 정신을 다잡았다.

“더러운 입 다물어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으니까. 네 녀석 때문에 소걸이가 지금…….”

악문 입 사이로 천애랑의 말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듣자 하니까 이 개새끼가.”

지휘웅이 소교주에게 함부로 말하는 천애랑을 보며 열을 냈다.

실제로 몸이 열에 달궈지는 듯 벌겋게 변했다.

“그만.”

찬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지휘웅의 행동을 막았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선 천애랑에게 말했다.

“자네가 여기엔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물러가게.”

천애랑은 나긋하게 말하는 찬호를 보며 속이 들끓어 올랐다.

시체처럼 창백하게 누워있던 소걸이가 떠오르며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마교도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었다.

그때 천애랑의 주위로 청량한 기운이 풍겨져 왔다. 천애랑이 옆을 보니 소림방장이 예의 따스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분노도 좋지만 거기에 삼켜지진 말게나 시주.”

소림방장의 말에 천애랑의 가득 차오르던 살심이 다소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분노의 흥분감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아 천애랑의 눈빛에서 진득한 살기가 잔향처럼 남아있었다.

소림방장은 그런 천애랑을 안쓰럽게 보고선 찬호에게 다소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아미타불. 이곳은 마교가 올 장소가 아닌데 어쩐 일들인지 알 수 있겠는가?”

찬호는 곤란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림 무력의 중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계율원주와 호법전주는 없었다.

백팔나한진을 구축하는 주요 무승들도 없었다.

그러던 중 면벽동에서 폐관수련 중이라는 소림방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소림방장을 죽인다면 그 자체로도 큰 소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큰 변수가 하나 있었다.

찬호는 매섭게 쳐다보는 천애랑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장강수로채 및 여러 상황들을 이용해서 소림에게 봉문 시킬 정도의 타격을 주고자 했던 기존의 계획이 유효한지 머리로 가늠을 했다.

그때 지휘웅이 몸의 근육을 풀며 찬호에게 말했다.

“소교주. 언제까지 기다릴 생각인가? 난 저 노친네가 재밌어 보이니 빨리 붙어보고 싶은데?”

지휘웅은 천애랑을 진정시킬 때 소림방장이 일으킨 기운의 여파를 음미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태산북두 소림의 방장이라면 천하제일을 논할 때 항상 거론되던 인물. 느껴지는 소림방장의 기도를 보니 전투가 기대되었다.

마교에선 흥미를 끄는 인물이 몇 없을뿐더러 같은 편끼리 생사결을 할 수도 없기에 항상 피의 전투가 목마른 지휘웅이었다.

드라쿠가 붉은 입술을 혀로 적시며 지휘웅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교주의 전권을 쥐고 있는 소교주 그대를 존중하네만 지지부진 굳이 이러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리고 난 역시 저 잘생긴 청년이 좋아. 이번엔 착오 없이 죽이고 저 피를 음미해야겠어.”

찬호는 지휘웅과 드라쿠를 보았다.

그리고 소림을 포위하고 마기가 들끓는 백여 명의 부하들을 보았다.

이들 모두 자신의 명에 따라 당장이라도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찬호는 표정을 굳히고 명을 내렸다.

“즉시 소림을 공격하라!”

찬호의 명에 지휘웅과 드라쿠가 미소를 지었고 대기하던 마교도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위해 넓게 산개했다.

“모두 방진을 구성해 향화객들을 지키거라!”

소림방장은 명을 내리다가 거칠게 주먹을 내지르는 지휘웅의 공격을 나한십팔장으로 되받아쳤다.

꽈앙!

쇠가 부딪히는 듯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노친네가 제법이구만!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지휘웅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며 그 주위로 뜨거운 수증기가 일렁였다.

내지르는 주먹은 물론 눈까지 벌겋게 변했는데 이는 지휘웅의 절기인 천살열공권(天殺熱功拳)의 증상이었다.

천살열공권은 살인을 위해 태어난다는 천살성의 옛 마교 고수가 만든 무공이었다.

열양공을 익혀야 다룰 수 있고 극성으로 익힐수록 살심(殺心)에 지배되어 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폐인이 될 수 있는 까다로운 무공이었다.

지휘웅은 이 무공으로 마교 최정상급의 무인이 되었다.

콰아앙---!

소림방장을 때린 주먹에서 굉음이 났지만 소림방장은 평온한 얼굴로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소림을 어지럽히고 피를 흘리게 한 죄는 깊게 물일 것이네.”

소림방장의 몸이 은은한 금빛을 띠었다. 금강불괴를 이 갑자 이상의 내공으로 펼칠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소림방장과 지휘웅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적수공권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콰과강! 콰과과광!

굉음이 울려 퍼지며 내기의 파편들이 주변을 어지럽혔다.

몸에서 빛을 내뿜는 둘을 보며 드라쿠가 비웃었다.

“아주 지랄 발광(發光)들을 하는구나.”

드라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듯 천애랑에게 탄지공을 날렸다.

붉은 탄지공, 드라쿠의 절기 중 하나인 홍혈지였다.

천애랑은 드라쿠의 공격을 수강으로 쳐내며 가볍게 막아냈다.

“호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때에 비해서 제법이로군. 땅거죽을 이용한 회피도 재밌었는데 말이야.”

