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55화 (55/200)

기공술사 55화

무림에 하나의 소문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산동에서 시작하여 하남으로 이어졌다.

흑의폭군(黑衣暴君).

흑색 무복에 비싸 보이는 검과 옥패, 그리고 금원보를 대놓고 허리에 매달고 다니는 미공자.

금품들을 노리고 치근대는 이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며 다니는 폭군.

금품을 노리는 사람들을 이어서 이제는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고 명성을 얻고자 덤비는 사람들까지 늘어났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흑의폭군에게 당한 사람들 중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반사람들은 흑의폭군을 무서워하기보단 다음은 어떤 이들이 시비를 걸고 흑의폭군에게 무참히 쓰러질까 궁금해했다.

또는 흑의폭군의 최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었다.

그리고 이곳 하남의 성도인 정주(鄭州) 길거리에 흑의폭군이 등장하자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서 순식간에 도시가 시끄러워졌다.

여느 때와 같이 흑의폭군은 흑의 무복에 검, 옥패, 금원보가 사람들을 유혹하듯 허리춤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런 흑의폭군의 앞을 거대한 덩치에 권갑을 낀 남자가 가로막았다.

“네놈이 요새 유명한 흑의폭군이냐? 난 폭류철권의 3대 계승자 파공이다.”

흑의폭군은 예의 무표정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에 근육질의 남자가 기분 나빠하며 크게 소리쳤다.

“거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는다지? 오늘 그 알량한 실력을 벗겨내 사람들에게 우리 폭류철권의 위력을 알리리라!”

근육질 남자는 기합성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근육질의 단단한 하체와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근육질의 남자가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대로 혼절을 했다.

그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근육질의 남자가 어떻게 당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소문 자자하던 흑의폭군의 실력을 구경했다는 것에 많은 만족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헉! 저런 근육질의 사내가 한방에?!”

“어, 엄청나구만…….”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흑의폭군인가?”

구경꾼들의 놀람의 대화들에 거리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런 구경꾼들 사이로 흑의폭군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흑의폭군이 지나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물러나면서 길이 생겼다.

흑의폭군은 천천히 걸어 인근 객잔을 향해 들어갔다.

객잔 안도 흑의폭군을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 잠시 소란이 일었으나 흑의폭군이 자리를 잡자 이내 조용해졌다.

진귀해 보이는 검과 옥패, 금원보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구경하는 사람들이 침을 삼키며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함부로 욕심을 내진 못했다.

흑의폭군, 천애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허탕인가.’

하오문의 접근방법을 모르는 천애랑은 최대한 화려하게 자신과 옥패의 존재를 과시했다.

하오문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이 찾아오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이런 행동들은 조금은 이상하지만 확실한 명성을 뽐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하오문의 접촉은 없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도 소걸이는 고통 속에 있을 것인데…….’

천애랑이 동생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점소이가 주문한 간단한 음식들을 가져왔다.

점소이의 맛있게 식사하라는 말과 함께 천애랑의 손안으로 작은 종이가 들어왔다.

‘……?!’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종이를 받은 입장에서도 현실감각이 떨어질 정도였다.

천애랑이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쳐다보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점소이와 종이의 관계를 눈치챈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천애랑은 차려진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게 해치운 후 객잔을 나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몸을 움직였다.

천애랑은 다양한 시선의 추적을 쉽게 벗겨냈다. 그리곤 조용히 손에 쥔 종이를 펼쳤다.

[해(亥)시(21~23시) 정주 서쪽 외곽 홍등주루]

‘드디어.’

천애랑의 눈이 빛났다.

천애랑은 즉시 삼매진화로 종이를 불태웠다. 화르륵 타오르는 작은 불씨가 작은 희망처럼 그의 눈에 들어왔다.

*  *  *

어둑해진 밤의 달빛이 정주 거리를 잠재울 때 유독 밝게 빛나는 거리가 한군데 있었다.

야릿한 붉은 등이 매달린 주루들에서 허벅지와 가슴께가 보이게 옷을 입은 주루의 여인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호객하며 유혹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들은 허세 가득한 표정들로 여인들의 유혹에 반응하며 빨려 들어가듯 주루로 들어가고 있었다.

천애랑은 취객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히 거리를 이동했다.

따로 은신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나무, 건물, 건물 지붕 등 어두움 속에서 빠르게 이동하여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홍등주루에 도착했다.

주루라는 것이 원래 장사가 잘되는 곳인지 강남과 북경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외곽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이 대체로 규모가 있는 편이었다.

홍등주루 또한 3층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애랑은 왠지 하오문의 관계자가 있을 법한 3층 창문으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정문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취했다.

천애랑이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루의 독특한 주향이 확 치달아 풍겨왔다.

1층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좌식 탁자에 둘러앉아 기생들을 끼고 놀고 있었다. 교소 가득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때 짙붉은 치마와 화장을 진하게 한 여인이 다가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매향이가 직접?”

1층 주루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여인을 보며 놀라하는 게 느껴졌다.

천애랑은 사람들의 반응에 신기해하며 여인을 관찰했다.

분칠을 했지만 원래 피부가 좋은 듯 얼굴이 맑아 보였고 치마와 같이 붉은 입술을 가진 여인이었다.

가벼운 미소를 지을 때마다 보조개가 들어가 묘한 색기와 귀여움이 느껴졌다.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시면 소녀 부끄럽습니다.”

그녀가 부끄러운 듯 긴 소매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치자 주변의 취객들이 탄식을 했다.

취객들은 매향의 안내와 웃음을 받는 천애랑을 질투하듯 쳐다봤다.

그중 한 명이 거나하게 취한 듯 흔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천애랑에게 다가왔다.

‘나 시비를 걸 것이오.’라고 광고를 하듯 다가온 남자가 천애랑을 툭 쳤다.

천애랑은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는데 이런 자잘한 시비가 달갑지 않았다.

천애랑은 자신을 툭툭 치는 남자의 팔을 서늘한 표정으로 꺾어 부러뜨렸다.

와득!

“끄아아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에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런 소란에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고 주루의 경비를 서던 덩치들이 천애랑에게로 다가왔다.

천애랑은 미동 없는 매향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장난질을 칠 생각이라면 적당히 해라.”

천애랑의 싸늘한 말에 매향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띠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주루에서 시비란 워낙 흔한 일이어서요.”

천애랑이 주위를 둘러봤다.

험악하게 다가오는 덩치들 뿐 아니라 2층에서도 검을 찬 이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또한 1층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들이 갑자기 검을 들면서 멀쩡히 주위를 함께 포위해왔다.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천애랑은 이 상황을 이미 예상했었다.

주루에 들어선 순간 풍기던 주향에 의심쩍은 향이 섞여있어 그 즉시 내공으로 밀어냈었다.

한번 이상함을 느끼자 천애랑의 눈에 수상쩍은 것들이 들어왔었다.

첫째로 취한 듯 보인 손님들의 곁뿐만 아니라 주루 곳곳에 검이 놓여있는 것이 이상했었다.

아무리 무림인들이 많고 다들 취했다고 한들 이상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무림인이라면 생명처럼 여긴다던 검을 바로 곁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 모아둔다?

둘째로 기존의 손님들에게 천애랑의 등장은 그저 흔하디흔한 한 명의 추가 손님일 뿐이었을 터다.

그러나 입장과 동시에 천애랑은 1층은 물론 2층에서도 시선이 느꼈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손님의 등장에 일시적으로 따라가는 시선들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매향의 움직임에서 미세하게 내기의 흐름이 느껴졌었다. 그와 함께 주루에 입장 시 느꼈던 이상한 향이 확 풍겨져 왔다.

주위를 포위한 이들은 별다른 기합성도 없이 즉시 공격을 해왔다.

천애랑은 가볍게 손을 뻗어 다가온 검날들을 붙잡고는 끊어버렸다. 그리고 검의 주인들 어깨를 향해 던졌다.

이어서 주먹을 뻗는 덩치의 팔을 표홀하게 파고 들어서 발경으로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다섯의 인물들이 전투불능이 되었다. 하지만 포위한 인물들의 숫자는 여전히 수십이었다.