일전의 전투를 추억하며 드라쿠가 입맛을 다셨다. 크게 성장한 천애랑의 모습에 흥이 돋은 그였다.

천애랑은 대꾸하지 않고 이동 중인 근처의 마인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신룡지탄. 난사(亂射).

정조준하지 않은 수십 개의 탄지공이 마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크악!”

“컥!”

이곳에 온 마인들의 수준이 높은지 즉사한 이는 없었지만 전투불능이 되거나 공격의 흐름이 끊긴 이들이 다수 생겼다.

천애랑은 소림방장과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이 은혜를 갚는 날인가 보오.”

소림방장에게 짧게 말을 던진 천애랑의 신형이 사라졌다.

뇌룡강림.

쿠르릉!

뇌전처럼 순식간에 드라쿠와 거리를 좁힌 천애랑은 그대로 발경을 날렸다.

“크윽!”

완벽히 반응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한 드라쿠는 급히 천애랑을 털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몸 안으로 파고든 뇌기가 저릿하니 몸의 감각을 방해했다.

드라쿠는 몸 상태를 빠르게 점검하고 정비하려 했지만 천애랑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쿠르릉!

번쩍거리며 드라쿠의 등 뒤로 나타난 천애랑이 또다시 손바닥을 뻗었다.

손바닥엔 광폭한 기운이 휘몰아치는 내기의 구체가 있었다.

콰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드라쿠의 신형이 거침없이 날아가 불타는 전각에 처박혔다.

“끄으아아아------!”

불타는 전각에서 빠져 나온 드라쿠가 무지막지한 내공이 담긴 사자후를 펼치자 반경의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드라쿠의 목깃이 길고 검붉은 색을 가진 깔끔한 옷은 마구 찢어지고 그을렸으며 곱게 묶어 올렸던 머리는 봉두난발이 되어있었다.

분노한 드라쿠의 몸에서 붉은 혈기(血氣)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뿜어져 나왔다.

점차 그 기운들이 형상을 잡으며 모이더니 드라쿠의 등 뒤 양쪽으로 펼쳐졌다. 마치 박쥐의 날개 같았다.

그의 눈은 핏빛과 같았고 양 손톱은 자라난 것인지 뾰족하게 붉은 강기를 머금었다.

천애랑은 다소 괴물처럼 변한 드라쿠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건 천애랑 뿐 아니었다.

소림방장과 쉼 없이 공방을 주고받던 지휘웅의 눈썹이 들썩였다.

“저 변태자식이 멋을 포기하면 피아식별이 안되는데…….”

지휘웅은 열심히 소림을 공격하는 수하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드라쿠를 피해 움직여라! 어지간하면 오 장(15m) 안으로 들어가지마!”

“존명!”

드라쿠의 주변의 마인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행동이 마치 생사를 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줬다.

마인들이 충분한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드라쿠의 몸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이 장(6m) 안에 있던 향화객과 소림 무승들은 모두 피가 빨린 목내이(木乃伊)처럼 쪼그라져 쓰러졌다.

“죽인다.”

으르릉 거리듯 말한 드라쿠의 신형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거리를 격하고 드라쿠의 신형이 천애랑의 앞으로 나타났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천애랑은 황급히 드라쿠의 할퀴는 손톱을 피했다.

핏!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에 천애랑의 가슴에서 얕은 피가 흘러내렸다.

천애랑은 몸을 회피해 뇌룡강림을 해제하면서 드라쿠의 빠른 속도를 저지할 요량으로 손을 뻗었다.

신룡군림보. 압(壓).

순식간에 짓누르는 내기의 압력에 드라쿠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천애랑은 뻗었던 손바닥을 꽉 쥐었다.

폭(爆).

내공이 극도의 한 점으로 모이더니 폭발했다.

쿠궁!

폭발 속에서 드라쿠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드라쿠는 천애랑을 노려보면서 주변반경의 사람들을 허공섭물로 끌어왔다. 여기엔 피아식별 따윈 없었다.

“크아악!”

“컥! 컥컥!”

드라쿠의 지근거리로 끌려온 이들이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몸부림치다 이내 목내이처럼 쪼그라져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의 몸에선 눈에 보이도록 피가 빠져나와 드라쿠에게 빨려 들어갔다.

죽은 이들과의 숫자에 비례해 드라쿠의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게 보였다.

‘채혈.’

천애랑은 기상천외한 채혈방식에 인상을 썼다.

드라쿠의 채혈방식은 아마 허공섭물로 이루는 것 같았다.

저렇게 손을 대지도 않고 채혈을 하는 것은 아마 채혈 중에서도 최상의 방식일 것 같았다.

저런 방식이라면 드라쿠가 활보하면 할수록 주변의 피해가 늘어갈 것이 자명했다.

자잘한 공격보다 확실하게 전투불능을 시킬 수 있는 공격이 필요했다.

잠시 공격의 방법을 고민하던 천애랑은 일순간 느껴지는 극도로 정제된 마기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소걸이가 쓰러진 그 날, 찬호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기운이었다.

그곳엔 놀라운 광경이 있었다. 소림방장이 왼팔이 잘려 크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웬만한 공격엔 끄떡없던 금강불괴이기에 최소한 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깔끔하게 잘린 팔과 순간 느껴졌던 마기를 보니 아마 찬호의 공격에 당한 듯싶었다.

“아미타불.”

낮게 읊조리는 소림방장의 염불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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