“귀찮아.”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시간 낭비는 달갑지 않았다.

천애랑은 기척을 감추듯 조용히 있던 내공들을 일시에 풀어헤쳤다.

고오오오------

엄청난 내기의 방출에 천애랑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심지어 내기의 밀도가 더욱 높아지자 안개가 낀 듯 사람들의 시선을 방해했다.

까득. 까드득.

불순물을 제거하듯 내공의 안개가 주루를 감싸던 향을 갉아 삭제시켰다.

“으윽!”

“끄으읍!”

뒤이어 주변을 포위하던 수십의 사람들이 본인들의 목을 잡으며 괴로워 발버둥 쳤다.

마치 누군가가 목을 쥐어 잡아 강하게 힘을 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천애랑은 싸늘한 표정으로 매향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매향이 두려운 낯빛을 보였다.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저…. 공자님 무슨 오해가….”

콰드득!

매향의 말과 동시에 가장 근처에 있던 덩치의 팔이 기이하게 꺾였다. 이에 매향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요즘 내가 흑의폭군이라고 불린다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사람을 못 죽이는 건 아니야. 특히나 나를 배신하거나 그럴 행동을 보이는 것들에겐 딱히 자비를 못 느껴. 이해했어?”

“예, 예…….”

매향은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눈앞의 인물은 괴물이었다. 수십의 사람들을 붙잡는 저 내공의 안개 같은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내공이 수반될 행위임에도 지독하게 평온해 보이는 천애랑은 자신이 어찌 간을 보거나 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하오문인가?”

천애랑의 질문에 매향이 잠시 망설이자 ‘으득!’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부러졌던 덩치의 신형이 쓰러졌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죽은 것이 확실했다.

“말을 못 하는 건가? 아니면 목숨보다 중요한 대답인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저 2층에 남은 무림인이나 3층에 숨어 있는 누군가가 구해주길 기다리는 것인가? 즉시 대답을 못 한다면 죽는다.”

천애랑의 말이 장난이 아님을 안 매향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고, 공자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하오문이 맞습니다.”

매향의 다급한 대답에 천애랑이 여전히 차갑게 질문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말장난 좋아하지 않아. 이곳 주루와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하오문인가?”

매향은 연신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렸다. 정보집단의 일원으로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눈앞의 청년 같은 유형이었다.

힘으로 제압할 수 없으며 행동에 고민이 없고 길게 말을 끄는 것을 차단하는 자.

그리고 잃을 것이 없거나 그에 분노한 자.

쉽게 말해 강대한 무력이 있으면서 눈이 돌아간 자였다.

“예, 맞습니다. 이곳은 하오문의 지부로 이용되는 주루이며 오늘은 귀공을 모시고자 하오문도들만 자리해 있습니다.”

“날 이곳에 부른 이유와 공격한 이유는?”

매향은 천애랑의 질문에 지체 없이 대답을 했다.

“허리에 매신 옥패의 진위여부 확인과 실력확인, 그리고 경우에 따라 제압하고자 했습니다.”

천애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옥패를 들어 매향의 눈앞에 보였다.

“이 옥패의 의미는 뭐지?”

“소문주의 위를 나타내는 신표입니다.”

천애랑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소문주?”

“예, 예. 하오문에서도 하나만 존재하는 소문주님의 증표입니다. 어찌하여 귀공께서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나 지금 보니 옥패는 여지없는 진품입니다.”

천애랑은 손에 쥔 옥패를 보며 송소걸을 떠올렸다. 그리고 주변의 이들을 보았다.

동생이 하오문의 소문주라면 어찌됐든 이들은 동생의 부하들이 되는 것이었다.

“쯧.”

천애랑은 기운을 거두었다.

“커허억!”

“쿨럭!”

해방을 얻은 수십의 무인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은 숨을 몰아쉬면서 시선들이 오갔는데 천애랑을 공격할 생각을 하는 이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 그저 눈치만 봤다.

천애랑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매향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3층에 있는 이가 혹시 하오문의 문주인가?”

0